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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최다혜가 나가자 최민혁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기랄. 내가 야구 선수 최민혁이라니......”
최민혁의 입에서 황당무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에 따르는 자신이 최민혁이 아니란 소린데......
그랬다. 지금 최민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자동차 정면 추돌 사고 때 죽은 차성국이었다.
차성국은 깨어나고 최민혁의 기억상실에 충격을 받은 여동생이 병실 밖으로 나가자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럴 것이 오줌보가 곧 터질 거 같았던 것이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화장실 안에서 비명이 울렸다. 다행인 건 병실이 1인실에다가 최근 보강 공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쓸데없이 방음이 잘 되어서 그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 온 사람이 없다는 거정도?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시원하게 볼일을 본 뒤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에 선 차성국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차성국인 자신이 완전 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목소리도 바뀌어 있었다. 거울에 바뀐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말하다보니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서도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차성국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차성국은 흔히 말하는 천재였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서 한 번 본 건 거의 다 기억했다. 그랬기에 그는 대학 재학 중 그 어렵다는 3대 고시를 전부 패스했다.
그의 미래에 꽃길이 열린 그때 군 입대 영장이 날아왔다. 이미 연기 신청까지 했던 터라 이번엔 반드시 입대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군대에 입대하기 전 그는 우연히 자신의 신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모친이 끝까지 숨기려다 그가 입대하기 며칠 전 결국 털어 놓은 것이다.
차성국은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컸던 차성국은 아버지가 살아 있단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어진 모친의 얘기를 듣던 그의 얼굴은 경직 되었다.
바로 자신이 그 말로만 듣던 재벌가의 사생아였던 것이다. 그것도 국내 최고 굴지의 재벌가인 오성그룹의 사생아!
그의 생부는 그 재벌가의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바로 오성그룹 회장 박규철!
그 사실을 알게 된 차성국은 오성그룹을 찾아갔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당연히 오성그룹의 오너인 박규철이 차성국을 만나 줄 리 없었다. 하지만 고시 3관왕이란 그의 타이틀이 그걸 가능케 해 주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만나게 된 박규철.
박규철은 차성국이 자신의 아들이란 말에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그가 비서를 불러서 한 말은 DNA검사를 해 보란 거였다. 그리고 그 결과 차성국이 자신의 아들임이 밝혀지자 박규철은 바로 손을 썼다.
군법무관으로 복무하기로 되어 있던 차성국은 재검을 받게 되었고 현역 판정이 군 면제 판정으로 바뀌었다. 이런 일도 가능하나 싶었지만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 앞에 차성국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군대 가는 대신 오성그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맞다. 오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최민혁!”
차성국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누군지 결국 알아냈다. 두 달 전쯤이던가? 박규철 회장과 같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오성 라이온즈 선수단을 오성 호텔 연회장에 불러서 만찬을 즐길 때 보았던 최민혁의 얼굴이 생각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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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나온 차성국이 충격에 빠진 채 털레털레 병상에 올랐을 때였다. 웬 여자가 노크도 없이 덜컥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누가 봐도 놀랄 8등신의 미녀였지만 차성국에겐 닳고 닳은 화류계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성 그룹에 입사한 차성국은 회장 비서 생활부터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오성그룹, 아니 박규철 회장의 힘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깨달았다.
박규철 회장의 주위에 널린 게 여자였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낳아 준 모친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박규철 회장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예상이 가능했다.
그 예로 박규철 회장은 차성국을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지 않았다. 계속 모친의 성인 차씨 성을 쓰고 살란 소리였다. 그 말은 그를 오성그룹 재벌가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단 소리였다. 하지만 완전히 남으로 취급하진 않았다.
그의 능력에 따라 회사의 중요한 일을 척척 그에게 맡겼다. 차성국은 박규철 회장을 실망 시키지 않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일을 성사 시켰고, 그 결과 누구보다 빠른 승진을 해 나갔다. 그래서 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박규철 회장의 혈족이 아닌 자로서는 유일하게 그룹 임원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저 여자는 오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한가연이잖아?’
역시 차성국의 뛰어난 기억력은 8등신 미녀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저 걸레가 여긴 왜.....’
차성국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여러 중요한 술자리에서 한가연을 보았다. 그때마다 그녀는 남자와 같이 조용히 술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어디로 갔을 지는 뻔했다.
차성국도 그렇게 우연찮게 한가연과 잘 뻔한 적이 있었다. 그가 오성 자동차의 전무이사란 사실과 아직 미혼이란 사실에 혹한 그녀가 그를 유혹하려 했지만 그가 거절했다. 그러자 그녀는 보란 듯 차성국 옆자리의 대머리 임원과 같이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그 대머리 임원의 입에서 한가연이 끝내 주더란 말을 듣고서 차성국도 살짝 후회를 한 기억이 났다. 그런데 저 걸레가 자신에게 다가와서 치근덕거렸다.
‘뭐야? 이 분위기는.....’
차성국은 설마 했는데 저 걸레가 아무래도 최민혁과 무슨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그녀 입에서 ‘자기’란 말을 듣고 차성국은 걸레가 최민혁의 연인임을 알 게 되었다.
나름 연인 사이랍시고 걸레가 자신에게 애교를 떠는 데 차성국은 구역질을 올라왔다. 바짝 자신에게 다가 온 걸레에서 나는 향수 냄새가 구토를 더 유발시켰다.
‘제발 저리 좀 떨어져라.’
당연히 차성국은 지금 이 상황이 짜증났다. 그런 그의 불쾌감을 곧 다른 여자가 병실에 나타나서 해결해 주었다. 최민혁의 여동생 최다혜가 병실에 들어 선 것이다. 그녀는 병실에 걸레가 있는 걸 보고 벌레 씹은 얼굴로 말했다.
“아니 당신은.....”
“안녕. 잘 있었어?”
“누구 덕에 잘 있지 못했죠.”
“뭐? 너 언니에게 말하는 게 왜 그래?”“언니? 누가 누구보고 언니래. 그리고 내 말이 뭐 어때서?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하아! 정말 기막혀서......”
여자끼리 싸움은 처음 구경하는데 살벌하기가 장난 아니었다.
‘그래. 잘한다. 잘 해.’
차성국은 최민혁의 여동생 최다혜를 속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그의 응원 덕인지 최다혜가 승리하며 걸레가 병실을 나갔다.
“쯧쯧. 저딴 여자가 뭐 좋다고..... 하여튼 여자 보는 눈 하곤.......”
최다혜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차성국은 개의치 않았다. 최민혁이 좋아했을지 몰라도 한가연은 그의 취향은 전혀 아니었으니까. 아마 앞으로 그녀와 엮일 일은 없을 터였다.
잠시 뒤 최민혁의 담당의가 찾아왔다. 아마도 여동생이 부른 모양인데 아니나 다를까? 기억상실 문제가 대두되었다.
담당의는 정신과의사의 상담을 추천했지만 차성국이 그걸 거절했다.
‘내가 미친놈은 아니잖아?’
비록 자신의 몸은 아니지만 어째든 차성국의 정신은 지극히 정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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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옷가지를 챙겨 온다며 집으로 가고 혼자 남게 된 차성국은 왜 이런 미스터리한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도통 그걸 알 길은 없었다. 그때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여동생이 말한 구단 관계자들이었다.
그 구단 관계자들을 통해서 차성국은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구단 관계자들 중 법무팀의 직원이 비교적 객관적이고 상세하게 정면 추돌 사고에 대해 얘기 한 것이다. 법적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게 차성국에겐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길치인 최민혁이 대구에서 서울로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서 강원도로 넘어갔고...... 그러다 새벽에 내 차와 부딪친 거란 말이군. 그렇다면 그 정면 추돌 사고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데......’
두 차가 부딪쳤고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았는데 그 살아남은 사람의 정신을 죽은 사람이 정신이 차지하게 됐단 소리였다.
‘가만 그럼 내 몸은.......’
차성국은 사고 당시 죽었단 차성국 자신에 대해 법무팀 직원에게 몇 가지 물었지만 그때마다 그 직원이 대답을 회피하는 걸 보고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룹 차원에서 조용히 뒤처리를 한 모양이로군.’
그래도 자신은 박규철 회장의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묻어 버리는 그들의 행태에 차성국은 치를 떨면서도 막상 이해도 됐다. 그가 살아 온 오성그룹이란 곳이 원래 그렇게 비정한 세계란 걸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인 박규철 회장은 그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할 인간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그룹 차원에서 오성 라이온즈 구단에 제대로 조치를 취한 듯 했고 그렇다면 이 사고에 대해 자신이 더 알아 낼 것도 없었다.
차성국은 이내 자신의 죽음과 그 뒤 수습에 대한 호기심을 접었다. 그리곤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왜 최민혁의 몸에 자신의 정신이 들어왔는지 거기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천재 소리를 듣던 차성국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 사이 자신들의 볼 일을 다 본 구단 관계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표로 감독이 최민혁에게 말했다.
“그럼 몸조리 잘하고. 올 한 해 수고 많았다. 그럼 내년에 괌에서 보자.”
“네. 감독님. 다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차성국은 최민혁이냥 행세를 하며 구단 관계자들을 병실 밖까지 배웅했다.
“그러니까 내년 1월 15일에 오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괌으로 전지훈련을 간단 말이지.....”
구단 관계자 중에는 오성 라이온즈의 감독인 류주일 감독도 있었는데 그는 혹시나 팀의 에이스인 최민혁이 몸에 이상이 있다면 며칠 늦게 괌 베이스캠프에 합류해도 된다고 했다. 나름 팀 에이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말이다.
류 감독이 이렇게 최민혁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건 그가 내년 FA를 하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매년 20승 이상을 챙겨 주고 있는 특급 에이스였다. 그런 그가 빠진다면 오성 라이온즈 전력에 큰 구멍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류 감독도 각별히 그에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오성 라이온즈 입장에서는 내년 FA시장에서 최민혁 만큼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이에 최민혁은 그렇다면 이틀 정도 늦게 괌에 가겠다고 했고 감독은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오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괌으로 출발 할 때 그도 전지훈련을 핑계로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그 이틀 뒤에 괌에 갈 터였다. 그렇다면 이틀의 시간이 비는 데 그 동안 그는 어디로 가서 대체 뭘 할 생각일까?
최민혁, 그러니까 그의 정신은 차성국인 그는 그날 버진아일랜드로 갈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조성해 놓은 비자금을 전부 인출해서 자신의 스위스 비밀 계좌로 옮겨 놓을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