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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술은 기적을 행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어 고백하게 해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술이란 게 묘한 게 꼭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만 이뤄 주는 건 아니었다.
원 나잇 스탠드!
서로 모르던 사람이 밤에 만나 앞으로 만날 것도 약속하지 않고 성교를 맺는 것을 일컬어 말하는 신조어다.
그 원 나잇 스탠드의 주범도 술이다. 술 한 잔 들어가면 그 만큼 이성에 관대해지고 호기심도 증폭 되는 것이다.
최민혁은 이미 이주나에게 말했다. 술은 좋은 사람과 적당히 마시는 게 좋다고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 적당 이를 넘어선 것이 문제였다.
“술은 또 부활하지.”
“부활해? 어떻게?”
“빈병 들고 슈퍼 가면 돈으로 부활하잖아?”
“깔깔깔깔. 맞네. 맞아. 호호호호. 아아. 재미있어.”
꽤 취한 상태에서 선남선녀가 서로 웃음 코드가 맞았다. 게다가 칵테일 바 안에는 두 사람 뿐이었다.
페르몬이 두 사람 다 과다분비라도 된 것일까?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이성을 잃고 자신들의 관계마저 망각했다.
먼저 움직인 건 여자 쪽이었다. 이주나가 안 되겠는지 더는 못 참고 몸을 일으켜서 최민혁에게 다가간 것이다.
최민혁도 딱히 이주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수컷이고 그동안 꽤 오래 참아왔다. 여기서 더 참으라는 건 그에게 고문과 같았다.
“하아. 하아. 하아.”
달뜬 숨소리를 흘리며 이주나가 먼저 최민혁의 얼굴로 바짝 자신의 얼굴을 갖다 붙였다. 그 행동 하나로 둘의 경계선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격하게 껴안고 입술을 탐했다.
와장창창! 투투툭!
대리석 테이블 위에 있던 것들이 전부 치워지고 그 위를 두 사람이 뒹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전초전을 치렀을 뿐이었다.
안쪽 더 어두침침한 소파가 있는 곳에서 둘은 격하게 뒤엉켰다. 그들이 알고 있는 온갖 체위로 서로에게 최고의 쾌락을 선사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서로를 탐하던 두 사람은 그것으로도 만족이 안 된 모양이었다. 벗어 놓은 옷을 챙겨 입고 둘은 그 건물 위층에 있는 무인텔로 올라갔다.
요즘 모텔은 객실만 놓고 봤을 때 여느 호텔 못지않은 수준을 갖췄다. 두 사람은 무인텔로 가서 연인처럼 서로 같이 씻고 또 다시 뜨겁게 사랑을 나눴다.
두 사람 모두 이성이 원하는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사랑을 하고 나서도 금방 서로에게 이끌려서 또 사랑을 나누게 했다. 그렇게 새벽까지 이어지던 사랑도 결국 두 사람이 녹초가 되어 쓰러지면서 끝이 났다.
“으으으으....”
이주나는 타는 듯한 갈증을 못 견디고 잠에서 깼다.
“물, 물.....”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이주나는 호텔 생활에 익숙했다. 그래서 목이 마르자 그녀 몸이 알아서 모텔 방의 냉장고를 찾아서 움직였고 그 안에 생수를 꺼내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카아. 이제 좀 살.......헉!”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그녀가 침대 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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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나의 두 눈에 다 벗은 남자가 덩그러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게 아니었다.
“미, 미쳤어!”
그 남자뿐 아니라 그녀도 다 벗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 키스자국과 함께 남자 냄새가 물씬 났다. 그 말은 저 남자와 자신이 몸을 섞었단 소리였다.
“가, 가만...... 설, 설마......”
어제 그녀는 자신의 칵테일 바에서 최민혁을 불러서 같이 한 잔 했다. 때문에 다른 남자와 어쩌고 자실 틈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적중했다. 침대 위에 다 벗고 누워 있는 남자는 최민혁이었던 것이다.
“말, 말도 안 돼. 내, 내가 왜 최민혁과......”
사실 이주나는 죽은 연인 조명진을 잊기 위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기도 했었다. 그 중에는 지금처럼 이성적으로 끌려서 관계를 맺은 남자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최민혁이라니! 이건 그녀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최민혁은 그녀에게 있어서 남사친이고 사랑했던 남자의 후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잠시 넋이 나간 체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던 이주나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바로 냉철한 사업가, SQ엔터테이먼트의 대표로 돌아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녀는 씻지도 않고 후다닥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모텔을 나섰는데 잠시 최민혁이 있는 침대 쪽을 돌아보긴 했지만 그대로 방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침대 위의 최민혁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거 곤란하게 됐군.”
사실 최민혁은 이주나가 깨기 전에 먼저 깨어 있었다. 당연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 최민혁이 그렇게 챙겨 달라던 조명진 선배의 가족들이 아니던가? 물론 이주나가 조명진의 가족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 할 사이였다면 서로 몸을 섞을 텐데 그런 선배의 여자와 자신이 관계를 맺어 버렸으니.
“막장 드라마를 찍었군. 찍었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저질러 버린 걸 말이다. 이것은 엎질러진 물과 같았다. 다시 주워 담는다고 원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에잇. 나도 모르겠다.”
최민혁은 될 대로 되라면서 몸을 일으켜서 욕실로 향했다.
쏴아아아아!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온몸의 세포들이 기지개를 켰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어제 이주나와 있었던 격렬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성나 버린 거시기를 진정시키느라 고생깨나 하고 겨우 욕실을 나온 최민혁의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그 상태창을 보고 최민혁의 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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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요약하자면 세나가 밤에 최민혁을 부추겨서 이주나를 만나게 한 것은 다 노림수가 있었던 것이다. 술을 마시고 이성에 취해서 해롱거리는 최민혁을 상대로 세나는 어제 최민혁이 인신매매 범들을 소탕하면서 획득한 +1,500포인트를 영악하게 다 털어 먹은 것이다.
“세나!”
최민혁은 바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눈앞에 간결한 창만 더 크게 그의 눈에 부각 될 뿐이었다.
[소비 포인트 +1,500. 사업가 총 포인트: 0]
“하아!”
결국 최민혁이 세나를 이길 순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절대 갑이니 말이다. 그렇게 최민혁이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을 때 세나가 그 앞에 냉철한 사업가의 창을 띄웠다.
-기본 정보
이름: 최민혁(男)
나이: 28세
신장: 185cm
몸무게: 87kg
직업: 냉철한 사업가
직장: 무직
직위: 없음
포인트: 0
이미 간결한 창에서 확인했지만 1,500포인트가 0으로 변해 있었다. 최민혁이 포인트를 확인하자 곧장 창이 상세 창으로 바뀌었다.
-냉철한 사업가
총 자산: 548,678,715,340원
투자처: 없음
보유 능력: 선견지명(2단계), 능력빙의(2단계), 매력 덩어리(1단계), 순간이동(1단계), 전기맨(1단계), 투명인간(1단계), 정욕의 화신(1단계), 트래킹(Tracking)(1단계), 이레이즈(Erase)(무(無)단계)
아이템: 저용량 아공간 주머니(1m X 1m X 10m)
할인권: 없음
상세창에 세나에게 속아서 산 새로운 보유 능력이 보였다.
“이레이즈(Erase)?”
영어로 Erase는 지우다는 의미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기억을 지운다고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최민혁의 그 생각을 읽은 세나가 바로 말했다.
[맞아요. 이레이즈(Erase)는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능력이에요. 앞으로 마스터의 능력을 우연히 보거나 알게 된 사람이 생기면 꼭 필요한 능력이죠. 앞서 구입한 능력처럼 무한 사용이 가능해요. 또 이레이즈(Erase)에 한해서만 단계가 없어요. 마스터가 원하는 만큼의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단 말이죠. 하지만 제약은 있어요. 반드시 마스터가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마스터의 능력을 봤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이것은 최민혁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기보다 세나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주면서 포인트를 1,500이나 챙기다니.
[..........]
최민혁의 그런 불만을 머릿속에서 읽은 세나는 그 뒤 침묵모드로 변했다. 최민혁은 기가 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절대갑의 횡포에 치를 떨면서 최민혁은 모텔을 나섰다. 그리고 그 건물 전용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던 자신의 차를 몰아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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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집에 도착하니 8시였다. 그러니까 이주나가 7시쯤 깨어서 모텔을 빠져 나갔고 최민혁은 그 보다 20분쯤 뒤 모텔을 나와 집으로 왔다. 그때까지 여동생 최다혜는 쿨쿨 잘자고 있었다.
최민혁은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서 해장할 만한 것을 찾았다. 마침 북어가 있어서 두들겨 팬 다음 가위로 잘게 잘랐다. 그 뒤 물에 담가 두고 밥을 안쳤다. 그 다음 물에 불린 북어를 손으로 꽉 짜서 그릇에 넣고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조물조물. 이어 참기름과 간장 1스푼, 미림은 반 스푼을 넣고 간이 베게 다시 조물조물.
치이이익!
달군 팬에 참기름을 살짝 붓고 그 위에 간이 잘 벤 북어를 넣고 볶았다. 그 다음 물을 넣고 끓이다가 푼 계란물을 부었다. 이때 계란이 몽글해질 때까지 젖지 않는 게 좋았다.
새우젓으로 밑간을 하고 살짝 맛을 봤는데 술을 마신 뒷날이라 그런지 최민혁의 몸이 스펀지처럼 북엇국을 빨아들였다. 마지막으로 송송 썬 파를 넣고 마무리.
그 뒤 초등 입맛의 여동생을 위해서 쏘시지를 볶고 계란찜을 따로 했다. 최민혁이 아는 한 최다혜는 북엇국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게 속이 쓰리진 않았지만 최민혁은 먼저 북엇국에 밥을 먹었다. 그가 막 밥을 다 먹고 나자 여동생인 다혜가 부엌으로 기어들어왔다.
“혼자 먹었어?”
“어. 배가 좀 고파서.”
최민혁은 간밤에 널 버리고 집을 나가서 술 마시고 외박했다가 아침에 들어와서 이제 해장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서 그렇게 둘러댔다.
“밥 줘.”
식순이는 어차피 최민혁이 간밤에 뭘 했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밥이었다.
최민혁은 후다닥 식탁에 밥상을 차렸다. 최다혜는 부드러운 계란찜에 쏘시지 볶음이 입에 맞는지 아침부터 두 공기를 비웠다.
“나 더 잘 거야.”
그리곤 배부른 좀비가 되어 다시 자기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최민혁은 그때 처진 어깨의 여동생을 보고 생각했다.
‘나쁜 기억은 지워 주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말이야........’
간밤에 세나로 하여금 어거지로 얻게 된 기억을 지워주는 이레이즈(Erase) 능력을 최민혁은 지금 여동생에게 써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어제 그 공장에서 여동생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알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최민혁은 결심을 한 듯 세나에게 말했다.
“세나. 내 동생의 어제 기억 중에 철제 우리에 갇혔던 것과 같이 갇혔던 여자들과 있었던 기억, 그리고........ 그것들은 좀 다 지워 줘. 가능하지?”
[물론 가능합니다. 로딩 중. 지워졌습니다.]
세나의 말을 듣고 최민혁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이제 여동생이 한결 마음 편해 졌을 터였다.
벌컥!
그런데 그 후유증이 있을 줄이야. 좀비였던 여동생이 무슨 치료제라도 마신 듯 생생해져서 방을 뛰쳐나왔다. 아까는 분명이 자겠다고 해 놓고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