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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현일 고등학교는 황금사자기 우승팀답게 학교에 꽤 최신식 야구장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겨울이지만 오후에 해가 그라운드에 드리울 때 가볍게 캐치볼을 하고 타격 연습에 주루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대충 내일 있을 한일 고등학교 교류전에 현일고 선수들이 대비를 한 것이다.
‘이 한 겨울에 무슨 교류전을 한다고.....’
최민혁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양국 모두 돔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째든 춥지만 야구를 해야 하니 현일고 야구부 선수들은 전부 야구 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안에는 내복을 입고 두터운 겨울 점퍼들을 입고 있었지만.
최민혁은 현일고 야구부 선수들에게 전부 사인을 해 준 뒤 자연스럽게 그들을 그라운드에 모았다. 겨울은 해가 짧다보니 벌써 그라운드에 햇볕은 실종 된 상태였다. 그래서 슬슬 주위가 추워지고 있던 터라 최민혁도 선수들을 데리고 실내로 들어가서 얘기를 나눠야겠다 싶었을 때였다. 그때 최민혁에게 미트에 사인을 받은 현일고 선수가 외쳤다.
“최민혁 선수의 공을 받고 싶습니다.”
그 선수의 용감한 발언이 있자 다른 선수들도 일제히 외쳤다.
“최민혁 선수의 공을 보고 싶어요. 던져 주세요.”
그런 현일고 선수들의 요구에 최민혁은 난감했다. 하지만 현일고 선수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접하자 차마 못 던지겠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좋다. 단, 딱 3구만 던지겠다.”
“우와아아!”
현일고 선수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국내 최정상급 에이스의 공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후다다닥!
최민혁에게 공을 받고 싶다고 한 현일고 포수로 보이는 선수가 재빨리 뛰어가서 포수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수 장비 착용을 끝마친 포수가 홈 플레이트 뒤 자신의 안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사이 최민혁도 입고 있던 패딩을 벗고 마운드에 올랐다.
“여기.....”
현일고 투수로 보이는 선수가 자신의 글러브와 야구공을 같이 최민혁에게 건넸다. 그 투수는 최민혁과 같은 좌완 투수였기에 최민혁은 그 글러브를 받아 오른손에 끼고 야구공은 왼손에 가볍게 움켜잡았다.
그때 배트를 든 현일고 선수가 배터 박스에 들어서며 최민혁에게 외쳤다.
“타석에 서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최민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다. 배트를 휘둘러도 좋다. 단 내 공이 너의 배트만 스쳐도 네가 원하는 거 하나를 들어 주도록 하지.”
“오오오오!”
최민혁의 그 말을 들은 현일고 선수들이 감탄사와 함께 일제히 부럽다는 눈으로 타석의 동료 선수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생각키로 그저 배트만 잘 내밀어 최민혁의 공만 건드려도 최민혁으로부터 원하는 걸 얻어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일고 선수들의 그 생각은 최민혁이 던진 초구를 보고 바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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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마운드 위 투수판을 밟고 섰다. 그는 야구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서툰 목수나 연장을 탓하는 법이었다.
최민혁이 마운드에 서서 시선을 포수에게 돌리자 포수 녀석이 나름 사인을 냈다. 검지 하나. 흔히 쓰는 직구 사인. 최민혁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초구는 직구를 던질 생각이었다.
마운드 위에서 투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몸을 풀어주고 어깨도 충분히 풀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최민혁은 바로 마운드에 올랐고 공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미 최민혁이 집에서 충분히 어깨를 풀어 놓았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아니었으면 최민혁도 아이들의 부탁을 그리 쉽게 받아드리지 않았을 터였다.
이런 점은 다른 현일고 선수들은 몰라도 투수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최민혁이 그 위대해 보였다.
최민혁은 곧바로 와인드업에 들어갔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공을 뿌렸다. 현일고 선수들은 그 아름다운 동작에 넋이 나갔다. 특히 투수들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던지는 최민혁의 투구폼에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쐐애애액!
뻐어어어어엉!
포수 미트가 터질 듯 포구 음이 야구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허억!”
“지, 지금 뭐가 지나간 거냐?”
“젠장. 난 보지도 못했다.”
그때 장난 끼 많아 보이던 현일고 선수 하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154Km/h!”
“뭐?”
그 말에 현일고 선수들이 다들 그 선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 선수의 손에 스피드 건이 들려 있었고 그 선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수 옆에서 스피드 건을 쳐다 본 선수가 경악하며 외쳤다.
“우와! 진짜잖아.”
“어디 봐.”
“나도 좀 보자.”
스피드 건을 들고 있던 동료 주위로 현일고 선수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다들 스피드 건에 찍힌 수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럴 것이 마운드에서 몸도 풀지 않고 거기다 구두에 불편한 옷차림에 던진 초구가 154Km/h가 나온다는 건 현일고 선수들이 생각해도 완전 개 사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최민혁의 공을 본 현일고 선수들과 안에서 그의 공을 직접 받고 직접 타석에서 그 공을 본 선수의 놀라움은 그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우와! 세상에나. 이런 공이라니.....’
현일고 포수는 그냥 미트만 내밀고 있었다. 최민혁이 와인드업 후 손끝을 떠난 공이 갑자기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는데 어느 새 그의 미트에 틀어 박혔다. 타석의 타자 역시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와! 진짜! 대박! 헐! 이런 공을 내가 무슨 수로 건드려.....’
사실 타자는 최민혁의 유려한 투구 폼 만 감상하다 공이 언제 날아오는 가도 보지 못했다. 그는 공이 미트에 박힌 뒤 그 소리를 듣고 최민혁이 공을 던진 줄 알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현일고 4번 타자의 자존심이 있지 아무리 최민혁이라도 그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건 진짜 쪽팔 일이었다.
현일고 4번 타자는 배트를 좀 더 짧게 잡았다. 그가 그렇게 한 건 어차피 최민혁이 남은 두 개의 공을 던질 때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은 던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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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일고 4번 타자의 예상대로 최민혁은 고교생을 상대로 제구 위주의 피칭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압도적인 구속과 구위로 찍어 눌러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2구부터 포수는 사인을 내지 못했다. 대신 최민혁이 사인을 냈다. 하지만 그 사인이 뭔지 현일고 포수는 알지 못했다. 단지 변화구 일거란 거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홱!
최민혁의 몸을 비틀었다가 풀면서 또 다시 유려한 포즈로 공을 뿌렸다.
뻐어어어엉!
공의 구속은 앞서 보다 좀 떨어졌지만 현일고 선수들 눈에는 역시 빨라보였다. 그리고 타석의 현일고 4번 타자의 배트가 시원하게 헛돌았다.
“와아! 체인지업의 구속이 149Km/h야.”
“저걸 무슨 수로 쳐.”
“치긴. 건드리지도 못하겠다.”
그라운드 밖의 현일고 선수들이 웅성거릴 때 포수석의 포수는 미트에서 공을 빼내면서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번 역시 그는 미트만 내밀고 있었다. 정확히 한 복판에 말이다. 그런데 공이 휘어져서 그가 내밀고 있는 미트로 빨려 들어왔다.
타석의 타자도 방망이를 돌렸지만 공의 궤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래서 수치심에 얼굴이 뻘게졌다.
“이이.....”
단단히 화가 난 듯 타석의 현일고 4번 타자가 방망이를 잔뜩 힘주고 잡은 채 타격 포즈를 취했다. 어서 던져 보라고 말이다. 그런 제스처에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녀석의 도발이 귀엽게 느껴졌던 것이다.
최민혁은 또 현일고 포수가 알지 못할 사인을 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그가 뭘 던질지 포수석의 포수는 알 필요도 없었다. 녀석이 내밀고 있는 미트 속으로 그의 공이 빨려 들어갈 테니까.
그런데 최민혁의 어깨가 젖혀지고 그의 몸의 모든 힘이 그의 손끝으로 쏠려 있을 때 포수 녀석이 미트를 살짝 옆으로 뺐다.
그걸 보고 최민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은 타자를 향했고 타석의 현일고 4번 타자는 너무 놀라 몸이 굳어 버렸다. 그래서 타석에서 몸도 빼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다.
뻐어어엉!
그때 포구 음이 울리고 현일고 4번 타자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힐끗 뒤를 돌아보니 현일고 포수의 미트가 보였다. 그런데 그 미트의 위치가 살짝 타자 몸 쪽으로 붙어 있었다. 물론 몸 쪽에 스트라이크 코스였다. 타자의 몸 쪽을 파고드는 위력적인 슬라이드였다.
현일고 4번 타자는 만약 이 공을 치는 타자가 있다면 그 타자는 내일 당장 짐 싸서 메이저리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와아아아아!”
짝! 짝! 짝! 짝!
단지 마운드에서 공 세 개를 던졌을 뿐인데 현일고 선수들의 눈에 최민혁은 야구 신으로 보였다. 그런 야구 신이 자신들의 감독이란 사실이 현일고 선수들은 믿기지 않으면서도 너무들 좋았다.
“자자. 다들 추운데 얘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자.”
최민혁은 그 말 후 현일고 선수들을 데리고 야구부실로 들어갔다. 야구부실은 온돌방으로 당연히 따뜻했다. 그곳에서 최민혁은 현일고 선수들고 언 몸을 녹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물론 그 얘기들은 다 야구에 관한 얘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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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현일고 선수들과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건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런다고 그 단시간에 최민혁이 현일고 선수들을 다 알 순 없었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최민혁은 팀 분위기라도 좋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그런데 다른 녀석들과 달리 아까부터 최민혁을 기분 나쁘게 꼬나보는 녀석이 있었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결국 녀석이 본심을 드러냈다.
“감독님. 질문 있습니다.”
현일고 선수들도 어느 정도 최민혁과 가까워지자 그를 감독님으로 불렀다. 최민혁도 현일고 선수들이 계속 그를 ‘최 선수, 최 선수’ 하는 게 듣기 거북했던 터라 흔쾌히 감독으로 부르라고 했다. 어차피 내일 하루지만 그가 녀석들의 감독을 맡기로 한 건 사실이니까.
“뭔데? 말 해 봐.”
“저.....강하나랑 사귀는 거 맞아요?”
그 말에 현일고 선수 몇 명이 눈빛을 빛내며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대충 녀석이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이유를 알거 같았다.
‘하긴 저 나이 때 수컷들이 다 그렇지.’
최민혁은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 강하나는 내 여동생의 친구 일뿐이다.”
그 대답에 질문한 녀석과 몇 명의 현일고 선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들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질문 뒤 녀석들이 최민혁에게 사적인 질문을 마구 해 대기 시작한 것이다.
“애인 있으세요?”
“키스는 언제 처음 해 보셨어요?”
그러다 19금 질문까지 나왔다.
“.....첫 경험은 언제.....”
최민혁도 녀석들의 짓궂은 질문에 살짝 놀랐지만 녀석들의 우문에 현답을 내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