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화 정신을 차린 건가?
진남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번에 신식전장으로 간 후 다들 흩어져서 기연을 찾는 건 우리에게 불리할 것 같습니다."
강벽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로 오면서 능황 선배님께 말씀드렸어. 주경 강자들은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야 하고 정상 주경 한 명과 대성 주경 한 명이 있어야 한다. 주재 강자들은 세 명이 한 조가 되어야 하고 정상 주재가 한 명 있어야 한다."
"좋다."
능황천존은 말했다.
"천존싸움이 열리기 닷새 전에 출발하자. 내가 인솔하겠다. 세 개 조로 나누어 그들을 청궁의 하현경천에 데려다주겠다."
"하현경천에 간 후 어디에 있을 겁니까?"
진남은 물었다.
"일 년 반 동안 우리는 하현경천에 열두 개의 거점을 만들었다. 거점들은 매우 은밀하고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곳에 있으면 된다."
능황천존은 말하며 진남의 식해에 지도를 전했다.
"능황 숙부님,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묘묘 공주는 턱을 괴고 말했다.
"창과 엽소선 두 영감탱이들은 교활하고 꾀가 많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거점을 발견했지만 우리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공격하지 않고 천존싸움이 열렸을 때 우리를 공격할까 봐 걱정됩니다."
진남은 찬성했다.
"공주의 말이 맞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거점으로 가는 건 서두르지 맙시다. 이번에 가서 새로 두세 개의 거점을 만들 수 있을지 보겠습니다. 만약 거점을 만들었다면 나중에 꼭두각시들을 미끼로 거점에 들여보냅시다."
"좋구나.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 신식전장은 우리가 전에 들어갔던 비경과 많이 다르다. 신식전장은……."
진남 등은 꼬박 다섯 시진 동안 상의하여 계획을 세웠다.
* * *
진남은 무주궁도를 들고 주천불사산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진남은 그들이 장악한 천제지주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진남은 폐관하기 전에 고비의 부러진 사지들을 전부 천제지주의 가장 중심에 두었다.
그는 또 제구중산에서 많은 천재지보를 가져다 대진을 설치하고 고비의 부러진 사지들을 보호했다.
두 달 동안 부러진 사지들은 모양이 변했고 녹아버린 것 같았다.
사지들에서 풍기던 옅은 생기가 점차 강해졌고 얼마 안 돼 생명의 불꽃이 타오를 것 같았다.
잠시 후 허공에 진남이 나타났다.
주천불사산은 천기를 가리고 구천선역을 날아다녔다.
덕분에 위기에 처했을 때 진남 등의 연맹은 창과 엽소선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주천불사산은 제칠소선역으로 날아왔고 진남도 제칠소선역에 도착했다.
진남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상고시대로 돌아갔을 때나 구천지존이 되지 못했을 때 그는 이곳에 온 적 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 오니 많은 것이 변했다.
진남은 고개를 젓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허공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 * *
청궁, 하현경천.
구천선역의 무인들이 한 구역을 차지했다.
이곳은 위험하지 않고 청궁의 강한 생령들이 쳐들어오지도 않았다.
이곳에는 스물여섯 개의 선성이 있었다.
그중 열여섯 개의 선성은 엽소선의 창의 연맹이 만든 것이었다.
엽소선과 창의 연맹에 가입한 무인들과 세력들은 모두 무료로 열여섯 개의 선성에 들어가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씨 가문과 왕씨 가문의 연맹은 이곳에 세 개의 선성을 세웠다.
나머지 일곱 개의 선성은 선령족, 묘문 등 천존 거물이 있는 세력들이 세운 것이었다.
선령족이 세운 선성은 조도(朝都)였다.
조도는 입성료가 가장 쌌다.
때문에 많은 구천선역의 무인들이 조도로 왔고 성문 앞은 시끌벅적했다.
진남은 흑포를 입고 사람들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들었어? 오늘 선령족의 공주가 무예 겨루기를 통해 남편을 뽑는대!"
"무예 겨루기를 통해 남편을 뽑는다고? 설마? 선령족의 공주는 매우 예쁘다고 들었다. 무예 겨루기를 통해 남편을 뽑을 필요가 있느냐?"
"모르는 소리 하지 말거라. 선령족의 족장이 그녀에게 혼사를 정해줬는데 그녀가 도망쳤대. 그녀는 약자와 혼인하지 않는다고 했대. 그래서 무예 겨루기를 통해 남편을 뽑기로 했대."
"그렇구나! 그럼 많은 천재들이 왔겠구나. 어서 가보자. 우리는 가능성이 없지만 천재들이 싸우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의 머릿속에 예쁜 얼굴이 떠올랐다.
'저자들이 말하는 선룡족의 공주가 육경음인가?'
진남은 향혼을 죽이기 전에 육경음과 갈등이 많았다.
진남이 선령족의 금술을 장악했기에 육경음은 그를 추격하고 모함하는 등 시비를 걸었다.
그 뒤로 상황이 많이 변했고 진남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육경음과 만날 일이 없었다.
"재미있구나."
진남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앞에서 가는 무인들을 따라 다른 거리로 걸어갔다.
* * *
조도 성주부.
성주부는 조도성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었다.
누구든 이곳을 지나가면 저도 몰래 넋을 놓고 구경했다.
성은 백여 가지 신목으로 만들어 신광이 뿜어져 나오고 옛 정취가 느껴지며 대범했다.
천지에 목계(木系) 영기가 더욱 짙어졌다.
진남은 흘깃 쳐다볼 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눈앞에 벌어진 장면에 살짝 놀랐다.
성주부 앞에는 방원 오만 장이 되는 도장이 있었다.
도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었고 시끌벅적했다.
엄청난 기연이 곧 열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 중에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노인도 있고 엄청 어려 보이는 소년도 있었다.
일부 무인들은 공자나 서생 차림이었지만 사실은 여인이었다.
여자 무인들의 경지가 높지 않았더라면 진남은 구경을 하러 온 자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자 무인들 중에는 주경 강자들도 많고 몇몇은 심지어 주재 경지였다.
'주경 강자들과 주재 강자들이 무슨 구경을 하러 온 거지? 주경 강자와 주재 강자들이 이렇게 한가했나?'
진남은 옆에 있는 무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물었다.
"도우, 이게 무슨 상황이요? 왜 사람이 이렇게 많소? 그것도 여인들이 왜 이리 많소?"
무인은 고개를 돌렸다.
진남의 기운이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발견한 무인은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모르십니까? 선령족의 공주는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구천선역에 선령족 공주가 무예 겨루기를 통해 남편을 뽑는다고 소문을 냈는데 남녀노소 경지만 높으면 다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남편을 뽑으려고 조직한 무예 겨루기도 특이합니다. 무예 겨루기는 도합 두 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혼전(混戰)인데 무인들이 전부 참가할 수 있고 마지막에 도장에 남은 백 명이 성공했다고 봅니다.
두 번째 관문은 더 재미있습니다. 선령족은 신식전장에서 상고 기연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관문에서 성공한 자들은 다음 날 공주를 따라 상고 기연에 들어갈 수 있고 그녀의 요구에 부합되면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요구가 무엇인지 선령족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무인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선배님, 선령족이 얻은 기연은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령족은 기연에서 찾은 보물을 삼 할만 자신들에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공법이나 무예를 얻어도 선령족에게 일부만 주면……."
진남은 운이 좋게 말이 많은 무인을 만났다.
무인은 진남이 묻기도 전에 정보들을 술술 말했다.
진남은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남편을 고르겠다는 것은 음모인 것 같은데? 많은 강자들을 모아 기연을 나누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선령족에 육방(陸方)이라는 천존이 나타났고 선령족은 일 년 전에 여러 종족들과 싸워 이겨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것이 음모라면 더 설명이 안 되었다.
마지막에 뽑힌 사람은 이름 없는 무인일 리 없었기에 선령족이 그에게 검은 손을 뻗으면 화를 불러일으킬 게 뻔했다.
"선령족의 공주 이름이 육경음이요?"
진남은 무인의 말을 끊고 물었다.
"맞습니다, 선배님. 공주 이름은 육경음입니다."
무인은 도취된 표정으로 말했다.
"육경음 공주는 엄청 아름답습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녀가 혈통을 뛰어넘어 전설 속의 무령지체가 된 것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녀를 얻으면 그녀의 신념과 융합할 수 있고 경지가 확 높아져 주경을 돌파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재로 진급하는 것도 수월해집니다. 좋은 점이 끝도 없이……."
진남은 그제야 여자 무인들도 이곳에 모인 이유를 알아차렸다.
신식전장의 상고 기연과 무령지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령족에 가입하면 곧 닥칠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넘길 가능성이 컸다.
"선배님도 시합에 참가합니까? 참가하시면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육경음 공주가 입었던 옷을 한 벌만 얻어주십시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무인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참가해 볼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구나. 육경음 일행도 신식전장의 그 기연에 갈 거다.
육경음은 나를 몇 번이나 계략에 빠뜨렸다. 복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좋은 기회를 만났으니 육경음의 목적을 알아보고 방해를 해야겠구나…….'
진남은 눈을 반짝거리며 결정을 내렸다.
진남은 옆에 있던 무인의 요구를 어물쩍 넘겼다.
'육경음이 입었던 옷을 가져다 달라니? 그런 천박한 짓을 어떻게 해!'
"선배님, 고맙습니다."
무인은 흥분했다.
그는 진남의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며 외쳤다.
"선배님,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제 이름은 정무흔(淨無痕)입니다. 조도의 백화항(百花巷)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 *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소문을 듣고 온 무인들이 점점 많아졌다.
오 시가 되자 굳게 닫혔던 성주부의 무거운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짙고 순수한 천지의 영기가 솟구쳐 나와 도장 전체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한 무리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
가장 앞에 선 보라색 긴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은 표정이 엄숙했고 빈틈이 없었다.
옅은 위엄을 풍기는 그는 주재정상이었다.
노인의 옆에 유난히 눈에 띄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금색 갑옷을 입고 있었다.
햇빛이 그를 비춰 눈부시게 빛이 났으며 신 같았다.
"육소명이다!"
"육소명이 주경정상으로 진급했어?"
"허, 너무 빨리 진급하는 거 아니야? 이 속도라면 주재경지로 진급하는 것도 멀지 않겠어. 육소명도 누나처럼 혈통을 뛰어넘어 무령지체가 된 걸까?"
무인들은 청년에 대해 의논했다.
일 년 전의 육소명은 고작 지존 정상이었다.
"육소명?"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지난 일을 떠올렸다.
그는 육소명을 만난 적이 있었다.
육소명은 육경음의 동생이자 선령족 족장인 육방천존의 아들이었다.
예전에 육소명은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건방졌다.
진남 일행이 미움을 살 만한 짓을 한 것도 없는데 육소명은 괜한 시비를 걸었다.
결국 육소명은 진남 일행에게 단단히 혼이 났다.
때문에 진남은 육소명과 원한이 깊었다.
한편, 육소명은 강직한 눈매에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예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저 녀석 나한테 혼나고 정신을 차린 건가?"
진남은 중얼거렸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진남은 어린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처럼 흐뭇했다.
진남은 아들들이 떠올랐다.
'세언과 소우는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아들들아, 아비가 모질다고 원망하지 말거라.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이 해결되면 너희들 곁으로 갈게. 그리고 내가 직접 너희들을 성장시키겠다."
진남은 혼잣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