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5화 제신과 제기
"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함부로 까불지 않겠습니다."
진남은 정색하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잘됐다.
명심하거라. 너는 큰 보물을 갖고 있다. 세력들은 너희 진씨 가문의 선조들이 남긴 수단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네가 갖고 있는 징천령도 두려워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다."
강회명은 말투가 부드러웠다.
"안 되겠다. 너는 너무 까불었다. 지금 내 앞에서 맹세를 하거라. 너의 선조의 명의로 맹세를 하거라."
강회명은 여전히 걱정되었다.
진남은 통쾌하게 맹세를 했다.
'어차피 이 모든 것은 환상이고 나는 진정한 진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맹세를 몇 번 한다고 무슨 일 있을까?'
"됐다. 법선대회가 열릴 때까지 십몇 일 남았다. 이따 사람을 네가 머문 곳에 보내 구선향로(九仙香爐)를 설치하고 삼삼귀일취선진(三三歸一聚仙陣)을 몇 개 쳐주겠다. 남은 시간을 이용해 제대로 수련하고 경지를 높이거라."
강회명은 말을 마치고 신념을 전했다.
잠시 후 대전 안에 검은 안개가 떠 올랐고 시커먼 형상으로 변했다.
형상은 얼굴 등이 모두 검은 두루마기에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진남은 검은 두루마기에 가려진 형상의 경지가 매우 대단하고 강성과 강곡을 초월했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진남은 생각하고 말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회가 된다면 저는 홍수를 도와주겠습니다."
강회명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말했다.
"자식 양심이 있구나. 됐다. 칠숙(七叔), 진 가주를 모시고 가시오."
흑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야윈 손바닥을 내밀어 진남의 어깨를 잡더니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강회명은 텅 빈 대전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빛이 스쳤다.
"자식, 진짜 정신을 차렸나? 아니면……."
강회명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는 신념을 전하고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슉-!
진남과 흑포인의 형상이 한 정원에 나타났다.
진남은 주위를 둘러봤다.
정원은 크지 않고 방원 삼백여 장밖에 안 되었다.
정원에는 잎이 금색인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나뭇가지 아래에 옥 책상이 있었다.
책상과 멀지 않은 곳에 방원 이십여 장 되는 저수지가 있었는데 물이 맑았다.
정원에는 왼쪽과 오른쪽에 방이 한 개씩 있었다. 가운데는 접견실이었다.
이곳은 단출했고 사치스럽지 않았다.
진남은 발아래의 짙은 남색의 돌바닥을 포함해 이곳의 모든 물건의 표면에 무늬가 가득한 걸 발견했다.
무늬는 매우 아름다웠다.
자세히 보면 무늬에 현기가 있고 이치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무늬들은 정원을 세상과 분리시켰다.
신념을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고 다른 사람도 안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이곳의 모든 것은 천존 경지의 무인에게는 수련하는 지보이다. 무늬들에서 무언가를 느낀다면 돌파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의 경지에도 무늬가 많았다. 그는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흑포인은 진남을 신경 쓰지 않고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높이가 반 장 되고 발이 세 개 달린 향로가 떠올랐다. 향로에는 옅은 남색의 향이 세 개 꽂혀 있었고 천천히 타며 연기가 날아 나왔다.
무형의 짙은 선의가 순식간에 정원 전체를 덮었고 진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흑포인은 손을 튕겼다.
정원의 하늘에 옅은 금색의 부문들이 엄청 많이 나타났고 대진으로 변해 내려왔다.
대진들은 정원 안의 각 곳에 들어갔다.
진남은 정원 안의 순수한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힘은 어느새 매우 짙어졌다.
진남은 마음이 떨렸고 네 글자가 생각났다.
'수련성지!'
'강씨 가문은 대단하구나. 잠깐 사이에 수련성지를 만들다니!'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하려 했다.
그런데 흑포인은 몸을 날려 사라졌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정원을 대상계로 가져간다면 통천 선배님 등은 짧은 시간 내에 경지가 높아질 수 있겠는데……."
진남은 탄식했다.
그는 수련을 서두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깨끗했다. 물건이 많지 않았다.
진남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진환은 진씨 가문의 가주이고 강씨 가문의 사위이기에 물건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진남은 진환에게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진환이 물건을 자신의 정원에 둔 줄 알았다.
"혹시 물건이 진환의 몸에 있고 비법으로만 열 수 있나?"
진남은 생각이 들었고 머리가 아팠다.
'만약 진짜 그렇다면 희망이 없구나. 그렇다고 강회명을 찾아가 해결하는 방법을 물을 수도 없잖아.
진환이라고 해도 이런 비법을 잊을 정도로 미련하지 않겠지.'
"됐다. 열심히 수련하자."
진남은 고개를 젓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대동천결, 시공성전, 불후상마결 등 공법들이 진남의 체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남은 익숙하고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은 대상계가 아니라 대동천결은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 * *
시간은 조금씩 흘러 열 시진이 빠르게 지났다.
최고의 방탕한 제자인 진환이 강성과 강곡의 부탁을 거절하고 강홍수도 도와주지 않으며 스스로 계기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다른 사 계도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조롱하고 욕하고 분노하는 등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울려 퍼졌다.
많은 큰 세력의 거물들도 이 일을 신경 썼다.
그들 대부분은 고소하게 생각했다.
'이런 사위를 찾았으니 강회명은 머리가 터질 것 같겠지?'
많은 인재들은 시름을 놓았다.
그들은 진환을 업신여겼다.
그러나 진환이 최선을 다해 강씨 가문을 도와준다면 그들은 매우 대단한 인재를 상대해야 했다.
하늘 가득한 유언비어 속에서 진남은 주재 경지 초급 단계에 도달했다.
순조롭게 돌파한 건 진환의 몸이 이미 주경 정상의 경지에 도달했고 진남의 영혼이 강했으며 강회명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순조로울 수 없었다.
"주재 경지는 가까스로 돌파하더라도 천존 경지는 강제로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큰 장면이 없으니까……."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경지와 전력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진남이 마음을 다잡았을 때 문득 엄청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는 마음이 크게 떨렸고 영혼마저 흔들렸다. 마치 방금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눈앞의 광경이 크게 변했다.
엄청 짙은 어둠이 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 전체를 물들였다.
진남은 차갑고 적막하고 끝없는 허공 속에서 먼지처럼 작았다.
이때, 어둠이 찢어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엄 있는 몸, 검이나 칼 같은 병기가 동시에 어둠 속에서 나타났고 피처럼 붉은빛을 뿜었다.
"몸속의 제신과 제기인가?"
진남은 정신을 차렸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것들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다.
진남이 전에 대연세계산에서 보았던 두 명의 선제의 의지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평범한 무상천존이라면 놀라 정신을 잃었을 것이었다.
"진씨 가문에는 선제가 한 명뿐이다. 그렇다면 이건 절법선제의 제신이고 절법선제가 만든 제기일 것이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들어 두 개의 커다란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제신과 제기가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누구냐?"
제신이 말했다. 그의 말투는 무뚝뚝했고 목소리는 천둥 같았다. 그가 말할 때마다 어두운 세상을 흔들 것 같았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제신은 내가 진환의 몸을 차지한 걸 느낀 것 같다.'
"아니라고 하지 말거라. 진환의 영혼 조각들은 전부 광음도(光陰刀)에 날아 들어갔다."
제신은 또 말했다. 시뻘겋고 생기가 없는 눈은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진남은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선배님이 모르는 세상에서 왔습니다. 저는 진환의 몸을 잠시 빌려 할 일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너무 오래 차지하지 않겠습니다. 길어야 삼 개월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광음도가 말했다.
광음도의 목소리는 마른 나무가 부서지는 것처럼 마음에 충격을 주었다.
"배짱이 있구나! 우리가 모르는 세상에서 왔다고? 어떤 세상이냐? 선제가 모르는 세상도 있느냐?"
진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말엔 으스댐이 있었다.
하지만 선제들은 대상계의 존재들을 알지 못했다.
"광음, 이자와 긴말하지 마시오.
네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떤 목적이 있는지 상관없다. 지금 바로 진환의 몸을 떠나거라. 아니면 너를 부수겠다!"
제신은 말했다. 엄청난 패기가 폭발했고 뿜어져 나온 혈광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광음도는 콧방귀를 뀌었고 칼이 떨렸다.
어둠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싸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진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두 명의 엄청난 존재를 만나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진남은 두려운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고 콧방귀를 뀌었다.
"절법선제는 전에 작은 일로 다른 선제의 자손을 죽였습니다. 절법선제가 얼마나 횡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절법선제 본존은 아니지만, 그의 몸과 병기이니 그와 마찬가지로 횡포할 것입니다. 진짜 저를 죽일 수 있다면 쓸모없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을 겁니다."
광음도는 화가 난 것처럼 싸늘한 빛이 흔들렸다.
"건방진 자식이구나! 우리가 너를 죽일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 거냐?"
"믿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음도는 그 대답에 어이없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진남은 또 담담하게 말했다.
"두 분이 저의 영혼을 부수면 진환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거 맞습니까?"
제신과 광음도는 침묵했다.
그들은 진남을 위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진남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선배님들 믿으십시오. 저는 삼 개월 후면 꼭 떠나겠습니다. 만약 떠나지 않는다면 저의 영혼을 부숴도 좋습니다."
제신과 광음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왜 너의 말을 믿어야 하느냐는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진남을 구속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진남에게 구속을 받았다.
진남이 떠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진남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진남의 영혼을 부순다면 진환의 몸도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것이고 진환의 영혼도 자신의 체내에 돌아올 수 없었다.
진씨 가문의 혈맥이 끊길 수 있었다.
물론 진남이 그들의 내막을 모르는 것이 그들에게는 유일한 좋은 소식이었다.
"네가 맞혔으니 긴말하지 않겠다. 삼 개월 동안에 너는 진환의 몸을 무상천존의 정도로 진급시켜야 한다!"
제신은 침묵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너를 공격하는 건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너를 혼내줄 수 없는 건 아니다."
진남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선배님들 저는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곧 법선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진환은 명성이 나쁜 데다 강홍수와 혼인하여 벌집을 쑤신 격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나중에 저는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광음도는 쌀쌀맞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너는 우리도 눈치채지 못하게 진환의 몸에 들어왔다. 아무 수단이 없겠느냐?"
진남은 어이없었다.
'이들은 나를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