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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보아하니 설거지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쪼르르 거실로 나온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최민혁이 말했다.
“인간적으로다 네가 먹은 거는 네가 치워라.”
“알았어. 이따 할게.”
최다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최민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최민혁은 짧게 한 숨을 내 쉬곤 곧장 현관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TV를 보고 있던 최다혜가 힐끗 그를 쳐다보았고 놀란 듯 말했다.
“오빠 어디 가?”
“응. 친구 좀 만나러.”
“친구? 오빠가 친구가 있었어?”
“............”
최민혁은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침묵하며 현관에서 구두를 찾아 신었다. 그때 최민혁의 옷차림을 보고 최다혜가 말했다.
“오빠. 그 옷 뭐야? 처음 보는 건데?”
최민혁이 패션테러리스트란 걸 아는 최다혜는 갑자기 최민혁이 깔삼한 옷차림을 하고 있자 어리둥절해 하며 물은 것이다. 최민혁은 최다혜의 물음에 대답 대신 말했다.
“설거지 해 놔라. 와서 보고 안 해 놨으면..... 다음부터 너 줄 밥도 없다는 걸 명심하고.”
“알았다고. 내가 한다고 했잖아. 에이!”
버럭 소리치는 최다혜를 뒤로하고 최민혁은 곧장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최민혁은 새로 산 그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서동수와 전화통화 후 최민혁은 능력빙의를 쓰고 남은 시간 동안 만나기로 한 서동수의 가게며 그와 자신이 예전에 주로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그 기억들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었다.
“강남역과 가깝군. 베아트리스(Beatrice)라......”
생각해 보니 예전에 민예린과 한 번 가려던 레스토랑이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약속이 취소되면서 거기 갈 일도 없어졌지만. 민예린이 스페인 음식을 잘하는 맛집이라고 한 기억이 났다.
최민혁은 차를 몰고 곧장 강남역으로 향했다. 강남역 근처에서 서동수의 가게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저기 있군.”
서동수의 레스토랑은 상당히 목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바로 그의 눈에 띠었고 최민혁은 레스토랑의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5분 정도 빨리 왔지만 그 정도는 에티켓이 아니겠는가?
“어서 와라.”
서동수가 사람 좋은 얼굴로 최민혁을 맞아 주었다. 서동수는 체격이 최민혁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당당했다. 그리고 악수를 해 보니 그 악력도 대단했다.
‘이 녀석 확실히 운동한 놈이네.’
최민혁은 서동수가 여간내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경각심이 살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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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국은 알다시피 군 면제자다.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그의 몸은 은근 근육질에 싸움도 잘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박규철 회장을 수행하는 일이 많아지자 경호 교육을 따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교육 과정은 특전사 훈련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 그는 군대에 가지 않았지만 현역병들보다 더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셈이었다.
지금도 차성국은 일대 일로 붙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서동수에게서 최민혁은 동질의 냄새를 맡았다. 특별하게 단련 된, 훈련 받은 강한 남자의 향을 말이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상대로군.’
서동수가 워낙 서글서글하니 남의 비위를 잘 맞추다보니 최민혁도 그와 친해졌는데 막상 친구라면서 최민혁이 서동수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그 만큼 서동수가 보기와는 달리 용의주도한 인물이란 소리였다.
여러모로 최민혁이 봤을 때 이전 최민혁은 서동수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손오공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이전의 그 최민혁이 아니었으니까.
“가자. 안 그래도 너 올 때 됐다니까 여자들이 꽃단장하고 난리다.”
서동수는 최민혁을 레스토랑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VIP룸이 있었는데 그곳이 서동수의 범죄의 온상지였다.
최민혁의 기억에 따르면 서동수는 주로 자신의 가게로 여자를 데려갔다. 그리곤 VIP룸으로 여자들을 넣고 맛있는 요리로 여자들을 방심하게 만든 뒤 술을 먹였다. 그러다 운 좋게 여자가 술이 취하면 비밀 쪽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반면 여자가 술이 특별히 세거나 꼭 집에 가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면 그때 약을 썼다. 물론 서동수가 약을 쓸 때면 최민혁은 눈치껏 그곳을 떠났지만.
“안녕하세요?”
“와아! 최민혁 선수다.”
“최 선수 팬이에요.”
언제나 그렇듯 VIP룸 안에는 늘씬한 미녀 셋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최민혁을 반겼다.
“최민혁입니다.”
최민혁은 쑥스러워 하며 그녀들 앞에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와 가장 가까운 거리의 미녀가 그에게 물었다.
“교통사고 당하셨다죠? 괜찮으신 건가요?”
“네.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다행이네요.”
“자자. 사고 얘긴 여기서 끝. 좋은 얘기도 아니고. 우리 즐겁게, 스마일. 일단 앉읍시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와인이 있는 게 그거 오늘 개봉합니다.”
“와아아아!”
서동수는 역시 여자 다루는 데 도사였다. 방금 온 최민혁을 엮어서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술을 마시게 상황을 유도해 나간 것이다.
여자들은 최민혁이 오기 전 서동수의 레스토랑 음식에 완전 매료 된 상태였다. 그렇다보니 더 쉽게 서동수의 말빨에 넘어갔다.
한국인에게 와인하면 왠지 술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게 도수가 상당했다. 때문에 멋모르고 마셨다가 꽐라 되기 십상이었다. 최민혁은 서동수가 권하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그 자리 뒤로 병풍이 쳐져 있었다.
‘저기로군.’
저 병풍 뒤에 바로 비밀 쪽방이 위치해 있었다. 최민혁이 자리에 앉자 서동수가 분주히 움직였다. 와인을 따고 와인 잔에 와인을 따라서 여자들에게 돌렸다. 역시 맨 마지막이 최민혁이었다. 놈이 최민혁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이었다.
“자자. 첫 잔은 원 샷 인거 아시죠?”
와인 잔을 들고 원 샷을 외쳐 대는 서동수를 보고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모든 게 서동수의 의도대로만 되진 않았다.
“저기 죄송한데....... 소속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지금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서동수의 노력으로 이제 막 와인 한 잔을 원 샷 시켰는데 걸 그룹 타사니의 멤버 제니가 갑자기 일이 생긴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죠. 급하신 거 같은데 어서 가보세요.”
서동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지만 최민혁이 봤을 때 꽤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 사이 제니는 남은 두 여자와 간단히 작별을 하고 가게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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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수는 타사니의 멤버 제니가 떠나고 자칫 처지기 쉬운 분위기를 띄우느라 열심히 입을 털어댔다.
“펭귄이 타는 차는 뭘까요?”
“에이. 너무 쉽다. 알래스카요.”
“억! 그럼 안 마셔도 취하는 술은요?”
“뭐야! 진짜..... 최면술요.”
“허억! 강적이다. 그럼 닭의 평균 수명은?”
“어? 그런 게 있어요?”
“닭 수명은 7-13년이니까 평균하면 10년이네요.”
“아니. 웃자고 한 얘기를 그렇게 리얼하게 받아드리면 어쩝니까? 닭의 평균 수명은 99, 즉 81요.”
“네에?”
“깔깔깔깔. 서 사장님이 이해해 주세요. 우리 혜미가 한국대 출신이잖아요.”
“우와. 진짭니까? 그런데 미스 코리아에요?”
“아뇨. 제가 미스 코리아고 얘는 그냥 제 친구에요.”
“와아아. 전 친구 분도 미스 코리아 출신 인 줄 알았어요. 안 그러냐?”
서동수가 대화에 최민혁을 슬쩍 끼워 넣었다. 그럴 것이 미스 코리아의 친구란 혜미란 한국대 출신 미녀는 아까부터 최민혁에게 유독 관심을 보여 왔었다.
그걸 알기에 서동수는 최민혁을 끌어 들여서 혜미란 여자를 공략해 나가려 했다. 아무래도 유명인 보다 일반인이 서동수가 가지고 놀기 더 좋았던 것이다.
“이건 진짜 모를 겁니다. 커피에 빠진 파리가 한 말은?”
“.............”
두 여자 모두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 거릴 때 서동수가 회심의 미소와 함께 그 답을 말하려 했다.
“쓴맛 단맛 다 봤다.”
그때 불쑥 최민혁이 말했다. 순간 서동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고 반면 두 여자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 그녀들은 그 답이 재미있어서 웃은 게 아니라 그 대답을 말한 후 무표정한 얼굴표정의 최민혁을 보고 웃은 것이다.
“민혁씨 표정 너무 웃긴다.”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게 대답 할 수 있어요?”
그 웃음 뒤 대화의 중심이 서동수에서 최민혁으로 옮겨왔다. 서동수는 두 여자의 관심을 자기에게 돌리려고 노력 했지만 최민혁이 그걸 허락지 않았다.
미스 코리아인 김성희와 그의 친구 이혜미는 앞에 먼저 일이 있어 간 타사니의 멤버 제니와 달리 지적 수준이 높았다.
서동수는 재미있긴 하지만 그녀들의 수준에 맞는 대화를 이끌어 가지 못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달랐다. 야구 선수 맞나 싶게 전 분야에 걸쳐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러니 두 여자들은 점점 더 그의 말에 빨려 들어갔고 결국 대화에서 완전 배제 되어 버린 서동수는 벌레 씹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들 하세요. 전 술 하고 안주를 좀 더 가지고 올게요.”
그렇게 씩씩거리며 VIP룸을 나서는 서동수를 보고 최민혁이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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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수는 어장 관리 차원에서 여친인 예지와 같이 크리스마스 사흘 전에 하와이로 떠났다. 그런데 그곳에서 황당무계한 일을 겪었다. 우연도 그런 우연은 아마 없을 터였다.
서동수가 사귀었던 여자와 예지가 사귀었던 남자가 중매로 만나 결혼해서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온 것이다.
당연히 서동수와 그의 여친 예지는 불안 불안한 가운데 하와이에서 첫날밤을 무사히 보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 사달이 일어났다. 서동수가 사귀었던 여자와 예지가 사귀었던 남자가 대판 싸우고 그들을 찾아와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이다.
서동수와 사귀었던 여자는 그를 잊지 못해서, 예지와 사귀었던 남자 역시 그녀가 그립다며 여전히 자신은 그녀를 사랑한다며 말이다.
결국 그들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대판 싸운 둘은 결국 헤어지기로 결정을 보았다.
그렇게 여친과의 여행이 이별 여행이 되어 버린 서동수는 당연히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밤에 그의 호구 최민혁을 불러내서 놀려고 했는데 녀석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아닌가?
“이 호구 새끼까지 날 우습게보네?”
결국 서동수는 최민혁 대신 조금 위험한 친구인 조병만을 불렀다. 조병만은 마약밀매조직원이다. 당연히 그의 수준엔 약이 있었고 그와 술을 마시면서 약도 같이 했다.
약에 취해 여자와 즐길 때 그 황홀감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터였다. 구름 위에서 그걸 하는 기분이랄까?
조병만과 같이 화끈하게 크리스마스 밤을 보낸 다음 날 서동수는 아름아름 물어 최민혁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냐?”
“응. 내가 그 새끼 한데 그 동안 들인 공이 얼만데. 이제 슬슬 수확긴데 그 새낄 그냥 놔두라고?”
“그래. 니 똥 굵다. 뭐 15억이면 나쁘진 않네. 대신 성공하면 한 턱 쏴라.”
“당근이지. 이 형아가 제대로 된 파티 한 번 연다.”
여기서 파티란 마약 파티를 말했다. 은밀히 열리는 마약 파티는 한 번에 500g의 마약을 소비했다. 마약 파티는 그 곳에서 파티 중 쓰이는 마약보다 파티 후 파티 참가자들이 가져가는 마약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니 약쟁이들은 마약 파티에 초대 받지 못해 환장을 했다.
필로폰 1Kg은 3만3000여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가격은 30억 정도 되는데 500g이면 그 절반으로 서동수는 최민혁이란 호구를 털어서 번 15억을 전부 마약 파티를 여는 데 쓸 모양이었다.
서동수는 어제 최민혁의 핸드폰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자 그가 사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최민혁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 받은 최민혁의 분위기가 어째 평소와 달랐다.
마치 자신을 꺼려하는 거 같은 기분이랄까? 뭐 어째든 서동수는 호구 최민혁을 자기 가게로 불렀고 최민혁은 예상대로 오겠다고 했다.
“그 새끼 온 데?”
“어. 뭐....”
서동수는 뭔가 께름칙했지만 최민혁이 가게에 오면 얼마든지 그를 자기 입맛대로 가지고 놀 자신이 있었기에 불길한 느낌을 가볍게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