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4 재벌에이스 =========================
노우석 PD는 ‘훨훨 나는 귀뚜라미’가 노래왕이 될 수 있게 밑밥이 깔리는 사이에 ‘앙칼진 암고양이’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사이 투표 집계가 완료 되었고 MC윤봉규가 그 결과를 발표했다.
80대 20!
압도적인 표차이로 ‘훨훨 나는 귀뚜라미’가 ‘앙칼진 암코양이’를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 뒤 출연자들에 대해서 노우석 PD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MC윤봉규와 패널들이 알아서 방송에 나갈 만한 내용들을 만들어 냈으니까. 그렇게 두 번째 팀, 세 번째 팀의 녹화가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팀이 무대에 올랐다.
“와아아아아!”
짝짝짝짝짝!
관객들도 지칠 만 하겠건만 그들의 분위기는 오히려 마지막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새벽 시간 때에 고생한다고 앞서 낮에 특집 편성 된 프로에서 관객들에게 커피와 도넛을 돌린 것이다. 그걸 먹고 마시고 난 관객들은 더 열심히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 댔던 것이다.
MC윤봉규가 마지막에 무대에 올라 온 두 가면 쓴 출연자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1라운드 마지막 출연자 분들입니다. ‘바라바라 해바라기’님과 ‘천하무적 대왕 쥐’님입니다. 다들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여리여리하니 날씬한 몸매의 ‘바라바라 해바라기’와 그와 비견 되게 키가 훤칠하고 체구가 당당한 ‘천하무적 대왕 쥐’가 남녀 관객들의 시선을 각기 사로잡았다.
“여자는 무조건 아이돌이야.”
“남자는 모델? 아니면 운동선수고.”
패널들이 무대에 오른 두 가면 쓴 출연자들에 대해 그 첫 이미지만으로 그들이 누군지 유추해 내고 있을 때 두 사람만을 위한 무대가 시작 되었다. 선창은 ‘천하무적 대왕 쥐’였다. 그러자 패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그리고 노우석 PD가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4분 30초의 시간이 흐르고 1라운드 마지막 무대로 끝이 났다. 그리고 바로 투표 집계가 시작 되었다.
노우석 PD는 MC윤봉규가 두 출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동안 투표 결과를 확인했다.
“젠장!”
노우석 PD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고 반면 그 옆에 있던 FD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바로 사라졌다. 그걸 들켰다간 큰일 나니까.
“이 결과 진짜 맞아?”
노우석 PD가 다시 한 번 투표 결과를 확인하게 했다.
“맞는데요? 왜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아니.”
그러면서 노우석 PD는 좀 체 그 결과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오늘 찍은 촬영 분은 다다음 주와 다음 주에 방영 되었다. 그 중 1라운드에서 찍은 여기까지 내용이 다다음 주, 2, 3라운드와 노래왕의 대결은 다음 주에 방영 될 터였다. 물론 오늘 그 분량을 다 찍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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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석 PD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두고 황당해 하고 있을 때 MC윤봉규는 ‘바라바라 해바라기’와 ‘천하무적 대왕 쥐’와 얘기를 나눴다. 그때 MC윤봉규가 두 사람에게 장기가 뭐냐고 물었다.
“저는 애교에요.”
그녀의 애교란 말에 패널들 뿐 아니라 관객 중에서도 그녀가 누군지 알아맞히는 사람이 나왔다.
“저거 공진영이네.”
“그런 거 같죠?”
“같은 게 아니라 그래. 공진영 맞아.”
‘바라바라 해바라기’는 공진영 특유의 콧소리 애교를 선보여서 관중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MC윤봉규가 이번엔 ‘천하무적 대왕 쥐’에게 장기가 뭐나고 물었다. 그러자 ‘천하무적 대왕 쥐’가 바로 대답했다.
“성대모사를 잘합니다.”
“네에. 또 성대모사 나왔습니다.”
마침 패널 석에는 대한민국에서 성대모사를 가장 잘한다는 알려진 개그맨 원동석이 앉아 있었다. 원동석은 출연자 중에 꼭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흉내 내는 사람을 자신이 똑같이 따라 해서 성대모사를 하는 출연자에게 면박을 주곤 했다.
원동석은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성대모사를 하는 출연자가 여자라면 살살 하려 했지만 남자로 그것도 원동석이 가장 싫어하는 키 큰 남자 였기에 원동석은 아주 개 박살을 내 놓기로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누구 성대모사를 하시겠습니까?”
MC윤봉규의 물음에 최민혁이 바로 대답했다.
“앞에 계시는 윤봉규씨 성대모사를 하겠습니다.”
“네? 저를 요?”
MC윤봉규 뿐 아니라 다른 패널들도 다들 놀랐다. 특히 원동석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천하무적 대왕 쥐’를 쏘아보았다.
원래 성대모사란 것이 개성 있는 목소리를 따라하면서 생겨 난 것인데 MC윤봉규는 딱히 개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게 또 ‘천하무적 대왕 쥐’가 성대모사를 했을 때 성대모사한 사람과 같은 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단 점이었다.
“그럼 해 보겠습니다.”
최민혁은 다들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 하나를 사용했다. 바로 변신 능력! 그러자 최민혁이 쓰고 있던 가면 안에서 그의 얼굴이 바뀌었다. 바로 윤봉규로 말이다. 변신 능력은 2단계로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에 얼굴 뿐 아니라 변신한 사람의 목소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었다. 최민혁은 바로 그걸 염두에 두고 성대모사를 자신의 장기라고 MC윤봉규에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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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윤봉규는 최민혁이 자신을 성대모사 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 지금 뭐하자는 거야?’
어차피 오늘 일로 최민혁과는 틀어진 사이가 되었기에 윤봉규도 더 이상 최민혁을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기로 자신을 성대모사 하겠다는 녀석의 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좋은 의도는 아닐 터. MC윤봉규는 그걸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여태 자신을 성대모사하겠다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한다고 해 봐도 어차피 편집 될 터였다.
‘그래.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봐라.’
MC윤봉규는 최민혁의 가면 앞에 마이크를 가져다 대 주었다. 그러자 최민혁이 말을 했다.
“오늘 관객 분들도 많이 와 주셨는데요. 원동석씨. 어떻게 보셨나요?”
“..............”
최민혁이 성대모사를 하고나자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특히 최민혁에게 마이크를 내밀고 있던 윤봉규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뭐야? 똑같잖아.”
“윤봉규가 말한 거 아냐?”
“저기 ‘천하무적 대왕 쥐’님. 옆에 MC윤봉규와 얘기 해 봐요.”
한 패널의 제안으로 최민혁에게도 마이크가 주어졌고 둘이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았다.
“헐! 한 사람 목소리잖아.”
“와아. 완전 똑 같네. 똑 같아.”
MC윤봉규는 자신과 진짜 똑같이 말하는 최민혁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젖다가 말했다.
“놀랍네요. 그런데 저 말고 다른 분의 성대모사는 없을까요?”
그 물음에 최민혁이 바로 말했다.
“누굴 흉내 내 볼까요?”
그 말에 MC윤봉규가 너 잘 걸렸다며 바로 말했다.
“이민종님 어떨까요?”
이민종은 터프 가이로 그의 목소리를 따라 흉내 내는 남자들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하단 소리를 듣는 게 바로 오늘 패널로 참가 중인 개그맨 원동석이었다.
MC윤봉규는 원동석이 남자 출연자가 성대모사를 하면 그에게 심하게 면박을 주는 걸 알기에 일부러 이민종을 선택했다.
자신을 그대로 따라 성대모사해서 그를 기분나쁘게 만든 최민혁에게 나름 복수라도 하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 번 해 보죠.”
최민혁은 곧장 이민종의 목소리를 따라냈다.
-그렇게 하면 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오오. 똑같다.”
“와아. 성대모사의 달인이 등장했다.”
“이야. 이거 원동석이보다 더 이민종 같은데?”
그 말이 신이 난 것일까 최민혁은 마치 이민종이 이 무대에 선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그게 싫지 않은 것이 이민종과 목소리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그 외에 성대모사 따라 하기 어렵다는 사람을 두 사람 더 똑같이 따라했다.
“대체 저 사람 누구야?”
“완전 모르겠는데.”
“노래 실력도 엄청난데 저 성대모사는........ 완전 대박이야.”
“누군지 몰라도 예능계에 엄청난 존재가 등장한 거 같아.”
그렇게 MC윤봉규가 ‘바라바라 해바라기’와 ‘천하무적 대왕 쥐’의 장기까지 보고나자 곧장 결과 발표가 있었다.
72대 26!
결과 발표와 함께 노우석 PD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럴 것이 당연히 최민혁을 잡고 2라운드에 진출 할 거라 여겼던 공진영이 탈락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딴데 있었다.
바로 최민혁의 예상 밖의 뛰어난 노래실력도 문제지만 그가 좀 전에 보여 준 성대모사로 관객들이 관심이 그에게 집중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노우석PD가 앞서 애써 깔아 놓은 밑밥이 다 날아가 버린 꼴이 될 지경이었다.
노우석PD가 볼 때 이러면 그가 노래왕으로 밀고 있는 ‘훨훨 나는 귀뚜라미’와 최민혁이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 같았다.
“무조건 명우가 노래왕이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졌다. 당장 최민혁과 MBS는 출연 계약을 맺지도 않았다. MC윤봉규가 워낙 급하게 섭외를 하다 보니 말이다.
노우석PD도 출연 계약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계약은 할 생각이었다.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녹화를 끝내 놓고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1라운드에서 떨어질 테니까. 그런데 최민혁이 2라운드, 3라운드에 올라서 노래왕에 도전했다가 노래왕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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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노래왕’의 1라운드 마지막 대결에서 ‘천하무적 대왕 쥐’가 승리하면서 패자인 ‘바라바라 해바라기’는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역시 다들 예상했던 대로 ‘바라바라 해바라기’는 요즘 가장 핫 한 트로트 여신 공진영이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사연을 다 얘기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그때 스태프들이 그런 그녀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무대 밑에서 짧게 소감을 얘기하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너무 좋았어요. 천하무적 대왕 쥐님 사랑해요!”
거침없는 공진영의 애정 공세에 ‘가면 노래왕’ 스태프들도 다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지금 천하무적 대왕 쥐님에게 프러포즈 하시는 겁니까?”
“네. 여자라면 천하무적 대왕 쥐님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다들 저처럼 될 거예다. 그 만큼 멋진 목소리였어요. 당신과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영광이었어고 언제든 당신이 불러주면 전 당신에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꼭 연락주세요.”
자신을 탈락 시킨 천하무적 대왕 쥐에게 오히려 사랑을 고백하는 공진영의 4차원 적인 모습에 스태프들 모두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 찍은 내용은 방송을 탈 것이 확실했다. 이슈가 될 테니까.
그렇게 1라운드 무대가 모두 끝나고 출연자들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앞서 낮에 이 무대를 먼저 쓴 특집 편성 프로에서 관객들에게 커피와 도넛을 돌렸지만 밤샘 촬영에 묵묵히 임해주고 있는 고마운 관객들에게 ‘가면 노래왕’ 측에서도 가만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햄버거와 콜라가 제공 되었다.
최민혁의 대기실에도 제작진이 햄버거와 콜라를 보내왔다. 안 그래도 허기졌던 최민혁이 그걸 맛있게 먹고 있을 때였다. 그의 머릿속에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