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재벌에이스 =========================
투수에게 피칭존이란 게 있다면 타자들에게는 스프레이존이 있었다. 그 스프레이존에서 타자들이 가장 핫 한 존과 가장 쿨 한 존을 표시해서 보여 주는 능력이 바로 핫 앤 콜드(Hot and Cold)였던 것이다.
즉 오늘 최민혁이 마운드에서 마지막에 상대했던 타자 강정남의 경우도 최민혁이 타자에 대한 정보 없이 상대하다보니 자칫 크게 맞을 뻔 했었다. 하지만 핫 앤 콜드(Hot and Cold) 능력이 있었다면 그런 위험한 상황 자체에 직면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이 능력은 놀랍게도 무한 사용이 가능하고 단계도 없답니다. 어때요? 놀랍죠?]
최민혁은 세나의 설레발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놀랍다. 대신 구입 포인트도 놀랍겠지?”
[빙고! 하지만 이런 능력은 비싸도 그 값을 하는 건 마스터도 잘 아시죠?]
세나의 말하는 모양새가 어째 오늘 번 자신의 포인트를 탈탈 떨어갈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당연히 적중했고.
[원래는 10,000포인트 받을 생각이었는데. 뭐 지금 마스터가 소지하고 계신 포인트로 팔도록 하죠.]
“뭐? 만 포인트?”
최민혁은 기가 찼다. 냉철한 사업가에서 그가 획득해 온 능력들보다 그 값이 너무 껑충 뛰어서 말이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은 세나가 바로 말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능력과 마스터의 진짜 직업에서 필요한 능력은 그 값어치부터 다르지 않을까요? 그냥 사세요.]
“...........”
최민혁은 입 닥치고 사라는 절대 갑 세나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오늘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최민혁도 할 말은 하자 싶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매번 포인트만 쌓이면 탈탈 털어가는 데...........”
세나는 최민혁이 작정하고 대들자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달리 세일의 여왕인 게 아니었다.
[좋아요. 그럼 업그레이드까지 해서 9,660포인트. 됐죠?]
세나의 제안에 최민혁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그 동안 세나는 한 번 제안하면 그게 끝이었다. 그걸 알기에 최민혁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동안 세나의 행태를 보아 온 최민혁은 이게 그녀의 최후통첩임을 알았다. 즉 그녀가 제시할 수 있는 마지노선까지 내려 온 것이다. 여기서 더 튕겼다가는.........
“그래. 그렇게 해.”
최민혁은 대답 후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 바로 간결한 창이 떴다.
[소비 포인트 +9,660. 타자 총 포인트: 0]
최민혁이 타자 총 포인트가 0임을 확인을 하기 무섭게 그 창이 지워지고 세나가 바뀐 투수 상세 창을 그의 눈앞에 띄웠다.
-야구선수(투수)
주 포지션: 선발 투수
유형: 좌완 에이스
제구력: 90
구위: 90
수비력: 55
구종1: 포심 - 85
구종2: 투심 - 85
구종3: 슬라이더 - 89
구종4: 체인지업 - 85
구종5: 커브 - 80
구종6: 커터 - 80
보유 능력: 무쇠팔(2단계), 강심장(2단계), 타구안(2단계), 핫 앤 콜드(Hot and Cold)(無단계)
아이템: 아이싱 붕대
최민혁은 운전 중이라 재빨리 투수의 상체 창의 보유능력에서 새로 생긴 핫 앤 콜드(Hot and Cold)능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운전에 방해가 되기에 그 창을 눈앞에서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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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는 최민혁이 오늘 하루 힘들게 번 포인트를 탈탈 떨어 먹고는 잠적했다. 아마도 최민혁이 일부러 그녀를 찾지 않는 한 그녀가 먼저 최민혁을 찾는 일은 없을 터였다.
“아. 맞다.”
최민혁은 신호 대기 중에 경기하는 동안 차 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핸드폰 전원을 켰다. 어차피 못 받을 처지라 최민혁은 핸드폰을 꺼두었던 것이다. 그러자 부재 중 전화가 2통 와 있었고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최민혁은 신호가 바뀌기 전에 문자부터 확인했다.
[내다. 6시에 서울 도착한다.]
“이게 무슨.....어?”
최민혁은 황당한 문자 다음으로 그걸 보낸 작자가 누군지 확인하다 뻥 찐 얼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대구에서 주지육림에 빠져 있어야 할 인간, 오성 라이온즈 2군 포수 조재익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서울에는 왜 온다는 거야?”
최민혁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5시가 넘은 상황. 여기서 강남 터미널까지는 30분 거리. 문제는 출퇴근 시간에 걸리기 때문에 6시까지 거기 갈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녀석이 온다는 데 데리러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에이.....”
최민혁은 신호가 바뀌자 곧장 옆으로 차선을 옮겼다. 그리고 강남 방면으로 신호를 받아 열심히 운전을 하면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너 어디야?”
-지금 집에 가는 길인데. 왜?
“6시까지 집에 들어 갈 거지?”
-당연하지. 근데 왜?
“6시에 집으로 택배가 올 거거든.”
-택배?
최민혁은 자신이 친구왕이란 프로에서 딴 상품 중에 고기와 쌀이 6시 이후 택배로 집에 올거란 걸 여동생에게 간략히 설명했다.
-지금 갈비 세트라고 했지?
하지만 여동생은 갈비에만 관심을 보였다. 뭐 어째든 여동생이 그것들만 받아 주면 되기에 최민혁은 잘 얘기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운전에 집중했는데 역시나 출퇴근 시간에 걸리면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최민혁은 그때 나머지 부재 중 전화를 확인했다. 하나는 1588로 시작했기에 무시했고 다른 하나는 모르는 번호였다.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최민혁은 잠시 고민하다 그 전화를 받았다. 그가 모르는 전화를 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차가 막힌 상태에서 별 할 일이 없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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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왕의 MC 윤봉규는 MBS의 아나운서로 시작해서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약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MBS에서 접촉을 해 왔고 그렇게 맡게 된 프로그램이 바로 ‘가면 노래왕’이었다.
나이, 신분, 직종을 숨긴 스타들이 목소리만으로 실력을 뽐내는 음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가면 노래왕은 꾸준히 15%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 그래도 예능이 폭망 중인 MBS에 산소를 불어 넣는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가면 노래왕의 사전 녹화가 바로 오늘 저녁인데 PD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형. 큰일 났어. 오늘 출연하기로 한 스타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갔데. 맹장이 터졌다나.
“뭐? 누구? 형석이?”
-아니. 최일환.
“뭐? 일환이?”
최일환은 윤봉규가 어렵게 섭외한 탤런트였다. 요즘 주말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로 인기를 끌고 있어서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아. 왜 하필 일환이가......”
최일환을 구슬린다고 윤봉규가 마신 술과 비위를 맞추느라 들인 공이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말인데. 형. 급하게 최일환이 땜빵 할 스타 없을까?
아마 PD도 여러 군데 알아 봤을 터였다. 그런데 없으니 그에게 이렇게 전화를 한 것일 테고.
“알았어. 나도 지금부터 알아볼게.”
-형. 꼭 좀 부탁 해.
그렇게 가면 노래왕의 PD가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가면 노래왕에 출연하는 사람은 그래도 스타여야 했다. 그런 스타가 사전 조율도 없이 당일, 아니 3-4시간 뒤에 출연을 해야 하는 프로에 섭외가 될 리 없었다.
그렇지만 가면 노래왕의 PD와 MC인 그들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안 그러면 다 잡아 놓은 녹화를 망칠 테니 말이다.
“누가 좋을까?”
윤봉규의 머릿속에 당장 출연이 가능한 스타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중에서 노래를 못하는 스타들을 빼고 나니 연락해 볼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래도 윤봉규는 재빨리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뭐 촬영이 있다는 데 어쩌겠어. 알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오늘 이미 촬영이 있거나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하아. 이거 큰일이네.”
그때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가정적이기로 소문난 윤봉규가 아니던가? 그는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바로 그 전화를 받았다.
“어. 어. 그래. 뭐? 친구왕에서 상품이 왔다고? 아니 거기서 왜 MC인 나한테 상품을 보내? 알았어. 그거 손대지 말고 가만 놔둬.”
그렇게 통화를 한 윤봉규는 곧장 친구왕 FD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잘못 온 줄 알았어. 그래. 집에 잘 모셔 둘테니 사람 보내서 도로 가져 가. 응.”
그렇게 친구왕 FD와 통화를 끝낸 뒤 윤봉규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가만........”
그때 윤봉규의 뇌리에 떠오른 스타가 있었다.
“강하나!”
당시 촬영 때 강하나가 한 말 중에 연기자가 되기 전에 아이돌로 데뷔 할 뻔 했단 소리를 들은 거 같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도 될 것이고 퍼포먼스도 충분했다. 거기다 몸매가 워낙 빼어나니 이슈도 될 것이고.
“그래. 강하나다.”
윤봉규는 곧장 강하나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신인 연기자 강하나. 어. 맞아. 그 애. 전화번호가 뭐야?”
워낙 인맥이 좋다보니 윤봉규는 3통화 만에 강하나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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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는 요즘 새로 들어간 수목 드라마에 집중했다. 소속사에서도 그녀가 그 드라마에 몰입해서 연기 할 수 있게 다른 스케줄은 잡지 않았고. 그런데 SQ엔터테이먼트의 걸 그룹이 인도네시아 공항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오늘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 그로인해 펑크 난 스케줄이 문제였고 강하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뭐 어쩔 수 없죠. 갈게요.”
소속사의 부탁을 차마 거절 할 수 없었던 강하나는 쉬던 중 SCG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했고 그곳 스케줄을 소화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수고했다. 하나야.”
괜히 미안해하며 말하는 매니저를 보고 강하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렇게 차 안에서 드라마 대본을 보며 집으로 가던 그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라 강하나는 그냥 그 전화를 씹었다. 그랬더니 이내 그녀 매니저 핸드폰이 울렸다.
“네? 아네. 근데 어쩐 일로..... 네. 하나한데 전화 받으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매니저가 운전석에서 뒤돌아 강하나를 보며 말했다.
“너 전화 오면 받아.”
“네?”
“MC 윤봉규니까 받아 봐.”
그 말이 끝나자 바로 강하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하나는 매니저가 시킨 대로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네. 아네. 안녕하세요? 네. 네. 가면 노래왕이요? 아네. 근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 오늘 저녁에 촬영이 있어서요. 네. 네. 민혁이 오빠요? 오빠야 노래 캡짱 잘 부르죠.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소릴.....”
자기도 모르게 최민혁이 노래를 잘한단 소리를 내뱉고 만 강하나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나름 그 수습을 하려 했다.
“......오빠는 바빠서 거기 출연하기 어려울 거예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그렇게 MC 윤봉규와 통화를 끝낸 강하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 큰일 날 뻔 했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MC 윤봉규가 그녀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단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최민혁을 얼버무릴 때 이미 결심 굳혔단 걸 말이다. 최민혁에게 연락해서 그를 반드시 가면 노래왕에 섭외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