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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17화 (1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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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2층에 올라가자 가운데 거실이 있었고 그 양쪽으로 방이 보였다. 거실은 채광이 잘 되어 햇볕이 잘 들었다. 최민혁은 거실 소파를 지나 창가에 섰다. 그러자 2층 창밖이 보였다. 그리 넓진 않지만 마당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특이한 석상 몇 개, 그리고 지금은 얼어붙어 있지만 작은 연못도 보였다.

대문 앞 길 건너로 정형적인 형태의 저택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붉은 기와지붕이 보였는데 그곳은 최민혁도 전에 가 본적이 있었다.

바로 오성그룹과 자동차 부분에서 서로 경쟁 상대인 정강그룹의 윤수국 회장의 저택으로 당시 최민혁은 박규철 회장을 수행해서 윤회장을 만났었다. 물론 두 회장의 독대 자리에선 빠졌지만.

“그때 윤 회장 부인이 직접 만든 수정과 맛이 기가 막혔지. 꿀꺽!”

그 수정과를 생각하니 절로 입에 침이 고인 최민혁은 그 침을 목 너머로 삼켰다. 그리곤 몸을 옆으로 돌려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최민혁의 방은 오른쪽 방이었다. 왼쪽 방은 손님이 왔을 때 쓰는 객방이었고.

달칵!

방문이 열리고 코에 익은 냄새가 확 났다. 최민혁이 쓰던 스킨로션 냄새였다. 아마도 이전 최민혁도 그와 같은 스킨로션을 쓴 모양이었다. 방은 복잡했다. 나름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그게 별로 티 나지 않았다.

최민혁은 수집벽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받은 상은 다 방에 전시를 해 두었다.

“허세 쩌네.”

덕분에 방은 온갖 상장과 상패, 트로피, 목걸이 천지였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과 상패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아낀 듯 보이는 것들은 죄다 책상 위에 진열 되어 있었다.

책상으로 간 그의 눈에 들어 온 트로피는 전부 그가 프로에서 받은 것들이었다. 그 중 절반이 골든 글로브였다. 그게 다 최민혁이 국내 최정상급 에이스란 걸 확인 시켜 주는 증거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최민혁에게 책상 위의 트로피들은 거추장스런 물건에 불과했다.

“안되겠다.”

깔끔한 성격의 최민혁에게 지금의 방은 맞지가 않았다. 이미 이 집에 대해 이전 최민혁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그는 쓸데없는 물건들을 어디에 넣어 둬야 하는 지 잘 알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이제 자신이 이 방의 주인인 이상 방은 무조건 깨끗해야 했다. 최민혁은 지하 창고로 내려가서 박스 몇 개를 챙겨들고 다시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쓰잘머리 없는 것들을 죄다 박스에 담았다.

“읏차!”

그렇게 그의 방에서 나온 박스가 7개나 되었다.

“이제 좀 사람 사는 곳 같네.”

방안을 꽉 채우고 있던 각종 상장과 상패, 트로피, 메달들을 치우고 나자 방에는 달랑 책상과 옷장, 침대만이 남았다. 그러자 방이 널찍해 보였다. 근데 치우는 과정에서 방안은 먼지구덩이 신세로 변했다. 최민혁이 막 방청소를 시작하려 할 때 최다혜가 2층으로 올라왔다.

“이게 다 뭐야?”

거실에 쌓여 있는 박스를 보고 최다혜가 어리둥절해 하며 최민혁의 방으로 왔다.

“우웁! 켁켁!”

그때 최민혁이 방을 쓸고 있었던 터라 방에 들어서던 최다혜가 먼지를 듬뿍 마셨다. 그녀는 후다닥 방밖으로 나가선 최민혁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야?”

그 물음에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열심히 빗질 중이던 최민혁이 친절히 대답을 해 주었다.

“뭐하긴. 보면 모르냐? 청소 중이지.”

“왜 지금 청소를 하냐고.”

“그야 내 맘이지.”

“이잇. 하여튼 사고 후 확실히 이상해졌어. 근데 점심 어쩔 거야?”

“점심?”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최민혁의 입에서 간 큰 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밥 안 해놨어?”

“뭐? 밥?”

최다혜가 기가 차다는 듯 최민혁을 쏘아보자 그제야 최민혁도 잠깐 생각이란 걸 했다. 점심 때 오빠를 위해 밥상을 차려 줄 여대생이 요즘 얼마나 될까? 최민혁은 그 물음에 그 답도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0에 수렴하겠지.’

그때 최다혜 뒤로 박스들이 보이고 그 박스들을 보자니 이사 생각이 났다.

‘이사엔 역시 자장면이지.’

최민혁이 바로 말했다.

“우리 자장면 시켜 먹자.”

그 말에 최민혁을 쏘아보던 최다혜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진작 그럴 것이지. 탕수육도 시킨다.”

최다혜는 곧장 핸드폰을 뒤적거렸고 최민혁은 마저 하던 빗질을 계속했다. 그러자 먼지가 방문 밖으로 나왔고 그 방문 밖의 최다혜가 바로 발을 내뻗었다.

쿵!

방문이 닫히고 잠시 뒤 최다혜의 자장면 시키는 목소리가 방밖에서 들려왔다. 그 사이 최민혁은 먼지구덩이 속에서 열심히 빗질을 했고 열린 창문으로 펄펄 먼지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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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이 물걸레 청소까지 끝냈을 때 주문한 자장면이 배달되어 왔다.

“오빠. 빨리 내려와서 계산해.”

역시 계산은 최민혁의 몫이었다. 어제 집에 오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여동생에게 한 말 때문이라도 어차피 계산은 그가 했야 하긴 했다.

최민혁은 지갑 속에 카드를 꺼내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얼맙니까?”

그가 계산을 할 동안 최다혜는 거실 테이블 위로 음식을 날랐다. 그래도 최다혜는 센스가 있었다.

“곱빼기네?”

“왜? 많아?”

“아니. 잘 시켰다고.”

안 그래도 배고팠던 최민혁은 자장면 곱빼기와 탕수육을 번갈아 가며 열심히 젓가락을 놀려댔다. 그 오빠에 그 여동생이라고 최다혜 역시 젓가락 고수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자 배달 온 음식의 그릇이 금방 비었다.

“쩝쩝.... 탕수육 대(大)자로 시킬걸 그랬네.”

최다혜가 아쉽다는 듯 다 먹은 탕수육의 소스를 젓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말했다. 그녀는 최민혁에게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 줬기에 탕수육이 모자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게 다 최민혁의 위장의 크기를 최다혜가 잘 몰랐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아쉽지만 남은 자장면을 싹싹 건더기까지 싹 건져 먹은 최다혜는 벌써 다 먹고 2층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 최민혁의 자장면 그릇에 자신의 그릇을 포개고 그걸 또 탕수육 그릇에 올려서는 대문 밖에 내 놓았다.

“응?”

그런데 놀랄 일이 일어났다. 그릇을 내 놓고 현관을 통해 거실에 들어 선 최다혜의 코로 커피 향이 났는데 그때 언제 내려왔는지 최민혁이 부엌에서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문제는 최민혁의 두 손에 머그컵이 들려 있었고 그 컵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단 점이었다. 그 연기에서 나는 냄새가 바로 커피 향이었고 말이다.

“자!”

그 중 머그컵 하나를 최민혁이 최다혜에게 건넸다.

“어! 고마워.”

최다혜는 얼떨결에 최민혁이 주는 커피를 받았다. 그래놓고 최민혁은 시크하게 2층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잠시 넋을 놓고 지켜보던 최다혜는 그가 2층으로 올라간 그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말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아! 맞다. 죽을 뻔 했었지. 그러니까 죽다가 살아나면서 바뀐 건가? 뭐 나한테야 좋은 일이지만.”

최다혜는 커피를 들고 거실 소파로 향했다. 푹신한 소파에 앉은 최다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으음. 좋은데?”

커피는 그녀 자신이 직접 탄 거처럼 최다혜의 입맛에 딱 맞았다. 최다혜는 병원에 있을 때 최민혁이 그녀의 커피 취향을 간파한 사실을 몰랐다. 하긴 평소 그녀에 무관심한 오빠가 그녀의 커피 취향까지 파악했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녀는 그저 단순히 오빠가 커피를 탔고 그게 우연히 자신 취향에 맞게 타진 거뿐이라 생각했다.

“어디 좀 볼까?”

최다혜는 협탁 위에 올려져 있던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그러자 마침 병원에 있느라 보지 못한 드라마가 재방송 하고 있었다.

“오케이. 딱 시작했네.”

최다혜는 맛있게 커피를 마시며 그 TV드라마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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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커피를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이제 더 이상 우중충했던 전의 그 방이 아니었다. 상장과 상패, 트로피와 메달에 가려 있어서 그렇지 그의 방 벽지도 원래 밝은 톤이다 보니 정리가 끝나자 방이 훤했다.

책상으로 간 최민혁은 커피 잔을 그 위에 올리곤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최다혜가 커리어를 정리를 하고 나서 올려 준 자신의 짐 중에서 노트북 챙겨 책상 위에 올렸다.

책상을 거의 장악하고 있던 트로피들이 사라진 책상 위는 노트북을 올려도 자리가 많이 남았다.

“후루룹....”

최민혁은 노트북을 켠 뒤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자기 방이라 그런지 여기 있는 거 자체만으로도 마음 편했다.

그런 그의 눈에 책상 위에 유일하게 하나 남은 2018년 한국시리즈 MVP 트로피가 보였다. 원래는 다 치우려다 그래도 가장 최근에 받은 가장 큰 상 하나만 기념 상 책상에 남겨 둔 것이다.

“으음.....”

그런데 그 트로피를 보고 나서 갑자기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에 어제 그가 보았던 일기 내용이 떠올랐다. 최민혁은 곧장 켜진 노트북에서 일기장 파일을 열었다.

“여기 있다.”

한국시리즈 7차전이 시작되기 전 1군 투수코치가 그를 위해 해 준 충고를 최민혁은 잊지 않고 자신의 일기에 기록해 뒀다.

“너의 슬라이더는 단연코 최고다. 하지만 투심, 포심, 체인지업 이 세 개는 아직 슬라이더만 못해. 그러니 오늘 그 세 구종을 던질 때 어깨 힘을 빼고, 키킹을 좀 더 빠르게 해서 간결하게, 쓸 데 없는 똥 폼 잡지 말고 던져. 그럼 오히려 상대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거야. 그들도 그 동안 너를 관찰해 왔고 나름 너에 대한 루틴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디셉션이 가능하면 그것도 써 먹어. 이제 마지막이다. 투수로써 이기기 위해 내가 마운드 위에서 할 수 있는 거는 다 해라.”

최민혁은 투수코치가 당시 자신을 위해 해 준 말을 그대로 따라 읽었다. 그러자 가라앉은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잠시 뿐 다시 기분이 급 꿀꿀해지더니 몸이 근질거리고 울화가 치밀었다.

“이, 이거 왜 이러지?”

자신의 몸에 이런 현상을 처음 겪는 최민혁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그 증상이 갈수록 심해졌다.

“으으으윽.”

온몸이 쑤시더니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자 최민혁의 입에서도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약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을 때였다.

[마스터의 몸은 지금 공을 던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나의 목소리가 최민혁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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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세나가 말할 때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던 최민혁은 그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뭐?”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세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지금 마스터가 아픈 이유는 야구가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미쳤어?”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마스터는 야구를 너무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걸 마스터의 몸이 반기를 든 것이죠. 잊지 마십시오. 당신의 몸은 투수 최민혁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몸뚱이가 지금 나에게 반항을 하고 있단 건가?”

[그렇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고칠 방법은?”

[제가 이곳 지구에서 이런 류와 유사한 병명을 알아 봤습니다. 상사병? 화병? 혹은 신병(神病)? 이런 병에 약이 있단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젠장. 그래서 내가 뭘 어째야 하는데? 어째야 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건데?”

[해답은 앞에서도 알려 드렸습니다. 야구를 하십시오. 그럼 고통도 사라질 것입니다.]

최민혁으로서 살기로 했지만 야구를 하고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얘기는 달랐다.

“야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데?”

[그럼 계속 아프겠지요.]

세나의 대답을 듣고 최민혁은 깨달았다. 야구를 하지 않고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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