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재벌에이스
유아라는 대학 때부터 남자가 많았다. 그래서 늘 3-4명 정도 남자를 겉에 두었고 필요할 때마다 잘 이용해 먹었다. 그러다 사시 준비를 하면서 그녀는 남자들을 다 정리했다. 그런데 사시생 중에서 그녀에게 껄떡 대는 남자들이 나타났다. 어딜 가나 예쁜 외모의 그녀의 인기는 여전했던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고 해도 사시 생들이 알아서 그녀에게 족보와 정보를 가져와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시 생 여자들보다 좀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노력한 끝에 겨우 사시에 붙을 수 있었다. 당연히 등수는 뒷줄이었다. 하지만 합격 한 게 어딘가?
그녀가 합격하자 그녀를 위해 머슴 노릇을 마다치 않았던 사시생 남자들이 그녀에게 축하를 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 그녀가 선사한 건 차가운 이별의 말이었다.
그렇게 유아라는 연수원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그녀의 예쁜 미모에 홀딱 빠진 연수원생 남자들이 그녀를 위해 조공을 바쳐왔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그것을 챙겼고 다른 연수원 동기들 보다 수월한 연수원 생활을 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그녀가 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겨우 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진짜는 직장이었다.
예쁜 외모에 변호사이기까지한 자신이면 어디든 들어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국내 최고 로펌에서 그녀를 대차게 깠고 그 뒤 다른 일류 로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면접 때 예쁜 외모 때문에 심사관의 관심을 받긴 했지만 그녀의 실력이 문제였다. 수박 겉할퀴식으로 법을 공부한 그녀는 로펌 사무관보다 못하다는 혹평을 받고 일류 로펌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인맥으로 일류 로펌 중 한곳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도 실력이 처지는 그녀는 찬밥 신세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구해 준 게 바로 대학 선배이자 현 SQ엔터테이먼트 대표 이주나였다.
그런 그녀가 만나 보라는 남자라면 대단한 가문에 남자일게 분명했다.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이런 구질구질한 로펌에 다니지 않아도 사모님 소릴 들으며 매일 백화점과 골프장을 다닐 수 있을 터였다.
“네? 야구 선수라고요?”
그런데 그 꿈은 무참히 깨졌다. 적어도 유아라가 이상형으로 꼽는 신랑감 중에 운동 선수는 없었다. 물론 운동선수도 돈을 잘 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 봐야 10년 안팎이다. 그렇게 따지면 잘 나가는 운동선수의 평생 연봉은 일반 대기업 사원이 정년퇴직할 때까지의 연봉보다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운동선수라면 그걸 잘할 거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클럽에서 몇 번 운동선수 출신과 부킹 후 원 나잇까지 해 본 유아라였다. 그랬는데 근육만 요란하지 그건 영 시원찮았다. 그 이후 유아라는 아예 운동 선수는 만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기피하는 직업군의 남자를 만나라는 이주나의 말에 유아라는 와락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전화상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명랑하고 쾌활했다.
“언니가 만나 보라는 남자니까 확실하겠죠. 네. 네. 그럼 그때 거기서 봬요.”
이주나가 주선한 소개팅 자리니 만큼 무조건 나가야 했다. 뭐 그다음에 이주나가 빠지면 그 소개팅 남자에게 좋게 얘기 하면 됐다. 자신의 주제를 알라고 말이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다 돼서 이주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아. 네. 바쁘신 거 제가 다 아는 데요 뭐. 네. 네. 괜찮아요. 제가 가서 그분 뵙도록 할게요. 네.”
주선자인 이주나가 소개팅 자리에 못 오게 됐다는 연락이었다. 순간 급하게 약속 장소로 가던 유아라가 유턴해서 차를 돌렸다.
---------------------------------------------------
유아라는 네일 아트로 가서 바빠서 미뤄 뒀던 손발톱 관리를 받았다. 그런 뒤 느긋하게 약속 장소로 갔다. 물론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선 바쁜 척 연기를 해야 했지만. 남자는 운동선수답게 키도 크고 당당한 체구였다.
‘얼굴도 제법 잘 생겼네. 비주얼은 일단 합격!
그리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성격도 원만했다.
‘아쉽네. 이정도 비주얼, 성격에 집안만 빵빵하면 바로 결혼하는 건데 말이야.’
하지만 운동선수란 게 역시 문제였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주제 파악부터 시키고 보자.’
유아라는 어차피 눈앞의 운동선수와는 잘 해 볼 생각이 없었기에 음식이 나오기 전에 그걸 확실히 짚고 넘어 가려 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군지 밝혀서 남자의 기부터 죽여 놓으려 했는데 남자의 반응이 어째 시원찮았다.
대개 남자들은 유아라가 변호사라고 하면 다들 눈빛을 빛내며 호감을 보였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오히려 시큰둥했다. 그게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혹시 법 쪽으로 일하는 사람을 싫어하세요?”
대 놓고 기분 나쁜 얼굴로 묻자 남자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기분이 상했다.
‘겨우 공이나 던지는 게 어디서 감히.....’
유아라는 갈수록 상대 남자를 대하는 데 있어 예의란 걸 쌈 싸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봉이 얼만데요?”
“하하하하. 벌 만큼 법니다.”
“그러니까 그 벌만큼이 얼마냐고요?”
유아라는 능청스럽게 말하는 상대 남자가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에 따라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도 거칠어졌다. 그나마 음식이 나오자 배가 고팠기에 잠시 휴전 상태에 들어갔지만 배가 불러오자 다시 상대 남자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저 같은 전문직 여자와 만난 적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혹시 집이 부자세요?”
“아뇨.”
“아버지 뭐하세요?”
유아라의 질문은 오늘 처음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도를 점점 더 넘어서고 있었다.
“공무원이십니다.”
“공무원요? 어디 지방직요? 동사무소?”
명백히 비아냥거리는 어조. 상대 남자를 충분히 기분 나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상대 남자가 갑자기 그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 뒤쪽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진 거 같았고 말이다.
“헉!”
유아라는 뒤로 고개를 돌렸고 뭘 봤는지 경악성과 함께 깜짝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국내 최대, 최고의 연회기획사 하면 누구나 SQ엔터테이먼트를 꼽는다. 그 곳의 대표 이사인 이주나는 분 단위를 쪼개서 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연예계 일이란 게 생각보다 손가는 일이 많다보니 그 책임자인 대표 이사도 그만큼 바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주식문제로 잘 아는 증권사를 찾았다가 우연히 최민혁을 만났다. 최민혁은 그녀가 사랑했던 이가 가장 좋아했던 후배였다. 그런데 최민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그에게서 늘 풍기던 음침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화사한 꽃미남으로 변해 있었다.
비주얼만 놓고 봤을 때 SQ엔터테이먼트 소속 모델이나 배우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최민혁도 꾸미니까 멋있네.’
하지만 여전히 그녀 앞에서 그는 어리바리했다. 그런 그에게 여자가 있냐고 묻자 역시나 버벅거렸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참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후배로 변호사였는데 최민혁과 잘 어울릴 거 같았다. 그래서 이주나는 그 바쁜 가운데 일 하나를 더 추가 시켰다.
그렇게 최민혁과 헤어진 후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던 이주나는 잠시 틈이 나자 최민혁에게 소개 시켜 줄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학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유아라를 그녀 회사 고문 로펌에서 만났을 때 이주나는 정말 기뻤다. 그녀가 좋아하던 후배가 번듯한 변호사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로펌에 살짝 얘기 해 뒀다. 유아라를 잘 부탁한다고 말이다. 아마 그녀가 직장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을 터였다. 매년 SQ엔터테이먼트에서 고문 로펌에 지급하는 수임료만 수십억에 달했다. 그러니 SQ엔터테이먼트의 대표이사인 그녀의 입김은 충분히 유아라의 로펌에도 영향을 미쳤을 터. 얼마 전 로펌을 찾았을 때 유아라의 얼굴이 많이 밝아져 있는 걸 보고 이주나도 흡족하게 웃었다.
그렇게 이주나가 아는 한 그래도 괜찮은 축에 속하는 여자이기에 유아라를 최민혁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착한 유아라는 자신이 소개 해 주는 남자라니 좋다며 만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스케줄에 문제가 생기면서 둘을 소개 해 주는 자리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 이주나는 그 점을 두 사람에게 전화로 다 알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던 이주나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중요한 바이어와의 저녁 약속이 상대측의 문제로 취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녀가 있는 곳은 최민혁과 유아라가 만나기로 한 프랑스 레스토랑이 있는 곳과 가까웠다.
“지금쯤 식사를 끝냈으려나?”
이주나는 둘이 어쩌고 있나 궁금해서 레스토랑에 몰래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레스토랑 안에서 두 사람의 분위기는 이주나가 상상한 것과 너무도 달랐다.
그 착하디착한 후배 유아라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무슨 범죄인 심문 하는 것도 아니고 최민혁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인격 모욕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을 뿐 아니라 최민혁의 부친까지 끄집어내서 비아냥거렸다. 순간 이주나는 화도 났지만 부끄러웠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역시 아직 멀었어.’
지금의 SQ엔터테이먼트를 일궈 낸 부친 이준만 회장은 늘 이주나를 걱정했다. 이주나는 그런 부친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알 거 같았다. 자신이 얼마나 사람 볼 줄 모르는지 말이다.
-------------------------------------------------
최민혁은 주선자인 이주나를 봐서 참고 참았다. 어차피 한 끼 저녁만 먹고 일어나면 될 자리였으니까. 그런데 상대 여자가 그의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생트집을 잡아서 인격 모욕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자 뭐 이런 년이 다 있나 싶었다. 그리고 이런 여자를 소개 해 준 이주나에 대한 좋았던 감정도 싹 다 달아났다. 대 놓고 노골적으로 그 앞에서 얼마나 버냐고 물었을 때 최민혁은 그의 자산이 5천억이 넘는다는 말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굳이 저런 속물 여자와 말을 더 섞기 싫어서 참았더니 갈수록 태산이었다.
꼴에 변호사랍시고 어찌나 목에 힘이 들어가 있던지 그것도 꼴불견인데 최민혁의 집안과 부친의 직장까지 걸고 넘어졌다.
최민혁의 할아버지는 국내 최고 로펌인 리 엔 최의 창업자이시자 로펌 공동 대표시다. 그 사실만 밝혀도 눈앞의 여자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진 않을 터였다.
거기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비하할 땐 부친이 서울서부지검의 차장검사시다는 말이 입밖으로 나올 뻔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냥 다 참았다. 보아하니 이대로 두면 여자 측에서 먼저 판을 엎을 거 같아서 말이다. 뭐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