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8 재벌에이스 =========================
최민혁과 민예린의 앞에 수북히 대게 껍데기가 쌓였다.
“아아! 배불러.”
민예린은 대게 볶음밥 까지 깨끗이 먹어치우고는 부른 배를 두드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최민혁이 말했다.
“잘 먹었어요?”
“네. 진짜 맛있었어요.”
안 그래도 먹고 싶어 했던 대게였다. 그걸 배터지게 먹었으니 민예린도 행복할 밖에.
그때 최민혁의 시선이 대게 집 창가로 향했다. 그의 눈에 수상쩍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경광등을 밝힌 경찰차들까지 나타났다.
이래서야 범인도 잡기 전에 놓칠 판이었다. 경찰들이 저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대게 집을 포위하고 있는데 그걸 눈치 못 챌 최민혁이 아니었다.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이건가?”
최민혁은 이쯤 되면 박영준 부회장 측에서도 자신을 없애겠다는 계획을 접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경찰을 동원해서 그를 잡으려 들고 있었다. 이렇게 공권력까지 동원했다는 건 권력 싸움으로 가보잔 얘기였다. 그렇다면 그 싸움을 거절할 최민혁이 아니었다. 최민혁은 경찰들이 대게 집 안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외삼촌. 저 지금 포항 구룡포에 있는데요. 네. 저녁 잘 먹고 있는 데 경찰들이 왔네요. 네. 아무래도 저 잡혀 갈 거 같아서요. 네. 알았어요. 뭐 어머니와 외삼촌을 봐서 협조해야죠. 네.”
그렇게 최민혁이 통화를 끝냈을 때 우락부락한 인상의 형사들이 대게 집 안으로 들이 닥쳤다. 그들은 곧장 최민혁과 민예린이 있는 쪽으로 몰려왔다.
“최민혁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포항 남부 경찰서 이대철 경장입니다. 서로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왜요?”
“네?”
“제가 왜 그쪽과 경찰서에 가야 하는 지 묻는 겁니다.”
“그, 그건.......”
이대철 경장이 버벅 거릴 때 그 옆의 형사가 소리쳤다.
“뭔 말이 많아. 따라 오라면 따라 올 것이지.”
“그러니까 왜 내가 그쪽들과 경찰서에 가야 하는지 말은 해 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최민혁은 끝까지 정중하게 굴었다.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눈과 귀를 통해서 이 모든 장면들이 녹화되고 녹음 되고 있었으니까.
“..........”
최민혁을 잡으러 온 형사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사실 그들 중에는 최민혁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구와 가까운 포항에서 대구 오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최민혁의 인기는 무시 못할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거기다 경찰서장의 지시로 여기 왔을 뿐 그들은 최민혁을 무슨 죄목으로 잡아야 할 지 들은 바도 없었다. 그때 뒤쪽에서 중년의 딱 봐도 지위가 높아 보이는 경찰이 나타났다. 아마 현 상황을 간파한 경찰 간부가 직접 나선 모양이었다.
“최민혁, 민예린씨. 당신들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합니다. 뭐해? 체포 하지 않고.”
그때 최민혁이 말했다.
“이렇게 얼렁뚱땅 사람을 잡아다가 경찰서로 끌고 가서 죄를 입증하지 못하고 그냥 풀어 준 무고한 사람들도 꽤 많겠지요?”
“뭐, 뭐?”
최민혁의 말에 켕기는 게 있는지 경찰 간부가 당황스런 얼굴 표정을 지었다. 서장의 지시로 무조건 최민혁과 민예린을 잡아가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없는 죄까지 지어 냈는데 상대가 그걸 꼬집자 움찔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제가 경찰의 공권력에 맞설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민혁의 그 말에 경찰 간부가 코웃음을 쳤다.
“흥! 별 미친 새끼 다 보겠군. 그래. 얼마든지 맞서 봐라. 10만 명도 넘는 경찰을 네가 어쩔지 두고 보지. 뭐해? 빨리 수갑 채워서 끌고 가지 않고.”
그렇게 최민혁과 민예린은 양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물론 그들은 범죄용의자도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어떤 경찰도 미란다원칙을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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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부 경찰서장 장재호는 구룡포에 있는 최민혁과 민예린을 잡아오란 지시를 내린 뒤 서장실에서 초조하게 그들을 잡아 서로 데려 오고 있단 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그가 기다리던 부하들의 전화가 아니었다.
“이 새끼는 왜.....”
장재호는 경찰대 동기인 서울 성동 경찰서장의 전화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는 이미 오성측에 붙었으니까. 그렇게 장재호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성동 경찰서장의 전화도 결국 포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의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자 비서인 의무경찰이 전화를 받았다.
일반 경찰들이 주말에 근무하는 데 의무경찰이 쉴 수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그 의무경찰에게 장재호는 미리 말해 두었다. 여기 남부 경찰서 쪽 사람이 아니면 자신은 지금 부재중이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그 말을 의무경찰은 잘 따르고 있었다.
“......네. 네.......지금 서장님께서는 부재중이십니다. 네. 네. 네? 경북지방경찰청장님께서 여기로 현장순시 나오신다고요?”
장재호는 경북지방경찰청장이란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리쳤다.
“야! 전화 바꿔.”
하지만 의무 경찰은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아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경북지방경찰청장이 왜 토요일 밤에 여기로 현장순시를 온단 말인가? 순간 장재호의 머릿속에 좀 전 걸려 온 성동 경찰서장이 생각났다. 그는 서둘러 경찰대 동기인 성동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가 바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민 총경. 나야. 전화 했었네?”
장재호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성동 경찰서장이 대꾸했다.
-어. 그런데 전화 안 받더라고.
“안 받다니. 내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네가 전화를 한 거지. 그래 무슨 일로 전화 했는데?”
-좆까고 있네. 새끼. 너 내 조카 건드리면 이렇게 될 줄 몰랐냐?
갑자기 성동 경찰서장의 말이 거칠어지자 장재호는 당혹스러웠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조카를 내가 왜.....”
-이 새끼가 그래도...... 다 알고 있어. 너 오성 쪽 믿고 이 지랄 하는 모양인데 어디 잘 해 봐라.
그 말 후 성동 경찰 서장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야! 민 총경! 이런 씨발.......”
장재호가 황당해 하고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그에게 든든한 동아줄인 오성 그룹 부회장의 비서란 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장재호는 잘 됐다 싶어서 어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비서님. 저기......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네? 하지만 그 둘을 잡으라고.....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여기 문제가 좀 생겨서요. 네. 경북지방경찰청장님이 지금 여기 오신 다네요. 네. 네?”
장재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거기다 단단히 화가 났는지 얼굴도 시뻘게졌다.
“아니 그게 무슨...... 그 쪽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지금 와서 발을 빼면 어쩌잔 겁니까? 뭐라고요? 허어. 그래서 지금 모른 척 하겠다? 이것들이 내가 핫바지로 보이나? 그래. 어디 두고 보자.”
휙! 콰앙!
장재호는 전화를 끊는 대신 핸드폰을 던져 박살을 내버렸다. 그 만큼 그가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렸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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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준은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취소시키려고 포항 남부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경북지방경찰청장이 나서요? 그분이 왜 거길 와요? 네? 최민혁의 집안이 어디라고요? 허억!”
그랬더니 오히려 혹 떼려다 혹을 붙이게 생겼다. 그것도 보통 혹이 아니라 울트라 대왕 혹이었다.
“.......저, 저도 잘 모릅니다. 그건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
지금 이도준이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꼬리를 자르는 것이었다. 이도준은 그에게 거친 말을 내뱉는 포항 남부 경찰서장의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이런 빌어먹을......진짜 엿 됐네. 최민혁이 그 놈이........최민용 전 대법원장의 장손에다가 전 정권 국무총리 민동재의 외손자 일 줄이야.”
오성그룹이라고 해서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가리켜 오성그룹에서는 UTC멤버라고 부르며 가급적 그들과는 부딪치는 일이 없게 조심했다. 그건 오성가의 일원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박규철 회장도 그 자식들에게 UTC멤버들의 이름은 전부 외우게 만들었다.
이때 UTC는 언터처블(Untouchable)의 줄임 말이었다. 즉 오성그룹도 건드려선 안될 사람들이란 소리였다.
그 UTC멤버 중에 최민용과 민동재의 이름을 본 적이 있는 이도준으로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도준은 이 사실을 박영준 부회장에게 알릴까 하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씨발. 그랬다간 나는......”
나국철의 인간 도살 견들이 즉시 그를 잡으러 올 터였다. 이도준은 곧장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그가 혼자 살고 있던 오피스텔이었고 거기서 간단히 짐을 꾸린 이도준은 여권을 챙겨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자신의 수행비서가 튄 사실을 모르고 샤워를 하고 나온 박영준은 자신의 아지트를 나섰다. 뒤에 나체의 신인 여자 탤런트가 뭐라고 했지만 무시했다. 박영준은 그렇게 자신의 아지트를 빠져 나왔는데 그 앞에 당연히 나타나야 할 수행비서가 보이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안 그래도 성질나는데 사고까지 쳐 놓은 수행비서가 제 일도 소홀히 하자 박영준은 당장 수행비서를 바꿔야겠다 마음먹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수행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 수행비서가 그의 전화도 씹었다.
“이런......”
박영준은 잔뜩 화가 나서는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부회장님.
“이 비서 거기 있나?”
-아뇨. 부회장님 수행하러 가신다고 아까 가셨는데요?
“뭐?”
박영준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이 든 박영준은 운전기사에게 자신의 아지트 앞으로 오라고 지시하고 또 수행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의 수행비서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박영준은 곧장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그의 차가 왔고 운전기사가 내려서 차 문을 열어 주자 그 차에 오를 때 오성그룹의 비서실장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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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박영준의 핸드폰에서 울려왔다.
-어어. 영준아.
“삼촌.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거 같습니다. 네. 네. 그게..............”
오성그룹의 비서실장인 유태국은 박영준이 오성에서 제일 먼저 그의 사람으로 영입한 인물이었다. 박규철 회장의 충견으로 불리는 그는 박영준이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박영준은 유태국을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랐고 유태국도 친 조카처럼 박영준을 아꼈다. 그런 관계는 지금까지 지속 되었고 그 동안 박영준에 대한 안 좋은 소식들은 유태국이 박규철 회장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다 차단해 주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부회장 박영준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