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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그렇게 3회 말 현일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최민혁은 직접 작전 지시 같은 건 내릴 생각이 없었다. 교류전인데다 현일고 선수들이 알아서들 잘할 거라 봤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진다면 저 미친 일본 감독의 기분만 좋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그래서 주장인 우현민에게 물어서 발 빠르고 번트 잘 대는 선수를 추천 받아서 그 선수를 첫 타석부터 대타로 내 세웠다.
“무조건 살아 나가라. 알았지.”
“네. 감독님.”
그 선수는 최민혁의 요구에 제대로 부흥을 했다. 일본 선발 투수는 1회에 제구가 되지 않아 흔들렸지만 그 뒤 안정적인 피칭으로 현일고 선수들을 잠재웠다. 하지만 최민혁이 보기에 그 투수에겐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투구 동작! 공을 던지고 난 뒤 쓸데없는 동작이 많았다. 최민혁은 바로 그걸 노리고 기습번트를 댔다.
대타는 최민혁이 말한 대로 투수 앞으로 공을 굴렸다. 그러자 투수가 허둥지둥 거린 뒤 공을 잡았고 그 공을 1루로 뿌렸는데 간발의 차이로 타자가 살았다.
“세이프!”
“빠가! 그게 어떻게 세이프야! 당신 미쳤어?”
마코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감히 심판에게 욕을 하다니 말이다. 최민혁은 그걸 보고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퇴장!”
마코토에게 욕을 먹은 1루심이 마코토에게 퇴장을 선언했다. 그러자 협회 직원들도 그걸 보고 잘 됐다 싶었던지 고척돔 관리원들을 불러서 같이 마코토를 돔구장 밖으로 끌어냈다.
“이거 놔.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뭔데 나를..... 일본 대사관 직원 불러........”
마코토는 끌려 나가면서도 악을 써댔다. 그런 마코토를 기요하라 고교 선수들도 다들 질린 얼굴로 쳐다만 보았다. 야구선수들인 그들은 야구에서 심판의 판정이 절대적임을 알고 있었다. 심판이 퇴장을 명했는데 저런 행태를 보이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감독의 퇴장이 되레 기요하라 고교 선수들을 단합시켰다.
최민혁이 기습 번트에 이어 다시 번트를 대면서 기요하라의 선발 투수와 내야진을 흔들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3루수의 파인플레이로 오히려 2루의 주자가 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다음 타석의 4번 타자 이자 주장인 우현민이 기요하라의 선발 투수를 끝까지 잡고 늘어지다가 결국 큼직막한 타구를 때려냈다. 하지만 조금 모자라서 타구는 펜스를 때렸고 1루 주자가 홈을 밟고 우현민은 3루까지 갔다.
“스윙! 아웃!”
하지만 기요하라 고교의 선발투수가 다음 현일고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그 뒤 타자를 땅볼로 처리하면서 스코어는 3대 2로 여전히 현일고가 뒤진 상황에서 4회 초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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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뒤에 기회란 말이 있듯이 기요하라 고교는 3회 말에 실점을 한 뒤 4회 초에서 다시 득점 기회를 잡았다.
바뀐 현일고의 중간계투가 갑자기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연속 볼넷으로 무사 1, 2루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이에 최민혁은 현일고의 다른 중간계투, 릴리프를 내는 대신 아예 마무리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어차피 이 시합은 5회에 끝난다. 그러니 여기서 더 점수를 줘선 현일고가 기요하라 고교를 이길 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마무리 투수가 활약할 때라 최민혁은 본 것이다.
“서우진. 가서 1이닝만 막고 내려와라.”
“네. 감독님.”
현일고 클로저 서우진이 마운드로 향했다. 상황은 무사 1, 2루. 서우진이 상대해야 할 기요하라 고교의 타선은 3번부터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였다. 최민혁은 마운드에 오르고 있는 서우진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기 오를 수 있다면 대신 오르고 싶다.’
그러자 그 생각을 읽은 세나가 말했다.
[역(易) 능력 빙의를 사용하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뭐?”
놀란 최민혁의 머릿속에 세나가 역 능력 빙의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능력 빙의의 2단계에서부터 2번의 능력 빙의를 사용하는 대신 역으로 다른 사람의 몸에 내 정신이 능력 빙의 될 수 있단 말이야?”
[바로 그렇습니다. 따라서 지금 역 능력 빙의를 사용하시면 마스터께서 10분간 저 마운드에 올라 있는 서우진의 몸을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 거죠.]
세나의 말을 들으며 최민혁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드리웠다.
“그러니까 내가 서우진이 되어서 공을 던진단 이 말이지?”
그렇게 되면 최민혁은 서우진이 가지고 있는 신체능력 밖에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이 마운드에 선다는 게 중요했다. 구속과 구위가 떨어지고 거기다 자기 몸이 아니니 제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최민혁은 자신이 저 마운드에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나. 역(易) 능력빙의를 사용할게.”
[알겠습니다. 마스터. 말씀드렸다시피 역 능력빙의 시간은 딱 10분입니다.]
세나의 그 말을 끝으로 최민혁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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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진은 비교적 덤덤한 얼굴로 마운드에 올랐다. 위기는 기회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누구라도 부담스러울 만한 위기 상황이었지만 보란 듯이 이를 막아낸다면 이보다 드라마틱한 일도 없을 터였다.
‘3번이든 4번이든 다 덤벼 봐.’
서우진은 각오를 다지며 몸 풀기용으로 연습 구를 두 차례 던지고 포수의 공을 받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서우진은 정신을 잃었다.
턱!
공을 받은 서우진의 몸이 마운드 위에서 잠깐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내 투수판을 밝고 선 서우진은 포수의 미트를 향해 공을 뿌렸다. 그 뒤 서우진은 갑자기 주심에게 공의 교체를 요구했다. 주심이 공을 바꿔 줄 때 서우진은 생각했다.
‘성공이다.’
역 능력빙의로 최민혁의 정신이 서우진에게 제대로 안착한 것이다. 서우진은 바뀐 공으로 세 개의 공을 더 던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심이 타자의 위치를 확인한 후 손을 뻗었다.
“플레이 볼!”
주심의 콜 사인이 나고 서우진은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어제 최민혁은 자신의 공을 받은 현일고 포수에게 간단히 요즘 고등학교의 사인이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 봤었다. 때문에 서우진의 정신을 차지한 최민혁은 현일고 포수의 사인을 읽을 수 있었다. 초구 포수의 사인은 직구였다.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심 패스트 볼의 그립을 잡았다.
‘잘 봐라. 이게 최민혁표 직구다.’
묘한 미소를 지은 서우진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때 포구 동작을 취하던 현일고 포수가 흠칫 거렸다.
그럴 것이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서우진이 큰 동작으로 와인드업을 한 것이다. 주자야 움직이든 말든. 다행인지 1, 2루의 주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우진은 그대로 투구를 이어나갔고 가슴 높이까지 다리를 차 올린 뒤 힘껏 내뻗었다. 뒤이어 상체를 회전시키며 왼팔을 끌어 당겼다.
쐐애애애액!
파공성을 일으키며 날아간 공이 송곳처럼 포수의 미트를 파고들었다.
펑!
“스트라이크! 워언”
주심은 지체 없이 소리쳤다. 그때 현일고 포수가 타임을 요청하더니 마운드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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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진은 그런 포수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시간도 없는데.....’
최민혁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10분. 그 안에 세 타자를 정리하고 마운드를 내려 가야했다. 아니면 정신을 잃었던 서우진이 다시 정신을 차린 뒤 마운드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최민혁도 장담할 수 없었다.
“서우진. 무슨 생각인거야? 주자가 있는 데 와인드업이라니. 주자가 뛰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
“미안, 잠깐 깜빡했어. 다음부턴 세트 포지션을 던질 테니까 빨리 들어가.”
루상에 주자가 둘이나 있는데 와인드업 후 던진 건 확실히 너무 하긴 했다. 서우진이 포수를 등 떠밀었다. 그러자 포수는 그대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포수는 포수석에 앉자 바로 사인을 냈는데 역시나 패스트 볼을 요구했다. 그런데 바깥쪽으로 코너 워크가 되길 원했다. 그걸 보고 서우진은 생각했다.
‘바깥쪽 꽉 찬 볼이 제구가 되려나 모르겠군.’
최민혁이라면 너무도 간단히 꽂아 넣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몸은 최민혁의 몸이 아니었다. 서우진은 최대한 간결하게 킥을 하고 빠르게 허리를 돌린 뒤 어깨를 돌리며 강하게 팔을 휘둘렀다.
펑!
“스트라이크! 투우!”
다행히 꽉 찬 스트라이크가 홈플레이트를 살짝 걸치고 포수 미트에 꽂혔고 타석의 타자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아마도 빠지는 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는 연이어 패스트 볼이 들어오자 다음 공으로 또 패스트 볼이 들어 올지 아니면 변화구가 들어올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자. 변화구가 오면 커트하고.’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는 그렇게 패스트 볼을 기다렸고 기다렸던 패스트 볼이 날아왔다.
‘됐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는 내심 쾌재를 외치며 냅다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홈 플레이트로 날아오던 공이 휘었다.
‘젠장! 슬라이더?’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서우진은 3구로 기요하라 고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는 포수에게 빨리 공을 달라며 글러브를 들어 보였다. 이제 한 명이었다. 아웃 카운터는 아직 두 개가 더 남았고 시간은 서우진, 아니 최민혁의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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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당한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가 타석에서 내려가고 바로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좋아. 그래야지.’
최민혁은 기요하라 고교 타자들의 이런 빠른 경기 진행에 흡족하니 웃었다.
서우진은 그런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에게 초구부터 강하게 찔러 넣었다. 몸 쪽 높은 코스의 직구였다. 기요하라 고교 타자는 그 공에 움찔했다.
“스트라이크! 워언!”
클로저 답게 서우진의 공은 구속이 140Km/h대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실제로 서우진의 공은 무브먼트가 워낙 좋아서 타석의 타자에게는 더 빠르게 느껴졌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가 히팅 포인트를 좀 더 앞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두 번 째 공이 날아왔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드는 서우진의 직구에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틱!
그러나 빗맞은 공은 뒤쪽 파울 라인을 넘어갔다. 볼 카운트 2-0.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카운트에서 기요하라 고교 타자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바로 앞 타석에서 동료의 배트를 헛돌게 만들었던 서우진의 슬라이더가 생각났기 때문에 말이다. 기요하라 고교의 타자가 그렇게 고민에 빠졌을 때 서우진은 포수 사인을 확인했다.
홈플레이트에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타자가 따라 나와 주면 좋고, 그게 아니어도 볼카운트는 여전히 유리하다는 복안이 깔린 사인이었다. 최민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