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7 재벌에이스 =========================
최민혁도 세나의 미션 때문이라도 이 시합에서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스코어는 10대 14, 무려 4점 차 리드 중인 상황에서 그가 마운드에 오른다? 사실상 타이탄스의 승리가 확정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죠.”
어차피 최민혁은 1이닝 이상 공을 던지기로 되어 있었다. 8회 말에 그가 등판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최민혁은 윤동준 감독이 건넨 투수 글러브를 받아들고 천천히 그라운드로 나섰다.
중견수일 때는 자기 자리를 찾아 가느라 센터 방면 까지 뛰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최민혁의 눈앞에 봉긋하게 솟아 있는 작은 동산이 보였다. 최민혁은 그 동산을 뒷짐을 진 체 느긋하게 올라갔다.
그 사이 윤동준 감독은 주심에게 가서 투수 교체에 대해 얘기했다. 최민혁이 마운드에 오르자 경기장에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양쪽 덕 아웃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타이탄스 덕 아웃은 웃음이, 태산 베어스 2군 덕 아웃은 경악과 절망이 가득했다. 특히 태산 베어스 2군 감독 봉준석의 경우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아!”
그리고 그의 입에서 긴 탄식이 흘러 나왔다. 나정 히어로즈 2군이 패한 데 대한 복수를 확실히 할 생각이었는데 그건 이제 물 건너 간 것이다. 하지만 봉준석 감독이 이 시합을 허락한 진짜 이유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2군 유망주들에게 국내 최고 에이스와 대결하게 해 주는 것. 봉준석 감독은 서둘러 준비되어 있던 신인 타자들을 덕 아웃에서 불러냈다.
그 수는 정확히 6명. 최민혁이 1이닝 이상 던져 준다고 봤을 때 최대한 산정한 수였는데 그게 딱 맞았다.
봉준석 감독의 예상이라면 저들 6명 중 살아서 루상으로 나가는 타자는 없을 터였다. 괜히 최민혁이 국내 최고 에이스가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최민혁이 마운드에 오른 이상 승부는 결정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즉 감독으로서 작전 같은 것도 더 필요 없어졌단 소리다.
“너부터 차례대로 나가라.”
봉준석 감독은 그 앞에 서 있는 신인 타자 6명 중 제일 왼쪽 선수부터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봉준석 감독의 말을 이해 한 신인 타자들은 제일 왼쪽 선수부터 3명이 즉시 배트와 헬멧을 챙겨서 대기 타석으로 나갔다.
그 3명의 타자들 중 오늘 운 좋게 봉준석 감독으로부터 가장 먼저 타석에 들어 설 기회를 잡은 타자는 배준기였다.
그는 작년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태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풋풋한 신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타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초 중반에 대타로 간혹 나왔던 그는 말에는 선발, 즉 주전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비록 선배들에 밀려서 하위 타선에 배치되었지만 그 때문에 그의 진가는 더 발휘 되었다. 하위 타선에서 뻥뻥 쳐 대니 더 빛날 수밖에.
“최민혁!”
타자라면 누구나 상대하고 싶은 투수였다. 최고 에이스! 그 에이스를 꺾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바로 최고 타자가 된단 소리였다.
배준기는 자신이 최민혁의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어 낼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공을 칠 수는 있을 거라 자신했다.
“시작하지?”
주심의 말이 배준기의 귀에 들려왔다.
“네!”
재빨리 대답한 배준기가 배트를 들고 곧장 타석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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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마운드에 오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역시 투수라 이거지?’
최민혁의 주 포지션은 어째든 투수였으니까. 그때 세나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8회에 마운드에 오르셨습니다. 실점 없이 시합을 잘 마무리 지으세요. 퍼펙트로 마무리 지으시면 10,000포인트, 노히트노런은 6,000포인트, 완봉은 3,000포인트, 완투는 1,00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세나가 최민혁의 포지션이 투수로 바뀌자 바로 바뀐 포지션의 미션을 내 놓았다. 최민혁으로서는 당연히 퍼펙트로 남은 이닝을 지우고 만 포인트를 챙기고 싶었다. 그때 그의 마운드 등장에 시끄럽던 태산 베어스 2군의 덕 아웃에서 새파란 애송이 타자 셋이 나와서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최민혁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하아. 또 시험 대상인가?”
나정 히어로즈와 마찬가지로 태산 베어스 2군에서도 똑같이 최민혁을 상대로 신인 급 타자들을 내세울 모양이었다. 저들 감독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신인 타자들에게 언제 최민혁 같은 최정상급 에이스를 상대할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저들 3명 중 한 명이나 3년 안에 1군 무대에 오를까? 그렇다고 그 타자가 최민혁을 바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민혁도 로테이션대로 선발 등판하니까.
뭐 운 좋게 만나도 3번 이상 타석에 들어서기 어려웠다. 왜? 최민혁이 공을 던지니까.
최민혁은 포수가 내민 미트를 향해 가볍게 공을 던졌다.
펑!
그래도 구속이 140Km/h초중반이 나왔다.
“나이스 볼!”
포수가 추임새를 하며 신난 얼굴로 공을 최민혁에게 돌려주었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타이탄스의 포수는 진짜 신이 났다. 일단 그의 눈앞에 우뚝 솟은 마운드 위에서 던지고 있는 투수가 무려 국내 최고 에이스 최민혁이었다. 그의 공을 받는 것 자체가 포수에게는 영광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대단해.’
최민혁은 별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공을 던졌다. 그런데 미트에 꽂히는 공의 무게감이 달랐다. 앞서 던진 투수들에 비해 거의 배에 가깝게 공에 묵직함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때려 봐야 땅볼이나 뜬공 밖에 안 나오지.’
타이탄스의 포수는 최민혁에게 경외감과 함께 부러움을 느꼈다. 이런 구위는 훈련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타고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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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공 두 개 정도 던지고 나서 투수 상세 창을 생각했다. 여태 타자 상세 창만 봐 왔던 터라 투수 상세 창이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최민혁의 생각을 읽은 세나가 곧장 그의 눈앞에 투수 상세 창을 띄워주었다.
-야구선수(투수)
주 포지션: 선발 투수
유형: 좌완 에이스
제구력: 90
구위: 90
수비력: 55
구종1: 포심 - 85
구종2: 투심 - 85
구종3: 슬라이더 - 89
구종4: 체인지업 - 85
구종5: 커브 - 80
구종6: 커터 - 80
보유 능력: 무쇠팔(2단계), 강심장(2단계), 타구안(2단계), 핫 앤 콜드(Hot and Cold)(無단계)
아이템: 아이싱 붕대
최민혁은 투수 상세 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치들이 80-90으로 괜찮은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보유 능력들도 다들 2단계로 업그레이드 된 상태고.
‘핫 앤 콜드(Hot and Cold)!’
그 중에서 단연 최민혁의 눈에 띈 것은 나정 히어로즈와의 시합 후 구입한 능력인 핫 앤 콜드(Hot and Cold)였다.
투수에게 피칭존이란 게 있다면 타자들에게는 스프레이존이 있었고 그 스프레이존에서 타자들이 가장 핫 한 존과 가장 쿨 한 존을 표시해서 보여 주는 능력이 바로 핫 앤 콜드(Hot and Cold)다.
즉 최민혁은 더 이상 마운드 위에서 타자에 대한 정보 부재로 곤욕을 겪을 일은 없단 소리였다. 당시 거의 10,000포인트나 주고 이 능력을 구입했을 때는 비싸다는 생각 밖에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주 싸게 구입한 능력이었다. 당시 입 닥치고 핫 앤 콜드(Hot and Cold)능력을 그냥 사라는 세나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최민혁은 핫 앤 콜드(Hot and Cold)능력을 빨리 써 볼 생각에 서둘러 연습 투구를 마치고 주심에게 던져도 된다는 사인을 넣었다. 그러자 주심은 아직 타석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는 타자 쪽을 향해 소리를 쳤고 그 소리에 허겁지겁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 순간 최민혁은 핫 앤 콜드(Hot and Cold)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최민혁의 전면, 그러니까 포수 앞 쪽의 홈 플레이트 위에 네모 난 창이 떴다. 그리고 그 창에 빨갛고 파란 칸들이 보였다.
그때 세나의 목소리가 최민혁의 귀에 들려왔다.
[우선 빨강 칸은 티 안타율이 0.099이하일 때를 말해요. 주황 칸은 0.099-0.199, 회색 칸은 0.200-0.299, 연파랑 칸은 0.300-0.399, 파란 칸은 0.400이상, 그리고 하얀 칸은 3타수 미만을 의미합니다.]
세나의 설명에 최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에서 최민혁은 빨간 칸에다 공을 던지기만 하면 된단 소리였다.
‘이거 진짜 편하겠네.’
당연히 최민혁의 입이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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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을 통해 보기에 상대 타자의 약점은 낮은 직구와 바깥쪽과 몸 쪽 꽉 찬 볼이었다. 그걸 확인한 순간 최민혁은 바로 어떻게 볼 배합을 해야 할지 결정을 지었다. 그리고 직접 포수에게 사인을 냈다.
타이탄스의 배터리는 최민혁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 그가 먼저 사인을 내면 포수가 그 사인을 접수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수가 사인을 냈다. 타이탄스의 포수는 최민혁의 사인에 군말 없이 그걸 접수하고 미트를 내밀었다.
최민혁은 나정 히어로즈 2군을 상대했을 때처럼 전력 투구를 할 생각이 없었다. 투수 상세 창에도 나와 있지만 그의 제구력은 90에 달했다. 굳이 힘들여서 150Km/h 중반 대의 강속구를 던지기보다 제구 잘 된 140Km/h 중반 대의 공을 안정적으로 던지는 게 더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을 타자가 칠 수 있느냐?
펑!
“스트라이크! 원!”
당연히 못 친다. 왜냐?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에 나오는 타자가 가장 치기 어려운 코스에 그의 공이 날아가서 꽂히니까.
최민혁은 8회 말 태산 베어스 2군의 첫 타자를 상대로 낮은 직구를 던졌다. 전광판에 나온 구속은 딱 145Km/h였다. 구속도 타자가 딱 치기 까다로운 데 거기에 제구가 환상적이었다.
좀 전에 최민혁이 던진 낮은 직구는 타석의 타자가 쳐 봐야 땅볼 밖에 안 나왔다. 그러니 아예 안친 게 타자 입장에서는 나았다.
‘어디 보자.’
최민혁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나서 느긋하게 2구 사인을 포수에게 냈다. 그러자 포수가 또 군말 없이 미트를 내미는 걸 보고 최민혁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특유의 부드러운 투구 자세로 물 흐르듯 공을 뿌렸다.
펑!
“스트라이크! 투!”
이번에도 타자는 움찔만 했을 뿐 배트를 내지 못했다. 역시나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에서 알려 준 타자의 약점, 바깥쪽에 걸치는 공이 들어오자 타자는 꼼짝을 못한 것이다.
“타, 타임!”
타자는 사색이 된 얼굴로 배터박스를 나왔다. 그리고 황당한 시선으로 최민혁을 쳐다보다가 이내 이를 악물로 배트를 휘둘렀다. 아마 최민혁에 놀랐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을 터였다.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최민혁이 간파했는지 그게 놀라웠을 테고 그런 약점에 전혀 반응도 못하는 자신에게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을 터.
최민혁은 그런 타자의 입장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건 승부고 그는 최민혁을 이기기 위해서 뭔가 보여 줘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신인 타자는 곧 한계를 드러냈다. 마음으로야 파이팅을 수십 번도 더 외쳤지만 핫 앤 콜드(Hot and Cold)존에서 그의 약점이 보완 되지는 못했다.
부웅!
펑!
“스윙! 삼진 아웃!”
몸 쪽을 걸치는 완벽한 제구의 투심 패스트 볼에 타자의 배트가 맥없이 돌아갔다. 물론 안쳐도 삼진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