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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사회인 야구단이긴 하지만 타이탄스는 그 수준이 한참 높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곳엔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고졸, 대졸 선수들을 비롯해서 프로에서 방출 된 선수들이 득실 거렸으니까.
현재 타이탄스의 감독인 윤동준은 제 4의 독립구단 창단을 준비 중이었다. 그래서 올해에 기어코 비영리사단법인인 안양 타이탄스 독립 야구단을 만들 계획이다. 아무래도 안양시를 연고지로 정하면 시 차원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를 위해 윤동준은 새해엔 안양시 시의원들과 접촉을 시도하는 한 편 그와 같이 타이탄스를 이끌어 갈 코치와 지도자 영입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현재 한국에는 강원 미라클, 원주 챌린저스, 저니맨 외인 야구단 등 3개 독립구단이 있다. 윤동준은 그들과 같이 경기를 하며 자기 선수들이 프로에 재 진입할 기회는 주는 건 물론,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분야에 도전할 계기를 마련 해 주고 싶었다.
'야구단'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력 향상은 당연히 윤동준의 최우선 목표다. 윤동준은 내년에 다른 독립구단과 프로구단 2, 3군 팀, 대학팀과 60경기 이상을 치르며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꾀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윤동준에게 연말 마지막 날 아주 재미있는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어. 명철아. 반갑다. 그래. 하하하하. 어떻게? 우리 팀에 들어오기로 한 거냐?”
-네. 제 제안을 받아 드려 주신 다면요.
“제안? 그게 뭔데?”
-내일 사회인 야구단 크로노스와 시합을 해 주십시오.
“뭐?”
타이탄스 윤동준 감독은 유명철의 황당한 제안에 어이가 없었다. 윤동준도 사회인 야구단에 크로노스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 수준은 중위권 정도로 타이탄스와 시합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마 타이탄스가 시합해 준다면 크로노스는 대환영일겁니다. 대신 조건을 붙이십시오.
“조건?”
윤동준은 유명철의 얘기를 들으며 점점 더 상황이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했다.
-네. 최민혁이 꼭 뛰어야 한다고 하십시오.
“최민혁?”
-네. 최민혁요.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최민혁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오성 라이온즈의 그 최민혁!
“하아! 너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윤동준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하지만 뒤이어진 유명철의 얘기에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더불어 그의 눈이 형형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그 최민혁이 사회인 야구단에서 타자로 뛴다고? 투수가 아니라?”
-네.
“그 최민혁이 널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네.
“뭐냐? 혹시 내일 크로노스와 시합을 하려는 게 그럼 복수를 위해서냐?
-아뇨.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저도 처음엔 최민혁이 왜 사회인 야구단에서 설치는 지 그 의중을 의심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오해였을 뿐 그는 그런 속물 선수는 아니더군요.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천재인지요. 투수만큼이나 타자로서의 재능도 천재적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최민혁을 위해서 내일 시합을 해 달란 말이로군. 그의 타자로서 재능을 알아보기 위해서?”
-뭐 그런 셈이죠. 대신 타이탄스에선 꽤 괜찮은 선발급 투수를 얻게 될 테고요.
“콜(Call)”
이건 더 길게 말하고 자실 필요가 없었다. 최민혁이 그렇게 뛰어난 타자라면 타이탄스 투수들의 투지를 일깨우는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또한 국내 최고 대형 타자를 발굴해 내서 메이저로 보내고야 말겠다는 윤동준의 바램도 이뤄 질 수 있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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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스는 사회인 야구단 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의 팀이었다. 그렇다보니 시합을 해도 다른 팀들은 당최 타이탄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타이탄스의 투수들의 목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한 마디로 자만하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윤동준 감독은 그런 타이탄스의 투수들의 거만함을 손봐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좀 더 빨리 온 거 같았다.
윤동준은 타이탄스의 감독으로 먼저 크로노스의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명철에 따르면 최민혁이 크로노스 감독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걸 그가 직접 봤다니 크로노스 감독과 최민혁은 어떤 식으로든 연이 닿아 있을 터였다.
“...............하하하하. 갑작스럽지만 어떻게 내일 시합이 가능하겠습니까? 네. 네. 근데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네. 그건..................”
윤동준은 최대한 크로노스와 내일 시합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조곤조곤 설명을 하고 설득을 했다.
“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도록 하죠.”
그 결과 윤동준은 크로노스 감독으로부터 내일 시합을 하겠다는 대답을 얻어 냈다. 하지만 그건 감독끼리의 합의였을 뿐 이제부터 경기장을 알아보고 타이탄 선수들에게도 연락을 취해야 했다. 윤동준은 그 전에 먼저 유명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그의 전화를 기다린 듯 유명철이 다급히 먼저 물어왔다.
“어떻긴 뭐가 어떻게 돼. 당연히 잘 됐지.”
-하하하하. 그럼 내일 크로노스와 시합하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너도 시간 맞춰 와.”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로써 윤동준은 그 동안 눈독들이고 있던 선발급 투수 하나를 영입하는 데 성공 했고 또 타이탄스의 투수들에게 끼어 있는 자만이란 거품을 거둬 줄 대안까지 찾아냈다.
“이런..... 서둘러야지.”
윤동준은 유명철과 통화 후 급히 내일 경기를 치를 구장을 섭외하고 타이탄스 선수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갑작스럽게 그것도 새해 첫날 경기를 하게 됐다는 감독의 얘기에 타이탄스 선수들은 놀라기보다 신나했다. 그 만큼 그들은 야구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사회인 야구단에서 고만고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크로노스란 사실을 알고는 다들 실망하는 기색이었지만 누구도 내일 야구하러 나오지 않겠단 선수는 없었다.
윤동준은 구장을 구하는데 좀 애먹었지만 그의 폭넓은 인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죠.”
고척돔의 관리팀장에게 직접 연락을 취한 윤동준은 내일 경기장으로 고척돔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윤동준은 그 사실을 문자로 크로노스 감독에게 알린 뒤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후아아! 이제 다 된 건가?”
윤동준은 마지막으로 심판들까지 섭외를 끝낸 뒤 커피를 내렸다. 그리곤 진한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기대가 되는 군. 투수 최민혁이 아닌 타자 최민혁이 내일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말이야.”
그러고 보니 타이탄스 선수들에게 내일 최민혁이 크로노스에서 타자로 뛴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하지만 다들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릴 터였다. 최민혁이 대단한 선수지만 투수로서 말이지 타자로는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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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 감독은 갑자기 걸려온 타이탄스 감독의 전화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타이탄스 감독이 내일 당장 크로노스와 시합을 하자는 게 아닌가?
“그, 그 말이 정말입니까?”
같은 사회인 야구단이지만 크로노스와 타이탄스의 실력 차는 너무 컸다. 그래서 감히 타이탄스 측에 시합을 하잔 말도 못 꺼내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타이탄스에게 먼저 시합을 하자니......
크로노스 감독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서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그때 타이탄스의 감독이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그러니까 내일 시합에 최민혁 선수를 타자로 뛰게 하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오늘 최민혁 선수가 수비와 타석에서 맹활약을 했다면서요? 이왕이면 그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데........ 제 욕심 같지만 같은 감독으로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투수뿐만 아니라 타자로서의 야구 천재 최민혁의 가능성에 대해서.
크로노스 감독은 쉽사리 타이탄스 감독의 말에 넘어갔다. 그 역시 야구인이었고 타이탄스 감독의 말처럼 최민혁이란 선수가 타자로서 그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또 내일 시합에 그가 할 일이라곤 선수들을 불러내는 것뿐이었다. 물론 시합이 시작 되면 그 팀 작전과 운영에 관한한 감독인 자신의 몫이지만.
크로노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전부 전화를 걸었다. 야구에 미쳐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내일 시합에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특히 그 상대가 타이탄스란 말에 다들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회인 야구단에 속한 선수라면 누구나 강팀을 상대로 싸워 보길 희망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실력도 늘어난다는 걸 그들도 알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사회인 야구단의 최 정점에 있는 타이탄스와의 시합은 크로노스 선수들에게 새해 최고의 선물이었다.
“휴우. 다 끝났다.”
선수들에게 내일 시합에 대해 일일이 설명까지 하다 보니 전화비도 전화비려니와 목이 다 쉬려 했다. 크로노스 감독은 목에 좋은 따뜻한 모과 차 한 잔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깬 크로노스 감독은 정작 중요한 선수 한 명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런 미친........”
부랴부랴 그 선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그 선수도 경기에 뛰겠다고 했다.
“다행이다.”
반드시 그 선수가 뛰어야 한다고 타이탄스에게 조건으로 내 건 만큼 그 선수가 뛰지 못한다면 경기 자체가 취소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쉰 크로노스 감독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고척돔에 도착한 그가 하나 둘씩 오기 시작한 크로노스 선수들을 챙기고 있을 때 드디어 그 선수가 나타났다. 당금 대한민국에서 최고 에이스라 불리는 오성 라이온즈의 최민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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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크로노스의 덕 아웃에 나타나자 크로노스 선수들이 다들 반갑게 그를 맞았다. 크로노스 감독이 미리 크로노스 선수들에게 얘기 해 뒀던 것이다. 오늘도 최민혁과 같이 뛴다고 말이다.
“또 보네요.”
“오늘도 잘 해 봅시다.”
“어제 만큼 만 활약해 주십시오.”
그때 크로노스 감독이 최민혁에게 유니폼을 건네며 말했다.
“옷부터 갈아입고 오세요.”
“네.”
최민혁은 크로노스 유니폼을 들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 사이 크로노스 선수들은 2열 횡대로 늘어서서 체조로 몸을 풀었다.
최민혁은 서둘러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와서는 크로노스 선수들 사이에 끼어들어 같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타자로 몸을 푸는 것과 투수로 몸을 푸는 건 차이가 있었다. 실제로 크로노스 선수들 중 투수진은 따로 불펜에서 몸들을 풀었다.
그렇게 선수들과 몸을 풀고 있던 최민혁을 크로노스 감독이 불렀다.
“최 선수. 잠깐 이쪽으로....”
최민혁은 감독의 부름에 일단 크로노스 선수들 사이에서 빠져 나와 그에게로 갔다. 그러자 크로노스 감독이 최민혁을 보고 말했다.
“오늘 수비 포지션을 정해 볼까 해서요.”
“아네에.”
어제 최민혁은 갑자기 일이 생긴 크로노스 3루수 대신 그 자리에서 뛰었다. 최민혁은 그나마 익숙해진 그 3루에서 뛰어 볼까 했는데 크로노스 감독의 말에 딴 포지션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3루는 뺍시다. 우리 팀 3루수가 요즘 타격이 제일 물올라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는......”
최민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견수를 맡겠다고 크로노스 감독에게 말했다.
“중견수라......”
최민혁의 말을 듣고 난 크로노스 감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