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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33화 (3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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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최민혁이 커브를 던졌을 때도 놀랐지만 커터를 던졌을 때 조재익은 더 많이 놀랐다.

커브가 블레이킹 볼인데 비해 커터는 컷패스트볼, 말 그대로 빠른 공이었다. 물론 패스트 볼 만큼의 속도와 움직임은 아니지만 슬라이드보다는 빨랐다. 그런데 그 빠른 공이 휘었다. 오른손투수가 던졌을 때, 오른손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몸 바깥쪽인 아웃사이드(아웃코스)로, 왼손타자 입장에서는 몸 안쪽인 인사이드(인코스)로 공이 휘는 것이다.

커터는 패스트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가다가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순간적으로 휘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공을 배트에 제대로 맞추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조재익은 더 흥분해 하고 있었다. 주저앉아 있다 벌떡 몸을 일으킨 조재익이 마운드 위의 최민혁을 향해 외쳤다.

“야아야. 니 커터하고 포심하고 나오는 팔 궤적이 똑같은 거 아나?”

당연히 최민혁이 그걸 알 리 없었다. 일단 커브와 커터란 구종 자체를 오늘 처음 던져 보는데다가 그 자신의 투구 폼을 거울 앞에서 던지고 그걸 자신이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조재익은 친절하게도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최민혁에게 상세히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니 커터 구속이 140Km/h 후반은 나온다 아이가. 그라모 포심하고 섞어 던지면 이건 아무도 못 친다. 언터처블이다. 언터처블!”

조재익의 설명에 따르면 포심과 컷패스트볼의 조합은 상상을 초월할 위력을 발휘할 거라고 했다. 컷패스트볼의 구위가 거의 150Km/h 언저리가 나오고 포심이 155Km/h가 나오는 최민혁의 공은 메이저 리그 타자들도 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기다 무서운 건 최민혁은 포심과 동일한 자세에 동일한 팔각도에서 커터를 던진다는 점이었다.

“............그랑께 구속차도 거의 나지 않는 니 커터에 타자들은 다 속을 수밖에 없다 아이가.”

한마디로 최민혁의 포심과 커터가 서로 궁합이 잘 맞단 소리였다. 그래서 둘의 조합이 앞으로 2019년 KBO리그에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게 될 거라며 조재익이 연신 입을 털어댔다.

“자자. 결정구 커터 두 개만 더 엿따 쑤셔 봐라.”

조재익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미트를 벌름거렸다. 최민혁은 그런 조재익의 미트에 커터 두 방을 선사했다.

“야아야. 이제 끝났삤다. 울 나라에선 이제 니 공 칠 놈은 없다 아이가. 재수 없음 한두 개 맞겠지만 공에 실린 힘이 워낙에 쎄니 넘기진 못할 끼고.....우째든 니한테서 점수 빼긴 어려울 기다.”

조재익의 칭찬에 최민혁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섞어서 던질 테니까 공이나 잘 받아.”

“알았다마. 막 쑤시라. 내 다 받아 주꾸마.”

조재익의 야한 농담 섞인 말에 최민혁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집중해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포수의 미트질에 더 찰 지게 울리는 포구 음에 최민혁은 더 신이 나서 공을 던졌다. 그렇게 투구수가 100개를 넘어가자 조재익이 말했다.

“니 참 어깨하고 팔꿈치 좀 어떻노?”

“일찍도 물어 본다. 병원 갔는데 괜찮다더라.”

“진짜가? 잘 됐다. 그라모 감독님이 그때 뭘 잘못 본 모양이네.”

“그때는 말씀 못 드렸는데 전날 팔꿈치를 어디에 좀 부딪쳤거든.”

“그랬나? 앞으로 조심해라. 니 그 팔 억만 불 짜리 팔이 될지도 모르는데.”

“억만 불은 무슨.....”

“아이다. 니가 저스틴 벌렌더 (Justin Verlander, 디트로이트, 7년 1억8000만 달러)나 펠릭스 에르난데스 (Felix Hernandez, 시애틀, 7년 1억7500만 달러) 못한 게 뭔데?”

“그만 얼굴에 금칠해라. 근데 저녁은 뭐 먹을래?”

“저녁?”

조재익은 최민혁의 저녁이란 말에 주위를 살피다가 해가 지고 있음을 깨닫고 말했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가?”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진다. 하지만 직접 저녁을 해먹어야 하는 최민혁에게는 지금 부엌으로 가야 저녁을 지을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라.”

“먹고 싶은 거? 그야 당근 빳따 고기지.”

곰처럼 생긴 조재익은 알고 보니 곰가죽을 쓴 돼지였다. 얼마나 처먹던지.....

“수육 어때?”

“수육? 좋지. 내사 고기모 다 좋다 아이가.”

“가자.”

최민혁은 조재익과 같이 투구장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조재익은 최민혁이 씻지도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물었다.

“니 거기는 왜 들어가는데?”

“저녁부터 안쳐 놓으려고.”

“뭐어? 지금 니가 밥할끼라고?”

“응.”

“으응? 이기 미칫나. 불알 달린 사내새끼가 할 짓이 없어서 정지(부엌)서 밥을 해?”

그렇게 발끈하는 조재익을 향해 최민혁이 말했다.

“그럼 넌 밥 먹지 말던가.”

“뭐어?”

그 말 후 최민혁은 부엌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고 황당한 얼굴의 조재익은 고개를 내젖다가 2층으로 올라가서 샤워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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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쌀을 씻고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안친 뒤 냉장고를 열었다. 크리스마스 날 강하나가 사온 식자재 중에 목살과 삼겹살이 꽤 많이 남아 있어서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 뒀는데 그걸 오늘 다 해치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최민혁은 두툼한 목살과 삼겹살을 물속에 넣어 해동을 시키고는 큰 냄비에 물을 끓였다. 잡내를 잡기 위해서 양파, 대파, 된장, 커피, 후추, 청주를 넣고 월계수 잎이 있어서 그것도 넣었다. 그 뒤 돼지고기가 푹 삶기는 동안 최민혁은 김치 냉장고로 가서 김장 김치를 꺼냈다.

김장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탓에 김치는 방금 담근 김치 같았다. 그 김치를 먹기 좋게 자르고 무를 잘게 썰어서 생채를 만들었다. 그 다음 냉동실의 해물을 꺼내서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끓였다.

밥이 다 되고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을 때였다.

“오빠! 나왔어.”

최민혁의 여동생 최다혜가 집에 돌아왔다.

“으으음. 맛있는 냄새! 뭐 만들어?”

최다혜가 배꼼 부엌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런 그녀에게 최민혁이 도마위에 파를 썰며 말했다.

“빨리 손 씻고 와. 밥 다 됐으니까.”

“알았어.”

최다혜가 후다닥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최민혁은 된장찌개에 썬 파를 넣고는 그 옆에 팔팔 끓고 있는 돼지고기 수육의 상태를 살폈다. 젓가락으로 수육을 찌르자 쑥 들어가는 게 다 익은 모양이었다.

최민혁은 돼지고기 덩어리들을 꺼내서 도마 위에 올려두고 다 끓은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고 반찬도 보기 좋게 그 위에 차렸다.

서걱서걱!

최민혁이 딱 먹기 좋은 크기로 돼지고기 덩어리를 썰고 있을 때였다.

“으아아악!”

“아이고. 놀래라. 아아(애) 떨어질 뻔 했네.”

“도, 도둑!”

“뭐라카노 이 가스나가. 내가 어딜 봐서 도둑 같은 데?”

지금 최민혁의 기억엔 없지만 최다혜와 조재익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조재익이 최민혁의 부모님을 안다는 건 최다혜가 없을 때 최민혁이 조재익을 집으로 데려 온 모양이었다.

최민혁은 들고 있던 식칼을 내려놓고 부엌 밖으로 나갔다.

“오빠!”

“민혁아!”

최민혁의 등장에 최다혜와 조재익이 동시에 그를 불렀다. 그런 둘에게 최민혁이 성의 없이 둘을 소개했다.

“여긴 내 동생, 저긴 내 고교 동창이자 같은 팀 동료.”

그 말 후 최민혁은 휑하니 뒤돌아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덩그러니 남은 둘은 잠시 어색하니 서 있다가 최민혁이 들어간 부엌으로 후다닥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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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의 된장찌개와 그 옆에 수북이 쌓인 수육을 보고 최다혜와 조재익은 군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 그들 앞에 최민혁이 밥그릇을 건네자 그걸 받아 든 두 사람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쩝쩝쩝.....고기가 잘 쌈킨네.”

“후룩! 카아. 오빠. 된장국 진짜 짱이야. 엄마보다 더 잘 끓이는 거 같아. 최고!”

최민혁은 수육을 소금과 된장에 찍어서 잘 먹는 조재익 앞에 김치와 무생채를 권했다.

“고기만 먹지 말고 골고루.....같이 좀 먹어라.”

“쩝쩝쩝.....알것다.....우걱우걱.....”

최민혁의 예상대로 냉동고에 남은 돼지고기들은 전부 해치웠다. 그 중 80%가 조재익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최다혜도 보쌈과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아아. 배불러.”

배를 두드리던 최다혜는 슬쩍 최민혁의 눈치를 살피다 후다닥 부엌을 나갔다. 최민혁은 어차피 손님이 있는 관계로 자신이 설거지와 뒷정리를 할 생각이었던 터라 그런 최다혜를 뭐라고 하진 않았다.

식사 후 최민혁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최다혜는 1층 거실을, 조재익은 2층 거실을 차지하고 TV를 시청했다. 최민혁은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서 세나에게 물었다.

“세나. 왜 투수니까 나도 투구 훈련을 하잖아? 그럼 내가 가진 구종들의 능력치도 올라가는 거야?”

[당연하죠.]

세나의 대답에 최민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노력으로 얼마든지 각 구종들의 능력치를 끌어 올릴 수 있단 소리니 말이다. 하지만 뒤이어진 세나의 말에 최민혁의 웃던 얼굴에서 웃음 끼가 싹 사라졌다.

[근데 능력치가 오르는 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제 통계에 따르면 투수들이 매일 꾸준히 투구 훈련을 했을 시 능력치 1이 오르려면 족히 6개월은 걸려요.]

“6개월이라고?”

6개월을 매일 오늘처럼 100구의 공을 던지고 고작 능력치 1이 오른다는 세나의 말에 최민혁은 그냥 포인트로 능력치를 구입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그 시간에 사업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게 낫겠어.”

그렇게 번 돈은 곧 포인트로 적립 될 테니 그 돈으로 야구의 능력치를 올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최민혁은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 뒷정리까지 하고 난 뒤 부엌을 나섰다.

“호호호호!”

그때 거실에선 최다혜가 TV를 보고 웃고 난리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나 TV를 봤더니 화면에 한가연의 얼굴이 나왔다. 무슨 예능프로 같은데 한가연이 화려한 치어리더 동작을 선보이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휘청거렸다. 그때 곤욕스런 얼굴 표정을 짓는 그녀의 얼굴이 하필 TV화면에 크게 잡힌 것이다. 그게 왜 웃긴지 최다혜는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한가연에게 아무 감정도 없는 최민혁은 여동생이 그러던 말든 상관하지 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2층 거실에서 누구랑 통화 중이던 조재익이 최민혁이 나타나자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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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수상쩍게 조재익을 쏘아보자 조재익이 모른 척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댄 체 시선을 TV에 고정 시켰다. 최민혁은 조재익이 자신의 눈길을 피하는 게 녀석이 뭔가 그에게 찔리는 짓을 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에 쓰던 핸드폰이 사고로 박살 난 탓에 그의 새 핸드폰에는 저장 된 전화번호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 전환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최민혁은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혁아. 나다. 너 커브와 커터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면서?

커브와 커터 타령을 하는 거 보니 누군지 알거 같았다. 최민혁의 시선이 조재익을 향했고 그 눈길을 의식한 듯 조재익이 슬그머니 곰 같은 몸을 돌려 최민혁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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