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1 재벌에이스 =========================
소위 말해서 요즘 잘 나가는 여배우를 들먹거리면 꼭 거론 되는 게 한소영이었다. 그 정도 인기가 있으니 SBC 수목 드라마에 여주인공 역할을 꿰찬 것이고.
지금의 그녀는 PD정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도 국장 정도 돼야 그녀와 급이 맞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신인 여배우는 가소로운 존재에 불과했다.
강하나가 딱 그랬다. 한소영은 밝고 구김살 없는 그녀가 딱 싫었다. 자기와 달리 그녀는 별 고생도 하지 않고 인기를 얻고 있었으니까.
특히 친구 오빠를 이용해서 세간의 관심을 끄는 그녀의 행동이 한소영은 같잖았다. 그런 한소영의 고까운 심정을 당연히 강하나가 알 리 없었고 매번 촬영이 있을 때마다 한소영은 강하나를 갈궜다.
그 도가 지나칠 정도라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이나 관계자들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 였으나 아무도 한소영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괜히 한소영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한소영은 전날 모 잡지 홍보 영상을 찍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촬영장으로 오는 동안 차 안에서 두 시간 쪽잠을 잤는데 그걸로 성에 찰리 없었다. 그래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어서 매니저도 그녀 눈치 보기 급급했다.
“소, 소영아. 촬영 시간 다 됐는데.....”
하지만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게 여배우인 그녀의 숙명이었고 그녀도 그걸 알기에 일단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짜증이 가득한 그녀는 그 화를 풀기 위해서 두 눈을 번득이며 먹잇감을 찾았다.
누구든 그녀의 눈밖에 거슬리는 존재가 보이면 오늘 제대로 화풀이를 할 생각이었다. 촬영 한 두 시간 늦어지는 거야 주연 여배우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녀로 인해 촬영장이 평지풍파가 불기 직전인 그 상황에서 한소영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마치 며칠 굶주린 야수가 먹잇감을 발견이라도 한 듯 말이다. 한소영은 곧장 그 먹잇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소영아. 거긴.......”
한소영의 매니저는 가야 할 분장실은 가지 않고 엉뚱한 쪽으로 걸어가는 한소영을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니저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다른 출연자가 있는 쪽으로 휑하나 걸어갔다. 그걸 본 한소영의 매니저의 입에서 한 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아. 저 녀석 또 애꿎은 애를 잡으려나 보네.”
그러면서도 한소영의 매니저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소영의 스트레스가 풀리면 그게 그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니까. 사람은 역시 이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소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위에서 잘 나간다고 오냐오냐 해서 눈에 뵈는 게 없었고 원래 학창 시절부터 소위 말하는 일진으로 활약하며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습성이 몸에 벤 한소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눈앞의 신인 여배우는 약자였고 그녀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한소영은 오늘 그 신인 배우의 목을 제대로 물어뜯어 놓을 생각이었다. 화풀이는 물론 촬영까지 몇 시간 딜레이 시켜 놓으려 한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잘못은 신인 여배우가 지게 될 것이고.
그 시작의 포문을 한소영이 먼저 열었다.
“강하나! 너 선배가 왔는데 지금 뭐하는 거니?”
그 한 마디에 그녀를 등지고 전화를 받고 있던 강하나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약자가 취해 보이는 행동을 했다. 그녀 앞에 90도를 허리를 숙인 것이다. 그걸 보고 한소영의 입 꼬리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본격적으로 약자를 괴롭힐 시간이 시작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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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는 오늘도 힘없이 촬영장으로 갔다. 평소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강하나지만 요즘 그녀의 삶은 한 마디로 규정짓자면 지옥이었다. 며칠 사이 몸무게도 2Kg이나 빠졌다. 그래서 더 청순가련해 보여서 촬영에는 플러스 요인이 되었지만 그걸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하아.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야 할 텐데.”
“........”
강하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 소리를 매니저도 분명 들었을 텐데 그는 모른 척 침묵했다. 그가 나름 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소영의 강하나에 대한 갈굼은 계속 되었고 점점 더 그 도가 지나칠 지경이었다. 그러니 강하나에게 걱정 말라고 자신이 소속사에 얘기해서 해결해 주겠다고 말한 매니저의 입장도 지금 말이 아니었다.
강하나의 매니저는 이미 어제 한소영의 매니저를 찾아갔다. 그리고 읍소하며 강하나 좀 잘 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한소영의 매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지랄 맞은 한소영은 자신의 말도 들어 먹지 않는 다나 어쩐다나. 한소영의 미움을 벗어나려면 강하나가 잘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연 배우가 주연 배우에게 그럼 잘 하지 잘 못할 일이 뭐 있단 말인가? 강하나는 충분히 한소영을 선배 대우했다. 하지만 한소영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하나를 싫어했다. 그러니 이건 당최 왜 그녀가 강하나를 싫어하는지 그 이유도 알 길이 없었다.
강하나의 매니저는 그래도 오늘은 한소영이 왜 그렇게 강하나를 싫어하는 지 그 이유만이라도 알아내리라 생각했는데 그때 차가 촬영장에 도착했다. 강하나는 딱 봐도 차에서 내리기 싫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분장도 해야 하고 의상도 촬영 컨셉에 맞게 갈아 입어야 했기에 서둘러 차에서 내리긴 해야 했다.
“하나야!”
매니저가 그녀 이름을 부르자 강하나는 고개를 푹 숙인 체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차에서 내렸다.
강하나는 먼저 의상부터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누군지 확인한 강하나의 굳은 얼굴이 확 펴졌다. 그리곤 냉큼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오빠.”
강하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고 상냥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걸 보고 강하나의 매니저는 가슴이 쓰려왔다. 저게 바로 강하나의 평소 모습인데 애가 며칠 사이 누구 때문에 애가 기가 팍 죽어서는.
“네. 네. 네에? 오빠가 그걸 어떻게..... 다혜가 쓸데 없는 소릴 오빠에게 했네요. 전 괜찮아요. 진짜에요.”
그런데 오늘도 마가 낀 것일까? 강하나의 살을 사흘 사이 2Kg이나 빠지게 만든 당사자가 촬영장에 나타났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신경질적인 얼굴의 한소영은 먹잇감을 찾듯 주위를 살피다 강하나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왔다.
강하나의 매니저는 그걸 봤다. 그래서 강하나에게 언질을 주려 했는데 전화 통화 중인 강하나가 너무 통화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러질 못했다. 강하나의 매니저가 안타까워하면 발을 동동 거리고 있을 때 한소영이 강하나의 등 뒤 까지 조용히 접근해 들어왔다. 그리곤 기습적으로 강하나의 뒷목을 물어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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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는 촬영장 가는 게 진짜 싫었다. 그녀도 촬영장에서 누가 갈굼을 당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이 될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예의를 잘 차렸고 성격도 밝은 데다 대인 관계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너 싫다는 한소영에게 강하나인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주연 여배우의 갈굼을 당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강하나였다.
“하아. 진짜 촬영하기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판에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와도 얘기할 심정이 아닌지라 바로 전화를 끊으려던 강하나는 최민혁이란 이름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최민혁은 지금 그녀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주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는데 어떻게 그걸 알고 최민혁이 위로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아마 그녀의 베스트 프렌드인 최다혜가 말한 모양인데 최민혁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업 되는 강하나였다. 그런 그녀는 등 뒤로 야수가 그녀의 뒷목을 물어뜯기 위해 다가오는 줄도 당연히 몰랐다. 그리곤 최민혁 때문에 제대로 방심하고 있다가 제대로 한소영에게 뒷목을 물렸다.
놀란 강하나는 자기도 모르게 한소영에게 허리부터 굽혔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최민혁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 그녀에게 최민혁이 말했다.
-한소영이지?
“네?”
-바꿔 봐.
“네에?”
-그 여자에게 내가 할 말이 좀 있으니까 바꾸라고.
“하, 하지만......”
-걱정 마. 내가 네 고민을 다 해결 해 줄 테니까. 아아. 내 전화 안 받겠다면 유태국이 아냐고 하면 받을 거야.
최민혁은 지금껏 그가 한 말을 지켜왔다. 그걸 알기에 강하나도 잠깐 눈알을 굴리다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한소영에게 내밀었다.
“언, 언니. 전화 좀 받아 보실래요?”
“뭐?”
한소영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강하나를 제대로 갈구려고 왔는데 그런 그녀가 대뜸 그녀에게 자기 핸드폰을 내밀고 있으니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화가 제대로 치민 한소영이 강하나가 건네는 핸드폰을 손으로 확 쳐 내려 할 때였다.
“유태국 아시죠?”
그 말에 한소영이 움찔했다. 그리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
한소영은 놀란 정도를 벗어나서 파르르 몸까지 떨었다. 그런 그녀에게 강하나가 핸드폰을 까닥거렸다. 빨리 받으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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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여동생의 강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강하나에게 위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목적한 바대로 강하나를 잘 위로했다. 그런데 그때 핸드폰 너머로 신경질 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소영이다.’
최민혁은 직감적으로 눈치를 차렸고 강하나가 당할 입장을 생각하니 그녀가 불쌍했다. 그래서 그냥 또 오지랖 넓게 나서고 말았다. 강하나에게 전화를 바꾸라고 한 것이다. 당연히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한소영이, 그것도 강하나의 전화를 받을 리 없었다.
그래서 어떡하면 그녀가 자신의 전화를 받을 까 재빨리 생각했는데 그때 떠 오른 인물이 박규철 회장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 중 아이들 빼고 오성그룹 박규철 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강하나가 불쑥 그 이름을 거론하면 그건 강하나에게도 하등에 덕이 될 게 없었다. 분명 주위에 그 말을 주워듣는 자들이 있을 테고 박규철이란 이름 하나로 얼마든지 막장 드라마 하나를 만들어 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최민혁이 박규철 회장 대신 생각 해 낸 인물이 바로 오성그룹 비서실장 유태국이었다. 오성그룹의 회장 이름은 알아도 그의 마름인 유태국의 이름을 아는 대한민국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 할테니 말이다.
거기다 그는 한소영과 박규철 회장을 연결 시켜 준 게 확실한 인물. 둘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그라면 강하나가 그 이름을 거론했을 때 바로 알아들을 터였다.
최민혁은 바로 그 얘기를 강하나에게 했고 강하나는 한소영에게 제대로 유태국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잠시 뒤 한 소영이 최민혁의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