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재벌에이스
최민혁은 똑바로 펜스를 보고 달리다 펜스와 부딪치기 직전 몸을 띄웠다.
파앗!
그리곤 먼저 내민 왼발로 펜스를 차고 몸을 위로 솟구쳐 올렸다. 그 다음 허공에서 고개를 공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돌렸고 마침 공이 펜스 근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척!
최민혁이 쭉 위로 내뻗은 글러브 속으로 공이 빨려 들어갔다. 최민혁은 그 상태에서 추락하면서 두 발로 그라운드를 짚고 그 충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바로 앞으로 굴렀다.
한 바퀴 멋지게 그라운드를 구른 최민혁이 몸을 일으키며 글러브를 위로 올렸다. 하지만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고 최민혁은 그제야 글러브를 내리고 그 속에 하얀 공을 꺼냈다.
“우와아아!”
그러자 그 하얀 공을 본 크로노스 덕 아웃에서 함성이 일었다. 그리곤 좌우익수가 달려와서 최민혁의 어깨와 엉덩이를 글로브로 툭툭 치며 말했다.
“멋진 펜스 플레이입니다.”
“완전 날더구먼. 날아. 와아아! 완전 멋졌어요. 최 선수.”
최민혁은 웃으며 잡아 낸 홈런 볼을 2루수에게 던졌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우! 진짜 멋진 플레이였어요. 부상의 위험도 무릅쓰고 보여 준 파인 플레이에 보상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이어 최민혁의 눈앞으로 간결한 창이 떴다.
[획득 포인트 +50. 타자 총 포인트: 350]
그렇게 쓰리 아웃이 되면서 길었던 타이탄스의 8회 초 공격이 끝났다. 최민혁은 좌우 야수들과 나란히 천천히 뛰면서 덕 아웃으로 향했다.
짝짝짝짝!
최민혁이 덕 아웃 앞에 이르자 안에 있던 크로노스 선수들이 일제히 박수로서 그를 맞아 주었다.
“이제 이 돔 구장 안에서 최 선수를 야구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야. 투수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건 메이저리그 골든글러브 수비 저리 가라네요. 이 시합이 방송에 나갔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겁니다.”
덕 아웃의 크로노스 선수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최민혁을 칭찬했는데 그 때문인지 덕 아웃이 시끌벅적했다. 그 광경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크로노스 감독도 기분 좋게 웃었다. 그도 이미 승패를 떠나 오늘 이 시합을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크로노스는 선발 투수보다 불펜이 빵빵했고 아직 대기 중인 불펜 투수는 많았다. 물론 그 투수들이 타이탄스 타자들에게는 배팅 볼 투수 수준 밖에 되지 않아서 문제지만.
------------------------------------------------
8회 말 크로노스의 공격은 2번 타자부터 시작 됐다. 타이탄스의 마운드엔 7회부터 등판한 유명철이 계속 지키고 있었다.
7회에도 약간 이상한 플레이를 선보였던 유명철은 8회에도 마찬가지로 2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최민혁이 나타났다.
어제 연타석 홈런을 허용한 유명철은 최민혁이 배터 박스에 들어서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올리고 있던 투수판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로진가루를 손에 묻혔다. 그걸 보고 최민혁도 배터 박스에서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후우!”
유명철은 자신이 긴장한 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손에 묻은 로진 가루를 입으로 불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투수판을 밟고 섰다. 그리곤 최대한 최민혁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포수의 미트 아래 손가락에 시선을 집중 시켰다.
포수가 초구로 요구한 건 몸 쪽에 바짝 붙는 포심 패스트 볼이었다. 아마 덕 아웃의 윤동준 감독에게서 모종의 지시가 포수에게 내려진 모양이었다.
‘뭐 잘 됐어.’
이로써 유명철은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고민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유명철은 빠르게 심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유명철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포수의 미트를 향해 빠르게 공을 던졌다.
쐐애애액!
유명철의 손끝을 빠져 나온 공이 최민혁의 몸 쪽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최민혁이 일고의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묵직한 타격음이 울리고 공이 쭉 뻗어 나갔다. 순간 유명철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맞는 순간 장타라고 여긴 것이다.
‘또 맞았어?’
유명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소 높게 솟구쳐 오른 타구는 마지막 순간 왼쪽 외야 관중석으로 넘어갔다.
“쩝! 좀 빨랐나?”
최민혁이 타석에 선 채 타구를 지켜보다 투덜대며 말했다. 최민혁은 완전 타격에 자신이 붙은 상태였다. 그가 냉철한 사업가의 포인트까지 사용해 가며 끌어 오린 타자로써의 능력치들은 아마야구보다 좀 더 수준 높은 준 프로급의 타이탄스를 상대로 몇 수 위란 사실을 그도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어제 그에게 연타석 홈런을 내어 준 유명철의 공은 최민혁의 눈에 너무도 잘 들어왔다.
최민혁이 인 앤 아웃 스윙도 나쁘지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공이 앞쪽에서 배트에 맞아 버렸다. 그 이유는 유명철이 어제 이어 오늘도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연투를 하는 그로서는 어제보다 오늘 구속과 구위가 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까.
“배트에 힘을 좀 빼야겠군.”
최민혁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타이탄스의 포수는 상대의 기를 꺾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몸 쪽으로 공을 던지게 했다가 홈런을 맞은 뻔하자 고심 끝에 바깥쪽으로 빠져 나가는 체인지업을 투수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유명철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포수가 구종을 커브와 포심 패스트 볼로 바꿨는데 유명철은 계속해서 사인을 거부했다.
-------------------------------------------------
타이탄스의 포수는 타임을 외치고 마운드로 올라가려다 혹시나 해서 슬라이더 사인을 내 보았다. 그러자 유명철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앞서 던진 포심 패스트 볼을 최민혁에게 크게 얻어맞자 슬라이더를 던지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나름 최민혁에게 안 맞겠다는 의도였지만 그 덕분에 사인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주심이 알아서 타석의 타자를 위해 타임을 외쳤다.
최민혁은 자기 대신 주심이 경기를 중단 시키자 타석에서 물러나며 주심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배터 박스 밖에서 두 어 번 배트를 휘두른 뒤 최민혁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그때 타이탄스 포스는 몸을 일으켜서는 정면의 투수에게 어깨를 으쓱거려 주었다. 긴장을 풀란 제스처였다. 투수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포수가 다시 앉고 시합이 재개 되었다. 포수는 바로 미트를 내밀었다. 사인은 앞서 한 걸로 됐단 소리다. 그러면서 타이탄스 포수는 생각했다.
‘나쁘지 않아. 잘하면 땅볼로 잡아 낼 수도 있을 테고.’
포수가 최민혁의 옆구리 쪽으로 미트를 슬쩍 붙이는 가운데 와인드업 후 유명철이 힘껏 공을 던졌다. 최민혁이 보기에 그 공은 몸쪽으로 들어오는 패스트 볼로 보였다. 그래서 최민혁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그런데 패스트 볼처럼 날아들던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슬라이더!’
공의 구질을 깨닫는 순간 최민혁의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아니 그의 능력이 제 값을 하려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그의 손목이 살짝 꺾이며 슬라이더를 따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작심하고 던진 유명철의 슬라이더는 그 움직임이 좋았다. 때문에 최민혁의 타자로서의 능력치로도 그 공을 걷어 내기에 무리가 따랐다.
따악!
방망이 끝부분에 맞은 공이 1루 방면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걸 보고 최민혁은 들고 있던 배터를 옆으로 내던지고 1루로 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 타이탄스의 1루수가 라인을 따라 뛰어 나왔고 투수인 유명철이 1루 커버에 들어갔다.
그 움직임이 프로 못지않았다. 최민혁도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1루수가 그 땅볼을 잡기 전에 회전을 먹은 공이 1루 라인 밖으로 꺾여 나가 버렸다.
그걸 뛰면서 확인한 최민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 타이탄스이 덕 아웃의 윤동준 감독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타이탄스의 코치에게 말했다.
“김 코치. 최민혁이 좀 전에 치는 거 봤지?”
“네. 팔로우 스윙이 기가 막히더군요.”
보통 사람들이라면 최민혁이 운이 좋아서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땅볼 아웃이 될 위기를 모면했다 생각할 테지만 지금 타구가 파울 라인을 벗어 난 건 최민혁이 제대로 된 팔로우 스윙을 했기 때문이었다. 공이 빗맞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배트를 휘둘러 준 덕분에 평범한 1루수 앞 땅볼이 파울로 변한 것이다.
“정말 대단해. 볼을 친 후의 스윙 궤적은 공이 날아가는 것과는 관계가 적은데....... 그럼에도 팔로우 스루 구간을 강조하는 것은 그 동작이 실제로 중요해서 라기 보다는 공을 맞추기 전의 동작을 제대로 익히는 것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타이탄스의 코치는 감독인 윤동준이 또 타격에 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서 덕 아웃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윤동준을 그런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의 시선은 최민혁에게서 떨어 질 줄 몰랐다.
“......볼의 궤적에 맞춘 스윙인지라 당연히 정확도가 높을 밖에. 특히 팔로우 스루 구간에서 투구에 따라 오른발이 땅에서 떨어질 때와 아닐 때가 있는데 볼이 맞는 컨텍 지점에서는 항상 땅에 붙어 있어야 해. 이것이 타석에서 정확도와 파워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거든. 최민혁은 바로 그런 점에서 완벽하다고.................”
최민혁에 대한 타이탄스 윤동준 감독의 칭찬이 끝날 줄 모르는 가운데 최민혁이 1루로 뛰면서 집어 던졌던 배트를 다시 챙겨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
타이탄스의 포수는 상대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걸 좋아했다. 그런 성격상 최민혁이 땅볼을 친 슬라이더를 보란 듯 다시 투수인 유명철에게 요구했다. 그것도 똑같은 몸 쪽 슬라이더로 말이다. 대신 끝에 살짝 손을 흔들었다. 스트라이크 말고 볼로 던지란 사인이었다. 슬라이더를 맞추기 급급한 최민혁에게서 멋지게 헛스윙을 유도할 심산으로 말이다.
그 사인을 확인한 유명철이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타이탄스 포수가 지금 최민혁을 삼진으로 잡으려 하고 있어서 말이다. 하긴 지금 볼 카운트는 0-2로 투수에게 훨씬 유리했다. 그 만큼 유명철의 슬라이더가 오늘 좋다는 소리기도 했다. 유명철이 비장한 얼굴로 포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곤 왼손으로 공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래. 잡을 수 있어.’
원래 타자는 3할 이상 때리기 힘들다. 3할이란 타율은 말 그대로 10번 타석 중 3번 안타를 친단 소리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7번은 타석에서 아웃이 된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어제 연타석 홈런을 친 최민혁이 이제 땅볼이나 삼진으로 물러 날 때도 됐단 말이었다.
‘그래. 이왕 잡을 거 깔끔하게 삼진으로 돌려세우자.’
유명철은 속으로 자신감을 불어 넣으면서 힘차게 투수판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