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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67화 (6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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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기분 좋게 숙면을 취한 최민혁은 6시에 깼다. 아직 어둡긴 했지만 어스름하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최민혁은 트레이닝에 패팅을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섰다. 그가 사는 고급 주택가에는 딱히 운동할 만 곳은 없었다. 그래서 최민혁은 아래 교차로 너머에 있는 일반 주택가에 위치한 학교로 뛰어갔다. 그때 전에도 본적이 있던 최고급 외제차가 그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 차가 멈춰 섰고 차에서 누가 내렸다.

“민예린?”

민예린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차는 휑하니 출발해 버렸고 민예린이 그 차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야 이 나쁜 놈아! 이 기름에 튀겨 죽일 새끼!”

최민혁은 민예린이 저런 말도 할 줄 아는지 몰랐다. 그녀는 늘 고상하고 단아했었으니까. 자신의 단점을 그녀는 절대 최민혁에게 노출 시키지 않았다. 최민혁은 어쩌면 그런 빈틈없는 성격의 그녀가 좋았을지 몰랐다.

사실 세상에 미녀는 많다. 당장 서울의 최고급 룸싸롱만 가도 민예린 보다 예쁘고 쭉쭉빵빵인 여자들 천지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과 민예린은 비교자체가 될 수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왜 저렇게 망가졌단 말인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던 그녀가 최민혁이 서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파팟!

최민혁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고 전봇대 뒤에 숨었다. 다행인지 민예린은 최민혁을 보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자신이 사는 옥탑방 집으로 들어갔다. 최민혁은 전봇대 뒤에 계속 숨어서 그녀가 옥탑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거길 나왔다.

“하아!”

최민혁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게 다 자기 때문인 거 같아서 말이다. 그가 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차성국은 민예린을 데리고 해외로 도피했을 터였다. 물론 그 도피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긴 어려웠을 터였다.

오성의 눈과 귀는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도 널려 있었으니까. 아마 길어야 한 달? 그 뒤에 잡혀서 둘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 당했을 터였다. 오성의 돈을 5천억이나 횡령한 차성국을 박규철 회장이 살려 뒀을 리 없었을 테니까.

최민혁은 다시 뛰었다. 그렇게 얼마 못가 학교가 나왔고 그곳 트랙을 10바퀴쯤 뛰고 나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헉헉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터질 거 같은 심장이 진정 되길 기다리던 최민혁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어!”

그리고 그곳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 학교 교문 앞에 서 있는 민예린을 발견했다. 민예린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으며 품속에 끼고 있던 보온병을 꺼내 보였다.

“제 집에선 안 마시겠다니. 여기서 차 한 잔 어때요?”

그녀의 말에 최민혁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데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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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 민예린은 최민혁을 봤다. 하지만 전봇대 뒤에 숨는 그를 보고 모른 척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방안 창을 통해 그를 봤다. 그는 잠시 민예린의 옥탑방을 올려다보다 이내 뛰기 시작했다.

그가 이 시간에 어디로 뛰어 가는 지 궁금했던 민예린은 옥탑방을 나와 옥상에서 그를 계속 살폈다. 그랬더니 그가 근처 학교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 운동장을 계속 뛰는 걸보고 그가 운동삼아 여길 왔다가 우연히 그녈 보았단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이상하게 봤겠지?”

하긴 여자가 새벽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에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그걸 좋게 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거기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까지 했다면.......

“나를 술집 작부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 생각이 들자 민예린은 억울했다. 자긴 그런 여자가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차를 끓였다. 그리고 보온병에 그 끓은 차를 담아서 옥탑방을 나섰다.

“내가 왜 이러지?”

민예린은 학교 교문 앞에서 자신이 이러고 서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남자가 대체 뭐라고 말이다. 자존심이 상한 민예린이 막 그곳을 떠나려 할 때였다. 무슨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그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민예린. 티내지 말고 자연스럽게.....’

그녀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연하게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고 거친 남자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리자 민예린은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좋죠. 한 잔 주세요.”

그때 그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그 모습이 그의 뒤에서 떠오르고 있는 아침 해 만큼이나 눈부셨다.

“네.”

민예린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용케도 보온병을 열고 뚜껑에 차를 따라 그 남자에게 건넸다.

“여기....”

“잘 마시겠습니다.”

남자가 손을 내밀어 보온병 뚜껑을 잡을 때 그의 손이 민예린의 손을 스쳤다. 그때 민예린은 움찔했다. 뭔가 찌릿한 것이 그의 손끝에서 그녀의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정전기일 수 있지만 호감 있는 이성의 경우에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했다.

‘뭐, 뭐야? 서로 통한 건가?’

민예린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남자를 살필 때 남자는 호록 거리며 차를 맛있게 차를 마셨다. 실제 최민혁은 차가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꽁꽁 언 몸에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듯 샘솟는 기분이었다.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

최민혁은 그 말을 하며 보온병 뚜껑을 민예린에게 건넸다. 그리곤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웃고 있던 민예린의 얼굴빛이 확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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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그녀가 건넨 차를 잘 마셨다고 했다. 그리곤 갔다. 그녀를 그냥 지나쳐서. 순간 민예린은 자존심이 상했다.

“저기요!”

그래서 일단 그를 불러 세웠다.

“네?”

그 남자가 그녀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막상 선한 그 남자의 눈과 마주치자 막 뭐라고 하려던 입이 갑자기 마취라도 된 듯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남자가 의아해 하며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거 같으신데 말하세요.”

그렇게 남자가 자리까지 깔아 줬건만 민예린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만 흘러나왔다.

“저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술집에서 일하지도 않고.........”

“알아요. 오성 그룹에서 일하시잖아요.”

“그, 그걸 어떻게?”

“전에 핸드백에 살짝 삐져나와 있던 사원증을 봤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도 오성 라이온즈에서 뛰는데. 우와. 우리 같은 회사 다니네요. 그럼 회사 동료가 되는 셈인가요?”

넉살 좋은 그의 말에 민예린의 어색함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용기도 났다.

“민예린이에요.”

민예린이 언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최민혁의 손이 감쌌다.

‘따뜻해!’

밖에서 꽤 오래 뛴 최민혁이지만 그의 손은 민예린의 손보다 훨씬 따뜻했다. 왜 손이 따뜻한 사람이 마음도 넉넉하다고 했던가? 민예린은 눈앞의 이 남자라면 왠지 자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거 같았다.

‘어머! 미쳤어.’

민예린은 그런 생각이 든 자신에 놀랐다. 그때 그 남자가 말했다.

“가시죠. 집 앞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민예린은 당혹감에 정신이 없어서 집까지 가는 동안 그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럼 다음엔 제가 근사한데서 차를 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할게요.”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아쉬움이 남은 여자는 옥탑방 옥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남자를 넋놓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확실히 이상해. 왜 저 남자만 보면 센치해 지는 걸까?”

이 기분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민예린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저 남자, 야구선수 최민혁에게 관심이 있단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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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예린을 옥탑방 집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가는 길에 최민혁은 마트에 들렀다. 중형 마트는 이른 아침에도 손님이 꽤 많았다. 이러니 일찍 문을 여는 거겠지만.

최민혁은 마트에서 싱싱해 보이는 조개를 샀다. 고등어도 괜찮아 보였는데 겨울철에 그걸 굽자니 냄새가 장난 아닐 거 같아 포기했다. 그때 소세지가 눈에 띠어서 그걸 하나 사 들고 집으로 뛰어갔다. 그때까지 당연히 여동생은 자고 있었고 최민혁은 씻기 전에 먼저 밥부터 안쳤다.

따뜻한 물에 언 몸을 녹이자 기분이 오묘했다. 거기다 전에 그의 여자였던 민예린까지 생각나자 아침부터 그의 물건이 흉기처럼 변했다. 겨우 찻물을 끼얹어서 진정을 시킨 뒤 몸을 닦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 최민혁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그사이 전기압력 밥솥이 칙칙 거렸다. 곧 밥이 다 될 모양이었다. 최민혁은 냄비에 물을 끓이고 사온 조개를 서둘러 씻었다. 해감은 되어 있었기에 그대로 끓는 물에 씻은 조개를 넣었다.

사실 조갯국 만큼 끓이기 쉬운 국도 없었다. 끓는 물에 넉넉하게 조개를 넣고 마늘 넣고 끓이면 끝이니까. 이때 조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국물이 더 진하게 우러나고 간을 볼 필요도 없으니까.

최민혁은 마늘을 넣고 잠깐 끓인 조갯국에 숟가락을 넣고 간을 봤다.

“오케이!”

더 간을 볼 필요 없이 완벽한 조갯국 맛이 났다. 조갯국은 시원한 맛이 제격인데 거기다 살짝 탱초가 들어가 주면 환상적인 맛을 낸다. 최민혁은 다 끓인 조갯국에 쫑쫑 썬 탱초를 조금 뿌렸다.

그 뒤 초등 입맛의 여동생을 위해서 계란 하나를 풀고 그 계란 물에 적당한 크기로 썬 쏘세지를 담가서 프라이팬에 구웠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나자 식순이 최다혜가 그 소리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자기 방에서 기어나온 최다혜가 부엌에 빼꼼 고개를 내밀며 최민혁에게 물었다.

“뭐야?”

말이 짧지만 최민혁은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조갯국에 쏘세지 부침.”

“김은?”

“있어. 줄까?”

“어. 나 빨리 씻고 올게.”

최민혁은 최다혜가 씻고 나오기 전에 서둘러 식탁을 차렸다.

“캬아! 시원해. 어떻게 이런 맛을 내지? 오빠. 최고!”

오늘도 식탁에서 최다혜의 칭찬이 고래? 아니 최민혁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으음. 이 쏘세지 진짜 맛있다. 쩝쩝쩝.”

그런데 어째 평소보다 여동생의 칭찬이 과했다. 그렇다는 건.....

“너 나 한데 부탁할 거 있지?”

“켁! 콜록콜록!”

갑자기 사래가 들린 최다혜가 물을 마시고 나서 겨우 진정 된 얼굴로 최민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티 났어?”

“어. 뭔데?”

“그게 실은...............”

최민혁은 최다혜를 통해 오늘 지상파 방송을 통해 자신이 날치기를 잡은 사연이 나갈 거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강하나가 토크 쇼에서 그 걸 사연입네 떠들었다 이거네?”

최민혁의 표정이 어둡자 최다혜도 긴장 된 얼굴로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으음.....”

최민혁은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체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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