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9 재벌에이스 =========================
박영준이 그 동안 몰래 쳐 온 사건, 사고들을 박규철 회장이 다 알았다면 그를 후계자로 삼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 유태국은 박영준이 오성그룹의 회장이 된다면 일등공신, 아니 특급 공신이라 불러야 할 터였다.
그런 유태국이기에 박영준은 오전에 있은 일을 숨김없이 그대로 얘기했다. 그래야 유태국이 그의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줄 테니 말이다.
-쯧쯧. 그깟 여자가 뭐라고...... 알았다. 네가 다 처리 할 테니 넌 하던 일이나 잘 마무리 지어라. JRT측과 미팅에 늦지 말고. 그래.
유태국은 박규철 회장의 스케줄뿐 아니라 부회장인 박영준의 스케줄도 다 꿰고 있었다.
“하여튼 다른 좋은 장점은 물려받지 못하고 여자 밝히는 유전자만 물려받은 건가?”
유태국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최민혁과 민예린에 대해 알아 봐. 그리고 부회장 비서 이도준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고.”
그래도 유태국은 달랐다. 그는 지금처럼 항상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 어떤 상대도 미리 그 사람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고는 움직인 법이 없었다. 유태국은 자신의 성북동 집에서 느긋하니 와인을 마시며 기다렸다.
“으음..... 역시 좋아.”
유태국은 한 병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을 벌써 세 잔째 비웠다.
쪼르르!
그리고 피같이 붉은 와인을 한 잔 더 따를 때 전화가 왔다. 유태국은 그래도 와인잔에 와인을 채운 뒤 전화를 받았다.
“뭐?”
그런데 그가 눈썹을 모았다. 그건 그가 신경 쓸 일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공항으로 경호원들 보내서 그 새끼 잡아 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박영준의 수행비서가 갑자기 해외로 도망을 치려 한 것이다. 다행히 자신이 알아봤기 망정이지 자칫 녀석이 해외로 튈 뻔했다.
“으음.....”
그 이유야 이도준을 잡아오면 알게 될 터였다. 그러니 굳이 조급해 굴 거 없었다. 유태국은 다시 푹신한 자신의 전용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할 때였다.
또 다시 전화가 울려고 유태국은 그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그가 말할 일은 없었다. 보고만 듣기만 하면 될 뿐!
“푸아아악!”
그런데 무슨 소릴 들었는지 유태국이 입에 머금고 있던 와인을 뿜어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최민혁이 누가 손자에 외손자라고?”
전화기를 든 유태국이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그렇다는 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가 나서도 과연 처리할 수 있을지 확신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터졌다는 말이다.
“빌어먹을. 그런 놈이 왜 사교계에 알려지지 않은 거야? 뭐? 야구 선수? 오성 라이온즈?”
그나마 최민혁이 오성 라이온즈의 선수라니 무슨 수가 생길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화기 너머의 설명에 유태국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뭐 올해가 FA라고? 거기다 구단에 없어선 안 될 에이스고? 허어. 그러니까 유명한 놈이란 소리네?”
설명을 들을수록 유태국은 어이가 없었다. 최민혁은 무려 작년 한국시리즈 MVP였다. 그런데 그런 놈을 박영준이 죽이려 했다. 그것도 계획을 세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려 한 것도 아니고 조폭들을 움직여서.
일단 그 정도로도 뒤처리를 하려면 골치가 아픈 마당에 최민혁은 UTC멤버들 중 2명과 엮여 있었다.
“한쪽은 장손이고 또 한 쪽은 외손자고.......”
그런 놈을 벌건 대낮에 납치해서 죽이려 했다니. 유태국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어쩐다.....”
이 일은 그가 나선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었다. 두 UTC멤버 중 한 쪽에서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바로 박규철 회장의 귀에 들어갈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유태국은 이 문제가 박규철 회장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막으면 그의 공이 될 것이고 실패해도 적어도 그가 피해를 입을 일은 없었다. 물론 박규철 회장에게 꾸지람 정도는 들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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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박살 낸 핸드폰을 보며 씩씩거리던 장재호는 빠르게 생각했다.
“이런....”
그리고 다급히 일반 전화기로 오늘 포항 남부 경찰서 당직관인 형사과장인 김 경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민혁을 잡지 말라고 말이다.
-네. 서장님. 지금 잡아서 서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김 경감이 장재호를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하아. 좆 됐다.”
-네?
그때 불쑥 장재호의 머리에 떠 오른 게 있었다. 바로 김 경감이 과잉 체포로 몇 번 그에게 구두 경고를 받은 게 말이다.
“너 설마 그들 수갑 채운 건 아니지?”
-당연히..... 채웠죠.
“뭐? 이런 씨발..... 미란다원칙은?”
-네?
“수갑 채우기 전에 미란다원칙 읊어서 안 읊어서?”
-...........
김 경감이 말이 없었다. 미란다원칙도 알리지 않고 무고한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물론 경찰 측은 오리발을 내밀 것이다. 그 정도야 짜고 치면하지 않았던 일도 한 것처럼 만들 수도 있고 말이다.
“오는데 얼마나 걸려?”
-10분이면 갑니다.
“알았어. 오면 바로 서장실로 데려 와. 씨발. 수갑 풀어주고.”
-네.
김 경감과 통화를 끝낸 장재호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아이고 머리야.”
하지만 지금이 중요했다. 자칫 잘못 대처했다간 그의 목이 날아가는 건 둘째 치고 감빵에 들어가야 할 신세가 될지 몰랐다. 그렇게 장재호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동안 10분의 시간이 흘렀고 최민혁과 민예린을 체포한 경찰차가 포항 남부 경찰서 입구 앞에 도착했다.
경찰차 문이 열리고 수갑을 찬 최민혁과 민예린이 차에서 내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그 앞에 최민혁과 민예린을 체포하라고 소리쳤던 그 경찰간부가 서 있었다.
“수갑 빨리 풀어.”
사색이 된 그 경찰간부의 얼굴을 보고 최민혁이 피식 웃었다. 안 봐도 뻔했던 것이다. 최민혁의 외삼촌인 성동 경찰서장 민재국이 그새 손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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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옆에 굳은 얼굴로 서 있는 민예린을 보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옆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예린 씨를 못 건드립니다.”
최민혁의 그 말에 그제야 굳어 있던 그녀의 얼굴이 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걱정까지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민혁이 경찰에 잡혔으니 적어도 경찰서 안에서 만큼은 그가 무사할 거란 점이었다.
‘경찰서 안에서 그들이 사람을 죽일 순 없을 테니까.’
그리고 최민혁은 박민주를 움직였다. 아무리 박영준이라도 박민주를 무시할 순 없을 터였다. 민예린은 이대로 일이 잘 풀려서 최민혁도 자신도 오성의 그늘에서 벗어 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그녀의 기도발이 먹히기라도 한 것일까? 경찰들이 두 사람을 조사실이 아닌 서장실로 데려갔다.
“아이고. 어서들 와요.”
그리고 그곳에서 경찰서장이 두 팔 벌려 그들을 환영했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에 이곳 경찰서장은 두 사람을 해코지 하진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달랐다.
“이렇게 무고한 사람을 체포해서 경찰서로 강제로 끌고 와도 되는 겁니까?”
최민혁이 친절한 경찰서장에게 따지고 들자 민예린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경찰서장이 정색하며 말했다.
“체포하다니? 이봐. 김 경감. 자네가 이분들을 체포 했나?”
그러자 분명 자신들을 체포해서 여기로 끌고 온 경찰 간부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큰일 날 소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체포라뇨?”
“그럼 여기 수갑 채운 흔적은 뭡니까?”
최민혁이 두 손목을 내 보이자 경찰이 그에게 수갑을 세게도 채웠던지 수갑 찬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었다. 그걸 보고 경찰서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김 경감이라 부른 경찰 간부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김 경감이 차가 경찰서장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자라목이 되었다. 하지만 그뿐 경찰서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민혁에게 능청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 흔적은 곧 사라질 거야. 그러니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있어.”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경찰서장을 보고 민예린은 온몸에 소름이 싹 돋았다. 그러니까 지금 경찰들이 최민혁과 민예린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잘못을 은폐시키기 위한.
“저것들 어디서 수갑 채웠어?”
사람이 싹 바뀐 경찰서장이 김 경감에게 물었다.
“구룡포 대게 집에서요.”
“거기 CCTV있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영상 싹 지우라고 해.”
“네.”
김 경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나서 경찰서장에게 말했다.
“형사 둘을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이로써 저희과 저것들을 강제 체포했단 증거는 없습니다.”
당사자인 최민혁과 민예린이 있는데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 그것도 경찰 간부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 걸 보고 민예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별로 놀랄 것도 없다는 듯 태연했다.
똑똑!
그때 서장실 밖에 노크 소리가 울리고 경찰서장의 비서 노릇을 하고 있던 의무 경찰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경찰서장이 그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묻자 굳은 얼굴의 의무 경찰이 바로 대답했다.
“경북지방경찰청장님께서 지금 오셨습니다.”
“뭐? 벌써?”
놀란 경찰서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고 김 경감은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인지 허둥지둥 거렸다. 그때 그나마 머리가 돌아간 경찰서장이 김 경감에게 외쳤다.
“저것들 조사실에 처넣어.”
그 말에 최민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경북지방경찰청장님께서 여기 온 건 ‘저것들’을 보기 위해선 데 어쩌나?”
최민혁의 그 말에 경찰서장과 김 경감의 얼굴이 누렇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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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방경찰청장 정병석은 저녁을 먹고 부인과 산책 후 집에 들어왔다. 추워서 멀리 돌진 못했지만 그래도 부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어. 혜정아.”
그때 부인에게 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 결혼한 딸은 임신 중이었고 곧 출산일이 다가와서 대구인 여기로 와서 몸을 풀 예정이었다.
“뭐? 사돈께서? 알았다.”
딸과 통화 하던 부인이 갑자기 얼굴을 굳히더니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여보. 지금 사돈 어르신께 전화 드려야겠어요.”
“사돈 어르신이면 민 총리님?”
“네. 그분이 당신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네요.”
“뭐지? 무슨 일로...... 으음. 알았어. 내 바로 그분께 전화 드리도록 하지.”
정병석은 곧장 조용한 자신의 서재로 향했고 서재 전화로 전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셨던 민동재 전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