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재벌에이스
“오빠! 뭘 해? 빨리 해결 해 줘야지.”
“뭘?”
설거지 중이던 최민혁이 어리둥절해서 뒤돌아보자 그녀가 말했다.
“내 소속사 문제 오늘 해결해 주기로 했잖아!”
어제 그런 약속을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급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여동생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 앞에서는. 이런 대책 없는, 일단 저질러 보고 보는 저 성질 때문에 어제 그 개고생을 해 놓고.....아. 맞다. 기억 못하지. 끔찍한 기억은 최민혁이 다 지웠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오빤 옷 서어 갈아입고 와.”
최다혜에게 등 떠밀려 부엌 밖으로 쫓겨나면서 최민혁은 여동생의 기억을 지운 게 괜히 후회 되었다. 그래도 한결 밝아 보이는 여동생에 만족하며 최민혁은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외출 준비를 하면서 최다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했다.
사실 갑질을 좀 하면 최다혜의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거기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여동생도 따라 나설 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최민혁은 여동생에게 갑질이 뭔지 보여 줄 생각이었다.
최민혁의 부모님은 자식을 잘 키웠다.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과보호로 키운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갑질을 겪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부모를 잘 둔 최민혁과 최다혜는 두 분 덕분에 갑질은 못해보고 갑질 만 당하고 살아야 할까?
이미 최민혁과 최다혜는 성인이다. 그들이 갑질을 하고 살지 말지는 이제 두 분이 결정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최민혁은 최다혜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진짜 갑질을. 그리고 그걸 보고 그녀는 갑질 인생을 살게 될지 말는 그녀 스스로 결정하게 될 터였다.
최민혁은 옷을 갈아 입고 외출 준비를 끝낸 채 1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최다혜가 벌써 외출 준비를 끝낸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게을러터진 최다혜가 말이다. 그만큼 그녀에게 노예 계약 문제가 심각한 고민이란 소리였다.
최민혁은 그 동안 여동생이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생각하자 그녀에게 그런 계약을 맺게 한 그 스타엔터테이먼트를 그냥 둬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기 방에서 최민혁은 굳이 이 문제를 키울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자신이 그 소속사를 찾아가서 거기 사장을 만나던 아니면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는 책임자급 인사를 만나서 좋게 말로 해결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동생도 그렇고 어제 보니 개 사육장에 들어가 있던 여자들 대부분이 여동생과 같은 불공정한 소속사와의 계약 때문에 그 꼴을 당한 거였다. 그 생각도 나면서 최민혁은 이게 그냥 최다혜 하나로 끝낼 일이 아니다 싶었다.
“그런 데는 아주 문을 닫게 만들어 줘야지.”
최민혁은 능력빙의를 사용해서 최민혁의 외가에서 국세청에 계시는 분이 계시나 생각해 보았다.
“빙고!”
그랬더니 외할아버지의 동생 분의 둘째 아들이 국세청에 있었다. 그것도 서울국세청의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 4국에 말이다. 그분의 연락처는 어머니의 개인전화번호부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최민혁은 곧장 그분께 연락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민혁이라고 합니다. 민정숙 총경님의 아들요. 네. 네. 작은 할아버님은 건강하시죠. 네. 하하하하. 맞습니다. 오성 라이온즈 투수. 네. 네......”
서로 안면은 있었기에 얘기는 술술 풀렸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움직여 주실수 있을까해서요. 말이 세무조사지 약식으로 끝낼 문제긴 하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거기서 뵙도록 하죠. 네. 신경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 통화를 끝내자 최다혜가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왜?”
최민혁이 그런 그녀에게 툭하니 말을 던지자 그녀가 몽롱한 얼굴로 대답했다.
“진짜 그 돌대가리 최민혁 맞아?”
“이게 어디서 오빠보고 돌대가리래.”
최민혁은 국세청에 이어서 스타엔터테이먼트가 위치한 관할 경찰서인 방배경찰서에도 전화를 걸었다. 거기 형사 과장이 외가 쪽 인척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이제 됐다. 가자.”
그 뒤 최민혁은 최다혜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그리곤 여동생에게 진짜 갑질이 뭔지 보여 주기 위해서 스타엔터테이먼트로 출발했다.
--------------------------------------------------------
출근하자마자 사장실로 불려 간 배도철은 오랜 만에 칭찬을 받았다. 그럴 것이 그가 봐도 뜰 가능성이 높은 애들을 한 달 사이 4명이나 영입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 애들만으로 걸 그룹을 만들어도 대박을 칠 수 있을 정도로 비주얼적인 부분에서는 완벽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비주얼만 가지고 뜰 순 없었다. 각 소속사에서는 가능성이 많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육성해 오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커서 그 소속사를 대표하는 연예인이 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모든 연예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끼를 지니고 있었기에 이제 막 길거리에서 캐스팅한 애들과는 비교가 불가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그 소속사에서 키운 아이들에 비해 특출한 아이가 나왔다. 그런 아이는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올랐는데 스타엔터테이먼트에서는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다.
스타엔터테이먼트의 사장은 배도철이 영입한 4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 그런 특출한 아이 일거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글쎄 안 된다니까요.”
“안되긴 뭐가 안 돼요? 세상에 이런 계약이 어디 있어요. 빨리 계약 해지 해 주세요.”
그런데 아침부터 짜증스런 일이 벌어졌다. 그가 영입한 그 4명의 아이 중 하나가 그 부모와 같이 찾아와서 그들이 맺은 전속 계약이 노예 계약이라며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계약이 뉘집 똥 강아지 이름인 줄 아나.....”
아무래도 그가 나서야 할 모양이었다.
“저 사람이에요.”
아이는 자신과 전속 계약을 맺은 배도철을 딱 지명했다. 그러자 그 아이의 부모님들이 득달같이 배도철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배도철이 누구던가? 연예판에 닳고 닳은 그였다.
“........그래서 계약은 해지해 드릴 수 없습니다. 예지는 저희가 확실하게 뜰 수 있게 케어해 드릴게요. 그 다음 계약은 다시 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배도철은 늘 하던 대로 아이의 부모님을 어르고 달래고 협박도 하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지키지 못할 거짓말을 내뱉었다.
“저, 정말 우리 아이가 성공하면 재계약 할 수 있는 거죠?”
“당연하죠. 그때는 예지도 스타가 됐을 텐데 저희도 함부로 못하죠.”
하지만 배도철의 속내는 달랐다.
‘재계약? 웃기고 있네.’
배도철은 자신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갈등하고 있는 예지란 아이와 그 부모를 보고 속으로 웃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그렇다. 더 큰 미래의 성공을 얘기하면 눈앞의 불투명한 현실은 새까맣게 잊는다. 저들은 이대로 돌아갈 것이고 계약대로 예지는 내일부터 스타엔터테이먼트에 나오게 될 터였다. 그런데 그때 웃고 있던 배도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그가 영입한 4명의 아이 중 하나가 또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부모님은 아닌 멀쩡하게 생긴 젊은 남자 녀석을 데리고 왔는데 얼굴이 닮은 게 오빠인 모양이었다.
“잠시만요.”
배도철은 저들이 예지와 그 부모들이 있는 곳으로 오지 못하게 막기 위해 움직였다. 사람은 같은 편 끼리 모이면 작당을 한다. 그리고 일을 키운다. 그걸 알기에 배도철은 다혜란 아이가 예지와 접촉하는 걸 어떡하든 막을 생각이었다.
“다혜야. 내일 오라니까. 왜 벌써 왔어?”
배도철이 상냥하게 웃으며 최다혜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최다혜는 그런 배도철에게 퉁명하게 인사를 했다. 그것만 봐도 눈치 빠른 배도철은 최다혜가 계약 문제로 여길 찾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쪽으로.”
배도철이 의도적으로 최다혜의 팔을 잡고 그녀를 예지와 그 부모가 있는 쪽과 반대 방향으로 이끌었다.
턱!
그때였다. 배도철의 손목을 최다혜와 같이 온 젊은 남자가 잡아챘다.
“으윽!”
그리고 억센 힘이 배도철의 손목을 옭죄자 배도철은 신음과 함께 잡고 있던 최다혜의 팔에서 손을 풀었다. 그러자 젊은 남자도 잡고 있던 배도철의 손목을 풀어 주었다.
“이게 무슨.....”
배도철이 발끈하려 하자 그 보다 먼저 최다혜 옆의 젊은 남자가 말했다.
“누가 내 동생 몸에 함부로 손대라고 했지?”
젊은 남자는 키가 배도철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거기다 체구도 크고. 그런 젊은 남자가 무섭게 두 눈을 부라리자 배도철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 다혜야.”
그때 젊은 남자가 최다혜를 데리고 스타엔터테이먼트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움직인 쪽에 예지와 그 부모들이 있었다.
“씨발. 안 되는데....”
그걸 보고 배도철이 발을 동동 구르다 이내 그들을 쫓아 움직였다. 배도철은 어떡하든 그들이 만나는 걸 막으려 했지만 젊은 남자의 말이 그의 움직임보다 더 빨랐다.
“안녕하세요. 제 여동생이 여기와 노예 계약을 체결했지 뭡니까? 근데 그쪽은 어떻게 오셨어요?”
젊은 남자가 넉살좋게 예지와 그 부모들에게 접근하며 말을 걸었고 그에 예지 부모들이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하며 그를 맞았다.
“그러세요? 저희 애도 그 때문에 여기 왔어요. 이리 와 앉으세요.”
배도철은 예지 부모님 옆에 최다혜와 그 오빠란 인간이 앉는 걸 보고 벌레 씹은 얼굴로 변했다.
-----------------------------------------------------
최민혁이 스타엔터테이먼트가 위치한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최다혜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 오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여자 두 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고 최민혁과 최다혜가 엘리베이터에서 탈 때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여자 중 하나가 한 말이 최민혁의 귀에 쏙 들려왔다.
“하여튼 배 팀장 그 인간 아침에 사장 한테 칭찬 들을 땐 좋아서 죽더니 영입한 아이 부모가 와서 계약 해지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최민혁도 그 다음 말은 듣지 못했다. 그 사이 최다혜가 알아서 스타엔터테이먼트가 있는 15층 버튼을 눌렀다. 그런 최다혜에게 최민혁이 물었다.
“너하고 계약한 그 인간 이름이 뭐랬지?”
“배도철!”
최민혁이 그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엘리베이터는 금방 15층에 도착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스타엔터테이먼트라고 붙어 있는 사무실 앞으로 가서 그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갑자기 사무실 한쪽에서 중년 남자가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여동생인 최다혜를 아는 척 하면서 말이다. 그때 최민혁은 그 중년 남자 뒤에 한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를 보았다.
‘맞군. 그렇다면....’
최민혁은 그들을 다른 쪽으로 끌고 가려는 중년 남자를 제지하고 여자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가 있는 쪽으로 최다혜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어 보니 그의 예상대로 그 아이와 부모도 그들처럼 이곳 소속사와 맺은 노예 계약을 해지 하러 와 있었다.
‘운이 좋군. 아군을 만나다니.’
최민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갑질이란 게 같은 편이 있으면 더 흥이 나는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