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에이스-53화 (53/248)

53====================

재벌에이스

“터엉!”

다이렉트로 쭉 뻗어 나간 타구는 전광판 아래 펜스를 때리고 그라운드로 떨어져 내렸다.

타이탄스의 4번 타자인 박우형은 프로에서 1군 무대에서 활약했던 선수였다. 당연히 언더핸드 스로 투수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도 잘 알았다.

확실히 언더핸드 스로(underhand throw) 투수는 보기 힘든 투구 폼이기 때문에 타자들이 공략하기 까다로웠다. 특히 변화구의 회전방향이 다른 투구 폼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서 정타를 맞을 위험이 적은 폼이었지만 투수를 살피는 눈이 날카로운 박우형은 상대 투수에게서 습관, 즉 쿠세를 발견했다. 하지만 몇 번 더 확인해 보지 않아 확실하진 않았는데 타석에 서 보니 맞았다. 그래서 박우형은 상대 투수가 던진 초구와 같은 가운데에서 살짝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노리고 배트를 휘둘렀다. 잘 맞았지만 제대로 된 팔로우스윙이 이뤄지지 않아 공이 위로 뻗질 못했다. 하지만 펜스를 맞고 튀어 나오는 공을 보며 박우형은 1루를 돌아서 2루로 뛰었다. 누가 봐도 당연한 2루타였다.

“어어!”

그때 1루 주루 코치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일었다.

“우형아. 뛰어!”

뛰고 있는 데 뭘 또 뛰란 말인가? 박우형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였다.

쐐애애액!

전광판과 아래 그라운드에서 상대 중견수가 던진 공이 2루로 한 번에 쭉 날아오고 있었다.

“헉!”

무슨 타석의 직구도 아니고 레이저처럼 직선으로 쭉 날아온 그 곳은 2루수 글러브에 꽂혔다.

파앙!

2루수 글러브에서 포수 미트 소리가 났다. 선 체 2루로 들어가던 박우형은 황당한 얼굴로 상대 2루수가 내민 글러브에 터치를 당했다.

“아웃!”

2루심이 박우형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아웃을 선언했고 박우형은 기가 찬다는 듯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상대 팀 중견수를 쏘아보았다.

박우형도 발이 느린 타자는 아니었다. 물론 발 빠른 타자에 비하면 좀 느리긴 하다. 하지만 지금껏 2루타 성 타구를 쳐 놓고 2루에서 베이스러너킬 (baserunner kills)을 당한 적은 그의 야구 인생에서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 박우형을 1루 주루 코치가 달래서 덕 아웃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 박우형을 더 화나가 만든 건 그의 팀 감독이었다.

입에 파리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일을 헤벌쭉 벌리고 상대 팀 중견수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윤동준 감독은 박우형이 억울하게 아웃이 되었건만 그에겐 관심도 없었다. 박우형은 서운한 마음에 감독에게 한 소리 하려다 참았다.

어째든 윤동준은 감독이었고 그와 사이가 나빠져 봐야 박우형에게 좋을 건 하나 없었으니까. 타이탄스는 곧 독립 구단이 될 터였다. 그럼 박우형에게 다시 프로로 돌아갈 기회가 그만큼 더 빨리 찾아 올 터. 그때 필요한 것이 감독의 추천이었다.

‘참자. 지금은 참지만........’

박우형은 타격은 좋았지만 수비가 좀 약했고 무엇보다 인성이 좋지 않은 타자였다. 그런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박우형은 타이탄스에서도 평판이 그리 좋진 않았다. 하지만 감독이 선수의 인성까지 챙길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윤동준도 언제고 박우형에게 뒤통수 맞을 줄 알면서도 한 명이라도 괜찮은 선수를 프로 무대로 복귀 시키고 데뷔 시키자는 대승적 취지에서 타이탄스에 몇몇 인성이 좋지 않은 선수를 품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

윤동준은 이미 최민혁에게 푹 빠져 있었다. 팀의 4번 타자인 박우형도 괜찮은 타자였다. 하지만 ‘급’이 달랐다.

박우형도 당장 프로무대에서 뛸 정도의 실력은 갖췄다. 하지만 그래봐야 주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에 비해 최민혁은 타자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로 어디에 들어가도 중심 타자로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직 손보지 않은 미완의 대기가 저 정도라면....... 최민혁은 투수로 메이저 무대를 밟을 게 아니라 타자로 메이저에 가야 해.”

윤동준은 감독으로 선수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괜찮은 선수가 보이면 참지 못하고 뛰어가서 어떡하든 그와 인연을 맺었다. 그런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유명철이었고 말이다.

윤동준은 그 대상이 최민혁만 아니었으면 시합 중이지만 타석이나 센터로 뛰쳐나갔을 터였다. 실제 그는 좀 전 최민혁이 보여 준 그 보살 플레이를 보고 덕 아웃 밖으로 두 어 걸음 나가기도 했었다.

최민혁은 중견수로서 완벽한 수비를 선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타자로서 발까지 빨랐다.

“저 놈은 메이저에서도 무조건 통해.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니까.”

윤동준이 실로 오랜 만에 탐욕스런 눈으로 선수를 쏘아보았다.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

5툴(five-tool)은 야구에서 타격정확도(컨택능력), 타격의 파워(장타력), 수비능력, 송구능력, 주루능력(스피드)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를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라고 했다.

윤동준은 최민혁에게서 바로 이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의 가능성을 엿 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최민혁은 전혀 모른 체 센터에서 웃고 있었다.

“흐흐흐흐!”

그의 눈앞에 뜬 간결한 창 때문에 말이다. 물론 그 앞에 세나의 칭찬 일색의 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칭찬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 최민혁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포인트!

[획득 포인트 +30. 타자 총 포인트: 280]

수비에서 파인 플레이를 펼쳐도 +10 밖에 포인트를 주지 않더니 이번 보살 플레이에는 +30이나 준 것이다. 앞서 홈런으로 받은 +50까지 합산 되면서 타자 총 포인트가 어느 새 300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당연히 안타를 치고 아웃을 당한 타이탄스의 덕 아웃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그건 다음 타석에 나선 5번 타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틱!

5번 타자가 냅다 휘두른 방망이 아래 공이 맞으면서 타구가 땅볼을 만들어 낸 것이다.

5번 타자 역시 우타자였고 그는 박우형에 비해 언더핸드 스로 투수에 기본적으로 약했다. 박우형이 상대 투수의 쿠세라도 알려 주었다면 또 모르지만 박우형은 그걸 자신의 경쟁자와 나눌 정도의 인격을 갖추고 있진 못했다.

땅볼은 유격수가 잡아서 1루로 던져 아웃을 시켰고 그렇게 10점은 더 날 거 같았던 매서운 7회 초 타이탄스의 공격도 끝이 났다.

------------------------------------------------

7회 말 크로노스의 공격은 5번 타자부터 시작했다.

크로노스는 원성우가 당연히 7회에도 마운드를 밟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마운드에 오른 건 바뀐 투수 유명철이었다.

“어! 저 투수 유명철 아냐?”

“맞아. 명철이.”

“명철이는 데스페라도 소속 아니었어?”

크로노스 감독은 즉시 그 사실을 타이탄스 측에 문의하고 덕 아웃으로 돌아와 선수들에게 말했다.

“오늘부로 유명철의 소속이 데스페라도에서 타이탄스 소속으로 바뀌었으니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네요.”

사회인 야구단의 선수들이야 언제든 팀을 옮길 수 있었기에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하는 선수는 없었다.

유명철은 자신의 등판에 잠시 크로노스 측이 소란스런 걸 보고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크로노스 덕 아웃에 앉아 있는 한 선수를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은 굳었다.

‘최민혁!’

유명철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 윤동준 감독과 잠깐 얘기를 나눴다. 그때 윤동준 감독이 부탁한 게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럼. 그래야 최민혁을 타석에서 더 볼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유명철은 그렇게 윤동준 감독으로부터 모종의 임무를 받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그 임무를 시행하기 위해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볼!”

유명철의 공이 빠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공은 빠졌다. 마치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마냥 말이다.

“볼 포!”

결국 크로노스의 5번 타자는 걸어서 1루를 밟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볼!”

유명철이 타자가 바뀐 가운데에서도 초구에 볼을 던지자 크로노스 덕 아웃이 웅성 거렸다.

“명철이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 모양이네.”

“그러게. 전혀 스크라이크를 던지지 못해.”

“그냥 냅다 한 복판에 던져도 우철이는 명철이 공을 못 칠 텐데.”

“그러게. 어제 그 명철이가 맞아?”

어제 크로노스 타자들은 유명철이 한 복판에 꽂은 직구를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걸 아는 유명철이 왜 저렇게 어렵게 공을 던지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볼 포!”

결국 6번 타자도 걸어서 1루로 나가고 7번 타자에게도 같은 양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타이탄스 측이 조용하단 점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크로노스 감독이 얼굴을 상당히 불쾌한 얼굴을 한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 편 덕 아웃을 보며 중얼거렸다.

“윤동준 감독님.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

최민혁도 처음엔 덕 아웃에서 유명철이 볼넷을 내주자 그의 컨디션이 오늘 별론가 보다 싶었다. 하긴 어제도 던졌으니 제구가 흔들릴 만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타자까지 루상으로 걸어서 내 보내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네 번째 타자를 상대로 할 때 최민혁은 확신이 들었다.

“이거 뭐하자는 거야?”

“그러게. 우릴 가지고 노는 건가?”

“씨발. 기분 더럽네.”

그럴 것이 보란 듯 유명철이 네 번째 타자를 상대로 공 세 개로 아웃카운트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펑!

140Km/h가 넘는 공이 빨랫줄처럼 날아와서 포수 미트에 꽂히는 데 그걸 보고도 크로노스 타자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삼구 째에는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이 들어가고 나서 배트가 돌아가는 게 확연히 보였다.

이로서 유명철이 앞선 세 타자를 일부러 걸린 게 확실해지자 크로노스 덕 아웃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펑!

그리고 나선 9번 타자 역시 유명철의 공에 속수무책이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역시나 공 3개로 삼진을 먹은 크로노스 9번 타자가 힐끗 마운드 위의 유명철을 쏘아 보고는 덕 아웃으로 향했다.

틱!

그래도 톱타자라고 크로노스의 1번 타자는 유명철의 공을 건드렸는데 그 공이 투수 앞으로 굴렀고 유명철이 그 공을 잡아서 1루로 송구하면서 7회 말 크로노스의 공격을 마무리 지었다.

이닝이 끝난 뒤 크로노스 감독은 굳은 얼굴로 타이탄스 덕 아웃을 찾아갔다. 그리고 타이탄스 감독 윤동준과 몇 마디 말을 나눴다. 그때 윤동준이 크로노스 감독 앞에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그 뒤 갑자기 화기애애해 진 두 감독은 웃으며 헤어졌고 8회 초 타이탄스의 공격이 시작 되었다.

그런데 분위기 좋았던 두 감독과는 달리 경기는 양상은 사뭇 달라졌다. 타이탄스에게 첫 타석부터 대타를 낸 것이다. 그것도 좌 타자로 말이다.

딱!

왜 언드핸드 스로 투수가 좌타자에 약한지 증명이라도 하듯 대타는 1, 2루 사이를 꿰뚫는 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서도 타이탄스에서는 좌타자를 대타로 냈다. 그 만큼 타이탄스의 선수층이 두텁단 소리였다.

딱!

이번엔 밀어 친 타이탄스의 대타의 타구가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