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재벌에이스
이해명의 손끝을 떠난 공이 포수의 미트로 날아 올 때였다. 공을 기다리던 포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럴 것이 최민혁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배트를 돌린 것이다.
‘미친..... 빠지는 슬라이더도 커트 하려는 거냐?’
그러나 커트라고 하기에 배트의 스윙 궤적이 너무 컸다.
딱!
경쾌한 타격 음이 일었다. 최민혁의 배트에 맞은 공은 회전이 걸린 체 1루 페어 라인으로 날아갔다.
“페어!”
회전 걸린 공은 페어 라인 안에 떨어졌다 우측으로 확 휘면서 파울 펜스를 맞고 높게 튀었다.
“어엇!”
그때 그 공을 잡으려고 파울 펜스로 달려오던 타이탄스 우익수의 머리 위를 공이 넘어 버렸다. 졸지에 역모션을 취하며 다시 공을 쫓던 우익수가 공을 잡아들고 타자를 찾았을 때에 타자는 벌써 2루를 돌고 있었다.
“저 씨....”
우익수는 이를 악물고 3루를 향해 냅다 공을 던졌다. 하지만 어깨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던 우익수의 공은 2루수에 의해 중간에 커트를 당했다. 2루수가 판단하기에 우익수가 던진 공보다 최민혁의 발이 더 빠르다고 봤던 것이다.
촤아아아!
그걸 증명 하듯 2루수가 공을 잡아서 3루를 쳐다보자 최민혁이 슬라이딩으로 이미 3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광경이 포착 되었다.
상대 덕 아웃에서 박수 소리가 인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타이탄스의 감독 윤동준이 친 박수였다.
“노림수, 타격 폼, 팔로우 스윙, 거기다 주루 플레이까지 완벽해. 지금 당장 메이저에 가도 저 녀석은 반드시 통한다. 내 장담하지.”
그런 그를 크로노스 선수들 뿐 아니라 타이탄스 선수들까지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윤동준은 그런 주위 시선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최민혁에게 뛰어가서 그와 타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직 시합 중인지라 참았다.
펑! 펑! 펑!
이번에도 크로노스의 4번 타자는 삼구에 삼진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최민혁에게 3루타를 맞은 이해명이 다음 타자인 크로노스의 4번 타자 이정길에게 그 화풀이를 한 것이다.
빠른 직구 두 개에 직구처럼 보이다 뚝 떨어지는 포크 볼에 이정길의 배트가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면서 타이탄스와 크로노스의 시합도 끝이 났다.
------------------------------------------------------
최민혁은 이해명과의 승부에서 3루타를 친 후 싱글벙글 웃었다.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떠 있는 창 때문에 말이다.
[획득 포인트 +70. 타자 총 포인트: 490]
앞선 타석의 홈런에 뒤이은 수비에서 파인 플레이로 각기 +50과 +20을 획득한 상황에서 이해명에게서 3루타를 뽑아내자 +70이나 포인트를 주었다. 아무래도 이해명의 수준이 높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긴 아마 야구에서 150Km/h 대의 구속에 변화구도 좋은 투수가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했다.
최민혁도 사실상 오늘 처음으로 150Km/h 대의 공을 때려 보았는데 그게 운이 좋게 파울이 아니고 페어가 되면서 3루타가 되면서 그의 기분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민혁이 기뻐할 동안 크로노스의 다음 타자가 이해명에게 삼구 삼진을 당하면서 시합이 그대로 끝나버렸다.
25대 7!
9회 말에도 최민혁이 공격의 물고를 텄지만 그걸 다른 크로노스 타자들이 점수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9회 초의 점수가 최종 스코어가 되어 버렸다.
시합이 끝나자 양쪽 덕 아웃에서 선수들이 전부 나와서 악수를 나눴다. 그때 크로노스 감독과 악수를 나눈 윤동준이 최민혁을 찾았다. 그런데 크로노스 선수들 중에 최민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어디 간 거야?”
윤동준은 곧장 크로노스 선수들 사이로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걸 보고 크로노스 감독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합까지 졌는데 뭐 좋다고 내가 당신과 최민혁을 만나게 해 줘?”
크로노스 감독이 윤동준에게 나름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다. 시합이 끝나자 덕 아웃에 들어 온 최민혁에게 크로노스 감독이 슬쩍 말 해 준 것이다.
타이탄스의 감독 윤동준이 아무래도 널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최민혁도 잠시 고심하더니 알았다며 덕 아웃 쪽 뒷문을 통해 먼저 야구장을 빠져 나가 버렸다.
최민혁도 타이탄스 덕 아웃에서 윤동준 감독이 떠벌리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메이저에서 타격 코치 연수를 받았다더니 타격 메카니즘에 대해 최민혁과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눠야겠다나 뭐래나?
윤동준 감독이야 최민혁의 타격에 대해 할 말이 많을지 몰라도 최민혁은 전혀 아니었다. 왜 그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붙잡혀서 고리타분한 얘길 나눠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튀었는데 윤동준 감독도 보통은 아니었다.
“최민혁 선수!”
기어코 지하 주차장까지 쫓아와서 차에 오르려던 최민혁을 붙잡은 것이다. 윤동준도 눈치는 있었다. 최민혁이 그와 얘기 나누는 것을 꺼려한다는 걸 눈치 챈 그가 최민혁에게 한 말은 별거 없었다.
“모레 시합이 있을 예정인데 혹시 타자로 뛸 생각 있어요?”
“시합이요? 어디하고 하는데요?”
“저니맨 외인 야구단과요.”
단지 그를 귀찮게만 여기던 최민혁이 갑자기 그에게 급 관심을 보이자 윤동준 감독이 역시나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
크로노스 덕 아웃을 몰래 빠져 나오면서 최민혁은 더 이상 자신이 크로노스와 같은 사회인 야구단에서 뛸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럴 것이 거기서 뛰어봐야 이제 포인트가 적립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말은 좀 더 강팀을 찾아야 한단 소리였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최민혁이 투수란 점이었다. 과연 어떤 팀에서 투수 최민혁이 아닌 타자 최민혁을 받아드리겠는가?
그것도 아직 FA가 되지도 않은 오성 라이온즈 소속의 선수를 말이다. 결국 취미 생활 비슷하게 타격을 해야 한단 얘긴데 그가 뛰고 싶을 때만 타자로 뛸 수 있는 수준 높은 야구단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불쑥 나타난 불청객이 그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었다. 바로 타이탄스 감독인 윤동준이 말이다.
“제가 정말 타자로 뛰어도 됩니까?”
“물론 상대 팀에 양해는 구해야지요. 투수가 아닌 타자로 뛴다면 상대 팀도 최 선수를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니 내가 꼭 타석에 서게 해 드리겠습니다.”
타이탄스 감독이 이렇게 철썩 같이 약속을 하니 최민혁도 마음이 타이탄스에서 뛰는 걸로 기울었다. 무엇보다 세나가 난리였다.
[뭐하세요. 빨리 하겠다고 하세요. 독립 구단인 저니맨 외인 야구단에는 꽤 괜찮은 투수들이 많다 네요. 그 투수들을 상대로 포인트를 획득하셔야죠? 놀면 뭐합니까? 어서요. 빨리. 롸잇나우(Right now)!]
세나의 재촉에 견딜 재간이 없었던 최민혁은 결국 윤동준 감독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하하하. 잘 생각했어요. 최 선수. 내가 최 선수가 타자로서 뛸 수 있게 모든 편의를 다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최민혁은 타이탄스 윤동준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둘은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윤동준 감독이야 최민혁을 잡고 싶었지만 최민혁은 어색하니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하는 티를 팍팍 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굳이 그를 붙잡아 둘 필요는 없었다. 최민혁이야 다음 시합에서 보면 되니까.
“그럼 내일 어디서 몇 시에 시합할지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뒤 최민혁은 차를 타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갔고 그런 최민혁을 넋 놓고 지켜보던 윤동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어. 최민혁은 타자에 더 관심이 많은 거야. 어차피 올해 FA니까 그를 타자로 키워서 내년에 투수가 아닌 타자로 메이저 리그로 진출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윤동준이 마구 미래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야구장의 타이탄스 코치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이런.....”
윤동준은 급히 전화를 받았고 역시나 선수들이 감독을 기다리고 있단 얘기를 코치가 했다. 대체 지금 어디 계시냐며 말이다.
“지금 바로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코치와 통화를 끝낸 윤동준은 허겁지겁 야구장으로 올라가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타이탄스 선수들과 같이 고척 돔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신년 모임을 겸 회식을 하러 미리 예약해 놓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
9시 30분 쯤 시작한 타이탄스와 크로노스의 시합은 오후 1시에야 끝이 났다. 시합 하는데 장장 3시간 반이 걸린 것이다. 보통 최민혁이 선발로 뛸 경우 경기 시간이 2시간을 넘기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꼬르르르!
점심때가 지난 터라 최민혁의 배에서 아우성을 쳤다. 문제는 신년이라 음식점 문을 연 곳이 얼마 없다는 점.
그때 마침 근처에 그가 잘 아는 음식점 간판이 보였다. 최민혁은 곧장 거기로 차를 몰아갔다. 음식점의 규모가 크다보니 전용 주차장도 따로 있어서 최민혁은 그곳에 차를 대고 음식점 안으로 향했다.
호남정(湖南庭)이라고 꽤나 유명한 한정식 집인 이곳은 예약제로 손님을 받지만 점심에 한 해서 일반 손님도 받았다. 신년에 문을 여는 음식점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호남정은 다행히 신정에도 문을 여는 음식점 중 하나였다.
주차장 바로 옆이 가게라 자신이 차를 세운 곳에서 걸어서 가게로 들어가려던 최민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응?”
그러자 가게와 가까운 쪽 주차장에 검은 승용차 두 대가 서 있었는데 그 안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최민혁은 어디 조폭 보스가 여기 점심 먹으러 왔나 싶었다.
조폭이라고 해서 여기서 점심 먹지 말란 법은 없는지라 최민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혼자십니까?”
최민혁의 뒤로 아무도 없자 가게 직원이 물었다.
“네. 혼잡니다.”
“이쪽으로....”
가게엔 홀 쪽으로 빈자리가 많았기에 가게 직원은 그 빈자리 중 한 곳으로 최민혁을 안내했다.
최민혁은 비즈니스 때 바이어들과 같이 여길 몇 번 왔었다. 그때 그는 안쪽 VIP룸을 썼기에 홀에서 식사 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배가 고픈 그에게 장소 따윈 어디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그의 배를 채워 줄 음식만 나오면 됐다.
“정식 특A코스요.”
최민혁은 가게 직원이 건네는 메뉴판은 받지도 않고 바로 주문을 했다. 최민혁이 주문한 코스는 호남정에서 제일 비싼 메뉴였다. 때문에 최민혁이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더라고 그걸 두고 뭐라고 할 가게 직원은 이제 없을 터였다. 최민혁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오늘 그가 타이탄스와의 시합을 통해 획득한 포인트는 490이었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세나가 이걸 쓰게 하려고 별 짓을 다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세나가 반응을 했다.
[마스터! 저도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것쯤은 안다고요.]
세나의 샐쭉한 말에 최민혁이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