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0 재벌에이스 =========================
9회 초 타이탄스 공격. 선두 타자인 9번 타자는 맥없이 태산 베어스 마무리 투수에게 3구 삼진으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러면서 살짝 원망어린 시선으로 덕 아웃을 쳐다보았다. 그 덕 아웃에는 최민혁이 팔짱을 낀 체 앉아 있었는데 8회까지만 해도 타이탄스 타자들에게 상대 투수가 어떤 코스로 어떤 구종의 공을 던질지 친절하게 알려 주던 그가 갑자기 9회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원래 9번 타자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최민혁에게 가서 직접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이제 잘 모르겠네요. 알아서..... 실력껏, 능력껏 상대하세요.”
그게 최민혁이 9번 타자에게 해 준 말의 다였다. 결국 9번 타자는 최민혁의 조언 없이 타석에 들어섰고 150Km/h가 넘는 공을 펑펑 던져 대는 상대 마무리 투수에게 3구 삼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9번 타자가 타석에서 물러나고 1번, 톱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 역시 최민혁의 조언을 기대했건만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앞선 타자보다 나은 것이 대기 타석에서 태산 베어스의 마무리 투수 천지후의 투구 내용을 살 필 수 있었기에 노리는 공 하나는 머릿속에 생각해 두고 배터박스에 설 수 있었다. 이때 천지후는 타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포수 이지혁의 사인을 주고받았다.
‘포심을 바깥쪽으로? 오케이!’
천지후는 이지혁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빠른 투구동작으로 공을 뿌렸다. 아슬아슬하게 홈플레이트를 스쳐 지가는 공.
뻥!
“스트라이크! 원!”
주심이 시원스럽게 콜을 했다. 그리고 이지혁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어 타자 몸 쪽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이때 타이탄즈 1번 타자는 태산 베어스 마무리 투수의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서 최대한 배터박스 뒤로 자리를 옮기고, 배트를 짧게 잡고 있었다. 빠른 공을 치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그때였다.
쐐애애애액!
천지후의 공이 날아듦과 동시에 타이탄스 톱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하지만 마치 마술처럼 뚝 떨어져 내리는 천지후의 공!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가기 전에 타자의 배트가 먼저 돌았다.
부웅!
펑!
“스윙! 스트라이크! 투!”
그야말로 기가 막힌 커브였다. 천지후의 명품 커브에 헛스윙을 단 타이탄스 1번 타자는 이를 악물며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천지후는 우완이지만 오버핸드에 디셉션이 훌륭하고 공도 빨랐다. 거기가 좀 전에 던진 커브까지. 마무리로서 어디 하나 손색이 없는 투수였다.
뻥!
그리고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꽂히는 포심 패스트 볼!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타이탄스 1번 타자는 선 체 배트도 못 휘둘러보고 루킹 삼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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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타이탄스 타자들이 간절한 눈길을 보내도 계속 모른 척했다. 앞서는 최민혁도 태산 베어스 2군을 상대로 이길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아서 자신의 능력인 피칭존을 활용해서 상대 투수가 무슨 공을 던질지 타이탄스 타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하지만 10대 14로 앞선 가운데 8회 말부터 자신이 마운드에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타이탄스 타자들에게 상대 투수의 공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사실 귀찮은 일이긴 했으니 말이다.
앞서 이닝에서도 최민혁은 덕 아웃 벤치에 앉아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타이탄스 타자들에게 상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려 주고 다니느라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9회 말 한 이닝을 남긴 상황에서 4점을 앞서 있었다. 최민혁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아무리 못 던져도 한 이닝에 4점을 실점한 적은 그가 야구를 시작 한 이래로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최민혁이 혼자서도 충분히 승리를 지켜 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9회 초 타이탄스 공격에서 더 이상 점수를 내지 않아도 상관없었기에 최민혁은 더 이상 타이탄스 타자들의 타격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9회 초 9번부터 시작한 타이탄스의 공격은 상대 투수, 태산 베어스의 마무리 투수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9번 타자에 이어서 1번 타자도 삼진을 당하고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뻐엉!
“스트라이크! 원!”
초구를 한 복판에 찔러 넣은 태산 베어스의 마무리 투수. 상대 투수의 153Km/h의 강속구에 타이탄스 2번 타자는 배트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웃 카운트 2개를 잡고 초구까지 스트라이크로 기분 좋게 시작한 천지후는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살짝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살짝 긴장이 풀렸다고나 할까? 그때 포수 이지혁이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 알았어.’
천지후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 후 공을 던졌다. 역시나 151Km/h의 강속구.
뻐엉!
“볼!”
이번엔 살짝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는지 주심이 볼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이지혁은 타자가 몸을 움찔하는 걸 보았다. 그래서 3구도 2구와 같은 코스를 요구했다. 단지 공을 좀 빼라는 신호를 넣었다. 타자의 배트가 나올 것을 염두에 둬서 말이다.
천지후는 이지혁이 시키는 대로 2구와 같은 바깥쪽 낮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 볼을 던졌다. 대신 좀 빠지게.
뻐엉!
부웅!
공이 미트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타자의 배트가 힘차가 돌아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투!”
타이탄스 2번 타자를 공을 치기가 쉽지 않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타석에서 타격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걸 보고 이지혁은 천지후에게 커브를 요구했다.
‘나랑 똑 같네.’
안 그래도 천지후도 커브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 천지후는 커브를 던졌고 타이탄스 2번 타자는 앞선 1번 타자와 같이 선 체 루킹 삼진을 당했다. 그렇게 9회 초. 사실상 타이탄스의 마지막 공격은 태산 베어스 마무리 투수에 의해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오늘 경기의 마지막 이닝. 9회 말 태산 베이스의 공격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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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타이탄스의 마지막 공격이 끝나자 바로 글러브와 모자를 챙겨서 덕 아웃을 나섰다.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서 연습 투구를 2구 쯤 했을 때 대기 타석에서 제법 시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확인하니 거구의 타자 하나가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얼굴은 아직 앳되어 보이는 데 체구는 척 봐도 100Kg은 훌쩍 넘어 보였다. 최민혁이 마운드에서 녀석을 쳐다보자 덩치 큰 타자가 곧장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타격 자세를 잡는데 덩치도 큰데 타격폼도 요란했다. 하반신을 흔들어 대는 것이. 덩치와는 상반 된 앳된 얼굴의 타자는 제법 매서운 눈으로 최민혁을 노려보았다.
‘어쭈?’
그런 타자의 뜨거운 눈길을 최민혁은 피하지 않고 맞받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치며 불똥이 튀었다. 그러는 사이 타이탄스의 포수가 최민혁에게 사인을 넣었다. 최민혁이 사인을 넣지 않자 포수가 사인을 넣은 것이다.
‘커브?’
포수는 최민혁에게 강속구가 아닌 변화구를 요구했다. 그것도 앞서 9회 초에 상대 투수가 재미를 본 커브로 말이다.
원래 최민혁은 커브를 던질 줄 몰랐다. 그러나 최근 세나 덕에 커브와 함께 커터를 던질 수 있게 되었고 그 능력치만 80에 달했다. 최민혁은 바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투구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덩치 큰 타자가 더 요란하게 다리를 떨어댔다.
“차앗!”
최민혁은 기합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로 치솟아 오른 공이 단숨에 떨어져 내렸다. 폭포수 같은 명품 커브!
“크윽!”
갑작스런 최민혁의 커브에 상대 타자는 신음을 흘리며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던 배트를 재빨리 멈추려 했다.
펑!
“스윙! 스트라이크! 원!”
주심이 먼저 스윙 판정을 내렸다. 하긴 주심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와아. 지기네.”
덩치 큰 타자의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 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최민혁은 당연히 지금쯤 대구에서 여자와 만나고 있을 오성 라이온즈 2군 포수 조재욱이 생각났다.
덩치 큰 타자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다 다시 타석에 들어서서는 또 최민혁을 곧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때 포수기 이어서 사인을 냈는데 최민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포수의 사인은 바깥쪽에 걸치는 포심 패스트 볼! 하지만 좀 전 최민혁이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을 통해 살피니 타자가 바깥쪽 볼에 강했다. 덩치만큼이나 팔도 길었는데 그 긴 팔로 바깥쪽 공도 잘 밀어 때리는 모양이었다. 최민혁은 대신 자신이 사인을 냈다.
몸 쪽으로 붙이는 커브!
아마 덩치 큰 타자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코스 일터. 거기에 타자는 몸 쪽 높은 공에 약했다. 그렇다는 건 몸 쪽 커브에 꼼짝도 못할 공산이 컸다. 몸 쪽으로 높게 형성 되었다가 뚝 떨어질 때 그 타이밍을 아예 잡지도 못할 테니까.
휘익!
최민혁은 곧장 공을 던졌고 그 공은 덩치 큰 타자의 품으로 파고 들어갔다.
펑!
“스트라이크! 투!”
몸 쪽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서 들어간 커브에 대해 주심은 망설임 없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
“하아!”
덩치 큰 타자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깥쪽 빠른 공을 노리고 있었는데 몸 쪽 커브가 들어오니 이건 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거기다 몸 쪽 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타자다 보니 쉽게 배트도 나오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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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포들이 즐비한 태산 베어스에서도 염태수는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히는 덩치를 자랑했다. 3년 전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태산 베어스는 10라운드에서 북일고의 4번 타자 염태수를 영입했다. 당시도 120Kg의 거구였던 그는 다른 프로팀에서는 공격에 비해 수비가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영입을 포기했는데 타격을 최우선시 하는 태산 베어스에게는 10라운드에서 영입하려 했던 선수가 드래프트를 포기해 버리면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염태수를 뽑았다.
현재 염태수는 키는 190센티가 좀 못 되는 데 몸무게는 130Kg에 육박했다. 수비 포지션은 당연히 움직임이 덜한 1루수였고 작년부터 2군에서 대타로 출전 기회를 잡아서 활약 하고 있었다.
대타 기록만을 놓고 보면 46타석에서 13안타, 13개의 안타 중에 무려 10개가 홈런이었다. 즉 걸리면 넘어간단 소리다.
대타 타율도 나쁘지 않아서 봉준석 감독은 그가 살을 좀 빼고 경험을 더 쌓으면 1군에서도 제대로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조금 늙은 신인이지만 특별히 국내 최고 에이스 최민혁을 상대 해 볼 기회를 준 것이다.
염태수는 오로지 최민혁의 패스트 볼, 그것도 포심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최민혁은 커브 두 개로 스트라이크 두 개를 잡았다. 그러자 조급해진 염태수는 불룩한 배를 배터박스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적극적인 타격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