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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그런 최민혁의 차를 한세정이 넋 놓고 쳐다보고 있을 때 윤해숙이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민혁이가 많이 멋있어졌네.”
“그렇지? 오빠 멋있지?”
들뜬 딸의 반응에 윤해숙은 웃었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딸애만큼은 운동하는 남자와 만나지 말았으면 했는데.......’
하지만 어디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되던가? 윤해숙은 자신에게 팔짱을 끼며 연신 최민혁에 대해 떠들어대는 딸을 보며 그래도 최민혁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명으로 프로에서 은퇴해서 고등학교 야구 감독이 된 남편과 달리 최민혁은 국내 최정상급 투수였다. 그가 한 해 받는 연봉만 해도 억 단위는 넘어 갈 터. 거기다 윤해숙이 알기로 최민혁의 집안도 보통은 아니었다.
‘인연이면......운명이라면...... 결국 이어지겠지.’
아직 딸은 미성년자였다. 앞으로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윤해숙은 예전에 자신이 그랬듯 모든 건 딸의 결정에 맡길 생각이었다.
“엄마 진짜 괜찮아?”
“응. 이제 다 나았어.”
최민혁의 고집에 몸에 좋다는 주사는 다 맞은 윤해숙은 이제 정말 움직일 만 했다. 그래서 팔을 걷어붙였다. 이따 저녁에 식사를 하러 오기로 한 최민혁을 위해서 다시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기 시작 한 것이다. 그런 그녀 곁에서 한세정이 열심히 엄마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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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집을 나선 최민혁의 차가 막 광명시에 위치한 한상수 감독의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서울의 일반전화였다. 최민혁도 이때쯤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올 때가 되었다 싶어 그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동수의 가게가 있는 곳의 관할 경찰서였다. 그런데 전화 건 사건 담당 형사의 태도가 아주 친절했다.
“.....그래서 오후에 참고인 진술을 하러 갈까 하는데 괜찮을 까요?”
[물론입니다. 최민혁 선수 편할 때 오시면 됩니다. 그냥 형식적인 절차라고 여기시고 아무 걱정 마시고 오십시오.]
“네. 그럼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최민혁은 홀가분하게 차에서 내렸다. 이종석 검찰총장이 자기가 한 말 그대로 제대로 일처리를 해 둔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상수 감독의 집에서 정작 문제가 생겼다.
사모님이 아프단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안색이 파리한 게 몸이 딱 안 좋아 보였다. 놀란 최민혁은 그녀를 들쳐 업고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향했고 안 좋다고 말한 곳을 집중적으로 검사 받았다. 그 결과 다행히 크게 문제 될 정도로 아픈 곳은 없었다.
최민혁은 윤해숙이 검사를 받는 동안 틈을 내서 광주에 있는 조명진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조명진의 부친 되시는 어르신이 이번 기일엔 최민혁 보고 오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 왔다.
그 이유는 묘지 이전 문제 때문이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지 못한 조명진이다 보니 향후 그의 묘를 관리하는 게 가족 간에 문제가 된 모양이었다.
즉 제삿날 가족끼리 그 문제로 언쟁이 있을 텐데 그 자리에 최민혁이 와서 좋을 게 없을 거란 게 어르신의 생각이었다.
최민혁은 그런 어르신의 의중을 존중해서 이번에 조명진 기일에 그의 집에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르신의 통장으로 용돈 삼아 쓰시게 돈을 부쳐드렸다.
어째든 이로써 전라남도 광주까지 가지 않아도 되게 된 최민혁은 윤해숙이 검사를 다 받은 뒤 그들과 같이 고기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윤해숙이 크게 아픈 곳이 없단 얘기를 듣고 난 뒤 안심이 된 한세정은 돼지갈비 4인분에다가 냉면까지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윤해숙도 집에 누워 있을 때 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집에 데려다 준 뒤 최민혁은 곧장 서울로 향했다.
오후에 가기로 했지만 그래도 5시 이전에는 가야 할 거 같아서 서둘렀는데 다행히 4시 40분쯤 강남경찰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전에 그에게 전화를 건 담당 형사의 말처럼 참고인 조사는 형식적이었다. 이미 다 작성 되어 있는 조서에 최민혁은 그저 확인 지장만 찍었다.
“다 끝났습니다. 그만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그 조서를 챙기며 담당 형사가 말했고 최민혁은 곧장 경찰서를 나섰다. 최민혁은 다시 광명시로 향했고 6시 반쯤 한상수 감독의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우와. 이게 다 뭡니까?”
최민혁은 상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는 밥상을 보고 입을 쩌억 벌렸다.
“오늘 수고 많았다. 민혁아. 많이 먹어라.”
“네. 사모님.”
넉살좋게 밥상 앞에 앉은 최민혁은 열심히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그런 그를 두 모녀가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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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식사 후 윤해숙에게 준비 해 온 상품권을 건넸다.
“뭐 하러 이런 걸.....”
최민혁에게 이렇게 받은 상품권으로 윤해숙은 장을 봐서 한세정에게 보양식을 해 먹였다. 다른 능력 있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전 과목 과외를 시킨다는 데 윤해숙은 그럴 돈이 없었다. 대신 먹는 거라도 잘 먹여서 딸이 체력적으로 공부하는 데 무리가 없게는 해 주었던 것이다.
“잘 쓸게.”
최민혁이 무슨 생각으로 마트 상품권을 그녀에게 건네는 지 잘 아는 윤해숙은 사양치 않고 그걸 받았다.
예전에 몇 차례 최민혁은 생활비에 보태쓰시라고 윤해숙에게 돈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때 윤해숙은 정색을 하며 화를 냈다. 자신은 거지가 아니라며 말이다. 그 때 최민혁은 윤해숙이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단 걸 알게 되었고 돈 대신 마트 상품권을 주며 말했다.
“세정이 맛난 거 해 주세요.”
그런 최민혁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한 윤해숙은 그 뒤 최민혁이 남 같지가 않았다.
“자. 그럼 우리 갈까?”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신 최민혁이 몸을 일으키며 한세정에게 말했다. 지금쯤 출발해야 9시에 있을 캣츠 마지막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금방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온 세정이 모친과 최민혁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 윤해숙은 볼 수 있었다. 한세정이 옅게 화장을 하고 입술에 립밤을 바른 걸 말이다.
윤해숙은 그런 한세정을 보고 많이 놀랐다. 공부밖에 모르던 녀석이 화장을 다 하고 말이다.
윤해숙의 시선이 힐끗 최민혁을 향했는데 그는 푸근한 오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안심이 된 윤해숙은 최민혁과 딸을 아파트 엘리베이트 앞까지 배웅했다.
최민혁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한세정에게 매너 있게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그때 최민혁은 한세정의 얼굴이 시뻘게지는 걸 알지 못했다. 그에게 한세정은 아직 미성년자인 꼬맹이에 불과했으니까.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커튼콜이 계속 이어질 정도로. 캣츠를 보는 내내 최민혁은 감회가 새로웠다. 캣츠 공연만 10번은 더 본 그였지만 실제 무대 위의 공연을 현장에서 직접 보는 건 흥미로웠고 그를 흥분되게 만들었다.
“오빠. 진짜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그 못지않게 흥분한 아이가 있었다. 공연히 끝나 뒤에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들뜬 한세정에게 최민혁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였다. 그리곤 12시가 되기 전에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오빠. 저 내년에도 뮤지컬 또 같이 볼 수 있는 거죠?”
“그럼. 내년에는 시카고 보도록 하자.”
“오예! 약속한 거예요.”
폴짝 뛰며 좋아하던 그녀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최민혁이 막 몸을 돌릴 때였다.
“오빠!”
갑자기 뒤에서 한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민혁이 몸을 돌리자 어느 새 그 앞까지 달려 온 한세정이 그 앞에 바짝 다가서서는 발꿈치를 들어 올렸다.
“쪼옥!”
그리곤 최민혁의 볼에 뽀뽀를 하곤 뒤돌아서 냅다 아파트 입구로 달아났다. 그리곤 아파트 입구 앞에서 최민혁을 보고 외쳤다.
“내년엔 진짜 입술에 키스 할 거예요.”
그 말 후 후다닥 아파트 안으로 사라지는 한세정을 보며 최민혁은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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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집에 돌아왔을 때 거실에서 여태 자지 않고 TV를 보고 있던 최다혜가 한 소리를 했다.
“어딜 싸돌아다니다 이제 기어들어오는 거야?”
갑자기 그녀가 자기 부모라도 된 듯 굴자 최민혁이 피식 웃었다.
“까분다. 저녁은 먹었어?”
“그럼 먹었지. 시간이 몇 신데. 어제 얘기를 하고 있어.”
최다혜의 말처럼 시간이 새벽 1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그러니 최민혁의 저녁 얘기는 진짜 어제 얘기가 맞았다.
“누구 만나고 온 거야? 혹시 여태 민예린 그 여자 만나고 온 건 아니겠지?”
“말했잖아. 헤어졌다고.”
“정말 아니지?”
“응. 나 올라간다. 너도 TV 그만보고 빨리 자.”
최민혁은 곧장 2층으로 올라가서 샤워 후 자기 방에 들어갔다. 종일 바쁘게 움직인 탓에 피곤해서 잠이 왔지만 최민혁은 자기가 두려웠다. 또 자다가 악몽을 꿀까봐 말이다. 그런 그에게 세나가 말했다.
[마스터는 오늘 하루 그 누구보다 최민혁으로 사셨습니다. 최민혁의 몸도 그걸 알거라고 봅니다.]
그 말에 어느 정도 안도는 되었지만 그래도 몰라서 최민혁은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입었던 유니폼 상의를 걸치고 침대에 누웠다. 안 그래도 잠이 왔던 터라 최민혁은 이내 잠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예외 없이 꿈을 꾸었다. 근데 악몽은 아니었다.
꿈에 최민혁이 나타났다. 그는 한상수 감독의 부인과 딸 세정에게 신경 써 준 것에 대해 지금의 최민혁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 뒤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지금 최민혁의 의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왔다. 그건 자신의 27년 인생을 부정하는 짓이라며 말이다. 더불어 야구를 하지 않고는 자기 몸으로 살 수 없을 거라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이에 지금의 최민혁도 그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가운데 최민혁은 잠에서 깼다.
“으음.....”
눈을 뜨니 날이 밝아 있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아침 8시.
“끄응!”
최민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는데 온몸이 찌뿌듯해서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꿈을 꿀 때 몸도 가만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 준 뒤 1층으로 내려갔다.
최다혜는 쿨쿨 잘고 있었고 최민혁은 쌀을 씻고 밥부터 안쳤다. 그 다음 있는 식자재로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감자계란국을 끓였다.
최민혁이 감자계란국에 밥을 한 그릇 말아서 뚝딱 해치고 나자 최다혜가 방에서 나왔다.
“나도 밥 줘.”
최민혁은 일체 잔소리 없이 그녀에게 아침상을 차려 주었다.
“설거지는 네가 해.”
“알았어.”
최다혜의 대답을 듣고 최민혁이 막 부엌을 나설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조재익이었다. 오성 라이온즈 2군 포수이자 최민혁의 고교 동창.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가 왜 자신에게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걸어 왔는지 의아해 하며 최민혁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혁아. 내다.
“어. 그래.”
-지금 서울로 출발한다고.
“뭐?”
-미안하다. 챙길 게 좀 많아가꼬. 첫 차를 놓쳤삐따 아이가. 도착시간이 12시 30분이니까 그 때 마차서 터미널로 나와라.
“아, 아니. 내가 왜 터미널에 나가야 하는데?”
-야가 뭐라쌌노? 새벽에 전화해서 공 좀 받아 주라고 지가 글캐놓고.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