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5 재벌에이스 =========================
원래 타이탄스에서 주로 서 왔던 중견수 자리라 금방 바뀌어도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양쪽 외야수와 가볍게 눈빛을 교환 한 뒤 최민혁은 마운드를 쳐다보았다. 3회 초에 5실점 하며 배재성이 마운드에서 내려왔는데 타이탄스의 투수는 3회를 버틸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뒤통수를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봤을 때 태산 베어스 2군은 3회 초에 뒤통수를 오지게 얻어맞았다. 정신 차린 그들이 3회 말에 가만있을 리 없었다.
따악!
최민혁이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타이탄스의 선발 투수가 초구를 던졌는데 그 공을 태산 베어스 2군 2번 타자가 냅다 후려쳤다.
그 공은 빨랫줄처럼 쭉 뻗어서 중견수와 좌익수 사이 공간을 갈랐다.
파파파파팟!
그때 최민혁이 보유능력인 전력 질주를 사용했다. 이 정도면 타자는 당연히 2루까지 뛸 것이다. 그것도 여유 있게 뛰어서.
‘기회다.’
최민혁은 2루 보살이 가능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타구 처리만 잘 이뤄진다면 말이다. 타구가 너무 빠른 것도 최민혁에게 희망적이었다.
턱!
타구는 투 바운드 뒤 펜스를 때리고 나왔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최민혁이 워닝트랙(Warning track)에 서 있다가 그 공을 받아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냅다 2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쐐애애액!
공은 거의 포물선도 그리지 않고 다이렉트로 2루수에게 날아갔다.
척!
2루 베이스 앞에 서 있던 2루수는 자칫 잡은 공을 놓칠 뻔했다. 그 만큼 공에 실린 힘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서 2루로 뛰어 들어오고 있던 태산 베어스 2군의 2번 타자를 태그 했다.
“이, 이게 대체.....”
당연히 2루타를 치고 2루로 들어가던 태산 베어스 2군의 2번 타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웃!”
하지만 최민혁이 워닝트랙 앞에서 던진 공이 2루수 글러브에 들어가는 걸 이미 보고 있었던 2루심은 바로 아웃을 선언했다. 그때 첫 타자부터 두들겨 맞아서 2루타를 내줄 뻔한 타이탄스의 투수는 얼굴이 만개해서는 글러브 박수를 치며 최민혁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최민혁은 멋쩍게 웃으며 그런 투수에게 계속 수고하라고 손을 들어 보였고. 그런 최민혁의 머릿속으로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우! 벌써 미션 하나를 완수 하셨군요. 축하드려요. 안타 성 타구 5개를 전부 잡아 내셨습니다. 이에 약속한 보상 포인트가 지급 됩니다.]
그 말 후 최민혁의 눈앞에 간결한 창이 떴다.
[획득 포인트 +15,000. 타자 총 포인트: 26,000]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세나의 목소리가 다시 최민혁의 머릿속을 울렸다.
[원래 내려던 미션 전에 마스터께서 멋진 보살 플레이를 선보이셨습니다. 그에 보상 포인트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뒤에 최민혁의 눈앞에 간결한 창이 바뀌었다.
[획득 포인트 +3,000. 타자 총 포인트: 29,000]
그리고 세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포지션이 바뀌어서 수비 미션이 변경 됩니다. 안타 성 타구 3개를 잡아내세요. 그럼 보상 포인트 10,00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보살의 경우 하나에 3,000포인트를 지급할 예정이오니 더 적극적으로 수비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민혁이 세나의 말과 그녀가 띄워주는 창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타석에 태산 베어스 2군의 중심 타자 중 한 명인 3번 타자가 들어섰다.
--------------------------------------------------------------
따악!
호쾌한 타구 소리와 함께 공이 최민혁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이건 수비를 하고 자실 필요도 없었다. 최민혁이 타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역시나 공은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쩝!”
최민혁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마운드를 쳐다보자 그 위의 타이탄스 선발투수가 애써 웃고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잘 알았다. 홈런 맞았을 때 그 더러운 기분을 말이다. 그런데 그건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따악!
앞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적이 있었던 터라 타이탄스 선발투수는 나름 조심스런 투구를 했다. 그래서 볼 카운트 3-1으로 몰렸고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몸쪽으로 찔러 넣은 직구를 태산 베어스 2군의 4번 타자가 밀어 쳤다. 그런데 그 공이 좌측 펜스를 훌쩍 넘겼다.
“진짜 힘 하나는 무식하게 세구나.”
그걸 보고 최민혁이 혀를 내두를 때 태산 베어스 2군의 4번 타자는 여유있게 루상을 돌아서 홈을 밟았다. 그렇게 스코어는 3회 말이 시작 되었을 때 2대 6에서 홈런 두 방으로 금세 4대 6이 되었다. 최민혁도, 그리고 타이탄스의 다른 선수들도 설마했다.
따악!
“헉!”
태산 베어스 2군의 5번 타자의 스윙이 과도하게 크게 돌아갔다. 그런데 그 배트에 공이 정확히 맞았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번엔 타구가 우측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골고루 넘기네.”
그걸 보고 최민혁이 투덜거렸다. 3번 타자에게 센터 방면의 홈런을, 4번 타자에게는 좌측, 그리고 5번 타자에게는 우측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을 허용한 것이다. 그 홈런 3방으로 타이탄스의 선발투수는 너덜너덜 해 져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타이탄스의 윤동준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갔다. 그리고 선발투수에게서 공을 넘겨받았다.
타이탄스 역시 선발 투수가 3회를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마운드에 오른 타이탄스의 투수는 최민혁도 잘 아는 선수였다.
사회인 야구단 데스페라도에 있다가 이제 타이탄스의 선수가 된 유명철이 마운드에서 올라서 흙을 골랐다. 그 뒤 윤동준 감독에게서 공을 받고 몇 가지 주의 상황을 들었다. 그 뒤 윤동준 감독이 마운드 옆으로 비켜서자 유명철의 연습 투구가 시작 되었다.
유명철이 4개째 연습 투구를 하고 나자 타이탄스의 포수가 ‘타임’을 외치며 마운드로 향했다. 그리고 사인 체크를 하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투수들은 몰라도 유명철은 상대 타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강한 면모를 보이는 유형의 투수였다. 그래서 태산 베어스 2군과의 시합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자 바로 태산 베어스에서 일하는 친한 전력분석가에게 태산 베어스 2군 타자들의 정보를 빼냈다.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 친분 있는 전력분석가는 유명철이 사회인 야구단에서 취미로 야구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그 정보를 내 주었다. 대신 최고급 횟집에서 한 상 잘 차려진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아무튼 그 정보를 분석한 유명철은 자신이 있었다. 물론 태산 베어스 2군의 중심 타자들은 거의 약점이 없기에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하위 타선은 자신이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윤동준 감독에게 그 사실을 어필했고 윤동준 감독은 기꺼이 그를 이번 시합에 불펜 명단에 넣어 주었다.
최근 제구력이 더 좋아진 유명철은 상대를 꿰뚫고 있는 만큼 태산 베어스 2군 타자들의 약점을 효율적으로 공략 해 나갈 생각이었다.
“플레이 볼!”
연습 투구가 끝났다고 판단했던지 주심이 경기 재개를 외쳤다.
“후우!”
마운드 위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 유명철이 중얼거렸다.
“좋아. 딱 2이닝 만 막자.”
그렇게 자신을 추스른 유명철은 글러브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평소 미끄럽게 여겨졌던 공이 오늘 따라 그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그리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졌던 타석의 타자도 오늘 따라 작아보였다.
----------------------------------------------------------
펑!
타이탄스의 포수는 묵직한 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구속은 140Km/h 초 중반이지만 타자가 쉽게 칠 수 있을 만한 공이 아니었다. 그 만큼 오늘 유명철의 공이 좋다는 소리였다. 감독이 선발 투수를 내리고 바로 유명철을 마운드에 세울 만 했던 것이다.
“포심이 좋군.”
내심 변화구 위주로 경기를 풀어 나가려던 타이탄스의 포수는 유명철의 포심의 볼 끝이 살아있자 직구로도 타자와 승부를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연습 투구 후 타이탄스의 포수는 마운드에 올라서 혹시 몰라 사인을 변경했다.
가끔이지만 상대측에서 포수의 사인을 몰래 보고 분석해서 써 먹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포수는 알아서 투수와 사인을 수시로 바꿨던 것이다.
그 뒤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간 포수는 타석에 태산 베어스 2군의 6번 타자가 들어서자 바로 사인을 냈다.
마운드의 유명철은 포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뒤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첫 투구를 했다.
바깥쪽 하단을 걸치고 들어가는 싱커! 우타자인 태산 베어스 2군 6번 타자가 예상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코스의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원!”
주심은 스트라이크 존을 걸쳤다고 판단했는지 시원스럽게 콜을 했다.
‘그렇다면 공 반개만 빼서......’
같은 코스에 같은 구종, 거기에 구속의 차이를 미세하게 조금 빠르게 던졌다. 그러자 앞서 눈에 익은 공에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하지만 공이 반개쯤 빠지고 거기다 구속도 좀 빨랐다. 당연히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타구는 떴다.
“마이 볼!”
그 뜬공을 1루수가 잘 처리했다. 드디어 3회 말에 첫 아웃 카운트가 잡힌 것이다.
“쳇!”
태산 베어스 2군 6번 타자는 아쉽다는 듯 투덜거리며 덕 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대기 타석의 7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에 안타를 친 타자였다. 하위 타선의 타자지만 오늘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타자. 이런 타자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타이탄스의 포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타자를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마운드 위의 유명철의 생각은 달랐다.
‘컨디션이 좋으니까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가야 해.’
최민혁이 분석한 지금 타석의 타자는 풀 카운트에서 승부에 강했다. 그러니 애초 풀카운트까지 가지 않고 승부를 보는 게 유리했다.
유명철은 공 하나 빼자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바깥쪽 포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치면 스트라이크고 쳐도 오늘 공 끝이 워낙 좋은 탓에 파울 밖에 나오지 않을 터 였다. 그 만큼 유명철은 오늘 마운드 위에서 자신 있게 투구를 해 나갔다.
펑!
“스트라이크! 원!”
태산 베어스 2군 7번 타자는 초구를 기다린 듯 보였다. 하지만 얼굴은 다소 의외란 듯 멀뚱히 마운드 위의 유명철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눈빛을 빛내며 타석에서 배트를 들어 올린 체 앞뒤로 흔들었다. 투수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 타격 폼이었지만 유명철을 현혹 시키진 못했다.
그런 타자를 흘깃 쳐다 본 유명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곧장 와인드업에 들어갔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펑!
“스트라이크! 투!”
주심의 콜에 주저함이 없었다. 유명철의 몸 쪽 싱커가 제대로 제구 되어 홈 플레이트를 걸치고 들어 온 것이다.
태산 베어스 2군 7번 타자는 배트를 내지도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