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화 이대로 없앤다면 아깝다
천극방의 영은 눈앞이 흐릿해졌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청색 빛과 놀라운 장면들은 사라지고 오솔길이 나타났다.
길은 어둠 속에 떠 있었고 길이가 아흔아홉 장이었고 태고의 신석(神石)으로 만든 것 같았으며 신광을 뿜어 주천만계를 환하게 비추었다.
"어라? 아직 전부 변화하지 않았어?"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잘됐다. 청궁의 주인이 대연세계산의 비밀을 채 알아내지 못한 것 같구나. 비밀을 다 알아냈으면 이곳은 구체화되겠지……."
천극방의 영은 궁금했다.
'대연세계산의 비밀이 무엇일까? 청궁의 주인처럼 강한 자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니?'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양손을 들어 결인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끝없는 어둠 속에 조석이 생기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수한 암흑조석(黑暗潮汐)이었다.
"이리 오너라."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네가 선택해야 한다. 미리 말하는데 선택을 하면 후회할 기회도 없다. 네 육신이 주천만계에 온 이상 대연세계산에 남긴 현기는 이미 흩어졌을 것이다."
천극방의 영은 눈썹이 새하얀 노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시조."
말을 마친 천극방의 영은 선택을 했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천극방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지만 기분이 복잡했다.
"무인으로서 나는 네 선택에 공감을 한다. 하지만 종주의 입장으로는 공감할 수 없다. 대연천종의 전승은 이대로 멸망하고 사라질 것 같구나."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탄식했다.
다행히도 그는 약속을 지키느라 박천대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줬기에 다른 가능성이 남았다.
"저는 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습니까?"
천극방의 영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세상의 일은 마음에 꼭 들게 완벽할 수 없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것일수록 힘들게 얻어야 하는 법이다. 강해질수록 잃는 것도 많아진다."
천극방의 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휘젓자 허공에 커다란 틈이 생겼다.
틈을 통해 커다란 대전이 보였다.
대전 안에 진남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수련을 하고 있었다.
천극방의 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틈이 닫히려고 할 때 천극방의 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마음에 따라 움직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대단한 일이라서 어려움이 따른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혹시 제가 이긴다면 이 세상에는 마음에 꼭 들게 완벽한 것이 생기겠지요."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살짝 놀랐다.
그는 소리 없이 웃었다.
'몇만 년을 살아온 늙은 괴물에게도 아직 소년 같은 열정이 남았구나.'
* * *
같은 시각, 대전.
진남 등은 무언가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천극방의 영은 입을 열려고 하는 그들에게 손을 젓고 현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선배님, 이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 선배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자 천극방의 영은 손을 저었다.
천지가 변하고 현 선배를 제외한 셋은 제자리에서 사라져 청궁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상고시대, 청궁, 상현경지.
천지에 굉음이 울려 퍼지고 오래된 석인이 허공에서 나타나 기운을 뿜었다.
참황대 근처에 있던 생령들은 군왕이 강림한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고 으르렁거리며 두려워했다.
"시간을 보니 돌아올 때가 된 것 같구나……."
오적은 석인에 서서 앞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찬란한 빛들이 흐르고 그 사이로 네 개의 빛이 솟구쳤다.
오적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는 손을 뻗어 위력으로 네 개의 빛을 잡아 석인으로 데려왔다.
그들은 진남과 천극방의 영 등이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참황대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부서지더니 수많은 빛으로 변해 하늘에 흩어졌다.
상현경지와 중현경지에 있던 엄청난 것들이 놀라서 신념을 보내 빛을 살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참황대가 부서졌어?"
엄청난 것들은 놀랐고 믿을 수 없었다.
"크라아아-!"
무상천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생령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차리고 포효했다.
그들의 포효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들이 진급할 수 있는 길이 사라진 것이었다.
"오적, 무슨 짓을 한 게냐?"
이때, 상현경지 동쪽에서 강한 기세가 솟아올랐다.
신광들을 감은 사슬이 멀리서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호통을 쳤다.
"괜히 나한테 덮어씌우지 말거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도 온지 얼마 안 된다. 참황대는 스스로 부서진 것이다."
오적은 화가 나서 외쳤다.
그는 강한 기세들이 멀리서 연거푸 깨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허공을 찢었다.
"오적, 꼼짝 말고 거기 있거라……!"
호통 소리가 연거푸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끝없는 어둠 속에서 시뻘건 대문이 나타났고 호룡정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그것들이 쫓아오지 못한다."
오적은 우쭐해서 말했다.
그는 바로 표정을 바꾸고 진남과 천극방의 영 등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참황대가 왜 부서진 거냐? 참황대가 생령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하느냐?"
사람들은 그가 참황대 근처에 있었던 것을 목격했다.
때문에, 틀림없이 그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고 따질 것이었다.
그는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진남 등은 방금 벌어진 일에 깜짝 놀랐다.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큰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오적의 말을 들은 그들은 그제야 반응했다.
"아……. 제가 대연천종의 전승을 얻은 것 때문입니까?"
천극방의 영은 멋쩍게 말했다.
"뭐? 너 대연천종의 후계자가 되었느냐?"
오적은 깜짝 놀랐다.
'이놈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
"자식, 대단하구나! 그런 이유라면 상관없다."
오적은 화가 사그라졌다.
"대연천종의 전승이 무엇이냐? 나에게도 나눠줄 수 있느냐? 방금 너도 봤지? 청궁 전체가 흔들리고 생령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좋은 점을 주면 내가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줄게. 어떠냐?"
천극방의 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형,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형제끼리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전승을 얻을 때 형님에게 줄 좋은 것도 가져왔습니다."
오적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넌 참 괜찮은 녀석이구나! 그래, 우리는 이제부터 형제다. 내가 너를 지켜주마!"
진남 등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은 천극방의 영의 인간관계를 처리하는 수완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 몰랐다.
천극방의 영은 두어 마디 말로 오적과 '깊은' 우정을 만들었다.
"오 형, 저는 시공지광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기에 진급하기 가장 적합합니다. 잠깐 폐관수련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끝이 나면 전승을 드리겠습니다."
천극방의 영은 말했다.
"그래, 이곳에서 진급하거라. 내가 네 주변을 지켜주겠다."
오적은 손을 저어 어둠 속에 신광도장(神光道場)을 만들었다.
빛이 사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천극방의 영은 인사를 하고 도장으로 날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몸에서 방대한 기세가 뿜어지고 엄청난 힘이 용솟음쳤다.
시공지광은 본질적으로 보면 환상이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어떤 상처를 입었든 현실에 돌아오면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다.
즉, 시공지광에서 천극방의 영은 선천도체를 각성했고 지도 경지의 무상천존이 되었지만 현실에 돌아온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응천 경지의 천존이었다.
다만, 천극방이 시공지광에서 장악한 금술과 경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무상천존이 천존으로 환생하면 다시 무상천존이 되는 것은 무척 쉬웠다.
무상천존으로 진급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천극방의 영이 무상천존으로 진급을 하려면 성대한 장면이 필요했다.
청궁에서 성대한 장면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청궁에 있는 강한 생령들을 움직여 한곳에 모이게 하면 천극방의 영은 진급할 수 있었다.
진남, 계현, 용도천존도 방대한 힘이 몸속에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계현과 용도천존은 시공지광에서 무상천존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계현은 응천천존이 되었고 용도천존도 마찬가지였다.
현실로 돌아온 그들의 육신은 강한 영혼과 심경의 인도하에 탈바꿈을 할 것이었다.
"너희들도 수련하거라."
오적이 손을 젓자 허공에 세 개의 신광도장이 나타났다.
계현과 용도천존은 인사를 하고 도장으로 날아갔다.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눈을 반짝거리며 법인을 만들었다.
"제압하라!"
진남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체내의 규칙지력이 부호로 변해 경맥과 혈 자리로 찾아가더니 육신을 절반 봉인했다.
"임 동생, 뭐 하는 거냐? 너는 왜 진급하러 가지 않느냐? 무상천존으로 진급하지 못한 거냐?"
오적은 이상해서 물었다.
"진급을 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진남은 반쯤 말했을 때 어떤 힘이 나타나 그의 영혼을 공격하는 것을 느꼈다.
안색이 변한 진남은 시공성전으로 영혼을 겨우 진정시켰다.
바로 시공지력이었다.
시공지력은 진남을 배척했다.
이 시대에 속하지 않는 영혼더러 본래 있던 시대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응?"
오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그는 진남의 영혼이 격렬하게 흔들린 것을 느꼈다.
"후."
진남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 육신도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대상계에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진남은 살짝 놀랐다.
'그래.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지. 이 육신은 백대신체인 선천무체이다. 그럼 후세의 내 육신은 무슨 체질일까? 혹은 후세의 육신은 어떤 체질도 아닐까?'
진남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체질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적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허! 너 주천만계에서 왔느냐?"
'역시 주천만계를 알고 있었어.'
진남은 억지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자세하게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오적은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당돌했다. 많은 것들은 입 밖에 내면 안 되지. 그런 느낌을 나도 잘 안다……."
그는 우울해하면서 말했다.
"그럼 너는 나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냐?"
진남은 저도 몰래 웃었다.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적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진남이 '주천만계'에서 왔는데 다른 사람의 육신에 들어갔고 대상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녀석의 본체가 주천만계에서 올 수도 있다는 뜻이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청궁이 이미 주천만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좋다. 그럼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언제면 반드시 돌아가야 되느냐?"
오적은 물었다.
"이제 열흘 남았습니다."
진남은 대답을 하고 고민에 빠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열흘 후 시공지력에 의해 후세로 돌아가는 것은 싫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몸으로 가능할까? 지금의 몸은 훌륭하다. 백대신체인 선천무체를 현실에서 각성하지 못했지만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진남은 이 육신에 들어온 후 천존 정상 경지가 되었고 기이한 일들을 겪었으며 이 육신의 힘도 엄청 강해졌다.
육신의 식해에는 경지를 진급하면서 얻은 현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없앤다면 아까웠다.
보존을 하고 후세에서 다시 육신을 찾아 분신처럼 사용한다면 실력이 훨씬 늘어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