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7 재벌에이스 =========================
마운드 위에서 투수인 권오성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최민혁을 쳐다 본 반면 태성 베어스 2군 포수는 확실히 최민혁의 눈치를 봤다. 그렇다는 건 포수가 무슨 일이 있어도 최민혁 앞에서 이번 이닝을 끝내서 최민혁이 이번 이닝에 타석에 서는 일이 없게 만들려 들 거란 사실이었다.
실제로도 타이탄스의 2번 타자가 저들 배터리에게서 살아서 루상에 나가는 일은 최민혁이 봐도 일어날 거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찬스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4회 초에 무조건 달아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4회 말에 태산 베어스 2군에 역전 될지 몰랐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아쉽지만 야구는 팀 스포츠다. 최민혁 혼자 잘한다고 해서 팀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최민혁이 아무리 궁리를 해도 별 뾰족한 수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 세나의 목소리가 최민혁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이 상황에서 마친 쓸 만한 능력이 하나 있습니다만.]
세나의 말에 최민혁의 귀가 쫑긋 섰다.
‘그게 뭔데?’
최민혁이 바로 생각으로 묻자 세나가 즉시 대답했다.
[한 타석에서 투수나 타자를 최악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입니다. 포인트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5,000포인트에 모시도록 하죠.]
세나의 그 말에 최민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5,000포인트가 지금 싸단 거야?’
최민혁은 아무래도 냉철한 사업가의 능력들이 점점 비싸지다 보니 야구에서의 능력도 세나가 처음부터 너무 과하게 잡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읽은 세나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대신 제가 미션을 클리어 하면 그만큼 높은 보상 포인트를 지급하고 있잖아요.]
세나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최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도 야구에서는 처음 구입하는 능력이잖아. 서비스로 2단계 업그레이드는 공짜로 해줘.’
그 생각을 읽은 세나가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업그레이드까지 해서 5천 포인트에 모실게요.]
그 말을 듣자마자 최민혁은 생각했다.
‘그 능력을 구입하도록 하지.’
최민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세나가 바로 그의 눈앞에 간결한 창부터 띄웠다.
[소비 포인트 +5,000. 타자 총 포인트: 24,000]
최민혁이 타자 총 포인트를 확인하자 세나는 곧장 그의 눈앞의 창을 지우고 그가 새로 구입한 능력을 확인 할 수 있게 타자 상세 창을 띄웠다.
-야구선수(타자)
수비포지션: 없음
유형: 좌타 클러치 히터
좌 투 상대 컨택: 80
좌 투 상대 파워: 80
우 투 상대 컨택: 80
우 투 상대 파워: 80
번트: 50
배팅 클러치: 70
스피드: 85
송구 정확도: 82
스틸: 50
수비 범위: 82
보유 능력:한방 스윙(2단계),전력질주(2단계), 선구안(3단계), 워스트컨디션(Worst condition)(2단계)
아이템: 손목 보호대
할인권: 보유능력 30%DC(1회 한정)
최민혁이 타자 상세창의 보유 능력에서 워스트컨디션을 발견 하자 세나의 설명이 있었다.
[워스트 컨디션은 1단계의 경우 1경기에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2단계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1회에 한 번 사용이 가능합니다.]
최민혁은 그 얘기를 대충 듣고 워스트컨디션 능력을 바로 마운드 위의 투수 권오성에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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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은 타이탄스의 1번 타자를 삼진을 돌려 세운 뒤 갑자기 마운드에 올라 온 포수의 말에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그가 더 선배인데다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보다 1년 먼저 태산 베어스에 들어 와서 이제 1군에 올라 갈 배재성이 오늘 맞은 두 개의 홈런은 모두 최민혁이 쳤다. 그래서 포수는 최민혁이 타석에 올라오지 않게 이번 타자를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고 권오성에게 말했다.
그 말이 권오성에게는 너도 최민혁에게는 안 된다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화는 이내 누그러졌다. 지뢰가 어디 있는 지 아는 데 굳이 거기 가서 지뢰를 밟을 필요는 없었다.
오늘 최민혁은 제대로 된 지뢰였고 배재성은 그 지뢰를 연속으로 두 번 밟았다. 하지만 권오성은 그 지뢰를 밟을 생각이 없었다. 막말로 피해 버리면 될 타자였던 것이다. 그 하나 때문에 파편이 튀어 팀이 피해를 입게 만드는 것보다 그게 나았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눈앞의 타자를 잡고 최민혁은 5회 초에 첫 타자로 상대, 아니 피할 생각이었다.
부웅!
펑!
“스윙! 스트라이크! 원”
타이탄스이 2번 타자도 딴엔 머리를 쓰고 타석에 섰다. 그는 권오성이 초구에 빠른 속구를 던질 거라 여기고 거기 맞춰 배트를 냈다. 하지만 권오성이 던진 초구는 커브였고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른 뒤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펑!
“스트라이크! 투!”
그리고 이어진 2구는 한 복판에 제대로 꽂힌 강속구! 155Km/h의 공이 날아와서 포수 미트에 박히자 타이탄스 2번 타자는 배트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걸 보고 태산 베어스 2군 포수가 마스크 속에서 웃었다.
‘끝났군.’
강속구 하나만 더 던지면 타자를 잡아 낼 수 있을 터였다. 포수는 곧장 같은 공을 요구했고 권오성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트 포지션에서 빠르게 공을 뿌렸다.
“헉!”
그런데 한 복판으로 들어와야 할 공이 갑자기 위로 날아왔다. 포수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며 그 공을 잡았다. 그러자 마운드 위의 권오성이 손가락이 미끄러졌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포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공을 투수에게 던지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한 복판에 빠른 직구를 요구했고 권오성은 아예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대신 신중한 얼굴로 다시 세트포지션 후 빠르게 투구 동작을 취하고 공을 던졌다.
펑!
“볼!”
그런데 볼이 한 복판이 아니라 옆으로 확 빠졌다. 그러니 타자가 그 공에 현혹 될 일도 아예 없었고. 그렇게 0-2였던 볼 카운트가 2-2로 바뀌었다. 그때 까지도 포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권오성은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3개 중 1개는 한 복판에 집어넣었으니까. 볼 두 개를 던졌으니 이제 한 복판에 직구가 들어 올 타이밍이었다.
포수는 아예 사인도 넣지 않고 미트를 벌린 체 여기에 꽂아 넣으라고 기다렸다.
펑!
“볼!”
그런데 권오성은 포수가 벌리고 있는 미트로 공을 던지지 않고 또 옆으로 확 빠지는 공을 던졌다. 그 공을 거의 몸을 날리다시피해서 잡아 낸 포수는 곧장 ‘타임’을 외쳤다. 그리고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오성아. 왜 그래?”
“아,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져서.....”
“그럼 힘을 빼고 던져. 너 어깨에 힘 좀 빼면 한 복판에 공을 던져 넣을 수 있잖아?”
“하지만......”
“좋아. 안 되겠으면 커브로 끝내자. 커브는 던질 수 있겠지?”
“네. 한 번 해 볼게요.”
그렇게 얘기를 끝낸 포수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이 볼 카운트는 3-2. 풀카운트 상황에서 포수는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타석에서 바짝 쫄아 있는 타자를 보아하니 커브가 와도 못 칠 거 같았다.
펑!
그리고 포수의 예상대로 타이탄스의 2번 타자는 권오성의 커브를 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더 문제였다.
“볼! 볼 포!”
타이탄스 2번 타자가 커브에 배트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권오성의 커브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타석에 서 있기만 한 타이탄스 2번 타자가 Base on balls로 1루로 걸어 나가면서 졸지에 만루 상황을 맞고 말았다.
거기에 타석으로 타이탄스의 3번 타자. 오늘 홈런 두 방의 장타력을 뽐내고 있는 그가 타석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걸 보고 태산 베어스 2군 포수의 입이 실룩 거렸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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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잡았어야 할 타자에게 포볼을 내 준 권오성도 타석에 들어서는 최민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걸 두고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인 기분이란 건가?’
그만큼 권오성은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그리고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이때 갑자기 컨디션 난조가 찾아 와서는.....
권오성은 최민혁이 타석에 서기 전에 연습 구를 하나 던졌다.
펑!
이제야 공이 제대로 들어갔다. 컨디션이 어떻게 회복 된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는가? 다음 타자가 최민혁인 걸 말이다.
권오성은 슬쩍 덕 아웃을 쳐다보았다. 이럴 때 덕 아웃에서 사인이 나와 주면 투수는 한결 편했다. 시킨 대로 던지면 되니까. 하지만 덕 아웃은 조용했고 대신 포수가 사인을 냈다. 한 복판으로 직구를 던지지 말란 사인이었다.
“쳇!”
안 그래도 제구가 문제인 그에게 제구가 된 직구를 던지란 소리였다. 권오성은 나름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투구판을 밟고 섰다.
‘그래. 최민혁이라고 해도 내 공을 칠 수 있단 법은 없어.’
앞선 배재성은 구속이 그보다 느렸다. 그래서 어떻게 그 공을 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권오성의 공은 배재성보다 10Km/h나 더 빨랐다.
‘어디 칠 수 있으면 쳐 봐라.’
권오성은 이를 악물고 포수 미트를 보고 공을 뿌렸다. 그리고 그 공은 제대로 날아갔고 포수 미트에 박혔다. 물론 살짝 포수가 미트 질을 하긴 했지만.
펑!
“......볼!”
주심이 조금 느리게 콜을 했다. 포수의 미트 질에 자칫 속을 뻔했지만 확실히 홈 플레이트를 벗어난 볼이었다.
권오성은 마운드에서 자신의 공에 최민혁이 꼼짝도 못하고 서 있는 걸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리고 이번에도 포수가 살짝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 난 곳에 미트를 내밀고 있는 걸 보고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흥! 저러니 만날 2군 안방만 지키고 있는 거지.”
포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권오성은 곧장 세트포지션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빠르게 투구동작 후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이 한 복판으로 날아갔다.
따악!
순간 포수의 미트에 들어 가야할 공이 사라졌다. 포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시선이 좌측으로 향했다. 그때 타석의 최민혁이 여전히 배트를 들고 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최민혁의 타구가 살짝 폴대 옆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큼지막한 홈런 파울을 친 최민혁이 다시 타석에서 타격 자세를 취할 때 마운드 위에서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 시킨 권오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씨발. 진짜 잘 치네. 그걸 그냥........어휴!’
그 뒤 권오성은 오로지 포수가 내미는 미트를 향해서만 집중해서 공을 던졌다. 그 결과 3-2 풀 카운트!
최민혁은 한 복판으로 들어오는 공은 여지없이 커트를 했고 볼에는 아예 배트를 내지도 않았다. 그때 포수가 권오성에게 몸 쪽 라이징 패스트 볼 사인을 냈다.
‘삼진을 잡자고?’
권오성의 눈의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