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1 재벌에이스 =========================
이렇게 되면 자신은 이미 윗선, 즉 오성 측의 눈밖에 나버렸다. 그 말은 이제 나국철과의 대화 자체가 무의미해졌단 얘기였고. 그때 나국철의 말이 표경수의 얼굴을 더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너 이 새끼 끝났어. 너지? 유태국 실장에게 사진 보낸 거?
“사진이요?”
-하아. 이 새끼 연기 잘하네. 너 방송국 가라. 아! 아니지. 네가 갈 데야 이미 정해져 있지 참.
나국철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가 말한 표경수가 갈 데가 어딘지 표경수가 모를 리 없었다. 표경수는 이를 갈며 속으로 생각했다.
-거긴 곧 당신이 가게 될 거야. 거기 가면 마동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둘이서 같이 지옥 불을 뒹굴면 되겠네.
표경수는 그 말을 나국철에게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은 그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 하는 게 먼저였다.
“저는 유태국 실장에게 사진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표경수가 딱 잘라 얘기했다. 그러자 나국철도 그의 말은 믿는 기색이었다.
-그럼 유태국 실장 전에 오성 비서실장을 죽이고 묻었던 녀석 중 하나의 소행이겠군. 그 놈이 죽기 직전에 전임 오성 비서실장의 모습을 찍었어. 그 사진이 경찰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네 놈도 생각이란 게 있을 테니 해 봐. 그래도 네가 살 수 있겠어?
나국철의 비아냥거림은 계속 되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서 표경수는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나병석!’
유태국 실장 전에 오성 비서실장을 죽이고 땅에 묻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녀석들 중에 아직 살아서 이 바닥에 구르고 있는 녀석은 나병석 뿐이었다.
‘나병석이 왜?’
나병석이 당시 죽기 직전의 전임 오성 비서실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쳐도 그가 어떻게 유태국 실장에게 사진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병석은 유태국 실장도 모르는데.
‘젠장.....’
나국철과 통화하다 괜히 머리만 더 복잡해진 표경수가 여전히 자신을 비아냥 거리고 있던 나국철에게 말했다.
“형님. 잘 가십시오.”
-뭐?
그 소리를 끝으로 표경수는 이 생에서 마지막 나국철과의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근처 수하에게 명령했다.
“나국철이.....제거 해.”
“네. 형님.”
그 수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 때 표경수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자신의 핸드폰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포항에 가 있는 그의 수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그가 살기 위해서는 나병석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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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표경수의 전화를 받고 나국철도 어지간히 놀랐다. 하지만 그가 누구던가? 조폭 두목 생활을 벌써 20년 넘게 해 오고 있는 그였다. 그 동안 그를 거쳐 간 수하만 해도 수백 명은 넘었다. 그 중 아직 살아 있는 수하는 십여 명에 불과했고 그 중 하나가 표경수였고 또 마동식이었다.
표경수와 통화 중 나국철은 근처 수하가 고개를 내젓는 것을 보고 마동식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런데 표경수가 전화를 걸어와서 마동식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마동식! 이 멍청한 놈.......’
표경수에 의해 마동식이 먼저 당했단 소리였다.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중요할 뿐.
아쉬운 건 마동식에 이어서 표경수도 이제 버려야 한단 점이었다.
오성 측의 눈 밖에 난 녀석을 자신이 끌어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랬다간 자기 목이 뎅강 잘려 나갈 판이니 말이다.
그런데 표경수와 계속 통화를 하다 보니 그 일은 표경수도 진짜 모르는 눈치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어째든 그 일에 표경수가 관여했고 설혹 그 때 표경수와 같이 그 일을 수하 중 하나가 그 짓을 했다고 해도 표경수가 그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테니까.
오성그룹의 유태국 실장이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 증거를 가진 자를 살려 둘리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자들도 마찬가지고.
“이거 나까지 파편이 튀는 거 아냐?”
나국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태국 실장도 그렇게 까진 하지 않을 터였다. 오성의 더러운 일을 처리해 나가려면 아직 자신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단지 조금 께름칙한 건 표경수가 전화를 끊기 전에 한 말이었다.
“잘 가긴. 그건 내가 할 소린데 말이야.”
나국철은 표경수가 자신에게 잘 지내시란 말을 잘 못 말해서 그렇게 말한 거라 애둘러 생각하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챙겨 들었다.
“어서 이 사실을 유태국이 한데 알려 줘야겠지?”
나국철은 오성그룹의 실세 유태국 비서실장에게 직통 라인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 유태국이 나국철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바로 결과만을 물어 왔다.
“전임 비서실장을 묻을 때 거기 있었던 녀석 중 하나가 그 사진을 찍은 모양입니다.”
-그 녀석이 누구야?
“그것 까진 모르고 표경수가 거기 있었습니다.”
-표경수! 알았다.
유태국은 나국철로부터 원하는 답을 듣자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제 표경수는 끝났다. 아마 5분 안에 표경수는 출국금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고 오성 측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찾아 나설 터였다. 한 마디로 표경수는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것이다.
“하아. 이제 정리가 됐군.”
나국철은 기분 좋게 웃으며 사장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마동식을 통해서 표경수를 제거 하려 했다가 그게 실패로 돌아가면서 곤란했는데 이제 오성 측을 이용해서 손에 안 대고 코를 풀게 되었으니 나름 안심도 되고 기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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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의자에 깊게 몸을 파묻은 나국철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뒤 담배 연기를 폐수 깊숙이 빨아 들였다.
“후우우!”
그의 입에서 길게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그는 오른 팔과 왼 팔이 다 잘린 처지였다. 하지만 그들을 대신할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국철은 표경수와 마동식을 대신할 자들로 누구를 선택할지 머릿속에 중간 보스들을 떠올렸다.
“아아아악!”
그때 사장실 밖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의 비서가 내지른 비명 소리인 모양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가 푹신한 의자에 묻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을 때였다.
쾅!
사장실 문이 발길질에 열리고 안으로 연장 든 조폭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뭐, 뭐야?”
그 장면을 보고 나국철의 몸은 자연스럽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런 그에게 사장실로 난입한 조폭 중 하나가 외쳤다.
“죽여!”
그 소리에 나국철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깐!”
나국철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며 조폭들이 내지른 소리에 바로 묻혔다.
퍽! 퍽! 퍽! 퍽!
조폭들은 손속에 사정이란 걸 찾아 볼 수 없었다. 나국철은 처음 비명을 내지른 뒤 그 뒤로 조용했다. 조폭 중 한 명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바로 절명한 것이다.
“멈춰!”
몸을 축 늘어트린 나국철을 보고 조폭 중 하나가 외쳤다. 그리곤 나국철에게 다가가서 그의 상태를 확인한 후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처리 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짧게 통화를 끝낸 조폭이 다른 조폭들에게 말했다.
“철수한다.”
그들은 이곳을 쳐들어 왔을 때 보다 더 빨리 현장을 빠져 나갔다. 그런데 사장실의 비서실에 있던 여 비서가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고 잔뜩 겁에 질린 체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시계만 보다가 30분 쯤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경찰에 전화를 했다.
“여, 여보세요. 경찰서죠. 여, 여기는..................”
그렇게 경찰에 신고 한 여 비서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시킨 대로 했어요. 네. 알겠어요. 이제부터 제가 본 그대로 경찰에 진술하면 되는 거잖아요. 네. 사태가 진정 되면 저도 중국으로 넘어갈게요. 네. 그때 봐요.”
그렇게 그녀가 통화를 끝냈을 때 경찰들이 우르르 들이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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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식과 다르게 나국철은 자신의 건설 회사에 있었다. 그곳은 번화가고 또 회사 안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뒤처리를 하는 건 애초 불가능했다.
때문에 표경수는 나국철을 제거 한 처리조와 함께 인천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곳에는 그들이 중국으로 밀항시켜 줄 배가 준비 되어 있었다.
철저한 성격의 표경수는 항시 만약을 대비해 뒀고 그 중 하나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밀항하는 것이었다.
나국철과 통화 한 후 표경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20여분 쯤 뒤 처리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역시 성공이었다. 마동식도 그렇고 나국철도 결국 표경수가 키운 처리조의 칼끝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마동식과 나국철은 너무 안일했다. 자신들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인데 말이다.
표경수는 처리조의 연락을 받고나서 지금 있던 곳을 나섰다. 그리고 인천으로 향할 때 이번 일의 최대 수훈자라고 할 수 있는 표경수가 나국철의 비서실에 심어 두었던 호스티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표경수가 시킨 대로 나국철이 제거 되고 나서 30분 뒤에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사이 처리조는 현장을 떠나서 인천항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고 초동 수사가 시작 되었을 때 그들은 이미 인천항에 도착해 있을 터였다.
“응. 그래. 미나 니가 수고 많았다. 경찰들 의심 안하게 지금부터는 뭐든 다 사실대로 말해. 그래. 그렇지. 응. 돈은 거기 넣어 뒀으니 그걸 써. 그래. 중국에서 보자.”
표경수를 도운 호스티스는 그의 여자 중 하나였다. 즉 표경수는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여자를 나국철에게 보냈던 것이다.
미나는 표경수에게 그를 보러 중국으로 건너오겠다고 했지만 표경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표경수는 미나를 위해 제법 많은 돈을 그녀와 자신만이 아는 곳에 넣어 두었다. 아마 그 돈을 본 순간 미나는 생각을 바꿔 먹을 터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오늘 그녀는 그 돈값의 몇 배의 일을 해 주었으니까.
나국철은 죽기 전에 아마 자신이 그 일에 연루 되었단 사실을 오성 측에 알렸을 터였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루트로 그가 국내를 빠져 나가긴 이미 틀렸단 얘기였다. 오성이 공권력을 동원하는 건 누워서 떡먹기나 마찬가지니까. 아마 공항으로 갔다간 바로 체포 될 터였다.
때문에 표경수는 나국철을 제거 한 처리조와 같이 밀항선을 타고 중국으로 넘어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천항으로 가는 도중 라디오의 속보 뉴스를 듣고 표경수의 생각이 바뀌었다.
“차 돌려!”
표경수는 국내에 남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가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