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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강하나는 마트에서 잔뜩 장을 봤다. 그 중에 2/3가 식재료였다면 나머지 1/3은 술과 안주들이었다. 술도 맥주, 소주, 양주로 다양했는데 부엌 뒷정리가 끝나자 두 여자들은 작심한 듯 그것들을 거실에 펼쳐 놓았다.
“마시고 죽자!”
자신의 잘못 된 선택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완전히 망쳐 버린 최다혜는 진짜 눈앞의 술은 다 마셔 없앨 기세였다. 그에 비해 강하나에게 억지로 끌려서 2층에서 내려 온 최민혁은 거실에 있는 술의 양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이걸 다 마시겠다고?”
확실히 셋이서 마시기에 술의 양이 너무 많았다. 그때 강하나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혹시 모자랄 까 봐 좀 많이 샀더니.....”
휙!
최다혜가 야구선수 동생 아니랄까 최민혁을 향해 캔 맥주를 던졌다. 최민혁이 그 맥주를 받자 최다혜가 자기 손에 들린 맥주 캔을 따며 말했다.
치익!
“남자가 뭔 말이 많아? 마시자.”
그렇게 술판이 시작 되었다. 술만큼이나 안주도 종류별로 다양해서 그걸 먹다보니 배가 빵빵해졌다.
“이럴 때 노래가 최곤데.”
강하나가 뭔가 아쉽다는 얼굴로 자신의 부른 배를 손으로 쓸며 말하자 이미 취기가 올라 있던 최다혜가 말했다.
“노래? 그거 좋지. 우리 노래 부르자.”
최다혜가 그 말을 했을 때 최민혁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취한 최다혜가 그냥 박수나 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랠 시끄럽게 불러대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휘적거리며 몸을 일으킨 최다혜가 TV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니 그 밑에 기기의 케이블을 이리저리 연결하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최민혁은 설마 이 집에 가정용 노래방기기가 갖춰져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이 집에 관한 최민혁의 기억 중에도 노래방기기는 없었고 말이다.
“짜잔!”
그런데 맙소사 돌아선 최다혜의 손에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이야아아아!”
그걸 보고 신이 난 강하나가 폴짝거리며 최다혜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술판에 이어 노래판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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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생인 강하나와 최다혜는 죽이 잘 맞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 야자 째고 노래방에 간 경험이 있는 둘은 진짜 신나게 놀았다.
둘 다 편한 차림이지만 그 미모가 어디 내놔도 빛날 두 미녀가 춤추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며 최민혁은 흡족하니 웃었다. 그때 흐뭇하게 웃고 있는 그를 보고 강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오빠도 한 곡 해요.”
그 말에 최민혁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최다혜가 노래 부르던 중 외쳤다.
“우리 오빤 안 돼. 이 밤 중에 돼지 멱따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그 말에 최민혁은 자신이 노래를 못 부른단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노래가 부르고 싶었다. 사실 요리 솜씨만큼이나 그의 노래 실력도 뛰어났던 것이다. 근사한 요리에 달콤한 그의 노래 앞에 그 도도한 민예린도 무너졌으니까.
“줘봐!”
최민혁이 몸을 일으키며 강하나에게 손을 내밀자 최다혜가 소리쳤다.
“주지 마. 안 돼!”
하지만 강하나는 최민혁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그게 진짜 돼지 멱따는 소리일지라도 말이다. 강하나가 건넨 마이크를 잡은 최민혁은 노래기기 쪽으로 가서 노래를 선곡했다.
“사랑? 헉! 임준범!”
최민혁의 노래 선곡에 강하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에 반해 최다혜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았다.
임준범의 노래는 부르기 어렵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제대로만 부르면 여자들의 관심을 독차지 할 수 있었기에 많은 남자들이 그 노래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부르고 여자의 관심을 받는 남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극소수의 남자 중에 그도 포함 되었다.
“사랑 그 놈에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와서................”
최민혁은 차분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최다혜의 말에 따르면 최민혁은 음치다. 하지만 최민혁이 봤을 때 자신은 타고난 음치라기보다는 하도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 음감을 전혀 몰라 생긴 후천적 음치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잘 컨트롤해서 부르면 어떻게 노래는 부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았다.
최민혁은 목소리 톤 자체가 중저음이었다. 그런 그가 노래를 부르면서 흉성을 쓰자 허스키한 목소리가 섞이면서 임준범의 목소리와 비슷해졌다. 거기다 오늘따라 감성적인 최민혁의 필이 더해지자 노래의 퀼리티가 확 높아졌다.
“..................그 사람 다신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나요~”
“헉! 미, 미친......”
“아아!”
클라이맥스에서 쭈욱 고음을 뽑아 올리는 최민혁을 보고 최다혜는 불신에 눈빛을, 강하나는 완전 반한 듯 두 눈에서 하트를 뿅뿅 날리고 있었다. 최민혁은 능숙하게 고음 뒤 2절로 넘어갔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두 여자의 혼을 쏘옥 빼 놓았다. 그렇게 최민혁의 노래가 끝났을 때 두 여자는 진심으로 열심히 물개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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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최민혁이 노래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었던 최다혜가 의아한 얼굴로 오빠인 최민혁에게 물었다.
“오빠.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르면서 전에는 왜 그런 건데?”
그때가 최민혁이 갓 프로에 입단했을 때였던가? 최민혁이 사회인이 되었음을 기념하며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자연스럽게 노래방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최민혁은 핏대를 올려가며 진짜 돼지가 멱따는 소릴 냈었다. 그래서 그녀뿐 아니라 가족들도 더 이상 최민혁과 같이 노래방에 가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 음치 최민혁은 어디가고 우리나라 노래의 끝판 왕으로 불리는 임준범 뺨치는 가수 최민혁이 나타난 것이다.
“그땐 목 상태가 별로였거든. 자. 너도 불러야지.”
최민혁은 여동생에게 대충 둘러대며 말하곤 자신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강하나에게 건넸다. 그때 강하나가 최다혜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그녀는 그걸 보지 못했다. 살짝 입이 튀어 나온 강하나는 최민혁이 건넨 마이크를 받았다. 그리곤 최다혜가 선곡한 곡을 따라 부르다가 중간에 간주가 흐를 때 재빨리 그녀에게 뭐라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최다혜가 힐끗 최민혁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최다혜의 노래가 끝나자 그녀가 쪼르르 최민혁에게 다가왔다.
“오빠. 우리 듀엣곡 같이 부르자.”
“듀엣곡?”
“혹시 아는 거 있어?”
최민혁도 당연히 여자랑 듀엣곡을 불러 보았다. 듀엣곡 하니 최민혁은 민예린이 생각났다. 그녀는 머리 좋고 얼굴 예쁘고 몸매까지 환상적인데 거기다 노래까지 잘했다. 팔방미인이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소리가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을 정도였다.
“듀엣곡 하면.....은별이랑 나성권의 ‘우리 사랑 할까요.’ 지.”
최민혁의 그 말을 들은 강하나가 잽싸게 그 노래를 선곡했고 전주가 흐르자 최다혜가 최민혁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 그에게 자신의 마이크를 넘겼다. 그리고 최민혁 만 들리게 말했다.
“하나랑 한 곡만 불러 줘. 그럼 오빠가 시키는 건 뭐든 해 줄게.”
“뭐든지?”
“그래. 빨리 가.”
최민혁은 최다혜에게 등 떠밀려서 강하나에게 갔고 그때 강하나가 듀엣곡의 여자 파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아련히 저려서...................”
살짝 떨리는 음성의 강하나는 은근한 눈빛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고 최민혁도 듀엣곡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그녀와 눈빛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에 화음을 넣다가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요. 나도 사실 당신이........잊혀질까 두려워서..................”
최민혁은 강하나를 맞추고 강하나는 또 최민혁을 맞추려 노력하면서 둘의 하모니가 생각보다 훨씬 좋게 나왔다. 그러자 흥이 난 둘은 더욱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고 끝 소절을 부를 때 둘 다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그 뒤 세 사람은 같이 어울려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신나는 댄스 풍 노래를 메들리로 틀어 놓고 세 사람은 춤까지 추며 정신없이 놀았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자정이 넘으면서 성탄절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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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자정을 넘었음에도 강하나와 최다혜의 젊은 열정은 전혀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최민혁은 달랐다.
“하나야. 너 내일, 아니지. 12시가 넘었으니 오늘이구나. 오늘 스케줄 없어?”
“네?”
스케줄이란 말에 강하나는 움찔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부터 소화해야 할 스케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아! 아쉽다.”
강하나는 더 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부터 청담동 미용실에 예약이 잡혀 있는 그녀는 아침 8시까지 그곳에 도착을 해야 했다.
원래는 내일 아침에 매니저가 집으로 그녀를 데리러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최민혁과 가능한 더 많은 시간을 함계 보내기 위해서 여기서 자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매니저에게는 자신이 알아서 내일 아침 8시까지 미용실에 갈 테니 거기서 만나자고 해 뒀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만 씻고 자자. 내일 일찍 나가 봐야 할 거 아냐?”
“뭐 그렇긴 한데.....”
전에 강하나로부터 그녀가 얼마나 바쁘게 하루를 살고 있는지 들은 최다혜로서는 강하나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다. 자신도 곧 연예계에 발을 들이면 강하나처럼 살게 될 테니까.
“둘 다 들어가. 여긴 내가 정리할 테니까.”
“어떻게 그래요. 같이 치워요.”
“야! 오빠가 한다잖아. 넌 어서 씻고 자야지. 지금 자 봐야 몇 시간 못 자잖다고.”
강하나는 최다혜에게 등이 떠밀려 최다혜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남은 최민혁은 거실을 정리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오후에 낮잠을 잔 탓에 최민혁은 그리 피곤하진 않았다. 하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 터라 그는 침대에 누웠고 이내 잠이 들었다.
“어허어억!”
그런데 잠든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최민혁이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의 몸과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헉헉헉헉.......”
잠 자는 동안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최민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몇 분 뒤 겨우 호흡이 진정 되자 최민혁이 말했다.
“세나. 이것도 야구 때문인 거야?”
최민혁은 잠든 동안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그 꿈이 워낙 생생해서 최민혁은 실제 자신이 그 일을 겪고 있는 거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맞습니다. 아까 하신 60구의 투구로는 마스터의 몸이 만족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젠장.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안 좋아서 더 던질 수가 없었던 거잖아.”
[그러니까 빨리 고쳐야죠.]
고치려면 포인트가 필요한데 세나는 최민혁에게 어서 포인트를 획득하라고 은연 중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