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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76화 (7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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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로펌 청성(淸省)은 그래도 국내 10위 안에 들어가는 법무법인이다. 그 곳에서도 일을 제일 많이 하기로 소문이 난 시니어 변호사 김정국은 또 어제 로펌에서 밤을 샜다. 그는 평소 밤을 샜을 때처럼 7시에 로펌을 나서서 사우나를 하고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운 뒤 차 안에 들어갔다.

그의 차 안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속옷과 와이셔츠, 정장이 준비 되어 있었다. 차안에서 낑낑거리며 옷을 갈아입은 김정국이 차에서 막 내릴 때 빨간색 승용차가 그의 차 맞은 편에 주차를 했다. 그리고 그 차안에서 늘씬한 미녀가 내렸다.

“유아라?”

요즘 청성에서 얼굴 마담으로 불리고 있는 주니어 변호사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천덕꾸러기였는데 요즘은 SQ엔터테이먼트 대표와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목에 힘깨나 들어가 있었다. 그래봐야 이 세계에서 중요한 건 능력이었다.

어떻게 사시에 합격했는지 모르지만 김정국이 봤을 때 유아라는 변호사로서 재능이 없었다. 또 하는 짓을 봤을 때 변호사는 간판으로 딴 게 확실했다. 그래서 김정국은 그녀가 1년 안에 결혼해서 로펌을 떠난다는 데 천 만 원을 걸었다. 그와 같은 시니어 변호사 중에 유아라에게 관심이 많은 인간이 있어서 그 인간과 심심풀이로 내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옷은 평소처럼 요란스럽게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좀 아니었다. 화장을 진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은 푸석푸석해 보였다. 마치 지금의 김정국처럼 말이다.

그녀는 빤히 눈앞에 김정국이 있는데 그것도 못 알아보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마치 반쯤 제정신이 아닌 듯 말이다.

“뭔 일이라도 있나?”

눈치가 빠른 김정국은 한 눈에 그녀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럴 시간 있으면 오늘 오전에 있을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에 제시할 자료를 좀 더 꼼꼼히 챙기는 게 나았다.

“어쩌지.....이제 어쩌지.....”

김정국의 예상대로 지금 유아라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

“그 새끼가 나하고 일을 언니에게 죄다 까발렸다면...... 아니야.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언니가 언제부터 내 뒤에 있었을까? 어디서 얼마까지 들었는지 알아야 주나 언니를 찾아가서 사과를 해도 제대로 할 수 있을 텐데.....”

밤새 걱정을 하던 유아라는 평소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꼭두새벽같이 출근을 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최민혁이란 어제 만난 야구 선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래. 일단 그와 만나서 얘기를 하자. 그는 주나 언니가 언제부터 내 뒤에 와 있었는지 알 거 아냐.”

그런데 문자를 보내고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 인간이 진짜.....”

감히 자신의 문자를 씹다니. 그녀의 자존심이 제대로 상했다. 그래서 따지러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가 꺼져 있었다.

“아우.....이게 지금...... 감히 나를......”

유아라가 씩씩 거리고 있을 때였다. 유아라와 같이 미모도 갖춘 데다 요즘 실력도 인정받고 있는 주니어 변호사 임아영의 탄성이 들려왔다.

“와아! 대박! 그러니까 최민혁이 리 엔 최의 최민용 대표의 손자였다고?”

유아라는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임아영이 시끄럽게 떠들자 발끈 화를 내려했다. 그런데 그녀의 말 중에 분명 익숙한 이름이 그녀 귀에 들렸다.

“자, 잠깐! 좀 전에 누가 누구 손자라고 했지?”

유아라가 묻자 임아영이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그건 알아서 뭐하게?”

“빨리 말해!”

유아라가 다그치자 임아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꼬셔 보게? 그런데 어쩌니? 이런 다이아몬드 수저는 우리 같은 주니어 변호사는 쳐다보지도 않을 걸.”

“그러니까 그 다이아몬드 수저가 누구냐고?”

“최민혁! 오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뭐, 뭐?”

“너도 놀랍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법률가 집안의 장손이 야구 선수를 할 수가 있다니?”

유아라는 그 뒤 임아영의 말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건 굴러들어 온 복을 제대로 걷어 찬 게 아닌가?

유아라는 넋이 나간 체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최민혁의 가문이 그녀가 그 동안 꿈꿔 왔던 그런 곳이란 사실이었다. 게다가 최민혁은 야구선수다. 리 엔 최의 지분을 그가 상속 받았을 때 그의 아내가 변호사라면.......

적어도 리 엔 최의 파트너 변호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안 돼. 이 놈은 내꺼야.”

유아라의 눈이 홱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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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르르!

차고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차가 나오자 도로가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을 태운 차들에서 기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우우웅!

하지만 그들보다 최민혁의 집 차고에서 나온 차가 더 빨랐다.

“에잇!”

“제기랄....”

여태 기다렸다가 허탕을 친 기자들이 투덜거리며 다들 자신들이 내린 차에 올랐다. 그리고 하나 둘씩 그 차들이 순차적으로 떠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최민혁의 차고에서 나온 차와 똑같은 차가 그의 집에 나타났다.

우우우우웅!

그리고 최민혁의 집 차고의 문이 열렸다. 그 차는 차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 차에서 최민혁이 혼자 내렸다. 그러니까 집을 나선 최민혁은 원래 여동생을 목적지까지 실어다 주고 고척돔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 핸드폰을 두고 왔지 뭔가? 그래서 잠깐 고민을 했다.

“뭐 여태 버티고 있진 않겠지.”

결론은 핸드폰을 가지러 집에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와 보니 기자들과 그들이 탄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은 차고 문을 열고 차를 차 안에 주차 시킨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벌써 12시 30분이었다. 최민혁은 간단히 라면 하나를 삶아서 후루룩 해치우고 집을 나섰다.

“최민혁 선수!”

그런데 어디 기자인지 모르지만 여태 버티고 있던 기자가 한 명 있었다. 그가 자신이 타고 있던 차에서 내려서 최민혁을 부르며 뛰어 오는 걸 보고 최민혁은 생각했다.

‘세나. 날 차 안으로 순간이동 시켜 줘.’

그 생각 뒤 최민혁이 깜빡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그는 차 안에 타고 있었다.

“어?”

그리고 자기 눈앞에서 갑자기 최민혁이 사라지자 그 기자가 황당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원래 타고 있었던 차로 돌아가는 게 최민혁의 눈에 다 보였다.

최민혁은 곧장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다. 그리고 그의 차가 막 기자가 탄 차 옆을 지나칠 때 차 안에서 기자가 햄버거를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최민혁이 집에 올 때 그는 햄버거를 사러 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와서 기다리는데 그때 최민혁이 집에서 나왔고 말이다. 그때 그 기자는 속으로 대박을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최민혁에게 뛰어갔을 때 그는 신기루처럼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고.

“쳇! 이제 헛것이 다 보이네. 이게 다 편집장님 때문이야. 그놈의 특종, 특종 타령. 내가 오늘 여기서 밤을 새는 한 이 있어도 최민혁의 인터뷰 따 내고 만다. 우걱우걱.....쪼옥!”

기자는 스스로 투지를 다지며 남은 햄버거를 한 입에 다 틀어넣었다. 그러다 목이 막히자 서둘러 콜라를 빨아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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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스와 저니맨 외인 야구단의 시합은 두 시 반에 잡혀 있었다. 따라서 양팀 선수들은 2시까지 시합이 열리는 고척돔에 와야했다.

최민혁은 그보다 10여분 더 빨리 고척돔에 도착했고 구장에 들어서자 타이탄스 감독과 선수 몇 명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최민혁이 그들에게 먼저 밝게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타이탄스 윤동준 감독이 웃는 얼굴로 최민혁을 맞았다. 다른 타이탄스 선수들은 다들 어색한 듯 최민혁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불과 그제 그들을 상대로 다른 팀에서 맹활약을 했던 선수가 오늘은 그들 동료가 되어 나타났으니 말이다.

“일찍 왔네요?”

“네. 제 주변이 좀 시끄러워서요.”

최민혁의 말을 윤동준 감독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타이탄스 선수들은 다들 아는 듯 했다. 하긴 그의 이름이 아침부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찍고 지금도 계속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윤동준 감독은 최민혁을 위해 준비해 둔 타이탄스 유니폼을 그에게 건넸다. 최민혁은 그 옷을 들고 라커룸으로 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 입고 나왔을 때 윤동준 감독이 바로 그를 불렀다.

“포지션은 저번에 크로노스에서 뛰었을 때처럼 중견수 어때요?”

“저야 좋죠.”

수비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를 생각해 보면 중견수만 한 포지션도 없었다.

“그럼 중견수에 3번 타순으로 하죠.”

크로노스 때와 같은 포지션에 타순이었다. 이것만 봐도 윤동준 감독이 자신을 꽤 신경 써 주고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어제 전화로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게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는 미안했소. 그쪽 요구는 내 선에서 알아서 처리했어야 했는데 말이요.”

“아닙니다. 저도 잘 한 건 없죠. 좋게 말할 수 있었는데. 어제 저 좀 싸가지 없었죠?”

“하아. 뭐....”

“죄송합니다.”

그렇게 시합 전에 윤동준 감독과 최민혁은 어제 있었던 감정들을 풀었다. 윤동준 감독도 뒤끝은 없는 사람이었고 최민혁이야 지울 건 칼 같이 지워 버리는 성격인지라 둘 다 담아 둔 거 전혀 없이 편안하게 시합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게 타이탄스 선수들이 절반 쯤 왔을 때 저니맨 외인 야구단 선수들이 우르르 돔구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버스로 한꺼번에 이동해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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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엔터테이먼트 대표 이사 이주나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였다. 그 다음이 SQ엔터테이먼트의 주가였고.

“최민혁?”

그런데 오늘 아침 그녀가 잘 아는 이름이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설마해서 기사를 확인하니 정말 그녀가 아는 그 최민혁이 맞았다.

“근데 최민혁이 강하나하고 아는 사이였었나?”

그때 그녀의 눈에 강하나와 최민혁의 열애설 기사가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이주나의 뇌리에 떠오른 게 있었다.

“설마......”

바로 크리스마스 스케줄 펑크 사건! 강하나가 크리스마스 날 밤에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다며 배 째라고 하면서 불거진 사건이었다. 이 시건을 무마 시키느라 이주나는 전화만 십 여 통을 넘게 걸고 부탁이란 걸해야 했다.

“에이. 아니야. 최민혁이 강하나와 크리스마스 밤을 같이 보내? 말도 안 돼!”

이주나는 고개까지 내저으며 강하게 부정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닌가? 당장 어제만 해도 그렇게 믿었던 후배가 사실은 딴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유아라!”

생각 할수록 괘씸했다. 그러니까 지금껏 자신을 속여 왔단 거 아닌가? 착한 후배인 척 그녀의 환심만 사 온 것이다.

“이걸 어째야 할까?”

그녀 입김이면 로펌의 주니어 변호사 하나 잘라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좋아. 그렇게 하면 되겠군.”

무슨 좋은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짓고 있는 미소가 어째 사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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