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4화 두 가지 방법
육경음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눈빛이 복잡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더니 진남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그때는 내가 철이 없어서 진 도우를 여러 번 공격했다. 진 도우, 나에게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기 바란다."
진남은 손을 저었다.
"아니다. 나도 네가 부마를 찾는 일을 방해했으니 이걸로 빚을 갚은 셈 치자."
정신을 차린 육소명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외쳤다.
"진남!"
육경음은 안색이 살짝 변해서 육소명을 혼냈다.
"육소명, 침착하거라! 그때도 네가 안하무인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진 도우가 너를 공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너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육소명은 입술을 깨물더니 진남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그때 너에게 혼난 것 때문에 아직도 불쾌하다. 하지만 고맙다. 네가 나를 혼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결국 큰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때를 생각하면 육소명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육소명이 여전히 안하무인이었더라면 오늘같이 혼란한 세상에서 거물의 미움을 받을 사고를 쳐서 선령족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진심으로 진남에게 고마웠다.
육경음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그녀는 진남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 일은 선령족이 너에게 신세를 진 거나 마찬가지다. 네가 아니었다면 소명은 지금처럼 변하지 못했을 거다. 내 아버지도 그 일을 전해 듣고 몇 번이나 너를 만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고 했다."
옥묘도인은 안색이 변했다.
"공주님,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진남은 힐끗 보더니 옥묘도인에게 가두는 힘을 뿜었다.
옥묘도인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신념을 전하지도 못했다.
"옥묘도인, 저는 선령족과 척을 질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안 되니 옥묘도인을 잠깐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진남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봉인을 풀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제가 눈치를 채게 되면 사정을 봐주지 않겠습니다."
옥묘도인은 진남을 노려봤다.
하지만 진남이 엄청난 실력이 떠올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 공주, 두 개의 옥을 꺼내거라."
진남은 말했다.
"그래."
육경음은 망설이지 않고 두 개의 옥을 꺼냈다.
진남은 방금 얻은 세 개의 옥을 꺼내 자세히 느껴보았다.
진남이 한 옥을 짚자 다섯 개의 옥들이 융합이 되며 그림으로 변해 앞에 있는 벽으로 날아갔다.
잠잠하던 벽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벽 가운데에 통로가 생기고 엄청난 기운이 밀려왔다.
육경음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소명, 너는 옥묘 장로와 함께 밖에 있거라. 나와 진 도우가 들어가 보겠다."
육소명은 다급해져서 말했다.
"누이, 왜 그래야 합니까? 저도 들어가고 싶……."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육경음이 노려보았다.
육소명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은 누이와 동생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벽 뒤쪽을 자세히 느껴보았다.
"이곳은 쉽지 않구나. 육 공주, 네가 지금 이곳에 들어가면 위험에 처할 것이다."
육경음은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부드럽게 웃었다.
"진 도우, 알려줘서 고맙다. 진 도우의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기에 위험한 상황이 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육경음은 여성스럽게 말했다.
진남은 그녀를 무시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너를 구하지 않을 거다."
진남은 벽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그의 저장주머니에 있던 영패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 등이 보낸 것이었다.
진남은 할끗 쳐다보고 미간을 찌푸렸다가 풀었다.
육경음은 화를 내지도 않고 진남의 뒤를 쫓아갔다.
* * *
벽에 난 통로에 들어서자 진남과 육경음 앞에는 핏빛 길이 어둠을 가로지르고 길게 나타났다.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핏빛 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육경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창과 엽소선은 빈틈없는 포위망을 쳤는데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지 생각했어?"
진남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알고 있으면 너에게 말해줄 것 같으냐?"
육경음은 가볍게 웃고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창과 엽소선은 엄청 대단하다. 나도 처음 소식을 받았을 때 한참이나 고민을 해서 겨우 두 가지 해결 방법을 생각했다."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래?"
육경음은 말했다.
"창과 엽소선은 지곤에 일흔두 개의 선궁을 만들고 일흔두 개의 절천용선으로 순찰을 돈다. 천건에는 열 개의 허공고도를 만들어 고도들을 잡고 있다. 그러니 네가 그들의 수단을 피하려면 혼란을 만들어야 한다. 혼란을 만들어야 벗어날 기회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네 연맹의 주재들을 열 개 작은 무리로 나누어 동시에 일흔두 개의 선궁과 일흔두 개의 용선 그리고 허공고도를 습격하는 거다. 바로 대전을 시작하는 거지. 그럼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겠지. 그럼 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혼란한 틈을 타 천건에 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네가 해야 된다. 천존싸움이 시작되면 너는 떳떳하게 나타나는 거지. 엽소선과 창의 세력들은 모든 정력을 너에게 집중하고 혼란한 싸움이 시작된다."
진남의 두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쳤다.
육경음은 똑똑한 여인이었다.
묘묘 공주와 강벽난이 보내온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도 육경음이 말한 두 가지 방법과 거의 비슷했다.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너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너는 한 가지 방법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육경음의 말은 놀라웠다.
진남은 티를 내지 않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육경음은 진남의 측면을 바라보며 두 눈에서 빛을 뿜었다.
그녀의 두 눈은 진남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방금 내가 말한 첫 번째 방법이 훌륭하고 엽소선과 창이 배치한 수단들도 부술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면 너희 연맹 중에 많은 주재 강자들이 너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엽소선과 창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너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할 거다. 때문에, 첫 번째 방법은 선택하지 않겠지?"
진남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아주 잘 아는구나."
육경음은 고개를 돌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나만 너를 잘 아는 게 아니다. 엽소선과 창도 너를 잘 안다.
엽소선과 창은 너에게 두 가지 선택을 주었지만 결국 네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것을 알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덫에 걸리는 꼴이다. 그때가 되면 지곤과 천건에 있는 무인들은 전부 너의 적이다. 네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들을 전부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
설령 전부 죽이고 천건에 간다고 해도 힘이 빠진 네가 천건에 있는 주재들을 이길 수 있을까?
심지어 천건에는 창이 직접 와 있을 거다. 엽소선과 창이 가장 바라는 것이 너를 죽이는 것일 거다. 하지만 죽이지 못했다고 해도 천존이 되는 것을 막으면 너희들은 끝장이다."
진남은 말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육경음은 이어서 말했다.
"사실, 나도 너에게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라고 설득하고 싶다. 두 번째 방법은 네가 직접 미끼가 되어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니 너에게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네가 위험해질 수 있다.
너의 연맹에 있는 다른 주재들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주재들이 천존이 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들 중 엽소선이나 창과 싸울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네가 천존이 되지 못하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다."
육경음은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너더러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라고 하면 엄청 고통스럽고 내키지 않을 거다. 하지만 거물이 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네가 천존이 되어야 네 연맹도 승리할 희망이 있다. 연맹의 주재들도 그 점을 인식하고 그렇게 하기를 원할 거다."
진남은 능황천존의 전음이 떠올랐다.
궁우태황종의 늙은 종주는 못 박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후대들에게 미래를 줄 수 있다면 죽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진남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참 이상하구나. 내가 우연히 네 동생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만 우리 사이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너는 왜 내가 이기기를 바라느냐?"
육경음은 고개를 젓고 말했다.
"틀렸다. 나는 네가 이기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내 아버지와 이씨 가문, 왕씨 가문의 연맹 그리고 보제고찰종 등은 미래에 구천선역이 창이나 엽소선의 소유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구천선역은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가장 좋기 때문이다."
진남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창과 엽소선은 무상천존으로 진급하면 서로 틀어질 것이다.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힘의 균형뿐이라면 이것 또한 균형 아니냐?"
육경음은 활짝 웃었다.
"네 성격을 나도 알고 창과 엽소선도 알았는데 다른 세력의 거물들이라고 모를까? 거물들은 너는 보기에 좀 멍청하기는 해도 창이나 엽소선보다 낫다고 판단했을 거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욕이야 칭찬이야?'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며칠 후면 다 알 수 있을 거다."
진남은 무뚝뚝하게 말하고 앞으로 계속 걸었다.
육경음은 한숨을 내쉬고 더 말하지 않았다.
세 시진쯤 걸어가니 시커먼 어둠 속에 빛이 나타났다.
빛을 따라 들어가자 점점 환해졌다.
진남과 육경음은 시공고도에서 걸으면서 수많은 시공의 변화를 겪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빛들이 사라지고 숲이 나타났다.
이곳의 나무들은 높이가 몇천 장이나 되었고 몇만 장 높이가 되는 것들도 있었다.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 껍질도 시커멓게 변하고 무늬가 가득했다.
"응?"
진남과 육경음은 이상함을 느꼈다.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나무들마다 잎이 무성하고 새파래서 나무 바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기가 가득한 장면이지만 그들은 적막한 느낌이 들었다.
육경음은 앞으로 다가가 나무를 만지고 자세히 느껴보았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무들은 엄청 강한 신수다. 구천선역에 있는 그 어떤 나무들보다 강하다. 하지만 나무들은 영이 없어. 어떤 힘이 강제로 빼내 간 것 같다."
만물은 영이 있고 자연 만물은 혼이 있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높이가 몇십만 장 되는 나무에 날아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이 끝없는 나무의 바다였다.
숲은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컸다.
"이렇게 많은 신수들에 모두 영혼이 없다고?"
진남은 살짝 놀랐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방대한 감지력을 드러냈다.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진남은 다른 곳을 살펴보았다.
서른여 번을 반복한 진남은 드디어 다른 기운을 찾아냈다.
기운은 난해하고 희미했으며 신비했다.
구천선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향기처럼 먼 곳에서 날아왔다.
진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운을 쫓아갔다.
육경음도 입술을 앙다물더니 부적을 사용하여 진남의 뒤를 힘들게 쫓아갔다.
반 시진이 지나고 진남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아래쪽에는 여전히 나무의 바다였고 아까와 다른 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육경음은 방원 천 리의 고목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덮여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압력을 느꼈다.
진남은 두 눈에 빛을 드러내고 살펴보더니 중얼거렸다.
"환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