00231 재벌에이스 =========================
마치 무슨 공이든 최민혁이 던지는 공은 다 치겠다는 적극적으로 말이다. 최민혁은 배터박스에서도 연신 배트를 휘두르며 타격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염태수를 보면서 그래도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봐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민혁이 먼저 사인을 냈다. 녀석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포심 패스트 볼을 던져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염태수가 원하는 바깥쪽이 아닌 그가 가장 싫어하는 몸 쪽 높은 직구!
최민혁은 포수와 볼 일을 끝내자 바로 와인드 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좀 세게 던진다 싶게 공을 뿌렸다. 제구야 말할 필요가 없으니 그의 공은 정확히 염태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쐐애애애액!
뻐엉!
“뭐꼬!”
염태수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몸 쪽 높은 직구에 꼼짝도 못하고 사투리로 감탄 성을 터트렸다. 뒤이어 주심의 콜이 좀 늦게 울렸다.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염태수는 이내 허탈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전광판을 쳐다보고는 뭔지 몰라도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걸 보고 최민혁도 힐끗 뒤돌아 전광판을 쳐다봤다. 157Km/h! 오늘 투수들이 던진 공중에서 가장 빠른 공이었다.
‘구속이라.....’
투수에게 있어서 최고의 무기는 역시 빠른 공이다. 변화구도 빠른 공이 있어야 그 효과가 배가 되고. 빠른 공 없이 유인구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아무리 잘 던져도 구속이 150Km/h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메이저 리그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메이저 리그에서 그래도 먹히려면 150Km/h이상의 구속은 나와야 한다 이 소리였다.
최민혁은 여태 자신의 구속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국내에선 그의 공은 빠른 축에 속했으니까. 그런데 살짝 좀 아쉬웠다. 이왕이면 구속의 가운데 수자가 ‘5’가 아니라 ‘6’이 되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최민혁은 지금껏 160Km/h이상의 공을 던진 적은 없었다. 진짜 작정하고 무리해서 던진다면 160Km/h가 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나 부상의 위험 때문에 그렇게 무리한 적도, 할 필요성도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덩치 큰 염태수를 삼진으로 돌려 세운 뒤 최민혁이 자신의 구속에 대해 생각에 빠졌을 때 타석에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그 타자를 보고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럴 것이 염태수와 정 반대의 타자가 타석에 등장 했기 때문이었다.
키는 170센티가 조금 넘어 보였고 체구 역시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부진 몸을 가진 타자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국내 최고의 에이스 최민혁을 상대로 전혀 위축 되거나 긴장한 얼굴이 아니었다.
‘요놈 봐라?’
최민혁은 재미있는 얼굴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어째든 타자는 최민혁보다 후배였다. 그래서 일까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선배 예우를 한 것이다. 앞서 최민혁이 상대했던 다른 신인 타자들과는 인성부터가 다른 거 같았다. 그때 세나의 목소리가 최민혁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지금 상대하는 타자에게 적당히 안타 하나를 내 주세요.]
‘뭐?’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황당한 최민혁은 마운드에서 타임을 요구한 뒤 등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로진 백을 만지고 스파이크에 흙을 털면서 세나와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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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는 이미 최민혁에게 투수로서 미션을 내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안타를 내 주란 건 그 미션을 내 준 취지와 전혀 맞지 않았다. 안타를 내 주면 당장 퍼펙트, 노히트노런이 깨지니까.
그에 대해 세나의 설명이 있었다.
[지금 마스터께서 상대하는 타자는 5년 뒤 대한민국 야구를 짊어지고 갈 톱타자가 될 선수입니다. 그러니 그의 기를 살려 주는 차원에서 안타 하나 쯤 맞아 주라는 얘깁니다. 물론 이 선수의 안타는 예외로 마스터의 미션에 제외 될 테니 걱정 마시고요.]
‘그, 그래?’
하지만 최민혁의 자존심은? 신인 타자에게 안타를 맞게 되면 실추 될 그의 명예는........
최민혁의 그런 생각을 읽은 세나가 바로 이어 말했다.
[그런 점을 모두 고려해서 마스터께서 안타를 맞아 주시면 보상으로 20,000포인트를 지급할 생각입니다 만.]
‘2만 포인트!’
최민혁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2만 포인트 정도면 그의 자존심에 살짝 생채기 정도 나는 건 상관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펑!
“스트라이크! 원!”
문제는 최민혁이 한 복판에 치라고 던져 주는 공에 녀석이 배트조차 내지 못하고 있단 점이었다. 딱 봐도 최민혁의 공을 보고 쫀 게 확실했다. 하긴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야 자신이 있었겠지. 하지만 최민혁이 달리 국내 최고 에이스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직구라도 같은 직구가 아니었다. 최민혁의 직구. 특히 포심은 구위가 살아 있었다. 때문에 타석에서 실제 그 공을 접해 본 타자들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신인 타자야 오죽할까?
펑!
“볼!”
최민혁은 그래서 타자가 눈에 익게 빠지는 볼 3개를 연달아서 던졌다. 이때 최민혁은 자신의 완급 조절 능력을 사용해서 구속을 조금 씩 떨어트렸다. 그 다음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을 통해 타자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에 145Km/h의 밋밋한 직구를 던졌다.
‘이것도 못 치면 넌 바보다.’
최민혁이 그 생각을 할 때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그리고 정타로 공을 때렸고 공을 유격수 앞으로 날아갔다.
‘젠장.....’
안타를 맞아야 하는데 평범한 내야 땅볼이 나오게 생긴 것이다.
파앗!
그때 투 바운드 된 땅볼이 유격수 앞에서 갑자기 튀어 올랐다. 거기다 최민혁이 삼진 쇼를 펼치고 있었기에 타이탄스 유격수도 방심하고 있었던 부분도 있었던 터라 그 타구를 바로 잡지 못했다. 타구는 유격수 글러브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유격수가 더듬거리는 사이 주자는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유격수는 1루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어차피 던져 봐야 세이프니까. 근처 3루수가 혹시 모를 폭투 사태를 우려해서 유격수가 송구하는 걸 만류한 것이다. 유격수가 최민혁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최민혁은 괜찮다며 웃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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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는 체구는 작지만 깡다구가 있었다. 거기다 노력하는 선수라 태산 베어스 2군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전부 그를 좋아했다. 거기다 맞추는 타격 능력이 좋아서 봉준석 감독은 최민혁을 상대할 타자를 고를 때 제일 먼저 이민호를 골랐을 정도였다.
이민호는 앞선 4타석에서 자신과 같은 신인 타자들이 줄줄이 최민혁에게 삼진을 당하는 걸 보고 역시 최고 에이스 최민혁이다 싶었다. 하지만 상대 해 보기도 전에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웃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운드의 최민혁과 눈을 마주치자 인사까지 했고.
그런 그를 보고 최민혁도 웃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 되고 그의 초구가 포수 미트에 꽂히자 이민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최민혁의 공은 여태 이민호가 상대 해 온 다른 투수의 공과 질적으로 달랐다. 공이 살아서 꿈틀거렸다. 이런 공은 쳐 봐야 정타가 나오기 어려웠다. 이민호는 최민혁의 초구를 타석에서 직접 영접한 뒤 넋이 나갔다. 완전 쫀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야구를 한 게 아닌데.......’
그런데 천운인지 최민혁의 제구가 흔들렸다. 연속으로 3개의 공이 빠져 들어오면서 볼 카운트도 투수에게 불리한 3-1, 거기에 초구에서 봤던 최민혁의 꿈틀거리던 공의 구위도 점차 밋밋해지기 시작했고.
‘이 정도면 나도 칠 수 있겠는 걸?’
갑자기 자신감이 확 차오르면서 이민호는 다음 공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날아왔다.
‘대박!’
이민호는 가차 없이 배트를 돌렸다. 공은 제대로 배트에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좋아서 배트를 빨리 냈고 동시에 당겨 쳐 버렸다. 그 때문에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다. 이민호는 땅볼을 치자 아무 생각 없이 냅다 1루로 내달렸다.
‘그래도 친 게 어디야.’
땅볼 아웃을 당해도 상관없었다. 다른 타자들은 최민혁의 공을 건드려 보지도 못했지 않은가? 이민호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1루 베이스를 밟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1루심의 아웃 콜이 없었다. 그때 1루 베이스를 통과해서 막 돌아 서는 그의 귀로 1루심의 선언이 들려왔다.
“세이프!”
“세이프라고?”
놀란 이민호가 유격수를 쳐다보니 유격수가 투수 최민혁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민호야! 잘했다.”
그때 쪼르르 1루 주루 코치가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네가 신인 타자들 면을 세워 주었구나.”
주루 코치가 이민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의 땅볼 타구가 유격수 강습 내야 안타로 주심이 인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얼떨떨한 얼굴의 이민호의 입에 웃음이 번졌다.
‘내, 내가 최민혁에게서 안타를 뽑아냈다고?’
아직 믿기지 않았지만 이민호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확 차올랐다. 아마 그 자신감은 이민호가 앞으로 야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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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일타쌍피라고나 할까? 원하는 대로 안타는 내주었지만 그의 면은 크게 상하지 않은......
그래서 최민혁은 유격수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 드렸다. 그때 그의 눈앞에 간결한 창이 떴다.
[획득 포인트 +20,000. 투수 총 포인트: 20,000]
최민혁은 여태 타자 총 포인트로 나오는 포인트 합계치가 투수 총 포인트로 바뀐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미션은 투수로서 그가 번 포인트니까 투수 총 포인트가 되는 게 상식적으로도 맞았던 것이다.
최민혁은 바로 투구를 해야 했기에 눈앞에 포인트 창을 지웠다. 그때 갑자기 상대 덕아웃이 부산해졌다.
그럴 것이 최민혁의 상대로 6명의 신인 타자들만 준비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최민혁에게서 안타를 뽑아냈으니 타석에 결원이 한 명 생긴 셈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그 결원을 메울 타자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나는 짓궂었다.
[마지막으로 병살타를 유도해서 마지막 이닝을 마무리 지으세요. 성공하시면 10,000포인트를 보상으로 드립니다.]
‘안타를 주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런 생각을 읽은 세나가 말했다.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 지는 법이지요. 이민호 선수도 그런 타입입니다. 지금 들떠 있는 그에게 야구가 쉽지 않다는 교훈을 알려 줘야죠. 아! 그리고 앞서 마스터께서 생각 하신 거 말이에요.]
‘내가 생각 한 거?’
[네. 구속을 올리는 거 말입니다. 3-4Km/h는 지금 바로 올릴 수 있어요.]
‘뭐?
최민혁이 세나의 대답에 황당해 할 때 세나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