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2 재벌에이스 =========================
최민혁이 대기실에서 FD가 주고 간 악보 3장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린 것 같자 최민혁은 노래를 멈추고 잠깐 기다렸다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FD였으면 노크 뒤 바로 문을 열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그가 아니란 소리.
“네. 연습 준비가 다 됐습니다. 지금 나오셔야 합니다. 대왕 쥐님.”
최민혁이 '가면 노래왕'에서 앞으로 쓰이게 될 닉네임은 역시나 최일환에게 붙여졌던 대왕 쥐였다.
“네.”
최민혁은 대답과 동시에 쥐 가면을 쓴 다음 대기실을 나서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는 해바라기 가면을 쓰고 있는 여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최민혁을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가수......아니 바라바라 바라기. 해바라기 소녀입니다."
이에 최민혁도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천하무적 대왕 쥐입니다.”
원래는 ‘다산의 상징 대왕 쥐입니다.’라고 해야 했는데 자신이 최일환이 아니니 그 멘트는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대 놓고 다산 운운하는 건 너무 하다 싶었다.
그만큼 최일환이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기에 그런 멘트도 쓰려 한 것일 테지만.
‘가수라......’
최민혁이 보기에 눈앞의 해바라기 소녀는 신인 가수였다. 그것도 가창력이 제법 뛰어난. 그러니 최일환이 그녀와의 대결에서 떨어질 건 불을 보듯 확실했을 것이고.
“덩치가 정말 좋으시네요.”
해바라기 소녀는 최민혁의 가면은 쳐다보지 않고 아까부터 그의 몸만 열심히 훑었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혹시 모델이세요?”
“그, 그건.........”
그때 FD가 나타나서 말했다.
“해바라기 소녀님. 상대에 대해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두 분은 지금 얘기 나누시라고 여기 모이신 것도 아니고요. 곧 보컬 선생님이 오실 테니까 그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십시오.”
FD말에 해바라기 소녀는 팔짱을 낀 체 토라진 포즈를 취했다. 그게 귀여워서 최민혁은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가 웃었다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쥐 가면이 그걸 가려 주었으니까.
‘이럴 땐 가면도 쓸 만 하군.’
그때 세나가 반응을 보였다.
[마스터. 혹시 가면 아이템 사실 생각 없으세요?]
역시나 세일의 여왕 세나 다웠다. 타자 총 포인트를 탈탈 다 털어 먹고 어째 조용하다 싶더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최민혁에게는 아직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그것도 무려 15,000포인트나.
세나는 아마도 그것까지 털어 먹을 생각인 인 모양이었다.
‘가면 아이템?’
최민혁이 머릿속으로 자신이 말한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자 세나가 바로 설명에 나섰다.
[이 가면 아이템은 마스터께서 변하고 싶은 상대의 얼굴로 변하게 해 줍니다. 그게 누가 되었든 말이죠.]
‘뭐? 그렇다면 내가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신이 가능하단 얘기야?’
[그런 셈이죠. 어떻게 구입하실래요?]
하지만 최민혁은 이번엔 세나의 말에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 거..... 얼굴만 바뀌는 거지? 그 사람의 목소리나 분위기, 습관 같은 건 그대로고.’
[그, 그렇죠. 그렇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바뀌려면 변신 능력을 3단계 이상으로...]
‘잠깐! 변신 능력?’
[네? 그, 그건......]
최민혁은 당혹해 하는 세나의 반응에 대충 짐작이 갔다. 그래서 바로 생각으로 물었다.
‘너 만들어 놓은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과 겹치는 아이템을 만든 거지? 그래서 그 아이템을 슬쩍 내게 팔아먹으려고 수작 부리고 있는 거고?’
[뽀록나 버렸네요. 맞아요. 쩝쩝. 이러면 가면 아이템은 처분해야겠군요. 어떻게 변신 능력을 구입 하실래요?]
그 말 후 세나는 변신 능력에 대해 설명했다. 1단계는 원하는 상대의 외모를 그대로 닮게 변신이 가능한데 그 변신 시간이 10분에 불과 했다. 그에 비해 2단계는 변신 시간도 한 시간으로 길고 목소리까지 똑같이 바뀐다고 했다. 물론 3단계는 원하는 상대의 모습을 판박이처럼 똑같이 바뀔 수 있고 말이다.
-----------------------------------------------------
최민혁은 세나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포인트도 5,000포인트로 그리 비싼 편도 아니었고 말이다. 물론 2단계 업그레이드는 필수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 최민혁의 생각을 다 읽은 세나가 바로 그의 눈앞에 간결한 창을 띄웠다.
[소비 포인트 +5,500. 사업가 총 포인트: 9,500]
최민혁이 남은 사업가 총 포인트를 확인하자 세나가 바로 그 창을 지우고 냉철한 사업가의 상세 창을 띄웠다.
-냉철한 사업가
총 자산: 548,678,715,340원
투자처: 없음
보유 능력: 선견지명(2단계), 능력빙의(2단계), 매력남(2단계), 순간이동(2단계), 전기맨(2단계), 투명인간(2단계), 정욕의 화신(2단계), 트래킹(Tracking)(2단계), 이레이즈(Erase)(무(無)단계), 천상의 목소리(2단계), 손만 대도 맛있어(2단계), 감시자의 눈과 귀(2단계), 행운의 손(2단계), 매직미사일(2단계), EMP(무(無)단계), 해킹(2단계), 큐어(2단계), 워닝(Warning)(2단계), 언락(Unlock)(무(無)단계), 투시안(무(無)단계), 슬립(Sleep)(2단계), 무음(2단계), 변신(2단계)
아이템: 저용량 아공간 주머니(1m X 1m X 10m), 비닐 마대자루(아공간 사용)
할인권: 없음.
최민혁이 냉철한 사업가의 상세 창 보유 능력에 변신 능력이 들어 있는 걸 확인 했을 때 FD가 말한 보컬 선생이 연습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전 배진영입니다. 여러분의 노래 연습을 도울 보컬 트레이너죠.”
통통한 얼굴에 웃는 게 매력적인 보컬 트레이너를 보고 해바라기 소녀가 주책없이 말했다.
“어머. 저랑 이름이 똑같......헙!”
해바라기 소녀는 다급히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얘기는 이미 최민혁도, FD도 다 들었다. 그런 해바라기 소녀를 보고 FD가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하아! 공진영씨. 제발 좀 조심해 주세요.”
FD는 아예 그녀 이름을 불렀다. 하긴 최민혁도 가수에 이름이 진영이고 조금 주책바가지 이미지 하면 바로 생각나는 여가수가 있었다. 바로 트로트 가수 공진영. 애교가 장난 아닌 그녀는 또 몸 좋은 남자를 좋아했다. 그러니 아까부터 해바라기 소녀가 최민혁의 몸만 쳐다 본 것이고.
“헤헤헤헤. 들켰다. 그래서 말인데요. 대왕 쥐님. 그쪽이 누군지도 좀 알려 주면 안 될까요? 아잉. 좀 알려 줘요? 네? 네?”
“.................”
이젠 아예 대 놓고 최민혁에게 아양을 떨어대는 해바라기 소녀를 보고 배진영 보컬 트레이너가 말했다.
“진영씨. 작업은 있다가 하시고 지금은 노래에 집중해 주세요.”
그 말에 해바라기 소녀가 홱 고개를 돌려 배진영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티 났어요?”
그렇게 대 놓고 최민혁에게 들이 대 놓고 그런 말을 하는 해바라기 소녀를 연습실 안의 사람들이 다들 넋 놓고 쳐다보았다.
----------------------------------------------------------
1라운드에서 최민혁과 공진영이 함께 부를 노래인 ‘아쉬움’은 대표적인 듀엣곡인데 남자는 다소 거친 목소리, 여자는 청아한 목소리로 서로 상반된 목소리가 묘하게 어울려 매력 적인 곡이었다.
그래서 주로 목소리가 굵은 남자가 여자와 듀엣으로 많이 부르는 노래였다. 아마도 최일환의 목소리가 굵었던 모양이었다. 배진영 보컬 트레이너가 최민혁과 공진영을 번갈아쳐다보며 말했다.
“두 분 다 이 노래는 알고 계시죠?”
듀엣 곡은 두 사람이 사전 협의 후 선정 된 노래였다. 그러니 당연히 둘 다 이 노래는 알았다.
“그럼 가볍게 자기 파트를 먼저 불러 보도록 해요.”
이때까지 배진영은 남자쪽, 대왕 쥐는 별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다. 비가수 출신의 경우는 노래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알기로 대왕 쥐는 운동 선수였다.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을 리 없었다.
‘뭐 어차피 1라운드에서 떨어질 사람이니까.’
그에 비해 공진영은 정상급 트로트 가수였다. 트로트 가수 특유의 콧소리와 꺾는 창법이 문제긴 하지만 공진영은 한 때 아이돌 그룹을 준비 했었던 만큼 댄스곡이나 발라드도 곧잘 불렀다. 그걸 알기에 배진영은 공진영 쪽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먼저......... 대왕 쥐님부터 시작해 주세요.”
‘아쉬움’의 선창은 남자 파트부터였다.
“음역대는 제가 잡아 드릴 테니까........”
“아뇨. 원곡대로 가겠습니다.”
대왕 쥐의 말에 배진영은 슬쩍 그를 쳐다보고 웃었다.
‘노래방에서 노래 좀 불러 본 모양이네. 뭐 그래봐야 운동선수가 거기서 거기겠지.’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배진영은 흔쾌히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일단 원키 그래도 가도록 하죠.”
배진영이 손짓을 하자 바로 반주가 깔리면서 인트로 부분으로 들어갔다. 그때 최민혁이 감정을 잡기 시작하더니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배진영은 놀란 얼굴로 대왕 쥐를 쳐다보았다.
보통 노래를 좀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인트로가 시작 될 때 이미 노래를 부리기 시작한다. 눈앞의 대왕 쥐처럼 말이다. 반면 보통 사람들은 보컬의 멜로디가 시작 되는 부분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물론 이때 대왕 쥐가 진짜 먼저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는 아니다. 곡에 대한 이미지나 감정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노래를 표현할 지에 대한 준비를 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하면 아마추어에 비해서 훨씬 더 섬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또 관객들에게 표현과 감정 전달도 훨씬 원활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뭐, 뭐야? 운동선수라면서?’
배진영은 가수 못지않은 최민혁의 반응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지~ 난 날 그리워하던 너는........................”
목소리와 달리 굵고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가 대왕 쥐 가면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 첫소절을 듣자마자 배진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미친.....’
이건 가수였다. 그것도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수준의 가수가 아닌 최고의 가창력을 지닌 가수. 아마 운동선수란 건 잘못 된 정보인 모양이었다. 배진영은 당장 옆에 있는 FD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그 사람 이제 떠나 갔어요~”
그렇게 대왕 쥐 파트가 금방 끝나고 다음 해바라기 소녀가 바로 이어 노래를 불러야 했다.
“..............”
하지만 배진영 못지않게 놀란 상태의 해바라기 소녀, 공진영은 노래를 부르려 차마 입을 떼지도 못했다. 그 만큼 그녀 역시 대왕 쥐의 목소리에 넋이 나가 버렸던 것이다. 그건 FD도 마찬가지였고.
‘씨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최민혁! 야구선수, 투수가 뭔 노래를 이렇게나 잘 불러?’
FD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싶었다. 아무래도 이 사실을 빨리 PD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