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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9화 (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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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카니발 차가 알아서 강원대학병원으로 가는 동안 강하나가 최다혜에게 따지듯 물었다.

“너 오빠 간병은 어쩌고 시내에 나와 있는 거야?”

“내 오빠 간병은 내가 알아서 해. 그 인간 혼자 있을 만하니까 잠깐 시내에 볼 일 보러 나왔지.”

“볼 일? 그게 뭔데?”

최다혜는 자랑삼아 자신도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했단 말을 강하나에게 하려다 말았다.

‘그래. 지금은 아니야.’

최다혜는 자신이 데뷔한 드라마를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의 강하나를 생각하며 입이 근질거렸지만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급하게 등기 보낼 게 좀 있어서 우체국에 좀 갔었어. 근데 점심은 먹었어?”

최다혜가 얼렁뚱땅 강하나의 말을 받아 넘기며 묻자 강하나가 턱짓으로 차 안쪽에 나뒹굴고 있는 비닐봉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는 길에 김밥 먹었어.”

그런데 어째 그 비닐봉지의 최다혜의 눈에 거슬렸다. 고급스런 말로 을씨년스럽다고나 할까?

“너 정도면 유명하지 않아? 왜 이런 차 타는데?”

“이런 차가 어때서?”

“왜 유명한 연예인들은 다 벤을 타지 않아?”

“벤? 호호호호!”

강하나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진지해 보이는 최다혜의 얼굴을 보고 이내 웃음을 그치곤 말했다.

“다혜야. 벤을 타려면 탑(Top)급 배우는 돼야 해. 너도 알겠지만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 말에 최다혜의 시선이 차 안쪽에 나뒹굴고 있는 비닐봉지로 향하며 말했다.

“그래도 너 정도 되면 점심 못해도 수제 도시락이나 초밥 정도 먹어줘야지.”

최다혜의 그 말에 강하나는 친구가 자신의 끼니를 걱정해 줘서 이렇게 말하는 줄 알고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난 괜찮아. 그리고 스케줄 바쁠 땐 굶을 때도 있는걸 뭐.”

최다혜는 강하나의 그 대답을 듣고 오히려 얼굴이 굳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핸드백으로 향했고 동시에 생각했다.

‘강하나가 이 정도면 나는...........’

아직 데뷔도 못한 그녀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할지 안 봐도 훤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오해한 강하나가 감격한 얼굴로 갑자기 최다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다혜야. 나 정말 괜찮아. 네가 이렇게까지 날 생각해 주고 있을지 몰랐어. 역시 넌 내 베스트 프렌드야.”

반쯤 넋이 나간 최다혜는 얼떨결에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강하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어어. 그래.”

그러면서 최다혜는 자신이 오늘 대형 사고를 쳤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후회해도 너무 늦었다. 그녀가 서명한 계약서의 잉크는 이미 마른 뒤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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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혜의 진심을 알아서 였을까? 평소 자신에 대해, 특히 연예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선 일체 말이 없던 강하나가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나 사실 후회도 많이 했어. 그때 계약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랬으면 너처럼 평범한 여대생의 삶을 살 수 있었을 테니 말이야. 소개팅도 하고 돈 필요하면 알바도 하고. 무엇보다 연애.....아니다. 이건 취소. 매일 새벽에 일어날 필요도 없고 주말엔 늘어지게 자고.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고................”

강하나는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최다혜에게 늘어놓았다. 반면 그걸 듣는 최다혜의 얼굴은 갈수록 썩어 들어갔다.

지금 강하나가 하는 말은 최다혜가 연예 지망생이 되면서 이제부터 할 수 없게 될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잠이 많은 최다혜는 강하나의 하루에 잘 자면 2-3시간 잔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당장 그렇게 바쁘게 살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유명해 지기 시작하면 지금의 강하나처럼 자신도 이 모양 이 꼴이 될 것이 아닌가? 최다혜는 강하나에게서 몇 년 후 자신의 모습이 투영 되었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너도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줄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날 좀 도와 줘.”

뜬금없는 강하나의 말에 최다혜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말이다. 그러자 강하나가 애원조의 얼굴로 최다혜를 보며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너도 알지만 내 소원이 현모양처 아니겠니.”

“어? 그, 그랬었나?”

최다혜는 처음 듣는 소리지만 강하나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차마 마음속의 생각을 그대로 밝히진 못했다.

“그래. 그러니 네가 네 오빠한테 잘 좀 얘기해 줘. 나 같은 신붓감도 없다고.”

강하나는 제대로 헛물을 켜고 있었다. 최다혜는 그의 오빠인 최민혁이 강하나를 끔찍이 싫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오빠가 강하나와 결혼을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다. 하지만 역시 그 사실을 당사자인 강하나 앞에서 얘기하진 않았다. 그랬다간 십년지기 친구를 잃을 수 있으니까. 대신 늘 하던 대로 긍정적인 대답은 해 주었다.

“알았어. 내가 잘 얘기 해 볼게.”

“고마워. 역시 친구뿐이다.”

최다혜가 자신을 돕겠다고 해선지 몰라도 강하나가 그녀를 보는 눈빛부터가 달려져 있었다. 최다혜는 강하나가 이렇게 호의적일 때 궁금한 것을 슬쩍 물었다.

“하나야. 요즘 연예 기획사에 소속 된 연습생이 많아?”

그 질문에 강하나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응. 내가 알기로 국내의 연예 기획사 중 소속 연습생이 있는 곳은 18.2%야. 이중 3분의 2 가량이 연습생과도 ‘연습생 계약서’를 따로 작성 한다던데...... 평균 계약기간은 3년 5개월, 5년 이상 장기 연습생 계약을 맺는 경우가 41.4%로 가장 많아.”

“우와. 너 되게 상세히 안다.”

“그게 내가 아는 애가 이상한 연예기획사와 노예계약을 했지 뭐야. 그래서 그쪽으로 빠삭하게 알게 됐지.”

“그, 그래? 그래서 그 애는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아주 골치 아파졌지. 소속사가 연습생들과 별도의 계약서를 쓰는 이유가 뭐겠어? 바로 연습생이 다른 기획사로 옮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정작 그런 엉터리 계약의 문제는 계약서에 데뷔 등 소속사의 의무는 상세히 기술하지 않거나 계약기간도 명확히 명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거지. 이런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습 생들의 평균 데뷔 기간은 ‘연기자’의 경우 약 2년, ‘가수’는 약 2년 2개월, ‘모델’은 1년 8개월로 조사 됐어. 이는 데뷔에 성공한 경우에 한정된 기간을 말하는 것인데 상당수 연습 생들은 타 기획사로 옮기지도 못한 채 데뷔도 하지 못하고 연습 생 생활로 연예 활동을 종료하고 있데. 진짜 충격적이지?”

“어어. 그, 그래.”

“너 어디 아프니? 아까부터 얼굴빛이 영.....”

“아, 아니야. 난 괜찮아. 그러니 하던 말 계속 해.”

“알았어. 그러니까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불리는 연예 기획사와 연예인의 부당 계약 관행,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거든. 그래서...............따라서 두루뭉술하게 서술된 기획사와 연예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보완이 필요해. 특히 표준전속계약서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연습생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가 하루 속히 제정돼야 문제고.”

“................”

강하나의 얘기를 듣고 난 최다혜는 아무래도 자신이 스타엔터테이먼트와 불공정한 노예계약을 한 거 같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걸 알지 못하는 강하나는 한 숨과 함께 넋두리를 널어놓았다.

“하아!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지망생은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야. 솔직히 많은 방송들이 앞 다투어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방영하면서 전국의 어린 아이들이 스타망상에 빠지는 시대가 만들어졌잖아. 이러다 보니 대형기획사에 붙을 실력은 안 되고, 연예인은 되고 싶은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신생회사와 불평등계약을 맺어가면서 연예계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 현실이야. 청소년들의 경우는 계약문제는 물론 법 문제에 대해 당연히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 부모들 역시도 이런 문제는 간과한 채 자녀 때문에 억지로 동의 해주는 경우가 많고. 이런 문제는 기획사와 연예인 지망생, 그리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담당하는 정부가 공히 한발 뒤로 물러나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길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봐.”

강하나의 말을 구구절절 옳았다. 하지만 그 말은 최다혜의 귀엔 들리지 않는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울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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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나의 연예계 전속 계약의 병폐에 대한 얘기는 카니발 차가 강원대학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니까 기껏 해봐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되는 학생들이 사회물정을 알 수 없어서 정확히 따지지 못한 채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는 거지. 그냥 본인이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으니까 뭔지도 모르고 불공정계약에 대책 없이 사인을.........”

“그만 좀 해. 그래. 나 대책 없이 멍청하다. 됐냐?”

“뭐, 뭐?”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최다혜 때문에 강하나가 뻥진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을 태운 카니발 차가 강원대병원 입구에 다다랐다.

“아저씨. 차 세워 줘요.”

단단히 뿔이 난 듯 최다혜가 소리치자 강하나의 매니저가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촤르르!

순간 최다혜가 카니발 뒷문을 열고는 차 밖으로 후다닥 나가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강하나가 소리쳤다.

“최다혜! 그냥 가면 어떡해!”

그때 뒤쪽에서 경적이 울렸고 별 수 없이 카니발 차는 앞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강하나가 열린 차 문을 닫으며 중얼 거렸다.

“다혜 저게 갑자기 왜 저런데?”

어리둥절해 하던 강하나는 카니발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리며 매니저에게 말했다.

“두 시간 있다 올 테니 그때까지 좀 자던지 해요.”

“그래. 딱 두 시간이다. 더 늦으면 화보 촬영 시간에 늦을지 몰라.”

“알았어요. 오빠. 장사 어디 하루 이틀 해요?”

강하나의 매니저는 강하나가 철모르던 신인 연기자였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능글맞은 연기자가 다 돼 있자 그게 어째 시원섭섭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이제 겨우 인기 좀 끄는 데 혹시나 스캔들이라도 터질까 싶어서 말이다. 강하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던 강하나의 매니저가 중얼댔다.

“이거 실장님이 알면 나 잘릴 텐데.......”

지금껏 강하나는 단 한 번도 소속사와 매니저를 실망 시킨 적이 없었다. 그녀만큼 근면성실하고 연기에 열정적인 신인 배우는 국내 최대 연예 소속사인 SQ엔터테이먼트에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최민혁이란 남자에 대해서만큼은 이성을 잃었다.

“그럼 저 연기 그만 둘래요.”

최민혁을 만나지 말란 매니저의 말에 그녀가 바로 한 말이었다. 이러니 강하나의 매니저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으음. 아무래도 이대로 둬선 안 되겠지?”

강하나가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그녀 혼자 노력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공든 탑을 지금 강하나가 무너트리려 하고 있었다.

강하나의 매니저는 오늘 소속사로 가게 되면 자신의 상관인 이 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같이 대책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이 팀장이라면 좀 더 합리적이고 확실한 대책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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