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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최민혁은 세트 포지션 뒤 빠르게 공을 던졌다. 직구가 홈 플레이트로 그대로 날아왔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는 스트라이크로 보고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방망이에 닿으려는 순간 공이 옆으로 흘러 나갔다.
‘젠장!’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는 어떻게든 공을 커트라도 하려고 배트를 밀었다. 하지만 그게 더 화근을 가져 올 줄이야.
그냥 그대로 두었으면 배트가 돌아가며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 혼자 삼진으로 아웃이 되었을 텐데 배트를 더 내민 탓에 배트에 공이 맞고 투수 앞으로 굴러 간 것이다.
데굴데굴!
파팟!
투수 서우진은 이게 웬 떡이냐며 득달같이 자기에게 굴러 오는 공으로 대시해서 그 공을 잡더니 몸을 홱 틀어 2루로 던졌다. 2루수는 그 공을 받고 베이스를 밟은 다음 지체 없이 1루로 던졌다. 순식간에 1-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가 완성 된 것이다.
“나이스!”
“서우진. 역시 최고다.”
현일고의 클로저 서우진은 무사 1,2루의 위기 상황에서 등판해 무피안타, 무실점, 삼진 1개를 곁들인 퍼펙트 투구를 선보이고는 유유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잘했어!”
“우진이 너 수비 실력이 늘었더라.”
덕 아웃의 현일고 선수들이 서우진에게 뭐라 떠들었지만 지금 그의 귀에 그들 말이 들어 올리 없었다. 서우진은 멍 때리고 그라운드를 쳐다보고 있는 최민혁 감독을 스쳐 지나서 빈 덕 아웃 자리에 재빨리 앉았다.
그러자 서우진이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더니 두 눈을 부릅 뜬 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바로 그때 아까부터 넋 나간 사람 마냥 그라운드만 멍하니 주시하고 있던 최민혁이 움찔하며 몸을 움직였다.
‘돌아왔다.’
반면 서우진은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통이 심하게 온 모양이었다.
“우진아.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그걸 보고 현일고 선수들이 걱정이 되는 지 그 주위로 몰려 들었는데 그때 최민혁이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말고 다들 타석에 설 준비나 해.”
그리곤 자신이 서우진 곁으로 가서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우진아. 심호흡을 크게 해. 허리도 펴고.”
최민혁도 처음 능력 빙의를 했을 때 느껴 보았던 이질감이었다. 서우진은 최민혁이 시키는 대로 했고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마운드에 오른 거 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 부턴......”
“너무 긴장해서 그래. 아무튼 넌 잘 던졌어. 그걸로 된 거야. 이제 푹 쉬어.”
최민혁은 서우진이 딴 생각은 하지 못하게 당시 상황을 정리해 주고 타석에 설 현일고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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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초의 위기를 넘긴 현일고 선수들은 더 집중해서 타석에 섰다. 하지만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는 이닝이 이어질수록 더 강해지고 있었다. 현일고의 흔들기에도 이젠 대 놓고 한 복판에 공을 꽂아 넣었다.
펑!
“스크라이크! 투우!”
순식간에 볼 카운트 0-2로 궁지에 내몰린 타자가 덕 아웃 쪽을 돌아보았다. 최민혁은 그 타자에게 공 두 개 쯤 기다리라고 사인을 넣었다.
일본 애들 패턴이 그랬다. 녀석들은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면 쓰리 볼에도 유인구를 던지는 걸 즐겼다. 하물며 노볼 상황이라면 계속해서 유인구를 던질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는 빠지는 슬라이더와 포크 볼을 던졌다.
“하아. 포크 볼까지?”
최민혁은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점수 내기가 쉽지 않겠어.”
원래 최민혁은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를 흔들어서 대량 득점을 노렸었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최선은 1득점이나 2득점을 노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1득점이면 동점 상황이고 5회 초를 잘 틀어막으면 3대 3 동점으로 시합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또 2득점이면 4대 3으로 대한민국의 현일고가 기요하라 고교에 이긴 가운데 교류전을 마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최민혁은 그가 시킨 대로 2구의 공을 잘 참은 현일고 타자에게 이번에 기습 번트 사인을 냈다. 투 스트라이크 인 만큼 번트 실패는 바로 아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민혁은 타자에게 번트를 강행 시켰다.
최민혁이 봤을 때 현 타석의 현일고 타자는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의 공을 공략하기 불가능했다. 미안하지마나 확실하게 그 수준차가 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삼진이나 땅볼로 아웃 될 거 번트를 대는 게 더 현명하다는 감독으로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쓰리 번트로 아웃 되어도 좋아. 과감히 대라.’
최민혁의 사인에 현일고 타자는 비장한 얼굴로 타석에 섰고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의 던진 몸쪽으로 붙는 공에 기어코 배트를 갖다댔다.
툭!
그런데 몸 쪽으로 붙다보니 타자가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배트가 젖혀졌고 그 배트에 맞은 공이 절묘하게 1루 라인을 타고 굴러갔다. 타자는 그걸 보고 배트를 버리고 냅다 뛰었다.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는 아무래도 투구 후 움직임이 느리다보니 그 공을 잡으러 움직이려다 이내 포기를 했고 1루수도 뛰어나왔지만 그가 공에 다다랐을 때 이미 타자는 그를 지나 1루 베이스에 다다라 있었다.
여기서 기요하라 고교 내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라인을 타고 구르는 공이 라인을 넘어 파울이 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지만 번트 댄 공은 라인 안으로 들어와서 멈춰섰고 1루수는 아쉬워하며 그 공을 챙겨 들었다.
“이야아아아!”
번트를 성공 시켜 내야 안타로 연결 한 현일고 타자는 포효했고 현일고 덕 아웃의 움직임도 갑자기 긴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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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감독도 없는 가운데 차분하게 경기 운영을 해 나가는 기요하라 고교 선수들을 보면서 저들이 과연 고시엔 우승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류전은 이미 물건너 가고 양쪽 학교, 아니 양쪽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로 변질 되어 버린 지금 현일고 감독인 최민혁은 최소한 비기거나 반드시 상대를 이겨야만 했다.
‘감독의 자리란 게 이런 거로군.’
졸지에 감독을 맡았는데 그 첫 시합에서 감독의 중압감을 맛보게 된 최민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 경기가 속행 되었고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가 초구를 던졌을 때 기요하라 고교의 내야진이 움직였다.
현일고가 또 번트를 대는 데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일고 타자는 이번에 번트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볼!”
순순히 번트를 대 줄 생각이 없었던지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의 초구는 살짝 높았다. 그 공을 타자가 참고는 덕 아웃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최민혁은 앞선 현일고 타자처럼 타석의 타자에게 일일이 사인을 보내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초구는 기다리란 사인에 현일고 타자는 시킨 대로 타석에 서 있기만 했고 말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현일고는 하위 타선이었다.
한국 야구의 병폐이긴 하지만 현일고에서도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의 격차가 너무 컸다. 때문에 중심 타선으로 이어지기 전 현일고의 하위 타선은 사실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에게 아웃 카운터를 늘려주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었다.
최민혁은 그 허수아비들을 조종해서 그들이 출루할 수 있게 지금 조치를 취하는 중이었다. 이를 위해서 최민혁은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집중하고 있었다.
‘초구를 뺐으니 이번엔 카운터를 잡으러 들어 올 거야. 하지만 한 복판은 아니야. 쪽바리들 속성이 그러니까.’
최민혁은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 투수가 바깥쪽으로 코너 워크가 된 직구를 던질 것으로 보고 현일고 타자에게 사인을 넣었다.
‘배트를 한 템포 빨리 휘둘러!’
현일고 타자는 최민혁의 사인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투수의 공을 기다렸다. 그리고 투수가 와인드 업 뒤 그의 손끝에서 공이 날아오자 최민혁의 지시대로 한 템포 빨리 스윙을 가져갔다.
따악!
바깥쪽에 잘 제구 된 패스트 볼이었다. 그런데 그 공을 현일고 타자가 정타로 때려 낸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 투수의 구위에 눌린 타구는 파울 라인을 넘어 날아가서 옆 그물을 때렸다.
“아아!”
최민혁은 물론 현일고 덕 아웃의 현일고 선수들 전부가 아깝다는 듯 입 밖으로 탄식을 흘렸다. 그건 타자도 마찬 가지인 모양이었다. 배트를 땅에 꽂고 주저앉은 채 너무 아까워하던 타자가 또 다시 덕 아웃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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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도 아깝긴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문제로 그로 인해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투수가 긴장하기 시작했단 점이었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투수인데 그 투수가 더 신경을 쓰면 지금의 현일고 타자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어쩌나?”
잠깐 최민혁은 바로 사인을 냈다. 타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타자는 최민혁의 사인을 받고 타석에 서서는 헬멧을 살짝 만졌다. 그 다음 타격 자세를 취했는데 그때 그걸 보고 루상의 주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투수는 역시나 어렵게 승부를 해 왔다. 몸 쪽으로 꽉 찬 직구에 현일고 타자는 배트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그대로 선 채 루킹 삼진을 당할 판이니 말이다.
틱!
투수의 구위에 눌린 현일고 타자의 타구는 3루수 앞으로 굴러갔다. 기요하라 고교의 3루수는 그 공을 글러브로 안정되고 받은 다음 공을 빼내서 곧장 2루로 던지려 했다.
“엇!”
그런데 1루 주자가 벌써 2루로 슬라이딩을 하고 있었다. 지금 던져 봐야 2루 주자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기요하라 고교의 3루수는 지체 없이 공을 1루로 던졌다.
“아웃!”
간발의 차이긴 했지만 확실히 공이 더 빨리 1루수 글러브로 들어갔기에 1루심은 가볍게 주먹 쥔 팔 내리며 콜을 했다.
“잘했다.”
최민혁은 자신의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고 돌아 온 타자를 칭찬했고 덕 아웃의 동료들은 그런 타자를 웃으며 맞았다. 비록 교류전이 이상한 양상으로 변했지만 현일고 선수들은 즐기며 야구를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최민혁도 나름 어깨에 올려 져 있던 감독의 중압감이 좀 덜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져서는 안 됐다.
1사 2루 상황.
다음 타자가 바로 현일고의 톱 타자, 즉 1번 타자였다. 그렇다는 건 작전을 지시하기가 더 용이하고 폭넓어 졌단 소리였다. 톱 타자 답게 현일고 타자는 발도 빨랐고 번트도 수준급으로 댔다. 하지만 최민혁의 선택은 의외였다. 얼마든지 다양한 작전 수행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타자에게 빠른 승부를 지시한 것이다.
‘초구를 때려라.’
히트 앤 런! 또 다시 그 작전을 최민혁이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