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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34화 (3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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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오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한상현은 지상낙원의 휴양지로 불리는 푸켓에 와 있었다. 지금 그는 올 일 년 동안 가정에 무관심했던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족들이 웃고 떠들고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걸 지켜보며 한상현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일견 저들이 안 됐기도 했다. 자신 같이 야구하는 남편과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 가족들이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는 휴양 와서 무슨 핸드폰이냐며 핸드폰은 사진 찍을 때나 쓰라고 했지만 혹시 2군에 무슨 문제라도 터지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요량으로 한상현은 핸드폰을 로밍 해 뒀다.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2군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놈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가 푸켓으로 가족 여행을 간 걸 아는 녀석이 말이다.

“내가 웬만하면 전화하지 말라고 했거늘.”

한상현은 2군 식당에 고기반찬이 없다는 시답잖은 소릴 늘어놓으면 조재익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왜?”

국제전화라 그런지 전화 감도가 좀 멀었다.

-코치님. 제가 지금 민혁이랑 있는데예.

“민혁이?”

-네. 민혁이가 글쎄 커브와 커터를 완벽하게 던지지 뭐겠어예.

“뭐라고? 민혁이가 뭘 던져?”

-커브랑 커터예

“너 당, 아니. 고기 떨어졌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어.”

-헛소리 아니라예. 진짜........................

조재익의 얘기가 길어질수록 한상현의 얼굴도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진짜지?”

-네. 제가 직접 받았다 아입니꺼. 특히 커터는 포심이랑 투구 동작이 완전 같아예.

“허어. 이게 당최 무슨 일인지......”

그때 조재익이 다급히 말했다.

-민혁이 옵니더.

그리곤 전화가 끊겼다. 한상혁은 잠시 멍하니 푸른 바다 저 멀리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물론 전화를 건 상대는 최민혁이었다. 민혁은 바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너 커브와 커터 던질 줄 안다며? 어떻게 된 거야?”

그 물음에 최민혁이 바로 대답했다.

-올해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연습을 했더니.... 어째든 좋은 결과를 나왔네요.

“허어. 언제 그런 기특한”

그러고 보니 올해 최민혁이 유독 잔꾀를 부리고 훈련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헌데 그것이 커브와 커터를 익히느라 그랬다니. 한상현은 그때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은 자신이 무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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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한상현 코치와 통화 하면서 시종일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역시 사람 상대하는 건 이전 최민혁이 지금 최민혁의 발끝도 따라 오지 못했다.

-그래. 내가 지금 멀리 나와 있어서 그걸 못 보는 게 통한이다. 귀국하면 한 번 보자. 아니. 네가 대구로 잠깐 내려오면 안 될까?

당연히 최민혁은 한상현 코치에 휘둘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말이다.

“대구 내려가는 건 저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지금 해외여행중이시고 그때 돌아오시거든요. 저도 전지훈련 가기 전에 가족들과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 빨로야 이제 누구랑 붙여 놔도 질 리 없는 최민혁이었다. 자신은 가족들과 푸켓까지 놀러와 놓고 최민혁에게는 가족을 버리고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한상현 코치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얘기했다.

-그건 그렇지. 알았다. 어차피 전지훈련 끝나고 시간이야 있으니까.

그때 전화기 너머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한상현 코치가 뭐라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한국에 가면 연락하겠단 말을 끝으로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한상현 오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와 통화를 끝낸 최민혁이 도끼눈으로 조재익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조재익이 곰이 웅크리듯 몸을 상체를 푹 숙이며 말했다.

“내도 기뻐서 그랬다아이가. 니깡내깡 내년에 개고생 안하게 생겼슨께.”

“개고생?”

“그라모 그게 개고생이지. 한 코치 지랄에 다가 훈련은 빡세지. 너는 그래도 1군에서라도 뛰제. 내는 뭐꼬?”

갑자기 조재익이 움츠렸던 거구의 몸을 펴며 열불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잘한 건 아니었다.

“네가 2군에서 뛰는 건 니 실력이 그것 밖에 안 돼서 그렇고. 그래서 지금 잘했단 거냐?”

“아니 그건 아니고. 그란데 니 진짜 말 싸가지 없게 한다. 내가 친구만 아이었어도 넌 쥐어 터졌어.”

“그래. 넌 날 때리고, 난 입원하고, 넌 구속되고, 그 다음은? 선수 생활 쫑 나겠지.”

“에이. 씨....”

최민혁이 말에 조재익은 발끈 했지만 참을성은 있었다. 아무래도 오랜 2군 생활이 그의 심성을 바꿔 놓은 모양이었다. 조재익 같은 단순한 성격은 너무 몰아붙이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래서 최민혁은 더 그를 뭐라고 하지 않았다.

“개고생 안 하게 된 기념으로다가 축배나 할까?”

“축배?”

조재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아하니 고기만큼이나 술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주의가 요망 되었다.

“이기 뭐꼬?”

조재익은 눈앞의 맥주 2캔을 보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에게 최민혁이 말했다.

“내일도 연습해야지.”

“그건 니 연습이고. 나는 공만 받아 주면 되는데. 몇 캔 더 갖고 온나 마.”

“안 돼!”

몇 캔이 곧 몇 박스가 될 터였다. 조재익은 몇 번 더 최민혁에게 애원을 했지만 그가 꿈쩍도 않자 투덜거렸다.

“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놈아. 그래. 잘 묵고 잘 살아라.”

그 말을 듣고 최민혁이 차분히 말했다.

“술 끊어. 그래야 1군 올라와.”

최민혁의 그 말에 조재익이 움찔하더니 단숨에 남은 캔 맥주를 비웠다.

와자작!

그리곤 손 안에 맥주 캔을 짜부라트려 놓고 최민혁을 확 째려 본 뒤 휑하니 객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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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야구를 하기로 결심한 탓일까? 더 이상 신병(神病)의 증상은 보이지 않았고 잠을 자도 악몽을 꾸지 않았다. 당연히 잠잘 동안 그의 몸이 헛짓거리를 하는 일도 안 일어났다.

개운 하게 잘 잔 최민혁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7시 전이었다. 최민혁은 세수를 하고 1층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은 여동생인 최다혜가 빵을 먹고 싶다고 해서 식빵을 굽고 커피를 내렸다. 또 고기 좋아하는 인간을 고려해서 베이컨과 쏘시지도 빠트리지 않고 준비를 했고 계란 후라이도 10개를 했다.

“아침부터 빵조가리가?”

조재익이 아침 메뉴를 보고 싫은 티를 냈지만 녀석은 계란 후라이 8개와 식빵 10개, 베이컨과 쏘시지를 90% 혼자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갓 내린 커피를 무슨 숭늉 마시듯 했고 말이다. 그걸 보고 가만있을 최다혜가 아니었다.

“돼지!”

그 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조재익은 최민혁이 남긴 식빵을 다 먹은 쨈통에 넣어 닦아 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돼지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발끈하는 최다혜를 보고 조재익이 말했다.

“아깝다 아이가.”

최민혁은 조재익이 싹싹 음식을 더 먹어치워 버릴 게 없어 좋았다. 아침 식사 후 최다혜는 더 자러 자기 방에 들어가고 최민혁과 조재익은 외출 준비를 했다.

“일산 실내 야구장에 가자꼬?”

“응. 어제 뒤에서 던져 보니까 확실히 춥더라.”

“하긴 추운데서 공 던져봐야 부상 위험만 커제. 그래 거기 가자.”

최민혁은 조재익이 그 큰 배낭을 메고 나오자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그리곤 자신의 가방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필요한 것만 챙겨 가자.”

그렇게 최민혁과 조재익은 연습 때 입을 훈련복과 글러브, 야구공 몇 개만 챙겨서 가방에 넣고 곧장 집을 나섰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선지 일산 실내 야구장까지 가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실내 야구장은 평일, 그것도 오전이다 보니 사람은 별로 없었다.

2018 KBO 프로야구는 막을 내리고 스토브리그가 진행되는 겨울이었다. 프로야구팀들은 내년시즌 팀의 전력상승을 위해 FA자유계약선수의 영입이나 외국인 선수 계약 등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사회인야구, 동호인야구 회원들은 연습경기를 하며 열심히 겨울나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실내 야구장을 찾았고 평일 밤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그런 사정을 다 알아 본 터라 최민혁은 실내 연습장에 사람이 없을 타이밍에 맞춰 여기에 온 것이다.

가볍게 조재익과 연습장 주위를 뛰면서 몸을 풀기 시작한 최민혁은 한 시간 뒤 본격적으로 투구를 시작했다.

펑! 펑! 펑!

조재익의 미트가 터질 듯 내리꽂히는 최민혁의 강속구에 실내 야구장에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 죄다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우와! 공 진짜 빠르다.”

“프로 같은데?”

“맞지? 공 끝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 봐라.”

다들 신기해하며 최민혁의 투구를 구경했는데 최민혁은 누가 보던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구종들을 전부 섞어가며 공을 던졌다. 그렇게 딱 100개의 공을 던진 최민혁이 호흡을 고르며 투구를 멈추자 묵묵히 그의 공을 받아 주던 조재익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최고다마. 지금 이정도모 전지훈련하고 시범경기 씹어 먹겠다.”

그러자 마스크를 쓰고 있던 최민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재익이야 2군 포수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최민혁은 달랐다. 그래서 투구를 할 때 그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하자 사람들은 일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들 다 야구를 하고 또 야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보니 대충 그가 누군지 짐작은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최민혁이 일부러 마스크까지 쓰고 투구를 하고 있다 보니 그 사람들도 쉽사리 그에게 접근하진 못했다.

“야. 사인해 달라고 할까?”

“하지 마. 가 봐야 허사야. 자기가 최민혁이 아니라면 어쩔 거야? 마스크라도 벗겨 보게?”

“그렇네.”

“대한민국 최고 에이스 최민혁의 공을 구경한 것에 만족하자고.”

“하긴. 근데 진짜 대단하더라. 공이 어후........”

“이 겨울에도 구속이 150Km/h은 넘는 거 같던데?”

“말이 150Km/h지 타석에 서 봐. 그냥 슉 들어온다. 뭐 어떻게 치고 자실 틈도 없다고.”

“근데 최민혁 내년 FA아냐?”

“맞아.”

“국내 있을 건가?”

“에이 설마. 저런 공을 가지고 국내 무대 있긴 아깝지.”

“그렇지? 그럼 후 내 년엔 최민혁을 메이저 리그에서 보는 건가?”

“최민혁 정도라면 메이저 리그에서 3-4선발은 뛸 수 있을 거야.”

“기대 된다. 그런데 어떤 메이저 어떤 팀에서 뛸까?”

“그야 돈 많이 주는 데 겠지.”

최민혁 주위의 구경꾼들은 다들 최민혁이 내년 FA때 미국으로 진출 할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건 조재익도 마찬가지였다.

“니 메이저에서 오퍼 들어 온 데 없나?”

“없어.”

최민혁은 딱 끊어 얘기했다. 하지만 이전 최민혁의 기억에 따르면 오퍼는 있었다. 최민혁이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

지금 최민혁은 국내무대지만 2019시즌을 어떻게 잘 뛰어야 할지 그게 걱정이었다. 메이저 리그? 그건 지금 최민혁에게 먼 얘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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