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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타탁!
최민혁은 능숙하게 마우스를 움직여서 노트북 안의 정보를 열람했다. 그에게 최민혁의 온전한 기억을 활용할 수 있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에 불과했다.
최다혜의 말처럼 최민혁은 자신의 노트북에 수시로 일기를 작성했다. 그 일기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최민혁은 그 기억은 접어두었다. 그건 어차피 뒤에 읽어 보면 되니까.
최민혁은 노트북의 다른 파일들을 살폈다. 그 중에는 피 끓는 20대 남자의 밤을 위로해 줄 므흣한 동영상들이 보였다. 그러자 그 동영상을 보고 최민혁이 손장난을 친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젠장......”
그 기억이 워낙 생생해서 최민혁의 벌레 씹은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걸 자신이 할 때와 남이 하는 걸 보는 건 엄연히 달랐으니까.
비록 최민혁 자신의 기억이었지만 지금의 최민혁과 그때의 최민혁은 다른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최민혁은 자신이 한 행위였지만 그게 마치 남이 하는 걸 몰래 숨어서 본 거 같은 찝찝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최민혁은 므흣한 동영상들이 저장 된 파일을 눈에 띠는 대로 바로 지워 버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그렇게 그에게 주어진 시간 10분이 채 30초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민혁은 오늘 그를 보러 오기로 한 최민혁의 빠순이 강하나를 생각했다. 그러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났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강하나는 최민혁의 빠순이가 맞았다. 강하나는 예쁘고 성격도 좋았지만 최민혁은 이상하게 그녀가 싫었다. 그에 비해 자신과 사귀는 중인 걸레 한가연을 최민혁은 정말 사랑했다.
“지랄하네.”
그런 최민혁의 기억에 그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진 않았다. 그리고 이내 시간이 다 되어선지 최민혁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서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최민혁은 신기한 경험에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살짝 멀미가 나며 속이 울렁거렸다. 그때 세나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왔다.
[능력빙의의 후유증이에요. 타인으로 빙의해서 그 사람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에 비하면 소소한 데미지 지요. 익숙해지시면 괜찮을 거예요.]
최민혁은 세나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뒤 최민혁은 자신의 노트북에 푹 빠졌다. 특히 자신이 띄엄띄엄 적은 일기를 통해서 최민혁의 성격이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최민혁은 한마디로 야구 밖에 모르는 철없는 애송이였다. 그러니 보기에 좋고 화려한 것이 더 좋았다. 그렇다보니 여자 보는 눈도 딱 그 수준이었고 말이다.
지금의 최민혁이 보기에 자신의 빠순이인 강하나가 걸레 한가연보다 10억 배는 나았지만 이전의 최민혁은 그 반대였다.
또 일기에 나와 있는 최민혁의 성격은 편협했고 조급하며 자존심은 더럽게 셌다. 그렇다보니 선수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선지 일기 내용 중 절반 이상이 같은 팀 선수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 그리고 욕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최민혁이 보니 그 보다는 그와 같이 선수 생활을 하는 선수들이 오히려 더 그에 대해 불만이 많을 거 같았다. 성질 더러운 그의 비위를 맞춰 주느라 말이다.
최민혁이 팀의 에이스이기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왕따 신세였을 터였다. 뭐 일기에 보면 동료 선수들이 실제로 그를 은근히 따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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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에게 노트북을 던져 주고 최다혜는 유유히 병실을 나섰다. 현재 그녀는 방학 기간이었지만 다니는 학원이 있었다. 지금 서울에 있는 그 학원에 가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오빠가 퇴원하는 모레까지는 그 학원에 가기 어려울 성 싶었다. 병원을 나선 최다혜는 춘천 시내 번화가 스타박스에 들어섰다.
“다혜양!”
그곳에서 그녀보다 먼저 와 았던 30대 중후반의 인상 좋게 생긴 남자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헤어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듯 잘 정돈 된 머리에 최신 유행에 맞게 갖춰 입은 옷은 그 남자를 훈남으로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최다혜는 곧장 그 남자가 있는 쪽으로 갔고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러자 남자가 그녀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메리카노면 되죠? 설탕은 한 스푼?”
“네.”
최다혜의 대답을 듣자 남자는 몸을 일으켜서 커피를 주문하러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곤 주문표를 들고 다시 최다혜 앞에 앉았다.
“생각은 해 봤어요?”
가볍게 툭하니 던지는 그의 물음에 최다혜가 결심이 선 듯 대답했다.
“네. 계약 할게요.”
“잘 생각했어요.”
그때 계산대에서 주문 번호를 불렀고 그 번호가 맞는지 남자가 주문한 커피를 가지러 가자 최다혜가 핸드백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명함엔 그냥 심플하게 스타엔터테이먼트 신인발굴팀 캐스팅팀장 배도철이라고 적혀 있고 그 뒷장에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 FAX번호, MaiI주소, 핸드폰 번호 등이 복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최다혜가 알아본 스타엔터테이먼트는 중견 연예기획사로 배우는 물론 가수, 모델까지 다양한 연예인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잠시 뒤 커피를 가지고 돌아 온 배도철이 최다혜에게 그걸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시고 바로 계약해요.”
“네.”
최다혜가 배도철을 만난 건 올 봄이었다. 여대 축제 때 그곳에 소속 가수와 같이 공연을 왔던 배도철의 눈에 최다혜가 눈에 띤 것이다. 그 뒤 배도철은 집요하게 그녀에게 접촉을 시도했고 드디어 그녀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서류 가방에서 계약 서류를 꺼내며 배도철이 말했다.
“뭐 보면 알겠지만 표준계약섭니다. 보시고 밑에 이름, 주소, 은행하고 계좌비밀번호 적은 다음 서명하면 됩니다.”
배도철은 연예인 전속 계약서를 최다혜에게 건네며 말로는 계약서를 보라고 했지만 실제론 계약서 맨 뒤에 빈칸을 채우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순진한 최다혜는 그런 그의 말에 넘어가서 그 빈칸을 채우고 서명까지 했고 말이다.
‘됐다.’
최다혜가 서명을 하는 걸 보며 배도철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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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엔터테이먼트와 최다혜의 계약은 흔히 말하는 노예 계약이었다. 최다혜는 5년 이상의 장기 연습생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데뷔에 대한 기약도 없이 중장기 계약의 굴레에 스스로 빠졌단 소리기도 했다.
“하하하. 앞으로 잘해 봅시다.”
“네. 팀장님.”
그런 계약을 해 놓고 최다혜는 기분 좋게 웃었다. 배도철이야 목적한 바를 이뤘으니 웃는다 쳐도 말이다.
“그럼 내년 1월 5일에 회사에서 봅시다. 우리 회사 어디 있는지는 알죠?”
“네. 여기 적힌 대로 가면 되잖아요.”
최다혜가 배도철의 명함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네. 거기로 오시면 됩니다. 아! 오실 때 저한테 전화 주세요. 그래야 회사 내 출입이 가능하거든요. 요즘 쓰잘머리 없는 인간들이 자꾸 회사를 찾아와서 통제를 엄격히 하거든. 이제 한 식구가 됐으니 말 놔도 되지?”
“그럼요. 팀장님.”
“그래. 그럼 크리스마스, 연말, 신정 잘 쇠고 5일 날 보자고. 시간 되면 점심이라도 같이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내가 좀 바쁘거든. 자 그럼 난 이만.......”
배도철은 최다혜가 작성한 연예인 전속 계약서를 챙겨들고는 휑하니 스타박스를 빠져나갔다. 배도철과 헤어진 최다혜가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2시였다. 이대로 병원으로 돌아가자니 점심이 문제라 최다혜는 근처에 있는 맥덜란드에 가서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혼자 끼니 때울 때 햄버거만 한 것도 없었다. 세트 메뉴를 시켜 감자튀김과 같이 맛있게 햄버거를 먹어치우며 최다혜는 생각했다.
‘그래. 나라고 배우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까짓 해보는 거야.’
올 봄에 배도철이 잔뜩 바람을 넣어 연예인 병이 걸리긴 했지만 최다혜도 나름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러니까 재작년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다른 대학에 진학하게 된 최다혜와 그녀의 친구 강하나가 홍대 거리를 쏘다닐 때였다.
그들 앞을 웬 남자가 막아섰고 알고 보니 국대 최고 연예기획사인 SQ엔터테이먼트의 캐스팅담당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강하나에게만 건넸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강하나는 배우가 되었다.
당시 최다혜는 진심으로 강하나가 연예인이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최다혜는 자신이 연예인이 되고 싶단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친구인 강하나가 점점 메스컴을 타고 유명해면서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외모에서 최다혜가 강하나에게 꿀릴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최다혜가 키도 크고 몸매도 더 빼어났다. 뭐 얼굴은 강하나가 좀 더 예쁜 건 그녀도 인정하지만.
연기력? 그건 배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올 겨울 방학 때 최다혜는 아무도 몰래 연기 학원에 등록을 했다.
비록 며칠 나가지 않은 연기 학원이지만 그곳 연기지도를 해 주는 분이 최다혜에게 극찬을 늘어놓았다. 그게 수강생을 더 오래 학원에 붙잡아 두려는 립서비스란 걸 최다혜는 몰랐지만.
뭐 어째든 최다혜는 강하나 만큼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올 봄부터 그와 계약을 하려 안달이 나 있던 배도철의 스타엔터테이먼트와 계약을 했다. 최다혜는 자신의 가방에 들어 있는 그 계약서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강하나를 좀 생각했다고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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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의 햄버거를 씹어 삼키고 콜라까지 한 모금 마신 뒤 최다혜는 최대한 여유 있게 강하나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 지금 아쉬운 건 강하나 그녀였으니 말이다.
“응. 하나야.”
-지금 어디야?
역시 강하나는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목소리부터 조급함이 묻어나왔다.
“나 지금 춘천 시내야.”
-춘천 시내 어디?
“맥덜란드!”
-알았어. 바로 갈게.
보아하니 강하나도 지금 춘천 시내에 와 있는 모양이었다. 최다혜가 막 햄버거를 다 먹고 치우고 났을 때 그녀 앞에 모자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낀 강하나가 나타났다.
“따라 와.”
강하나는 친구 최다혜의 손목을 잡아끌고 맥덜란드를 나섰다. 그러자 그 입구 앞 인도 옆에 비상깜빡이를 켜고 정차 중인 흰색 카니발 차가 보였다. 강하나는 곧장 뒷좌석 문을 열고 최다혜를 먼저 차 안에 욱여넣었다. 그 다음 자신도 차에 오르며 운전석을 향해 외쳤다.
“오빠. 출발해요.”
“알았어.”
그러자 운전석의 강하나 매니저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차를 출발 시켰다. 강하나의 매니저는 지금 이 차를 몰고 어디로 가야하는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부터 강하나에게 강원대학병원에 갈 거란 소리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