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9화 어떤 선택을 했느냐?
천제지주 내부.
묘묘 공주, 강벽난, 설몽요 등은 눈앞에 벌어진 장면에 깜짝 놀랐다.
천제지주는 창이 천제결로 만들어낸 것이라 현묘하기 그지없었다.
천제지주는 구천선역의 근원의 힘과 소통할 수 있고 근원의 힘을 빌려와 쓸 수도 있는 엄청난 지보였다.
묘묘 공주, 강벽난, 설몽요 등은 전에 이곳에서 폐관수련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은 새소리가 들리고 꽃향기가 나며 영기가 가득한 절세복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땅과 하늘이 모두 시뻘겋게 물들고 무도의지와 살기가 가득했다.
앞쪽에 은은하게 보이는 금빛에서 신성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천제지주가 수라장(修羅場)으로 변한 것 같았다.
"저게 뭐지?"
묘묘 공주 등은 한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금빛 속에 열 장 정도 높이의 요수 형태가 보였다.
이 정도 덩치의 요수는 흔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서 엄청난 위압이 느껴졌고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엄청 강한 요수가 분명했다.
'설마…….'
명초노조는 무언가 떠올리고 흥분했다.
'진남이 상고시대에서 친해진 벗인가?'
다른 사람들도 생각했다.
진남은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는 지도 경지의 천존이고 아직은 구천 일인자였다.
하지만 익숙한 형상을 보자 진남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고비!'
고비는 구천선역의 유일한 절천보수였다.
진남은 계현과 고비와 우연히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내가 도와주마!"
진남은 바로 대동천결을 움직여 기운을 최대로 모았다.
쿵-!
진남은 손을 휘둘렀다.
방대한 근원의 힘과 영항지력이 금빛에 주입되었다.
십 장 높이의 요수 형태는 빠른 속도로 커졌다.
고비의 위엄도 늘어나더니 금빛에서 흘러나와 천지를 휩쓸었다.
이 과정은 반 시진 동안 진행되었다.
진남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나서야 손을 멈추었다.
"크라아아-!"
용의 포효 같은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대한 짐승의 발이 금빛을 찢었다.
몸집이 어마어마한 요수가 진남에게 달려들었다.
고비는 두 눈이 시뻘게지고 얼굴에 살기가 가득해서 입을 쩍 벌렸는데 진남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안 돼!"
묘묘 공주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진정하시오. 나요!"
진남의 고함이 고비의 식해까지 전달되었다.
동시에 진남은 주먹을 휘둘렀다.
진남의 주먹에 맞은 고비는 바닥에 떨어지며 주변을 흔들었다.
고비의 시뻘건 두 눈이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고비는 눈앞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을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주천불사산이요!"
진남은 웃으며 말했다.
"주천불사산? 주제가 장악한 주천불사산?"
고비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진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네는 주천불사산의 후계자요? 자네가 나를 구했소? 설마 임효지요?"
진남은 살짝 놀라서 이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인 걸 어떻게 알았소?"
"우와! 진짜 임효지요?"
고비는 경악했다.
그는 무언가 발견하고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오. 자네는 고작 천존 경지요. 임효지는 이미 무상천존이 되었소. 그것도 아주 대단한 무상천존이 되었소!"
진남은 말했다.
"사연이 많았소. 하지만 내가 임효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소. 대동천결의 기운이 익숙하지 않소? 그리고, 나는 성천무지(聖天武地)에서 자네를 처음 만났소. 자네는 장로의 딸과 잠자리를 가졌고 책임을 지지 않아……."
고비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얼른 말렸다.
"그만, 그만하시오! 믿으면 될 거 아니오! 그런데 왜 이런 꼴이 되었소? 경지가 왜 이리 낮소?"
고비가 관심이 있는 것은 역시 그 문제였다.
진남이 눈을 흘기자 고비는 그제야 뜻을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엽소선은 우리가 천존나무를 연화하던 곳을 마음에 들어했소. 나와 노조는 엽소선과 싸우게 되었고 나는 죽음을 각오했소. 그런데 신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소. 나와 노조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했고 미래의 어느 날에 임 형이 나를 부활시켰소."
진남은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상고시대로 갔을 때 솔직하게 신분을 밝히고 싶었지만 시공규칙이 허락하지 않았다.
즉, 누군가 진남의 신분을 눈치챘거나 점술로 맞춘 것이 분명했다.
'계현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사기꾼 같은 수준인 그는 무상천존으로 진급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것을 맞출 수 있겠는가?
그럼 천 형인가?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천 형은 선천도체를 각성했고 무상천존의 지도 경지였으며 실력이 대단했다.'
"임 형, 천 형이 살해당했소. 계현 그 나쁜 놈도 사라졌는데 죽었을 수 있소. 우리 노조가 그러는데 이번 일은 청궁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오. 특히 주선신비가 의심스럽소. 임 형, 우리 천 형과 계현을 위해 꼭 복수를 합시다!"
고비는 두 눈이 다시 시뻘게졌다.
"고비, 흥분하지 마시오. 침착하시오."
진남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비는 숨을 거칠게 쉬면서 살기를 풍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고비는 진정하고 말했다.
"임 형, 알겠소."
"모든 일을 지금 다 말해주겠소."
진남은 고비에게 신념을 전했다.
상고시대에 있을 때 진남은 시공지력의 방해를 받아 진짜 신분을 밝히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속한 시간에 있기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시공지력이 방해하지 않았다.
진남의 말을 다 들은 고비는 경악했다.
"세상에!"
상고시대에 그와 계현은 진남의 신분을 추측했었다.
하지만 진남의 혼이 상고시대로 갔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의 일뿐만 아니라 구천선역의 형세에도 변화가 생겼소……."
진남은 계속 전음으로 설명했다.
고비는 냉소를 지었다.
"창과 엽소선은 어렵게 부활을 해서 다른 사람의 지시를 달갑게 받을 줄은 몰랐소."
고비는 두 눈이 차갑게 빛이 나고 살기가 가득했다.
"임 형, 아직까지는 지보들만의 요구에 응해야 기원산을 열 수 있소.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하오. 그것들이 불순한 마음을 품고 야망도 크지만, 우리 함께 그놈들을 죽이면 되지 않소. 배신자들이 벌벌 떨게 만듭시다."
진남은 고비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질문했다.
"자네 방금 부활을 했고 상처도 채 아물지 않았는데 괜찮겠소?"
고비는 살짝 화가 나서 말했다.
"임 형, 나를 의심하는 거요? 임 형이 사라지고 나서 나는 절천보수의 진정한 전승을 얻었소. 나는 아직 응천 경지의 천존이지만 화가 나서 싸우면 지도천존도 이길 수 있……."
고비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안색이 변하더니 피를 왈칵 토했다.
바닥을 적실 정도로 많은 피를 토한 고비는 기운이 쇠약해졌다.
진남의 이상한 눈빛을 느낀 고비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변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입을 열자 또 피를 세 번이나 토했다.
고비는 몸 안에서 뭐가 빠져나간 것처럼 바닥에 늘어졌다.
묘묘 공주, 강벽난, 설몽요는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고비를 비범하고 패기 넘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만하시오. 자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하오. 하지만 자네가 이 상태로 기원산에 가면 우리를 힘들게 할 뿐이요. 자네는 이곳에서 몸을 추스르시오. 상처가 다 나은 다음에 와도 늦지 않소."
진남은 고비의 몸을 토닥거렸다.
"콜록, 콜록. 그럼 잠시 동안은 그렇게 합시다."
고비는 얼굴이 상기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묘묘 공주를 본 그의 두 눈에 빛이 돌았다.
"참,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 도우는……."
진남은 고비의 뒤통수를 때리고 말했다.
"이 셋은 자네 형수님들일세."
진남은 명초노조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배님, 주천불사산에서 더 많은 영기들을 끌어다가 이 녀석이 빨리 상처를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여러분, 저는 의사전으로 가겠습니다."
* * *
다음 날 오전 남극지.
혼란스러운 허공에 궁궐이 우뚝 나타나서 선광을 사방에 뿜었다.
궁궐은 한 층이었고 길이가 만오천 장, 넓이가 삼천구백 장이었다.
안의 장식은 매우 간단했고 옥으로 만든 커다란 탁자와 나무 의자들만 있었다.
창과 엽소선은 옥으로 만든 탁자의 앞쪽에 앉았고 양옆에는 각각 황운천존, 단목천존, 이백성천존, 육방천존, 영야천존, 비보천존 등 두 번째 세대의 천존들이 있었다.
진남과 안면이 있는 이양범, 이백야, 강역 등도 이번 신식전장에서 천존 거물이 되었다.
황보절은 불도의 제일천재 '여거성승(如去聖僧)'으로 위장하고 자리에 함께했다.
창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그의 모습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도우들을 주려고 나와 엽 도우가 청궁에서 특별히 작은 선물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엽소선은 한 손으로 결인을 만들었다.
대전의 네 모퉁이에 네 개의 진문이 나타나더니 네 개의 향로가 떠 올랐다.
향로에는 파란색 불꽃이 흔들리며 보라색 수정을 태웠다.
잠시 후, 보라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보라색 연기는 이미 그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라? 규칙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구나."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창은 살짝 미소를 짓고 말했다.
"청궁의 다양한 지보들과 접촉을 하고 나서 깨달았다. 주천만계에서 천재지보도 열 개의 등급으로 나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누는지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청궁의 상현경천에는 영신(靈神)등급의 천재지보들이 있다. 보라색 수정은 자제동래석(紫帝東來石)이라고도 한다. 바로 영신등급의 천재지보이다. 청궁의 중현경천에 이런 등급의 천재지보가 수두룩하다."
창이 말을 마치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두 분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신 등급의 천재지보를 가져다줄 수 있느냐?"
굳게 닫혔던 대문이 스르륵 열렸다.
진남은 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성큼성큼 대전으로 들어섰다.
그의 등 뒤로 위풍당당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 맹주!"
"진 맹주, 오셨소!"
대전에 있던 천존 거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남에게 인사를 했다.
형세가 변했다.
진남은 창이나 엽소선과 싸워서 승부를 내지 않았지만 그들이 우러러볼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진남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양범 등 익숙한 얼굴을 본 진남은 멈칫하더니 특별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진 도우."
창과 엽소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나도 도우들에게 다 가져다주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많이 가져오지 못했다. 마음은 있지만 힘이 부족하구나."
묘묘 공주는 눈을 깜박거렸다.
"창 선배님, 엽 선배님은 청궁의 지보들에게 인기가 있는 분들 아닙니까? 설마 지보들이 선배님들에게 이것만 주었습니까?"
창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청궁에 있는 영신등급 이상의 천재지보들은 청궁의 주인이 우리들에게 남긴 기연이다. 대상계의 무인들만 가져올 수 있다. 지보들은 규칙을 어길 수 없다."
천존들은 아무 말도 않았다.
"진 도우, 창이 지난번에 너에게 잘 설명했겠지? 너는 어떤 선택을 했느냐?"
엽소선은 무표정으로 물었다.
진남은 그를 힐끗 보더니 놀라운 행동을 했다.
진남은 손가락을 튕겼고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진남, 너……."
엽소선은 안색이 살짝 변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엽소선의 형상은 산산조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