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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1455화 (1,455/1,498)

1455화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

절반쯤 가니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아보니 아래쪽은 설산 산기슭의 광경을 보이지 않고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중, 우리가 불조의 조각상을 부수기 위해 온 걸 아느냐?"

묘묘 공주는 물었다.

"도리대로라면 불조의 조각상은 사찰의 진묘지보라 깨면 안 되지 않느냐? 너는 왜 우리를 막지 않느냐?"

성승은 처음으로 표정이 변했다.

그는 난감해하며 말했다.

"묘 시주, 맞는 말이오. 불조의 조각상은 깨면 안 되오. 게다가 불조의 조각상은 나의 스승님이오. 평소라면 자네들이 나보다 강하여 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불조의 조각상을 부수지 못하게 했을 것이오.

하지만 부처님의 명은 거역하면 안 되고 스승님의 명도 거역할 수 없소. 불조가 자네들더러 부수라고 했으니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소?"

진남과 묘묘 공주 등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놀라움과 의문이 드러났다.

성승은 기운이 신비하고 경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성승은 아무리 낮아도 정상 천존일 것이고 자아, 식지, 응천 경지의 정상 천존일 수 있었으며 전력이 매우 강했다.

'여기는 남찰성묘이고 산기슭에 많은 천존들이 있고 또 이곳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우리의 전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불조의 조각상을 쉽게 부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

……음모일까? 아니면 사연이 있을까?'

잠시 후, 진남과 묘묘 공주 등은 성승을 따라 남찰성묘에 도착했다.

주홍색의 무거운 대문을 열자 중들이 경을 읊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정연하여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커다란 앞마당에 세 개의 묵직한 동정이 있었다.

동정의 겉에는 표정이 다른 부처들이 새겨져 있었고 안에는 금색 향들이 타고 있었다.

향이 타면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금색 재가 떨어졌다.

연기를 넘어 정전이 보였다.

정전에는 단목으로 만든 편액이 걸렸다.

편액에는 힘찬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천불극래(天佛極來)'.

정전의 대문은 열려 있었다.

정전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정전 안에는 선광이 자욱이 뿜어져 나오는 연화대좌(蓮花臺座)들이 있었고 맨 끝에는 높이가 몇십 장 되는 금색 불상이 있었다.

하지만 향의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금색 불상의 진면모를 볼 수 없었고 대략적인 윤곽만 보였다.

"이건…… 지도의 기운이다!"

진남의 눈에 빛이 스쳤다.

지도 경지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주들, 안으로 드시오."

성승은 손짓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세 개의 동정을 돌아서 정전으로 들어갔다.

진남 등은 뒤를 따랐다.

진남 등은 정전에 오자 바다처럼 끝없이 넓은 희미한 위압을 느꼈다.

그들은 대불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금색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남은 금색 대불상의 진면모를 제대로 보았다.

그의 눈에는 처음으로 놀라운 빛이 스쳤다.

금색 대불상은 평소에 보던 불상과 달랐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드리웠고 긴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팔괘대(八卦臺)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상은 금빛이 감돌고 있었으며 표정이 편안하고 합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불의를 겨우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도사의 조각상이라고 오해했을 것이었다.

불상은 생김새가 천극방의 영과 똑같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부군, 왜 그래?"

묘묘 공주 등은 진남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전음으로 물었다.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전음으로 대답했다.

묘묘 공주 등도 깜짝 놀랐다.

'천극방의 영인가? 그는 죽지 않았나? 왜 여기 나타났지? 남찰성묘 불조의 조각상이 되었다고?'

"시주 여러분, 이분이 바로 나의 스승이고 남찰성묘의 불조인 천극불조요!"

성승은 불상을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삼천 년 전에 나는 우연한 기회에 남찰성묘에 들어오게 되었고 불조의 의지를 느꼈소. 그때부터 나는 남찰성묘의 불자(佛子)가 되었소."

진남은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대사, 남찰성묘는 언제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소?"

진남은 줄곧 천극방의 영이 진짜로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천극방의 영의 죽음이 거짓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극방의 영은 지도 경지의 무상천존이고 주천만계의 십대 선천지체 중의 선천도체이며 체내에 무상성혼(無上聖魂)도 있었다.

그러나 천극방의 영은 죽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을까?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대상계에서 종적을 찾을 수 없을까?

그는 청궁의 하현경천과 중현경천에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진남은 천극방의 영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건 나도 모르오."

성승은 고개를 젓고 말했다.

"기록되어 있는 팔천 년 동안, 이 세상의 역사에 남찰성묘는 계속 있었소."

"팔천 년이라……."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방대한 신념을 드러내 천극불조의 조각상에 주입했다.

"응?"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불상에서 범상치 않은 힘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조각상을 부숴야 하나?'

진남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진남은 망설이지 않고 엄청난 기세를 폭발하고 대동천결을 움직여 근원지체로 변해 만법을 통제했다.

주전이 흔들리고 중들의 경을 읊는 소리도 우렁차게 들렸다.

모든 것이 왠지 장엄하고 숙연해졌다.

진남은 불상 앞으로 날아와 주먹을 날렸고 힘을 조금도 남김없이 전부 폭발했다.

쿠웅-!

엄청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남찰성묘는 크게 흔들렸고 불광이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커다란 천극불조의 조각상이 크게 떨리더니 가슴에 금이 생기더니 뚜둑 하고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크라아아-!"

용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상이 부서진 후 나타난 금빛은 순식간에 수백, 수천 마리의 금룡으로 변해 대전에서 날아다녔다.

엄청난 불의와 위압이 퍼졌다.

묘묘 공주 등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기운을 최고로 끌어올려 방어했다.

"어떻게 된 거지?"

진남은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수백 수천 마리의 금룡들은 모두 매우 순수한 힘이 들어 있다. 금룡들을 흡수한다면 무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매우 얻기 힘든 기연이다. 그런데 천 형의 불상은 이것밖에 남기지 않았을까?'

"아미타불……."

이때, 성승은 가부좌를 틀고 앉더니 불천(佛串)을 꺼내고 낮은 소리로 경을 읊었다.

그러자 천극불조의 조각상이 앉아 있는 팔괘불대는 금빛을 반짝거렸다.

금색 글자들이 불대에 떠올랐다.

마치 무상의 존재가 붓으로 불어를 쓰는 것 같았다.

금빛이 사라지자 진남은 글자들을 바라봤다.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무상에 도달하자! 세상의 대세는 앞으로 흘러간다. 그것은 인력으로 장악할 수 없고 무력으로도 장악할 수 없다. 끝이 어떨지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항천 위로 날아오르거라.'

진남의 눈에 빛이 스쳤다.

이 말은 세 가지 뜻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천극방의 영은 그에게 이번에 기원산에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 무상천존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뜻이었다.

두 번째는 천극방의 영은 세상의 대세로 그에게 청궁 안의 대세에 대해 암시하고 있었다.

청궁 안의 대세는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고 칠대 지보가 완전히 청궁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변수가 많고 변화가 많아 결과가 어떠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항천에 남으라는 마지막 한마디는 진남에게 증명하고 있었다.

이 말과 불상이 칠대 지보가 판을 짠 것이 아니고 음모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진남과 계현 등만 '항천'이라는 두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항천은 항천선제를 가리켰다.

전에 대연세계산에서 천극방의 영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선천도체를 각성했고 항천선제에게서 대연천종의 전승을 빼앗아 상황을 돌이켰다.

"그 서신이 천 형이 보낸 거라고?"

진남은 함께 기원산을 열겠다고 대답하기 전에 주천불사산에서 서신을 받았다.

서신에 적힌 내용은 불대에 나타난 문장의 뜻과 비슷했다.

중요한 순간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진남더러 신경 쓰지 말고 전력을 다해 무상천존으로 진급하라고 했다.

물론 이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진남은 천 형이 살아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천 형이 살아있어야만 몰래 이 모든 걸 계획할 수 있었다.

'천 형, 살아있다면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왜 이런 방식으로 저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까?'

진남은 의문이 들었다.

"부군, 잘됐어!"

묘묘 공주, 강벽난, 설몽요는 앞으로 다가와 불대에 적힌 글자를 보고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많이 생길수록 그들에게는 더 유리했다.

"맞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길게 생각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됐건 천 형이 살아있으면 됐다!'

나중에 그가 무상천존의 경지에 도달해 청궁 안의 안개를 걷으면 천 형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진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임 시주, 불조의 조각상을 부쉈으니 마지막 걸음을 내디디시오!"

성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에 불인을 만들더니 팔괘불대를 내리쳤다.

불대가 부서지고 부문이 가득하고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없는 통로가 나타났다.

"알겠소. 대사 고맙소."

진남은 인사를 했다.

묘묘 공주는 눈동자를 굴렸다.

'소남자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이제 '나쁜' 소식을 말해줘야겠다.'

"큰일 났어!"

묘묘 공주는 안색이 어두워지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방금 명초 선배님이 신념을 전해왔어. 그들은 창과 엽소선에게 쫓겨 지금 추격을 피하고 있대!"

강벽난과 설몽요는 서로 힐끗 보았다.

강벽난은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신념을 받았어. 창과 엽소선의 경지가 강해졌고 노조들 중에 상처를 입은 자도 있대."

설몽요는 초조하게 말했다.

"이대로 두면 노조들이 위험하다. 우리가 가서 도와줘야 해!"

묘묘 공주는 입꼬리가 비틀렸다.

'난난도 눈치챘구나!'

"응?"

진남은 표정이 굳어졌고 신념으로 저장 주머니를 훑어봤다.

명초노조가 그에게도 신념을 보냈다.

그들은 '쫓기고' 있었다.

"부군,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나, 공주와 요요 언니가 노조들을 도와주러 가게 해줘. 우리들의 경지에 노조들까지 함께 하면 창과 엽소선을 막는 건 문제 없을 거야."

강벽난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소남자, 난난의 말이 맞아. 우리는 반드시 가야 해! 네가 우리들을 걱정하는 걸 알아. 하지만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우리는 너의 뒤에 숨어있을 수 없어!"

묘묘 공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설몽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너희들이 말이 맞다."

진남은 한숨을 내쉬고 성승을 보며 물었다.

"대사, 이들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소?"

성승은 합장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남찰성묘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통로가 있소."

"그럼 성승, 부탁드리겠소."

"임 시주, 우리 사이에 별말을 다 하는구먼."

진남은 묘묘 공주, 강벽난, 설묭요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단호한 표정에 진남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는 왜 하필이면 명초노조를 찾아 연기를 했을까? 노조가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리 있을까?'

"이번에 가면 위험이 따를 거다.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흩어지지 말거라. 알겠느냐?"

진남은 엄숙하게 말했다.

"소남자, 걱정하지 말거라. 나와 난난, 요요 언니는 꼭 창과 엽소선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이다!"

묘묘 공주는 귀엽게 가슴을 때렸다.

"알았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묘묘 공주 등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묘묘 공주 등이 떠나는 걸 바라봤다.

그는 처음에는 묘묘 공주 등은 반드시 자신을 따라다녀야 하고 그녀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선배님들이 한 말이 있었다.

그녀들도 거물이고 천재였다.

그녀들도 자신만의 의지가 있었다.

때문에, 그녀들을 통제하고 안락하게 지내라고만 할 수 없었다.

그는 묘묘 공주 등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했다.

만약 누군가 그의 여인들을 건드린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건 상대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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