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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그런 가운데 최민혁의 머리가 냉철하게 돌아갔다.
“그래. 야구야 취미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야구인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다 프로에서 뛰는 건 아니다. 최민혁도 마찬가지였다. 프로 선수 생활을 그만 둬도 동호회 같은데 들어서 야구는 얼마든지 계속 할 수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로 뛰는 것만 아니면 돼.”
사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그는 앞으로 바쁠 터였다. 그런 마당에 프로야구 선수로 경기에 나설 순 없었다. 최민혁은 일단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어제 밤에 파악 해둔 이 집의 건물 뒤쪽에는 폭 2미터의 빈 터가 있었다. 그 길이가 30미터는 족히 됐는데 그곳에 최민혁은 마운드를 조성해 두었다. 즉 집에서도 공을 던질 수 있게 투구장을 만들어 둔 것이다.
최민혁은 조용히 1층으로 내려가서 거실을 지나쳐서 현관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갔다. 워낙 조용히 움직였기에 TV에 제대로 꽂혀 있던 최다혜는 최민혁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몰랐다.
최민혁은 집 건물 옆을 돌아서 뒤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건물과 담 사이 공간이 나왔고 그곳에 투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최민혁은 투구장의 안쪽에 바닥 흙을 약간 볼록하게 쌓아 올린 곳으로 곧장 움직였다. 그렇게 최민혁이 마운드 위에 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두통과 온몸을 쑤시던 통증이 싹 사라졌다.
“허어!”
최민혁은 자신이 아픈 증상을 세나가 왜 신병(神病)에 비유했는지 알거 같았다. 최민혁은 마운드 뒤에 공구함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글러브와 야구공이 들어 있었다. 야구공은 정확히 20개였는데 마운드에서 20개의 공을 피칭존이 그려진 그물망 타깃에 전부 던지고 나면 다시 그 공들을 회수해 와서 던지기를 계속 한 모양이었다.
척!
최민혁은 투수용 글러브를 오른손에 끼고 왼손에 공을 잡았다. 그런데 공을 잡자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역시 최민혁의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 있을 때 찾아 온 두 불청객들 때문에 이미 투구를 경험한 최민혁이었다. 그때 느꼈던 짜릿한 흥분이 생각나자 최민혁의 가슴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운드 위에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때 그의 일기장에서 본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역시 1군 투수코치가 최민혁에게 해 준 말이었다.
‘좌완 투수의 장점은 1루에 주자가 출루하더라고 섣불리 도루를 노릴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는 것은 굳이 빠르게 와인드업을 하거나 어정쩡한 퀵 모션과 조급하게 힘으로 공을 던질 필요가 없다는 소리고. 최대한 가슴까지 오른 무릎을 끌어 올리고 흔들리지 않게 오른발을 마운드에 굳게 디뎌. 그리고 있는 힘껏 차올리는 거다. 왼발을!’
쐐애애액!
철렁!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투구 동작이 취해지면서 최민혁의 손끝을 떠난 공은 빨랫줄처럼 쭉 뻗어서 정확히 그물망 타깃의 정중앙에 꽂혔다. 순간 찌릿한 전기가 통한 듯 온몸을 쾌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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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그 사이 공을 챙겨서는 글러브 안에 넣고 왼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최대한 자신에게 맞은 그립을 찾고 있는 자신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저번에 두 불청객들이 왔을 때도 느꼈지만 투구 후 느끼는 쾌감은 이성과 육체적으로 즐길 때의 쾌락 못지않았다. 그런 쾌감을 공을 던질 때마다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투수에 대한 동경심마저 일었다. 하지만 여전히 최민혁은 야구에 대한 거리낌이 있었다.
그러던 말든 그의 왼손은 실밥을 검지와 중지로 잡고 엄지 위치를 대강 아래로 해서 슬라이더 그립을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동작은 앞서 포심을 던졌을 때와 같았다. 깔끔한 투구 동작으로 키킹하며 상하체가 유기적인 매커니즘을 유지하게 하고 끝으로 공을 챌 때 힘으로만이 아닌 팔꿈치부터 손끝까지 역으로 틀어지게 했다.
쉬애애액!
공은 앞서 공과 달리 조금 높았고 그물망의 타깃을 벗어난 궤적을 그렸다. 하지만 엄청난 횡회전과 함께 휘어진 공은 정확히 타깃의 한 가운데에 박혔다.
출렁!
그야말로 상하좌우로 꿈틀거리며 날아드는 변화무쌍한 슬라이더는 무슨 마구 같았다.
“와우!”
최민혁은 자신이 던져 놓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더 투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쐐애애액!
철렁!
그렇게 마지막 20구의 공을 역시나 타깃 그물망에 정확히 꽂아 넣은 뒤 최민혁은 마운드 위에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잠시 갈등을 했다. 공을 더 던질지를 두고 말이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구함을 챙겨 든 최민혁의 발걸음은 이미 전방의 그물망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최민혁은 그물망 아래 구르고 있는 야구공 20개를 공구함에 담아서 다시 마운드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던지는 4가지 구종을 섞어가며 던졌다.
그렇게 한 차례 더 공을 던지면서 투구수가 60개를 넘어가자 어깨가 조금 뻐근하고 팔꿈치에 찌릿하니 통증이 일었다. 순간 최민혁은 2군 투수코치 한 말이 생각났다.
“퇴원하면 어깨하고 팔꿈치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던가?”
하지만 최민혁은 그 때문에 또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의 어깨와 팔꿈치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세나!”
최민혁이 세나를 부르자 세나가 바로 대꾸했다.
[네. 마스터.]
“내 생각을 읽었지?”
[그렇습니다.]
“어때?”
[어깨의 경우 건판 염증에 손상이 약간 있고 관절 테두리 손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팔꿈치의 경우는 좀 심각합니다. 피로골절로 인해 뼈 조각이 돌아다니고 있는 상탭니다. 약간의 인대와 근섬유손상도 있고요.]
“당장 치료 받아야 할 정도야?”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팔꿈치의 경우 이곳 의료기술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수술을 하는 모양인데 성공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최민혁은 세나의 말의 뉘앙스를 듣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세나 시스템을 이용하면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 생각을 읽은 세나가 말했다.
[당연하죠. 세나 시스템은 34차원 계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로......................]
세나의 자기 자랑이 시작되려 하자 최민혁이 바로 물었다.
“그냥 치료해 주진 않을 거고. 어떡해야 치료가 가능할까?]
[그야 치료비를 지불 하시면 되죠.]
“치료비?”
[포인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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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는 포인트만 지급하면 지구의 불치병쯤은 뭐든 다 고쳐줄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래서 궁금해서 몇 가지 불치병을 생각했다. 그러자 그 생각을 읽은 세나가 거리 좌판 장사꾼이 자신이 팔 상품의 가격을 매기듯 말했다.
[백혈병은 3천 포인트, 간질은 치료가 좀 까다로우니까 4천 포인트. 암은 종류와 진행 상황과 속도에 따라 다른 데 대략 5천 포인트면 완치시켜 줄 수 있습니다. 에이즈는 천 포인트만 받을게요. 무좀은 50포인트면 되겠네요.]
문제는 최민혁이 지금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가 150밖에 되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내가 가진 포인트로 팔꿈치 치료가 가능할까?”
[팔꿈치 치료 만요?]
“어. 다른 곳은 당장 치료 받을 정도가 아니라며?”
[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한꺼번에 다하시죠. 제가 싸게 해 드릴게요.]
“싸게?”
[네. 어깨와 팔꿈치를 완전 생생하게 만들어 드리는데 딱 500포인트만 받도록 하죠.]
혹시나 기대했던 최민혁의 얼굴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하지만 최민혁도 알았다. 세나가 제시한 포인트가 그리 과하게 책정 된 게 아니란 걸 말이다. 세나는 불치병의 경우도 완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만약 지금 최민혁이 그런 불치병에 걸렸다면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 놓더라도 사는 걸 선택 했을 터였다.
“외상은 안 될까?”
그 대답으로 세나가 노래 하나를 들려주었다.
[?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알았어. 알았다고. 내 당장 포인트 모으고 만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포인트를 모으는 겁니다. 화이팅!]
“화이팅은 개뿔....”
최민혁은 글러브와 공을 공구함 안에 넣고 제자리에 돌려놓은 뒤 투구장을 나섰다.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는데 더 무리해서 공을 던지기는 어려웠다.
덜컥!
최민혁이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때까지 TV를 보고 있던 최다혜가 그를 보고 말했다.
“언제 나갔데?”
“..........”
최민혁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녀의 물음에 생 까고 곧장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저 씨.....어우.....다른 건 다 변했는데 저 싸가지는 안 변했네. 칫! 어. 시작했다.”
최다혜는 광고가 끝나고 드라마 재방송이 시작하자 최민혁은 까맣게 잊고 다시 TV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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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구까지 거의 전력으로 공을 던지다 보니 몸에 땀이 난 최민혁은 2층 화장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활동하기 편한 트레이닝복을 꺼내 입었다. 그러자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신병(神病)인가 뭔가가 그의 신체 리듬을 엉망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거기다 공까지 던진 뒤라 쏟아지는 잠을 최민혁은 이겨 낼 수 없었다. 결국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고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으응?”
그러다 밑에서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최민혁은 잠에서 깼다. 그때 또 밑에서 뾰족한 여자 비명소리가 울렸다.
“뭐지?”
최민혁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자기 방을 나섰다.
“응?”
그때 희한한 냄새가 최민혁의 코를 자극해 왔다. 탄 냄새인데 거기 시큼하고 쾌쾌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마치 간장을 달일 때 레몬을 넣었는데 그 간장을 전부 태워 먹었을 때 나는 냄새랄까? 냄새는 1층에서부터 났고 최민혁은 안 그래도 비명 소리 때문에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으아아악! 이것도 탔어.”
“미치겠네. 왜 이렇지? 분명 레시피 대로 했는데......”
1층 부엌에서 귀에 익은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서 강렬한 냄새가 훅하니 풍겨왔다.
“커업!”
그 냄새에 최민혁도 숨쉬길 포기하고 재빨리 부엌으로 움직였다.
“콜록콜록.....”
부엌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두 여자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곧 질식해서 쓰러질 거 같았다.
최민혁은 곧장 부엌 안으로 뛰어들어서 렌지 후드를 켜고 부엌에서 바로 밖으로 나가는 쪽문을 열었다. 그러자 빠르게 부엌 안의 연기가 배출 되었고 질식해서 쓰러질 거 같았던 두 여자는 기사회생했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최민혁의 물음에 두 여자 중 그 나마 상태가 나아 보이던 강하나가 대답했다.
“저녁 준비 중이었어요. 오빠.”
“저녁?”
그러고 보니 최민혁이 잠자기 전엔 밝았는데 벌써 밖은 어두웠다. 아니나 다를까? 부엌 시계를 통해 확인한 지금 시간은 7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최민혁이 난장판이 된 부엌을 살피니 일단 식자재들은 많고 다양했다. 문제는 그 식자재로 두 여자가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엉뚱하고 이상한 것들만 만들고 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