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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갑자기 양상이 달라졌다. 배도철의 말에 거의 넘어 가던 중이던 예지와 그 부모들은 최민혁과 최다혜의 등장으로 새 판을 짜려 들었다.
그 덕분에 배도철만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누그러트리고 예지와 그 부모들을 상대 했을 때처럼 어르고 달래고 협박 성 발언을 하려 했는데 최다혜의 오빠란 인간에 그럴 수가 없었다. 무슨 변호사라도 되는 지 법에 관한 배도철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법조계에 계십니까?”
그 물음에 최다혜 오빠가 말했다.
“법대 중퇴 했는데요.”
그 대답에 배도철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법대에 다녔다면 더 이상 법까지고 장난질을 치긴 들렸다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법 보다 더 복잡한 연예 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연예계란 게 그렇습니다. 이쪽도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하지만 배도철의 얘기는 또 최다혜의 오빠란 인간 때문에 끊겼다.
“제 친구가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푭니다. 그 친구에게 들어서 그쪽 일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거기서는 이런 불공정한 노예 계약은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이주나 대표를 아신다고요?”
최민혁의 그 말에 그의 여동생인 최다혜는 물론 예지와 그 부모들까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제 동생이 연예인이 될 생각이 있는 줄 알았으면 제가 진즉 SQ엔터테이먼트에 데려 갔을 겁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사고를 쳤고 그 사고를 해결하고자 여기 왔고요. 그러니 긴말 마시고 빨리 계약해지나 해 주시죠.”
“하하하하. 그러시군요. 하지만 계약이란 것이..............”
배도철은 최다혜의 오빠의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다. SQ엔터테이먼트의 이주나 대표라면 그도 알았다. 그녀가 얼마나 바쁜지 말이다.
그런 그녀가 최다혜의 오빠와 잘 아는 사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다. 만약 그렇다면 최다혜나 그 오빠가 대단한 집안의 자식들이란 소린데 배도철이 아는 최다혜의 부모님은 별 볼일 없는 공무원들이었다. 최다혜가 제 입으로 그랬다. 만약 그녀의 부모님이 대단한 지위에 있다면 그녀가 그렇게 얘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최민혁은 배도철의 자신의 말을 씹고는 원론적으로 계약 해지가 안 된다는 말을 계속 떠들자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갑질을 시작하기 전에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지 그 맛배기부터 보여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배도철은 최민혁이 핸드폰을 꺼내서 어딘가 전화를 거는 걸 보고 코웃음을 쳤다.
“여보세요. 어. 주나야. 바쁘지?”
하지만 최민혁이 통화를 시작하자 배도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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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나는 오늘도 역시 분(分)을 쪼개 가며 바쁘게 일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당연히 바빠서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이 최민혁이란 걸 본 순간 그녀의 모든 바쁜 일은 올 스톱이 되었다. 그녀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는 최민혁의 전화를 받았다.
“어. 뭐. 근데 어쩐 일이야?”
이주나는 혹시 간밤의 일로 최민혁이 전화를 걸어 온 거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게 아닌 다른 볼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건거였다. 가만히 최민혁이 간추려서 말하는 내용을 듣던 이주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네 동생이 스타엔터와 그런 노예 계약을 했다고? 거기 박규동 사장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이주나도 다른 소속사 대표들과 친분이 있었다. 이쪽 일이란 것이 필요에 따라서 서로 손을 잡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스타엔터테이먼트도 마찬가지였다. 몇 차례 SQ엔터테이먼트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 만났던 대표는 사람 좋게 생겼었는데 알고 보니 악덕 사업주인 모양이었다.
“우리 법무팀을 그쪽으로 보내 줄까? 그래? 알았어. 그럼. 그쪽 사장에게 잘 얘기 해 봐. 내 얘기하면 박사장도 내 얼굴 봐서 네 동생 문제는 잘 해결 해 줄 거야. 그래. 시간 나면 또 한 잔 하자. 응.”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이주나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우! 간 떨려 죽는 줄 알았네.”
그런데 통화 후 이주나는 계속 가슴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최민혁과 나눴던 간밤의 뜨거웠던 순간들이 그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이주나는 최민혁을 남자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몸을 섞고 보고 나서 깨달았다.
그가 남자 중에 남자란 사실을 말이다. 이주나는 진심으로 조명진을 사랑했다. 그래서 약혼을 했고 결혼까지 생각 중이었다. 그러나 남자로서 지금껏 그녀를 만족 시켜 준 건 조명진이 아니었다.
“최민혁!”
어제 뜨거웠던, 불같은 밤을 이주나는 결코 잊지 못할 거 같았다.
“사장님!”
그런 그녀의 상념을 그녀의 비서가 일깨웠다.
“어! 맞다. 일해야지. 일.”
그녀는 이번엔 분초(分秒)를 다퉈가며 일을 해야 했다. 최민혁과 통화한 시간을 벌충해야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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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이주나와 처음 인사만 핸드폰을 들고 받았고 그 다음은 주위 사람들도 들어 보란 듯 스피커폰으로 바꿔 통화를 했다. 그때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표에게서 스타엔터테이먼트 사장의 이름이 나오자 배도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그녀가 SQ엔터테이먼트의 법무팀을 이쪽으로 보내 줄까 물었을 때는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스타엔터테이먼트가 발칵 뒤집어 질 건 불을 보듯 자명했으니 말이다.
“....... 뭐 네 말대로 여기 사장한테 잘 말해 보지 뭐. 그래. 바쁜데 일 해.”
최민혁이 이주나와 통화를 끝냈을 때 배도철은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최민혁이 웃으며 말했다.
“전화 번호 확인해 보실래요?”
그리고 그의 핸드폰에 찍혀 있던 이주나의 핸드폰 번호를 배도철에게 보여 주었다. 이때 배도철은 만약 최민혁이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표와 방금 전 통화 한 게 사실이라면 이건 그의 선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최민혁이 그에게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표의 번호가 맞는 지 확인하라며 말이다.
배도철은 그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기억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후다닥 사장실로 달려갔다.
“사, 사장님!”
“뭐야? 얼굴은 또 왜 그 모양이고.”
“그, 그건 이따가 얘기하고....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표 전화번호 알고 계시죠?”
“응. 당연히 있지. 근데 그건 왜?”
“그 전화번호가 혹시 이겁니까?”
배도철은 사장실의 테이블 위에 메모지에 그가 기억하고 있던 핸드폰 번호 하나를 적었다. 그러자 스타엔터테이먼트 박규동 사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서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표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어디 보자. 010에 7865에......어! 맞네. 너 이 전화번호 어떻게 안 거야?”
박규동 사장이 번호를 직접 확인해 주자 배도철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힘없이 자신이 어떻게 그 번호를 알게 되었는지 박규동 사장에게 설명했다.
“뭐? 그럼 최다혜란 아이 오빠가 SQ엔터 이주나 대표와 친구 사이란 말이야?”
“네. 그런거 같네요.”
“허어. 이 대표가 자길 봐서 내가 그 친구 문제를 잘 해결 해 줄 거라 했단 말이지?”
“네. 어떻게 할까요?”
“으음. 너도 이 대표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잖아? 우리 같은 회사 쯤 말려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고.”
“그럼 계약 해지 해 줄까요?”
배도철의 그 말에 박규동 사장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야 없지. 그냥 계약 해지를 해 줄 수야 있나?”
박규동 사장이 비릿하게 웃는 걸 보고 배도철은 생각했다.
‘저 인간 무슨 꿍꿍이가 있나 보군.“
하지만 배도철도 알았다. 이미 이 문제는 자신의 손을 떠났다는 걸. 그걸 알려 주듯 박규동 사장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박규동 사장이 직접 나서자 배도철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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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철과 마찬가지로 스타엔터테이먼트 대표 박규동 역시 연예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중견 급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건 눈치가 빨랐기 때문이었다. 또 얻어 낼 게 있으면 확실히 얻어냈고 말이다.
지금 박규동이 봤을 때 이건 기회였다. 갓 계약한 최다혜를 내 주는 대신 SQ엔터테이먼트에서 더 큰 걸 얻을 수 있는 있는 절호의 기회.
박규동의 머릿속에는 벌써 SQ엔터테이먼트로부터 뭘 얻을 지로 가득했다.
‘괜찮은 노래를 달라고 할까? 아니면 배역? 아니야. 곧 무지개걸스가 2집으로 컴백해야 하는데 데뷔곡이 약하단 말이지. 역시 노래로 달라고 해야겠어.’
박규동이 SQ엔터테이먼트로부터 뭘 얻어 낼지 정했을 때 그는 문제의 그 계약 해지를 원하는 사람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누구야?”
박규동이 묻자 배도철이 곧장 손짓으로 최민혁을 가리켰다. 그러자 박규동이 웃으며 최민혁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 대표 친구라고요?”
“네. 최민혁이라고 합니다.”
그때 최민혁이 일부러 좀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예지의 부모 중 아버니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오성 라이온즈 최민혁! 맞죠?”
“가만 최민혁이라면 어제..... 강하나와 사귄다는 그 야구 선수?”
예지의 어머니도 최민혁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예능에 관심이 많았던 예지란 아이도 최민혁을 알고 있었다.
“한 밤의 토크쇼에서 강하나의 사연에 주인공. 그 용감한 아저씨 맞죠?”
예지의 말에 최민혁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넌 내가 아저씨로 보이니?”
그 말에 최민혁 옆에 있던 최다혜가 예지를 보고 말했다.
“야! 너 왜 우리 오빠보고 아저씨래? 이렇게 키 크고 잘 생기 아저씨 봤어? 봤냐고?”
최다혜는 어지간히 자기 오빠 최민혁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사람들이 오빠를 다 알아보니 그럴 만도 했다.
“미, 미안. 오빠. 죄송해요.”
예지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최민혁에게 직접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최민혁은 그런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 보다 너도 모르고 한 계약이니까 해지 해야지. 안 그래?”
“그, 그럼요. 근데 저 혹시 저 좀 SQ엔터에 소개시켜 주면 안 돼요?”
예지는 보기와 달리 불여우였다. 최민혁이 SQ엔터테이먼트 이주나 대표와 친한 사이란 걸 알고는 바로 부탁을 한 것이다. 그러자 예지 부모들도 일제히 최민혁을 애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가운데 정작 이곳 스타엔터테이먼트의 사장인 박규동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거기다 박규동은 최다혜만 계약 해지를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민혁의 오지랖 때문에 예지까지 계약 해지를 해 줘야 할 상황에 처하자 얼굴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