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2 재벌에이스 =========================
최민혁의 외조부인 민동재 전 국무총리에게도 오성그룹 회장인 박규철이 전화를 넣었다. 박규철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온 만큼 민동재도 그 전화를 받았다.
“뭐, 뭐라고요? 민혁이가 그쪽 딸내미와......”
민동재도 최민혁의 조부인 최민용 만큼이나 놀랐다. 하지만 최민용과 달리 민동재는 살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이쪽은 외가다 보니 친가인 최씨 집안보다 민혁이가 결혼을 하더라도 오성그룹의 후광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규철 회장의 딸이 자신의 딸의 며느리란 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민동재 역시 최민용처럼 정치적인 이해 타산을 따져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민동재는 박규철과 통화 후 전격적으로 오늘 가족 회의를 취소 시켰다. 하지만 최민혁은 만날 생각으로 그에게 연락은 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얘기했다.
민동재의 아들이자 최민혁의 외삼촌이며 성동경찰서장인 민재국은 부친의 말을 듣고 가족회의가 취소되었음을 친지들에게 알리느라 오전 시간을 다 소비했다. 그러다 점심을 먹기 전 잠시 인터넷을 살폈는데 충격적인 동영상이 하나 떴다.
동영상의 제목은 ‘산 사람 묻기’였다. 민재국은 설마 했다. 그런데 동영상에서 정말 산 사람을 묻었다. 그리고 킬킬 거리는 자들 중에 민재국의 눈에 익은 자가 있었다.
“저 새끼는 변재복!”
6년 전 민재국 밑의 형사들이 잡아서 감옥에 처넣은 조폭이었다. 그런데 그 조폭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이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 동영상을 본 성동경찰서장 민재국은 곧장 성동서의 형사과에 전화를 넣었다.
“지금 당장 변재복이 찾아가서 만나. 그 새끼에게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그 동영상 보여주면 뭐라도 털어 놓을 거야. 빨리 움직여.”
아마 경찰이라면 이 동영상을 보고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건 대박 사건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그 동영상을 본 사람 중에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 본 사람이 있단 사실이었다.
[흙에 파 묻혀 죽은 사람은 우리 삼촌 같아요. 그 분 7년 전에 실종 됐는데. 저렇게 참혹히 돌아가셨을 줄이야.....]
뒤이어 그 삼촌에 대한 신상이 공개 되었다.
“칠성제약 신약개발 연구원?”
칠성제약이라면 7년 전에 오성제약에 인수 합병 된 제약 회사였다. 당시 칠성제약은 신약 개발에 실패하면서 주가가 폭락했었다. 그때 칠성제약에서 개발 된 신약 중 암세포를 획기적으로 줄여 주는 성분의 제조 방법을 알고 있던 연구원이 실종 되면서 칠성제약은 허망하게 무너졌고 오성제약에 넘어갔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암세포를 획기적으로 줄여 주는 성분의 제조 방법을 알고 있던 연구원이 동영상에서 땅에 파묻혀 죽은 그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건.......”
더 파봐야 알겠지만 이 사건은 오성그룹과 연관 있는 게 확실했다. 민재국이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최민혁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 오성그룹의 부회장은 자신의 조카인 최민혁을 죽이려 했다. 자기 여자와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런 오성그룹이라면 칠성제약의 연구원 하나 땅에 파묻어 죽이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민재국은 즉시 부친을 찾아뵙고 그 사실을 말하며 자신이 이 사건을 맡아 수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민동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못을 했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그게 대기업인 오성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다.”
그렇게 민동재의 허락이 떨어지자 민재국은 곧장 성동 경찰서로 달려갔다. 그리고 직접 형사들을 이끌고 변재복이 수감 되어 있던 서울 남부 교도소로 향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냄새를 맡고 온 경찰 몇 명이 앞서 변재복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 역시 대박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총경인 경찰서장이 직접 나섰기에 다른 경찰들은 계급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민재국은 얼마 뒤 변재복과 면회실에서 마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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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국은 딱 봐도 변재복이 많이 긴장한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런 동영상이 나왔으니 자신의 죄목이 추가 될 테고 그 말은 그의 형량도 늘어난다는 얘기니 말이다.
“재복아. 너 감옥에서 10년 더 썩기 싫지?”
민재국의 10년이란 말에 변재복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긴 지금도 수감 생활이 진저리가 나는데 거기다 10년이 더해진다니. 아마도 절망적인 심정일 터였다. 그런 그에게 민재국이 계속 말했다.
“그 10년 없애 줄 수도 있는데....”
“네?”
변재복이 처음으로 민재국을 보며 말을 했다. 그런 변재복에게 민재국이 웃으며 말했다.
“칠성제약 안재욱 연구권을 죽이라고 시킨 거 오성그룹이지?”
그런데 막상 민재국의 입에서 오성그룹이 언급되자 변재복은 바로 민재국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말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민재국은 변재복이 오성그룹이란 말에 바로 꼬랑지를 내리는 걸 보고 이 사건을 재수사해서 그 배후를 밝혀내는 게 결코 쉽지 않을 일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파헤쳐야 세상이 그를 주목하게 될 것이고 오성그룹의 외압에도 꿋꿋하게 수사를 해 나가는 자신을 청와대와 정치권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을 터.
“너 살고 싶으면 나와 손을 잡는 게 좋을 거야.”
“네에?”
민재국의 말에 변재복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에게 민재국이 바로 말했다.
“나도 그렇지만 오늘 경찰들이 여길 찾은 걸 오성에서 알면 어떻게 나올 거 같아? 물론 넌 그들에게 아무 말도 안 했어. 하지만 오성에서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 생각에는 널 믿는 것 보다 널 죽여 없애 버리는 게 그들에게 더 안전할 거 같은데 말이야.”
민재국의 말에 변재복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러다 변재복이 민재국에게 물었다.
“정말 내가 도우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넌 중요한 증인이니까. 증인보호프로그램이 실시되면 넌 가석방 상태로 모처로 옮겨질 거야. 그게 감옥보다 낫지 않을까?”
민재국 혼자의 힘이라면 변재복을 감방에서 빼내서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넣고 보호에 들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부친인 민동재 전 국무총리의 힘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 말은 제가 당장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단 소리군요?”
“그렇지. 내 말을 따르겠다고 약속한다면.”
잠시 고심하던 변재복이 민재국에게 얘기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러니 당장 저를 여기서 빼내 주십시오.”
변재복의 확답을 듣고 난 민재국은 부친인 민동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세하게 사정을 얘기하자 민동재 전 국무총리가 알았다며 몇 군데 전화를 돌린 뒤 민재국에게 얘기했다.
-다 얘기해 뒀다. 곧 그쪽으로 증인지원관이 갈 거다. 하지만 오늘은 증인지원실에 있어야 할 거다. 내일 주무부처에서 증인지원관에게 연락이 가고 나면 그때는 은신처가 정해 질 테니 그런 줄 알고.
“고맙습니다. 아버님.”
-고마우면 확실하게 그 사건 해결 해. 그게 나라를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다.
민재국이 부친인 민동재와 통화를 끝내고 부친의 말대로 증인지원관이 나타났다. 모든 서류를 다 갖춰 온 증인지원관에게 서울교도소에서는 변재복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장 변재복을 숨길 곳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변재복은 증인지원실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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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비서실장의 죽기 전 찍힌 사진으로 인해 오성그룹 유태국 비서실장은 오늘 종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그가 박규철 회장의 연락을 받고 얼굴이 좀 펴졌다.
그가 해결책으로 내어 놓은 방법을 박규철 회장이 잔머리를 굴렸고 그것이 주효한 것이다.
“세상에.......... 그 녀석과 민주를 엮을 생각을 하시다니. 과연 회장님이시군.”
하지만 박민주가 결혼을 해서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것은 사실 유태국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일단 그가 감시해야 할 대상이 더 늘어났고 후계자인 박영준이 오성그룹을 물려받는 것도 더 까다로워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국은 그 문제는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 문제는 앞으로 시간이 있었고 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전임 비서실장의 죽기 전 찍힌 사진이 세상에 유포 된다면 그건 문제가 컸다. 바로 그를 타깃으로 경찰 조사가 시작 될 테니까.
몇 차례 경찰 소환만 당해도 회사 내의 그의 입지는 크게 흔들릴 터였다. 그리고 그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자들도 생길 터. 바로 제 2의 유태국이 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회사 내 야심찬 자들 말이다.
권력의 습성이 원래 그랬다. 유태국도 그랬지만 한 번 그 자리에서 밀려 나면 쥐고 있던 권력도 끝이었다. 그걸 알기에 유태국은 지금껏 조심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가 비서실장이 되기 전에 벌인 일로 인해서 이렇게 발목이 잡힐 줄이야.
“어서 해결해야 해. 그러려면 먼저 표경수란 놈부터 잡아야 하는데...... 경찰에선 아직 연락 없나?”
“네. 경찰청 종합상황실에서 CCTV를 통해서 녀석을 찾고 있으니 곧 녀석의 흔적이 발견 될 겁니다.”
어떤 놈의 소행인지 모르지만 일단 표경수란 놈을 잡아서 족쳐보면 곧 드러날 일이었다.
“어? 이게 뭐지?”
그때 유태국을 수행 중이던 비서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덜덜 손을 떨더니 유태국을 향해 더듬거리며 말했다.
“실, 실장님. 이,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뭔데 그러나?”
수행비서는 자신이 봤던 동영상을 재생 시킨 뒤 유태국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넘겼다. 수행비서로부터 핸드폰을 받은 유태국은 막 플레이 된 동영상을 살폈다. 그러다 이내 두 분을 부릅떴다.
그럴 것이 7년 전 자신의 지시로 인해 나국철이 처리 했던 칠성제약의 신약개발 연구원이 생매장 당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동영상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런......”
유태국의 얼굴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사색이 되어 있는 자신의 수행비서에게 소리쳤다.
“빨리 이 동영상 더 퍼지기 전에 막아!”
하지만 수행비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미 틀렸습니다. 검경에서 수사하겠다고 댓글 뜬지 오랩니다. 실, 실장님. 우리는 이제 어떡합니까?”
수행비서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하자 유태국이 그런 그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우리가 그 자를 죽였나?”
“하지만 나국철에게 그 연구원을 죽이라고 우리가 지시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라니? 난 그런 지시 내린 적 없는데?”
“네에?”
“혹시 자네가 그런 지시를 내렸나?”
유태국의 그 말에 수행비서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고 보면 유태국은 나국철에게 사람을 죽이란 지시를 직접 내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전부 그 밑에 사람들을 시켰지. 그리고 그 중에서 그런 지시를 가장 많이 내린 사람이 유태국의 수행 비서인 자신이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