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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171화 (171/248)

00171 재벌에이스 =========================

SBC 수목 드라마 ‘버라이어티’의 여주인공 한소정은 평소보다 30분 빨리 촬영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호호호호.”

그리곤 해맑은 미소로 촬영장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그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버라이어티 FD가 PD에게 말했다.

“한소영. 쟤 요즘 이상하죠?”

“그러게. 뭘 잘못 먹었나? 싸가지가 바가지인 년이 갑자기 변했어.”

이미 PD인 자신도 그녀의 갑 질에 당해 본 터라 그녀의 본성이 어떤 여자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PD를 우습게 여기는데 다른 스태프들은 그동안 어땠겠는가?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 확 바뀌니까 사람들이 다들 정신을 못 차리네요.”

PD옆의 FD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한소영과 그 매니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놔 둬. 우리야 좋지 뭐. 왜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하긴. 저년 미친 짓 안하니 다들 살 거 같다고 하긴 해요.”

드라마국 국장이 아니면 통제도 되지 않았던 한소영이었다. 그런 그녀가 하루아침에 사람이 확 바뀌어 나타났을 때 PD며 촬영 스태프들이 어땠을 지는 말로 형언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좋은 일이니 다들 쉬쉬하고 있었지만 또한 언제 그녀의 미친 짓이 재발 될지 몰라서 다들 전전긍긍 그녀 눈치를 살피기 급급한 요즘이었다. 하지만 그런 눈치 전혀 보지 않고 한소영 앞에서도 당당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강하나와 그녀의 매니저였다.

이제 막 신인 연기자를 벗어난 강하나는 조연이지만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했다. 그 동안 한소영이 만들어 놓은 우울한 아우라를 강하나가 다 해소시켜 줬다고 해도 될 정도로 촬영장의 스태프들은 그런 강하나를 좋아했다. 단지 그런 그녀가 한소영의 눈 밖에 나서 괴롭힘을 당할 때 그들 중 누구도 강하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지만. 세상 인심 박하게 말이다.

한소영이 오고 나서 강하나가 촬영장에 나타나자 촬영장 사람들은 다들 두 사람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 먼저 온 한소영이 강하나를 까야 정상인 분위기였으니까.

“호호호호. 하나야. 어서 와.”

그런데 강하나만 보면 물어뜯기 바빴던 한소영이 마치 친한 여동생이라도 나타난 듯 반갑게 강하나를 맞는 게 아닌가?

“네. 안녕하세요.”

반면 강하나가 오히려 굳은 얼굴로 한소영을 상대하고 말이다. 그 뒤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소영은 강하나 비위 맞추기 급급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촬영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여주인공 한소영이 강하나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니 다른 스태프들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PD와 작가도 슬슬 강하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강하나는 촬영장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여배우가 되어 있었다.

“춥지. 이거 좀 마셔.”

촬영을 잠시 쉬어 갈 때 한소영이 바리바리 따뜻한 음료를 챙겨서 강하나를 챙겼다. 그 모습이 마치 친 자매 같았다. 하지만 한소영이 속내도 그러했을까?

‘그 새끼가 누군지만 알아내면..........’

한소영은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하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하나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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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모르는 강하나는 그래도 선배가 권하는 음료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설사 독이 들어 있다고 해도.

“선배님. 고마워요.”

“고맙긴. 그리고 선배가 뭐니? 언니라고 부르래도.”

“아직 친해진 것도 아닌데 언니라고 부르기는 좀......”

조급한 한소영과 달리 강하나는 아직 한소영과 거리를 뒀다. 하긴 불과 이틀 전까지 자신을 못 잡아먹어 난리였던 한소영이 갑자기 어제부터 웃으며 나타나서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라는 데 좋다고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강하나는 속물이 아니었다.

“들었어. '가면 노래왕'에도 나간다며?”

“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얘기되고 확정 된 스케줄이었다. 아직 SQ엔터테이먼트의 본사에 정식으로 보고도 되지 않은 일을 한소영이 알고 있자 강하나가 놀라며 물었다.

“이 바닥이 원래 그래. 넓은 거 같아도 실제론 진짜 좁아. 거기 작가하고 내가 좀 친하거든.”

한소영의 그 말에 지금껏 쀼루퉁하던 강하나가 반짝 눈을 빛냈다.

“그럼 거기 출연자가 누군지도 알 수 있겠네요?”

“우리 하나가 거기 가면 쓰고 나오는 출연자가 누군지 궁금했나 보구나? 당연히 알 수 있지. 원래는 절대 안 알려 주는 데 내가 물으면 알려 줄 거야. 그래. 어떤 가면의 출연자가 궁금해?”

한소영은 강하나가 말만하면 바로 '가면 노래왕'의 작가에게 전화해서 물어 볼 기세였다. 하지만 잠깐 생각하던 강하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선배님께 그런 일로 민폐 끼칠 수야 있나요. 됐어요.”

“그, 그래? 근데 언니라니까. 그리고 네가 하는 부탁은 민폐가 아냐. 이 언니가 그 동안 너에게 잘못한 걸 만회하기 위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 줘.”

한소영은 진짜 연기상이라도 타려는 듯 작정하고 강하나를 상대로 제대로 된 가증스런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강하나의 눈에는 정작 그런 한소영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딴 생각을 하느라 말이다.

오늘 한소영은 아까 통화 중 최민혁이 먼저 그녀 전화를 끊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녀도 눈치는 있었다. 오늘 최민혁은 확실히 예전의 그와 달랐다. 무뚝뚝해 보여도 은근 그녀를 챙겨 주었던 다정했던 최민혁의 모습이 오늘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럴까? 내가 또 무슨 실수를......... 가만.........’

그때 뭔가 생각이 난 강하나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하, 하나야!”

그래도 자신과 얘기 중인 상황이었다. 강하나가 갑자기 일어나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자 한소영은 말 그대로 팍 쳤다.

“저, 저......”

그녀는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주위에 보는 눈들이 있어서.

“하나가 급했나 보네. 호호호호. 뭘 잘못 먹었나? 약이라도 챙겨 줘야지.”

한소영은 끝까지 가증스런 연기를 하면서 강하나의 대기 중이던 곳을 빠져 나와서 자신의 매니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매니저에게 다가갈수록 한소영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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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도 '가면 노래왕'의 출연자가 누군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거기 FD가 자신의 사생 팬이었던 것이다. 저번 팬 미팅 때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강하나는 그 FD와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그리고 가끔 통화도 하는 사이였기에 강하나는 스스럼없이 그 FD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하나야.

당연히 그 FD는 반갑게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촬영을 앞두고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쁠 텐데도 말이다.

“오빠. 오늘 '가면 노래왕' 촬영 중이시죠?”

-어. 맞아.

“혹시 거기 야구선수 최민혁 오지 않았어요?”

-헉! 네가 그걸 어떻게?

강하나가 오늘 갑자기 섭외 된 스타를 알자 '가면 노래왕'의 FD가 적잖아 놀라했다. 그런 그에게 강하나가 태연하게 말했다.

“최민혁 선수와 저 사이 모르세요? 친구 오빠잖아요.”

-아. 맞다. 저번에 예능 프로에서 하나 네가 말했던..........그 야구 공으로 날치기 잡은 게 최민혁 선수였지.

강하나의 사생 팬 답게 FD는 토크쇼에서 강하나가 말한 사연도 다 알고 있었다.

“민혁 오빠 좀 잘 부탁 드려요. 오빠도 알다시피 야구선수가 방송에 대해 뭘 알겠어요.”

-그럼. 걱정 마. 이 오빠가 최 선수는 확실히 챙길 테니까.

그때 핸드폰 너머로 욕설이 난무했다. 그 소리에 강하나가 재빨리 말했다.

“오빠. 바쁘신 거 같은데 그만 전화 끊어요.”

-어어. 그래.

그렇게 통화를 끝낸 강하나의 얼굴이 확 굳었다.

“역시......”

그리고 이내 풀 죽은 그녀를 보고 매니저가 물었다.

“하나야. 왜 그래?”

“오빠. 저 아무래도 또 사고 친 거 같아요.”

“사고라니?”

강하나는 최민혁이 지금 이 시간에 MBS방송국에서 '가면 노래왕'에 출연 중인 사실을 매니저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듣고 매니저의 입에서 바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MC윤봉규에게 우리가 당했네. 이거 최민혁 선수에게 미안해서 어쩌냐?”

방송 짬밥이 많은 강하나의 매니저는 금방 이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간파한 것이다.

“난 몰라. 이제 민혁 오빠가 나 같은 건 쳐다도 안 볼 거예요. 흑흑흑흑......”

강하나의 매니저는 그녀가 얼마나 최민혁을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가 최민혁이라도 그 동안 강하나와 엮인 일들을 생각하면 그녀를 좋아할 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해 줄 수 있는 건 강하나가 울게 계속 내버려 두고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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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하나가 믿을 수 있는 존재는 한 사람.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 최다혜 뿐이었다. 사실 최다혜가 아니었으면 최민혁은 강하나를 쳐다 도 안 봤을 터였다. 물론 최다혜가 아니었으면 강하나가 최민혁을 좋아하게 될 일도 없었겠지만.

강하나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친구인 최다혜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전부 얘기했다.

-뭐? 우리 오빠가 '가면 노래왕'에 출연 중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얘기 보다 친구인 최다혜는 그녀의 오빠가 '가면 노래왕'에 나간 사실을 더 놀라워했다. 그런 그녀에게 강하나는 강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지 뭐야. 그래서 오빠가 내 전화도 먼저 끊고....... 다혜야. 나 어쩌면 좋니?”

-뭐 어쩌긴 어째. 근데 그 MC윤봉규 말이야.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가만. 근데 우리 오빠가 그런 일을 당하고 가만 있을 인간이 아닌데? 이상하네? 아무튼 걱정 마. 오빠가 오면 내가 잘 얘기해 볼 테니까.

“고마워. 다혜야. 역시 너 밖에 없어.”

-고마우면 그것도 넘겨.

“그거?”

-왜 네가 저번에 홍콩에서 산 거 있잖아. 서프백!

“그 아인 안 돼. 나도 몇 번 들고 다니지 않았다고.”

-뭐 싫으면 말고. 아아아아함! 잠이 오네. 오빠가 많이 늦으려나....

“알았어. 줄게. 줄 테니까. 오빠한테 잘 좀 얘기 해줘.”

-호호호호. 넌 이제 아무 걱정 마. 우리 오빤 내 손안에 있으니까. 오빠 오면 내가 오해 풀어 줄게. 사실 네 잘못도 아니잖아. MC윤봉규 그 인간 때문이지.

“그럼 너만 믿는다.”

-그래. 꽉 믿어. 참! 내일 오전까지 그 애를 내게 보내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그렇게 최다혜와 통화를 끝낸 강하나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물론 작년에 홍콩에서 구입한 셔넬의 서프백이 많이 아깝긴 했지만.

남자들의 자존심이 차와 시계라면 여자들은 명품 가방이 그 자존심 아니겠는가? 보기만 해도 막 흐뭇해지는 그 아이를 막상 최다혜에게 넘겨야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명품 백을 넘기고 최민혁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자신의 명품 백을 전부 다 넘겨도 상관없는 강하나였다. 그만큼 최민혁에 대한 강하나의 마음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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