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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설핏 자다가 깬 데다 여태 겪어 본 적 없는 끔찍한 악몽까지 꾼 터라 최민혁의 신경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내 더러워서라도 포인트 획득하고 만다.”
씩씩거리는 최민혁은 그러면서 생각했다. 무슨 대책이 없냐고. 이 새벽에 밖에 나가서 공을 던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 밖은 영하 10도, 아니 바람까지 부는 게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는 훌쩍 내려 가 있을 터였다. 그런 최민혁의 생각을 읽은 세나가 말했다.
[근본적으로 그건 마스터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인드?”
[네. 야구를 싫어하는......아닙니다. 그건 마스터 스스로 깨닫는 게 좋겠습니다.]
“뭐?”
지금껏 뭐든 명확한 대답을 내 놓던 세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알아듣지 못할 난해한 소릴 지껄여대니 최민혁의 얼굴이 따라서 일그러졌다.
여하튼 지금 최민혁의 문제는 다신 그런 끔찍한 악몽을 꾸고 싶지 않단 거였다.
그럴 바에야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말지.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그런 생각과 달랐다. 노곤하니 잠이 바로 쏟아졌고 그 수마를 상대로 최민혁은 자신이 도저히 이길 승산이 없단 사실을 곧 깨달았다.
“안 돼. 자면 안 돼.”
최민혁은 어떡하든 안 자려 서 있기까지 했지만 그는 결국 선 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끔직한 악몽을 꾸었다.
“으아아악!”
또 다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최민혁은 시간을 확인하고 절망했다.
“제기랄......”
그럴 것이 그가 꾸뻑 잠 든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잠든 사이 최민혁이 꾼 악몽은 끔찍하단 말로 밖에 더 이상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또 다시 그런 악몽을 꾸고 싶지 않았다. 그 간절함이 세나에게도 전달 된 것일까?
[악몽을 꾸지 않을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 그게 뭔데?”
최민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할 생각이었다.
[야구와 연관 된 매개물을 찾아 그걸 손에 쥐고 주무세요. 그럼 악몽은 꾸지 않을 겁니다.]
“야구와 연관 된 매개물?”
[이왕이면 야구계와 마스터에게 동시에 의미 있는 매개물이면 더 좋습니다.]
최민혁의 시선이 책상 위 덩그러니 하나 놓여 있는 트로피로 향했다. 그러자 세나가 말했다.
[트로피로는 직접적인 매개물과 거리가 멀어서...... 좀 약합니다.]
그 말에 최민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까다롭긴. 그나저나 낮에 방은 괜히 치워 가지곤. 아!”
그러다 뭐가 생각 난 듯 최민혁이 책상 쪽으로 향했다. 책상 서랍 맨 밑에 손을 뻗은 그는 그 칸을 열었다. 그 안에 야구공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그는 그걸 밖으로 꺼냈다. 그의 눈에 들어 온 그 야구공에는 그가 직접 한 사인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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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야구공을 집자 세나의 목소리가 바로 그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괜찮은 매개물입니다.]
세나도 인정한 그 야구공은 바로 최민혁이 올해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에서 완봉을 하고 기념으로 챙긴 볼이었다. 그러니 최민혁과 야구계에 있어서 동시에 의미가 있는 매개물인 건 맞았다.
“휴우. 살았다.”
야구공을 손에 쥐고 있으니 일단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악몽에 대한 두려움도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말이다.
최민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면서 공을 들고 침대로 향했다. 그가 침대에 눕자 수마가 다시 그를 찾아왔고 이번엔 반갑게 그를 맞았다. 수마가 그를 덮쳤고 그는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앞서 와 달리 잠자는 그의 얼굴이 평온했다. 거기다 가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게 그가 이제야 제대로 단잠에 빠진 듯 했다.
그렇게 최민혁이 달게 잠들기 전이었다. 1층의 최다혜의 방에서는 여태 잠이 들지 못하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신인 탤런트 강하나로 그녀는 잠자리에든지 2시간이 다 되어 가건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
“하, 하나야. 너도 들었지?”
“음냠냠냠.”
최다혜와 같은 침대에 누워 있던 강하나가 최다혜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하지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든 최다혜는 강하나가 깨워도 무시하고 계속 잤다. 위쪽에서 웬 남자의 비명 소리를 들은 강하나가 두려운 반, 걱정 반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혹, 혹시 오, 오빠가 그, 그러는 건가?”
강하나는 2층에 최민혁이 많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2층으로 올라가 보기엔 좀 그랬다. 왠지 무섭기도 했고 아직 자신과 최민혁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의 방에 무턱대고 들어간다는 것도 께름칙했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있기로 했다. 하지만 한 번 더 위층에서 비명소리가 울리면 그땐 최다혜를 깨워서라도 같이 2층 최민혁의 방에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위층에서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최다혜는 안도해 하며 생각했다.
‘민혁 오빠 너무 멋있는 거 같애. 어쩜 그렇게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를 까? 역시 여기 오길 잘했어. 덕분에 오빠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 했잖아.’
강하나는 최민혁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에 대한 그녀의 호감도 수치가 확 올라 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최민혁이 프러포즈한다면 강하나는 무조건 ‘예스’ 할 거 같았다.
“아아. 너무 좋아. 히히히히.”
강하나는 아까 최민혁과 같이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을 때를 생각하며 혼자 히죽거렸다. 그러다 서서히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최민혁과 정식으로 데이트 하는 상상 말이다.
컨셉은 놀이동산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서 최민혁이 노래동산을 통째 빌린다. 그리고 그녀와 단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뻔하고 유치한 설정이지만 강하나는 좋았다. 아니 행복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행복의 날개를 활짝 펴고 그대로 꿈나라로 훌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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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똑똑똑!
“으으음....”
방밖에서 시끄럽게 노크 소리가 일자 침대 위의 두 여자가 짜증 섞인 얼굴로 베게 밑으로 머리를 쑤셔 넣었다. 그때 방밖에서 굵은 남자 목소리가 울렸다.
“강하나! 너 오늘 스케줄 있다며?”
스케줄이란 말에 강하나의 상체가 절로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감긴 상태였다. 그녀는 정말 힘겹게 떠지지 않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 멍 때리고 있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으아아아!”
이어서 그녀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최다혜가 벌떡 몸을 일으켰고.
“뭐, 뭐야? 왜, 왜 그래?”
“일, 일곱 시....”
“일곱 시? 헉! 너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야?”
그 뒤 난리법석이 났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은 강하나는 맨 얼굴로 최다혜의 방에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막 거실을 가로 질려 현관으로 달려 갈 때였다.
“하나야!”
누가 그녀를 불렀다. 일분일초가 급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 부른 사람이 누군지 알기에 강하나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뒤돌아서 그를 쳐다보았다. 최대한 웃는 얼굴로.
“네. 오빠.”
“빈속에 가려고? 이리 와.”
“네?”
그는 그 말을 하곤 곧장 부엌으로 들어갔다. 강하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고 거기 식탁 위에 올려 져 있는 토스트와 갓 내린 커피를 보고 울컥했다.
“오, 오빠?”
“어서 먹어. 먹는 동안 차 빼 놓고 있을 테니까.”
“차, 차요?”
“응. 보아하니 늦은 거 같은데. 언제 여기서 나가서 목적지까지 가려고? 내가 태워다 줄게.”
그 말 후 부엌을 나가는 최민혁에게서 강하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최다혜가 부엌으로 들어오며 강하나에게 말했다.
“야! 입 좀 닫아. 파리 들어가겠다.”
그 말에 바로 입을 다문 강하나가 식탁 위 토스트를 집어 들더니 흐뭇한 얼굴로 그걸 쳐다 볼 때 어느 새 식탁에 다가 온 최다혜가 강하나의 남은 토스트를 집어서 냉큼 입에 욱여넣었다.
“쩝쩝.....마싯네.”
그런 최다혜에게 강하나가 도끼눈을 뜨자 최다혜가 그 시선을 피해 냉장고로 가서는 우유를 꺼내 마신 후 말했다.
“너 안 급해?”
그 말에 움찔한 강하나는 토스트와 커피를 허겁지겁 먹고는 후다닥 부엌을 나섰다. 쪼르르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에서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가는 강하나를 보고 최다혜가 말했다.
“오빠가 젤 좋아하나?”
그렇지 않고서 싸가지 대마왕에 진상 오타쿠 최민혁이 아침부터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할 리 없으니까. 하지만 최다혜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지. 예전의 그 오빠가 아니니까. 에잇. 몰라.”
아침부터 골치 아픈 생각을 하기 싫었던 그녀가 좋아하는 베이컨 냄새가 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요리대 위에 하얀 접시를 보고 그녀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최민혁이 강하나만 챙긴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계란후라이에 베이컨이 그 하얀 접시에 담겨져 있었다.
“으음. 맛있어.”
최다혜는 하얀 접시 위에 아직 따뜻한 계란후라이와 베이컨을 먹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행복이 부디 더 오래오래 계속 되길 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려면 바뀐 최민혁이 절대 예전의 그로 돌아가선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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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을 쥐고 잔 덕분에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은 최민혁은 6시 30분 쯤 잠에서 깼다. 악몽으로 인해 피곤하기도 하련만 컨디션은 좋았다. 왜 수면 시간보다 수면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4시간 쯤 잤지만 워낙 깊고 달게 잔 덕분에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읏차!”
최민혁은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서 자기 방을 나섰다. 세수를 하고 밑으로 내려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자 그의 발걸음이 자동으로 부엌을 향했다.
부엌에서 제일 먼저 커피메이트로 커피를 내리며 최민혁은 아침을 뭐 먹나 생각했다. 그때 병원에서 여동생이 블랙퍼스트로 계란후라이와 베이컨에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베이컨과 계란이 있었다. 하지만 아침 식사를 하기엔 지금 시간이 일렀기에 최민혁은 8시나 되면 그때 만들기로 하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때 살짝 허기가 진 최민혁은 토스트를 토스트 기계에 넣었다. 그러다 이왕 먹는 거 자기가 먼저 아침을 먹자 싶어서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과 베이컨을 꺼냈다. 그 자신도 아침은 간단히 해결 했는데 계란과 베이컨이 보이자 그것과 토스트, 커피로 아침 한기를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곧장 프라이팬을 꺼낸 최민혁은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고 한 가운데 정확히, 베이컨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하얀 접시에 살포시 담았다. 그 사이 다 추출 된 커피를 커피 잔에 붓고 다 익은 토스트도 토스트 기계에서 꺼내서 따로 접시에 올렸다. 그리고 습관처럼 신문을 찾았다.
그의 아침 일상은 늘 똑같았다. 간편한 식사와 커피, 그리고 신문. 식사 시간은 딱 30분으로 그 뒤 그는 출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출근 따윈 안 해도 됐다.
“으음.....”
그런데 뭐가 빠졌다.
“신문!”
그의 일상의 아침 식사에 신문이 빠져서야 곤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