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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6회 말 크로노스의 공격이 시작 되었다. 타순은 4번 부터였고 최민혁이 대신 뛰고 있는 3루수는 8번 타자였다.
최민혁은 그 얘기를 덕 아웃에 들어서며 크로노스 감독에게 전해 들었다. 하지만 6회 타석에 자신이 들어 설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앞에 타자가 네 명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최민혁은 덕 아웃에서 크로노스의 가족 분 중 한 명이 가져다 준 이온 음료를 마시며 새로 생긴 상태창과 새로 부여 받은 타자로서의 능력에 대해 생각에 빠졌다.
사회인 야구단의 선수들과 그 가족들은 전부 야구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현재 한국 야구계에 있어서 국보급 투수로 불리는 최민혁을 보고 그에게서 사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크로노스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기에 그를 배려해서 아무도 그를 귀찮게 하진 않았다. 그 덕분에 최민혁은 혼자 생각에 빠질 수 있었고 세나와 타자에 대한 능력들에 대해 심도 깊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최 선수!”
그런데 그런 그를 크로노스 감독이 방해했다.
“네?”
“아무래도 다음 타석에 서셔야 할 거 같습니다.”
크로노스 감독의 말에 최민혁이 그라운드로 시선을 주었다. 그랬더니 언제 나갔는지 크로노스 타자들이 3루와 2루에 나가 있었다.
“볼 포!”
그리고 타석의 타자도 걸어서 1루로 나갔고 말이다.
“맙소사!”
다음 타자 최민혁 앞에 주자 만루 상황이 연출 되었다. 최민혁은 허겁지겁 크로노스 감독이 건네는 헬멧을 쓰고 배트를 들고 타석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타임!”
데스페라도의 감독이 덕 아웃에서 뛰어나오며 말했다.
“투수 교체 하겠습니다.”
그렇게 최민혁 앞에서 데스페라도의 투수가 바뀌었다. 그 사이 최민혁은 배터 박스 밖에서 한 손에 배트를 쥐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최민혁은 세나와 대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안타 한 방이면 최소한 +30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단 얘기로군?’
[네. 홈런이라도 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면 포인트가 무려 +100이에요.]
‘100포인트라.....’
최민혁이 어느 새 진지한 얼굴로 배트를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그 사이 투수가 교체 되었고 데스페라도의 투수가 연습 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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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야구단 데스페라도 소속 된 유명철은 고등학교 때 야구를 했다. 실제 투수로 이름 깨나 날렸고 프로에 지명까지 받았지만 유명철은 야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
사업가인 부친의 뜻을 꺾지 못한 것이다. 결국 유명철은 대학을 갔고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부친의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배웠고 이제는 입사 5년 차로 회사에서 제몫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는 끝내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사회인 야구단에서 뛰기 시작했고 부친도 운동 삼아 하는 그의 야구에 대해 뭐라고 하진 않았다.
유명철이 야구 때문에 일에 지장을 준다면 모를까 그는 야구를 시작한 뒤에 일에 성과를 내고 있었다.
유명철은 오늘 시합이 있는 줄 알면서도 회사에 출근을 했다. 하지만 내내 그의 머릿속엔 야구밖에 없었다.
그런 그는 종무식을 하자마자 곧장 고척돔으로 달려왔고 그 사이 시합은 6회까지 진행 된 상황이었다.
유명철은 사실상 데스페라도의 에이스였다. 작년부터 야구를 시작했지만 그의 어깨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투구 연습을 할수록 그의 구속이 오르고 구위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해 그는 드디어 140Km/h 대의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야구에서 140Km/h 대의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러니 유명철이 마운드에 오르면 상대 팀은 초토화 될 수밖에 없었다. 유명철이 덕 아웃에 나타나자 데스페라도의 감독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명철아. 바로 뛸 수 있지?”
“물론이죠.”
마침 상황이 안 좋았다. 1사에 주자 만루 상황! 여기서 점수를 주게 되면 2점 차 리더하고 있던 데스페라도가 역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바로 유명철이 투입 되었다.
펑! 펑! 펑!
유명철은 자신의 등장을 그라운드에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140Km/h의 공을 뿌려댔다. 그걸 보고 상대 덕 아웃이 술렁거렸다. 흔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저곳은 침묵만 감돌게 될 터였다.
그의 공에 크로노스 타자들이 침묵 한 채 그곳으로 들어갈 테니까 말이다. 연습 투구를 끝낸 유명철이 주심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자 주심이 큰 소리로 외쳤다.
“플레이 볼!”
그 외침에 움찔 놀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타자는 당당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유명철은 그래서 상대가 대타일거란 생각을 했다. 주자 만루 상황에서 자신이 상대팀 감독이라도 잘 치는 타자가 있으면 대타를 냈을 터였다.
‘뭐 그래 봐야 소용없겠지만.’
유명철은 상대가 누가 됐던 삼진으로 돌려 세울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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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타석에 서서 배트를 곧추 세워 들었다. 프로에 오고서 배트 잡을 일은 없었지만 최민혁도 초중 고등학교 때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때도 타격은 나쁘진 않았다. 단지 그가 투수라서 타격에 더 신경을 못 썼을 뿐.
최민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운드로 향했다. 때마침 와인드업을 마친 데스페라도의 바뀐 투수가 힘차게 공을 던졌다.
퍼엉!
순식간에 18미터를 날아간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의 직구였는데 스트라이크 존이 넓은 사회인 야구에서 이 정도면 확실한 스트라이크였다. 타석의 최민혁의 눈에 그 공은 한참 멀어 보였다. 역시 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기세 좋게 배트를 휘둘렀다. 좀 전 홈플레이트로 날아든 상대 투수의 직구에 맞춰 빠르게.
부웅!
묵직한 방망이가 요란스럽게 허공을 갈랐다. 그 소리가 어찌나 매섭던지 마운드 위의 상대 투수가 반사적으로 타석의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뭐야?”
유명철이 눈매를 일그러트리며 마치 시위라도 하듯 자신의 볼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휘두른 타자를 쏘아보았다.
“선수출신인가? 좀 친다 이거지?”
상대가 강하면 더 투지가 불 타 오르는 유명철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그의 별명이 ‘욱명철’이었다. 한 번 욱하면 뵈는 게 없다고 말이다. 지금 유명철이 상대 타자를 보고 욱하기 시작했다.
유명철은 공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포수의 미트를 향해 힘껏 볼을 던졌다. 유명철의 손에서 공이 빠져 나오자 최민혁도 살짝 들어 올린 오른 다리를 쭉 뻗으며 타격 자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배트를 내지는 않았다.
타이밍을 재며 히팅 포인트를 체크 한 뒤 그대로 공을 흘려보냈다.
퍼엉!
공은 홈 플레이트에서 옆으로 많이 휘어들어갔다.
“볼!”
때문에 주심도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를 잡아 주지 않았다. 포구 위치를 확인 한 최민혁이 ‘씨익’ 웃는 걸 보고 마운드 위의 유명철이 중얼거렸다.
“운 좋게 하나 골랐다고 웃기는.....”
유명철은 보란 듯 미간을 찌푸리다가 포수의 사인을 받기 무섭게 투구 판을 박차고 움직였다.
파앗!
최민혁의 얼굴로 날아오던 공이 휘어져 한복판을 통과했다.
‘슬라이더다!’
최민혁의 눈이 번쩍였다. 그리고 테이크 백을 마친 최민혁은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내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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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석에 선 최민혁은 초구를 보내고 두 번째 공까지 지켜 본 뒤 삼구 째에 투수의 보유 능력인 선구안을 사용했다.
[슬라이더가 한 복판으로 들어오겠네요.]
세나의 그 말이 있고 정말로 데스페라도의 투수가 던진 세 번째 공이 슬라이더로 한 복판에 들어왔다.
‘세나. 한방 스윙을 쓴다.’
그 말을 머릿속으로 외치며 최민혁은 냅다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큰 포물선을 그리며 전광판 쪽으로 날아갔다.
“어어!”
“저, 저.......”
“허어.......넘어갔다.”
최민혁은 공을 때려 놓고 1루로 천천히 뛰면서 자신의 때린 공에 시선을 두었다. 데스페라도의 중견수가 전광판 쪽으로 뛰나 워닝 트랙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전광판을 향해 날아가는 공을 넋 놓고 지켜보았다.
최민혁이 친 공은 전광판 상단을 때리고 떨어졌다. 최민혁은 그걸 확인하고 뛰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그가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때려 보는 홈런이었다. 그런데 그 홈런이 그랜드슬램이라니.
전광판에 요란하게 홈런과 그랜드슬램이란 글자가 번갈아가며 떴다. 그리고 스코어도 20대 22로 크로노스가 경기를 뒤집었고 말이다.
최민혁이 루상을 다 돌고 홈 플레이트를 밟자 다음 타석의 크로노스 타자가 최민혁을 향해 말했다.
“최민혁 선수. 빠따도 대단하네요.”
최민혁은 싱긋 웃으며 그가 내민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곧장 덕 아웃으로 향했다. 덕 아웃에 크로노스 선수들과 그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반면 상대 덕 아웃인 데스페라도 측은 다들 황당한 얼굴들이었다. 그럴 것이 구멍이라고 여겼던 최민혁이 수비에선 호수비를 선보였고 공격에선 만루 홈런을 때렸으니 말이다.
최민혁은 크로노스 측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덕 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크로노스 선수 중 한 명이 최민혁에게 수건과 이온 음료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겨울이지만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고 온 최민혁의 이마엔 살짝 땀이 맺혀 있었다. 최민혁은 받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이온 음료를 들이켰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축포와 함께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해요. 생애 첫 홈런! 그랜드슬램 달성을! 약속대로 +1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세나의 말 후 그녀가 약속한 대로 간결한 상태창이 바로 떴다.
[획득 포인트 +100, 타자 총 포인트: +140]
사회인 야구단에 끼어 야구 좀 했다고 이렇게 140포인트가 벌다니. 최민혁의 입에 귀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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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에게 불의의 홈런을, 그것도 4점 짜리 만루 홈런을 맞은 유명철은 허탈했다. 그런 그를 위로 하려고 데스페라도의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형! 괜찮아요. 그래봐야 2점 찬데요 뭘. 제가 다음 타석에서 홈런 쳐서 만회, 아니 역전 시켜 버릴 테니까 힘내세요.”
자기보다 3살 어린 포수의 위로에 유명철은 피식 웃었다.
“그래. 다음 회에 네가 뒤집어. 난 멀쩡하니까 신경 쓸 거 없어. 가 봐.”
“네. 형.”
포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 놓고 난 유명철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치밀어 올랐던 화가 빠르게 진정이 되었다.
“그래. 받은 만큼 되갚아 줘야지.”
질끈 입술을 깨문 유명철의 시선이 포수의 미트 아래 손가락으로 향했다. 포수의 포심 사인에 유명철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체 없이 퀵 모션으로 힘차게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퍼엉!
140Km/h가 넘는 공이 순식간에 투구 거리를 지나며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타석에 선 크로노스의 타자 어깨가 움찔 거렸다.
“스트라이크!”
주심이 쩌렁쩌렁하게 콜을 하면서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