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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최민혁은 기가 찬다는 듯 주방에 널려 있는 만들다 말았거나 만들었다 실패한 음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다 뭐니?”
“그, 그게.......전 분명히 레시피 대로 했거든요. 그런데 잘.......”
강하나의 궁색한 변명은 갈수록 그 목소리 톤이 줄어들었다. 그때 슬쩍 최다혜가 끼어들며 말했다.
“오빠. 왜 여기 시킨 대로 했는데...... 이 모양 이 꼴일까?”
최다혜가 핸드폰에 블로그 창을 최민혁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최민혁도 그 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웬만하면 레시피 대로 따라 요리하면 음식은 먹을 만했다. 그런데 이 모양이란 건 두 여자에게 문제가 있단 소리였다.
천성적으로 타고 나기를 요리와 인연이 없이 태어난 여자들도 많았다. 그런 여자는 요리를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최민혁은 눈앞의 두 여자가 바로 그런 유형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두 여자에게 절대 요리를 맡겨선 안 됐다.
“어디 보자. 으음. 일단 좀 치우자.”
최민혁이 소매를 걷어 붙이며 말했다. 그러자 두 여자가 황당한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보았지만 최민혁이 솔선수범해서 그녀들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주방을 치우기 시작하자 그녀들도 바로 치우는 일에 동참했다.
그렇게 우선 급한 대로 주방의 싱크대와 요리대부터 정리를 끝낸 최민혁은 남은 아직 쓸 만한 식자재들을 요리대 위에 진열했다. 그래야 뭘 요리할지 정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사실 최민혁은 요리 실력이 뛰어났다. 아! 여기서 최민혁은 지금의 최민혁을 말했다. 투수 최민혁이 아니라.
그는 혼자 살다보니 간단하게나마 요리 해 먹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한두 가지 요리를 해 보다 보니 요리가 재미가 들렸다. 그래서 그는 바쁜 와중에서 출장 나와서 요리를 가르쳐 주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하지만 그가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시간대는 자정이 넘은 시간뿐이었다. 당연히 그 시간에 요리를 가르쳐 줄 셰프를 구하려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뭔가 한 번 꽂혀서 배우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자신이 요리에 재능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3년간에 걸쳐 요리를 배운 그는 한식, 중식, 일식, 양식까지 다방면에 걸쳐서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런 그의 요리 실력은 의외로 쓸모가 많았다. 특히 여자를 꼬시는 데 요리만 한 게 없었다. 사실 그의 외모는 보통 정도였다. 키가 큰 것도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철옹성이란 표현까지 붙은 오성그룹 안주인의 개인비서 민예린을 꼬시는 데 성공한 데는 그만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그 노력 중에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 게 바로 요리였다.
자신 만을 위해 만들어 주는 정성 가득한 한 끼 식사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건 민예린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오빠. 뭐하는 거야?”
잠깐 상념에 빠져 있던 그를 여동생 최다혜가 깨웠다.
“응?”
“지금 뭐하자는 거냐고?”
“아아. 재료들 좀 보고 뭘 만들지 생각 중이야.”
“뭐?”
최다혜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그럴 것이 그녀가 아는 최민혁은 라면도 자기 손으로 끓여 먹지 못하는 울타라 캡짱 진상 오타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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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대 위의 식재료 중 최민혁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건 소고기였다. 스테이크를 하려고 산 안심과 국물을 내기 위한 산 것으로 보이는 사태를 보는 순간 최민혁의 머릿속에 떠 오른 음식이 있었다.
“두부와 각종 버섯에 미나라까지...... 그걸 만들면 되겠네.”
혼자 중얼거리던 최민혁은 생선가스를 만들려다 실패한 듯 보이는 음식을 보고 싱긋 웃었다. 흰 살 생선까지 있으면 그 요리를 만들기 딱 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요리를 담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일반 가정집에 있을 리 없었다.
“뭐 전골냄비에 담으면 되겠지.”
혼자 구시렁거리는 최민혁을 보고 최다혜가 한 소리 했다.
“오빠가 만들긴 뭘 만든다고.....”
“다혜야!”
그런 그녀를 강하나가 제지했고 그 사이 최민혁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민혁이 지금 있는 식재료를 보고 만들기로 결정한 요리는 바로 신선로였다.
신선로는 가장 고급스럽고 잘 다듬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골 류로 잔칫날이나 귀한 손님 술안주에 적합한 요리였다.
최민혁이 신선로를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고르기 시작하자 그 옆에 다가 온 강하나가 물었다.
“오빠. 뭘 만드시려고요?”
그 물음에 최민혁은 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신선로!”
“네?”
강하나와 최다혜 모두 뻥 진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특히 강하나는 식품영양학과를 다니다 휴학한 상태였다. 요리는 잘 못 만들지만 음식에 관한보고 들은 게 일반인 보다 많았다. 그런 그녀가 아는 신선로는 온갖 산해지미를 다 모아 구자틀에 놓고 끓였다 해서 신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였다.
일명 '열구자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구자틀의 가장자리에 준비한 재료들을 먹음직스럽고 정성스럽게 둘러놓고 가운데 화통에 숯을 지펴 즉석에서 끓여 먹을 수 있었다.
최민혁은 신선로의 용기가 없는 관계로 대신 전골냄비를 싱크대 밑에서 꺼낸 다음 빠른 속도로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놀란 얼굴의 두 여자가 최민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최민혁은 먼저 육수를 내기 위해서 사태와 양을 삶았다. 양은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 소금으로 바락바락 주물러 씻어 주었고. 무, 대파. 통마늘을 넣은 후 센 불로 삶기 시작하면서 바로 식칼을 들었다.
타타타타닥!
그렇게 육수를 내는 사이 최민혁은 빠른 속도로 식칼을 다뤘다.
“헉!”
“뭐, 뭐야?”
그걸 지켜보고 있던 두 여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엇보다 충격이 커 보이는 건 최다혜였다. 진상 오타구로 알고 있었던 오빠가 지금은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문 셰프의 칼질 실력을 그녀 앞에서 선보여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최민혁은 셰프 같아 보였다. 그 만큼 그가 요리할 때 보여 주는 동작들은 전문 셰프처럼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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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최민혁은 밑 재료를 준비하는 한 편 흰 살 생선으로 전을 만들고 지단을 연달아 만들어 냈다.
“맙소사!”
“말도 안 돼!”
그걸 쭉 지켜보고 있던 두 여자는 이제 놀라기보다 경외 섞인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그 사이 육수가 완성 되어 갔고 밑 재료들을 전부 준비한 최민혁은 차곡차곡 전골냄비에 재료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료를 다 담은 전골냄비 맨 위로 지단과 버섯, 견과류 등으로 고명을 쌓은 최민혁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꺼 내와서 그 위에 전골냄비를 올렸다. 그리고 불을 켠 뒤 준비 된 육수를 국자로 퍼서 전골냄비에 부었다.
보글보글!
잠시 뒤 끓기 시작하는 전골냄비를 보고 최민혁이 자신 있게 두 여자들에게 말했다.
“먹어 봐.”
이미 두 손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고 있던 두 여자들은 고명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전골냄비 속의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우와!”
“와아! 진짜 신선로 맛이다. 그치?”
최민혁이 뚝딱 만들어 낸 요리를 맛 본 두 여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다음 두 여자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그런 그녀들을 보고 최민혁이 밥솥을 열었다.
그래도 최신형 전기압력밥솥답게 두 여자가 해도 밥은 잘 되어 있었다. 최민혁은 밥솥에서 밥 두 공기를 퍼서 두 여자에게 건넸다.
“생큐!”
“고마워요. 오빠.”
그렇게 걸신들린 듯 두 여자들이 최민혁이 만들어 놓은 요리를 먹어 치울 동안 최민혁의 시선이 다시 남은 식자재들이 있는 요리대로 향했다. 그의 눈에 두툼한 돼지고기가 보였는데 순간 최민혁은 뭘 더 만들지 결정하고 그 돼지고기를 챙겨들었다.
치이이익! 휙휙휙!
최민혁의 손에 쥐어진 볶음팬이 앞뒤로 흔들리자 그 안의 재료들이 골고루 섞이면서 빠르게 익어갔다. 그리고 최민혁은 금세 뚝딱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냈다. 바로 제육볶음!
“제육이닷!”
“우와! 맛있겠다.”
전골냄비 속의 음식을 초토화 시킨 두 여자 걸신들은 아직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최민혁은 그런 그들 앞에 볶음팬을 통째 올려놓았고 두 여자들의 젓가락이 빠르게 공격을 개시했다.
“쩝쩝.....아아!”
“우걱우걱......오빠. 너무 마시쪄요.”
최민혁은 강하나가 추켜세운 엄지를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이게 바로 요리를 만드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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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남은 채소로 샐러드와 겉절이를 무쳐 내고 거기에 계란말이까지 하고 나서 자신도 저녁을 먹기 위해 밥을 펐다.
“아아. 배부르다.”
“더 먹고 싶은 데. 음식이 목 까지 찼어요.”
최민혁은 칭얼거리는 강하나를 보고 웃으며 식사를 했다. 남은 신선로 국물에 밥을 말아서 한 그릇 뚝딱 비운 최민혁이 신기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여자들에게 말했다.
“요리는 내가 했으니 나머지 뒷정리는 너희들이 해도 되겠지?”
그 말에 강하나가 재빨리 대답했다.
“당연하죠. 걱정 마시고 오빤 나가 계세요.”
그렇게 강하나에게 등 떠밀려서 부엌을 나선 최민혁은 소화도 시킬 겸 바람도 쐴 겸 마당으로 나갔다.
연말의 끄트머리. 추위가 막 맹위를 떨치고 있던 터라 마당 주위를 걷던 최민혁도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부엌에서 두 여자가 두런두런 얘기하며 같이 설거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최민혁은 그들의 대화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거실 소파에서 앉아 있던 잠시 넋 놓고 창밖을 바라보던 최민혁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화이트크리스마스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최민혁이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창밖에서 냉기와 함께 눈발이 날려 안으로 들어왔다. 많이 내리는 눈을 아니지만 분명 눈이 내리고 있었다.
최민혁은 그리 감성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늘 바쁘게 살았기에 감성적일 수도 없었지만.
그런데 지금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어두운 창밖을 보며 감성에 빠져 들었다. 고즈넉하니 좋은 밤이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이던가?
“오빠!”
근데 그 평온이 금방 깨졌다. 강하나의 목소리였다.
“커피 마실래요?”
그녀가 커피를 말하자 벌써 그의 코에 진한 커피 향이 났다.
“좋지.”
그의 대답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강하나가 커피 잔을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여기요.”
“고마워.”
최민혁이 강하나가 건네는 커피 잔을 받아 들자 그때 최민혁의 뒤쪽 열려 있는 창문 너머를 보고 강하나가 외쳤다.
“눈이다!”
강하나는 최면이라도 걸린 듯 넋 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곤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를 등지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최민혁은 보지 않아도 알 거 같았다. 눈을 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을 강하나의 얼굴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