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화 박천대술
"후!"
잠시 후 진남은 길게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곳의 고경을 전부 다 기억했고 술술 외울 수 있다. 이제 나가자…….
아니다, 잠깐!"
진남은 문제를 발견했다.
'어떻게 이곳을 떠나지?'
진남은 방 안을 둘러보았고 굳게 닫힌 나무 문을 발견했다.
'문을 밀면 될까?'
진남은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밀었다.
눈부신 빛이 문밖에서 들어왔고 나무집은 밝아졌다.
진남의 앞에 방원 백여 장 되는 정원이 나타났다.
정원 안에는 높이가 십 장 되는 버드나무가 있었고 나뭇가지 아래에 돌상 한 개와 돌걸상 두 개가 있었다.
정원 밖은 끝없이 넓고 파란 하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녹음이 우거진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가슴이 탁 트였다.
정원과 나무집도 어느 큰산의 산꼭대기 위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진남은 한동안 기다렸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입꼬리가 비틀렸다.
'왜 아직도 나가지 못했지? 떠나는 곳이 숨겨져 있나?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하나?'
"천천히 찾을 수밖에 없겠다."
진남은 고개를 젓고 떠나가려 했다.
이때 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도우, 내 책을 보고 인사도 없이 가려는 거냐?"
진남은 깜짝 놀라 돌아서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버드나무를 보며 물었다.
"방금 선배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좀 전에 그는 버드나무를 훑어보았지만 평범한 나무와 별 차이 없었고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여기 너무 오래 서 있다 보니 나무로 변했다."
버드나무가 탄식하자 나뭇가지들이 빛을 반짝거렸다.
커다란 나무는 조금씩 청색 도포를 입고 눈썹이 새하얀 노인으로 변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여기 계신 걸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물었다.
"선배님은 성함이……."
이곳은 대연세계산의 산속이고, 평범한 사람이 이곳을 지키고 있을 리 없었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지금은 어느 시대냐?"
주천만계의 사람이라면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어느 시대인지 몰랐기에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저는 처음 주천만계에 왔습니다. 때문에……."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대연천종이 파멸된 지 몇 년이 지났느냐?"
진남은 말했다.
"백만 년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어리둥절하더니 고개를 쳐들고 새파란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백만 년이다, 백만 년! 내가 만들고 모든 심혈을 들인 종문이 그렇게 짧은 시간밖에 존재하지 못했다니. 그녀의 말대로 내가 정한 규칙이 틀린 것이었구나."
진남은 마음이 흔들렸다.
'이 노인은 대연천종의 시조인가?'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진남을 보며 물었다.
"도우, 너의 이름에 '남' 자가 있느냐?"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진남입니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옅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네가 맞겠다. 전에 대연천종을 세웠을 때 한 사람을 만났다. 그자는 대연천종이 곧 멸망된다고 했었는데 나는 믿지 않았다. 그자는 나더러 이곳에 의지를 남겨 이름에 '남' 자가 들어간 사람이 나타나면 기연을 전해주라고 했다.
기연을 전한 후에야 나의 의지는 구속에서 벗어나 흩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진남 도우, 너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진남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노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대연천종의 시조는 얼마나 오래전에 나타났던 인물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여기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지금 청궁의 주인이 남긴 시공지광에 들어온 것이지 진정으로 주천만계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다만 진남은 노인이 그의 이름에 '남' 자가 있는 걸 어떻게 맞혔는지는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대연천종의 시조의 한 개의 의지인데 그의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맞히는 것이 어려울까?
"믿지 않느냐?"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그윽한 눈길로 진남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나는 질고를 뚫고 주천을 휩쓸어 최고가 되었고 이제 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나타나 나에게 매우 약하다고 했다. 나는 화가 나 그녀에게 도전했고 약속을 했다. 내가 만약 이기면 그녀가 나에게 시집오고, 내가 지면 여기서 너를 기다리겠다고 말이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그리 쉽게 속을 것 같은가?'
그는 눈썹이 새하얀 노인이 대연천종의 시조의 의지가 맞는지 의심되었다.
"농담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머 감각이 없구나."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어색하게 손을 젓고 말했다.
"나는 대연천종의 시조가 맞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때 나는 대연천종을 세운 후 얼마 안 돼 곧 죽는다는 걸 느꼈다. 나는 죽기 전에 한 개의 의지를 남겼다. 누군가 나의 심사를 통과하면 기연을 전수해주기로 했다.
너는 성어를 모르는데 원시탁본을 기억했구나.
좋다, 심사를 통과했다. 어떤 기연을 원하느냐?"
진남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선배님, 성어를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안 된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생각도 하지 않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성어 따위가 어찌 기연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렇게 하자, 너에게 내가 만든 술법을 가르치겠다. 박천대술(博天大術)이다!"
진남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미 어떤 기연을 줄지 정해놓고 왜 나에게 물었지?'
"고맙습니다."
진남은 공수했다.
진남은 왠지 눈썹이 새하얀 노인을 믿고 싶지 않았다.
박천대술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진남의 태도를 느낀 듯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주천만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천대술을 욕심내는지 아느냐? 너는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말이 끝나자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손가락을 튕겨 진남의 머릿속에 빛을 주입했다.
사방의 광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정원, 노인 등은 전부 사라지고 넓은 세상이 나타났다.
그는 기묘한 상태로 세상 밖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의 끝에 누군가 나타났다.
나타난 사람은 평범해 보였는데 몸집도 크지 않고 영기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날지도 못했다.
그자는 한 걸음씩 땅 위를 걸어갔다.
평범한 사람은 오랫동안 걸은 것 같았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했는지 입술이 말랐고 발걸음도 무거웠다.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진남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거지?'
* * *
그 시각, 정원 안.
노인은 진남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천무체는 진짜 대단하구나. 하지만 왜……."
그는 옛일을 회상하며 눈빛이 그윽해졌다.
잠시 후,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짓더니 빛무리로 변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의 시대는 진작에 끝났고 그는 더 이상 신경 쓸 것이 없었다.
* * *
진남은 여전히 평범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휘청거리며 쓰러질 것 같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대지, 산, 강을 걸어 지났고 계절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
진남은 심심하지 않고 점점 더 관심이 생겼다.
'노인이 나에게 전수하려는 박천대술은 어떤 신통법일까? 이런 장면은 어떤 의지를 전달하려는 걸까?'
진남은 정신을 집중하여 평범한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작은 점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평범한 사람의 옷차림은 남루해졌고 몸은 상처가 가득 생겨 피투성이가 되었고 거지보다 더 초라했다.
진남은 눈을 찌푸렸다.
평범한 사람의 위쪽 몇만 리 되는 하늘이 시커메지더니 번개가 번쩍거리고 천둥이 치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마치 평범한 사람을 때려부술 것 같았다.
"크라아아아-!"
용 울음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
적금색의 용이 뇌광에서 날아 나와 엄청난 속도로 평범한 사람에게 부딪혔다.
용은 모든 힘과 방대한 기세로 평범한 사람에게 부딪혔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신산이라도 무너졌을 것이었다.
순간, 등이 휘어진 평범한 사람은 고개를 쳐들고 비명을 질렀다.
용이 자신의 몸에 부딪히려는 순간 평범한 사람은 용의 커다란 입을 잡고 두 손에 무상의 힘을 드러내 용의 입을 찢어 피바다로 만들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뇌광이 사라지고 세상은 맑아졌다.
평범한 사람도 생기를 잃고 땅에 쓰러졌다.
평범한 사람은 죽었다.
진남은 깜짝 놀랐고 믿을 수 없었다.
지금의 그는 손으로 금룡이 아니라 절천지룡도 찢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몸이 약하고 아무런 영기가 없고 쉬체경지 십 단계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무형의 힘을 드러내 용을 찢었다.
'개미가 강한 힘으로 코끼리를 무너뜨리는 걸 본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 개미가 몸이 부서졌다곤 해도 결국 코끼리를 무너뜨렸다.'
"좀 전에 드러낸 건 어떤 힘이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힘이 강하지?"
진남은 크게 놀랐다.
이때 장면이 바뀌었다.
진남은 도장으로 왔고 앞에 선산이 나타났다.
산꼭대기에는 눈썹이 새하얀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는데, 옷자락이 날리고 무표정했다.
"전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떤 술법이 가장 강한 술법일까? 어떤 사람은 가장 강한 술법이란 없고 가장 강한 사람만 있다고 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술법이야말로 가장 강한 술법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역시 듣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가장 강한 술법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술법들은 비교가 안 되는 술법을 만들려고 했다. 내 생각이 황당하고 현실과 맞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천만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거물들과 차를 마시고 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많은 대세력에 쳐들어가 천하만법을 보았다.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결과가 있든 없든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물론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눈썹이 새하얀 노인은 표정이 더 엄숙해지더니 날카롭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박천대술을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술법을 배운 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강한 술법이었다!"
진남은 패기와 자신감을 느꼈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노인은 대연천종의 시조답구나. 이런 패기가 있어야만 주천만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거물이 될 수 있겠구나.'
"박천대술이 무엇일까?
나는 가장 강한 술법은 한 초식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초식은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형태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 언제든 초식을 움직이지만 형태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발견할 수 없다.
초식은 계속 움직이고 계속 겹쳐지고 계속 쌓이는 것이다. 만약 백 년 동안 쌓이면 평범한 사람도 신을 죽일 수 있다!"
몇 마디 말은 마치 우레처럼 진남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진남은 박천대술의 대단함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는 눈썹이 새하얀 노인이 왜 이토록 패기 있고 자신감 있는지 알게 되었다.
힘을 충분히 쌓이면 평범한 사람도 신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럼 같은 경지의 무인이라면 어떨까?
이미 같은 경지에 도달하여 실력 차이가 크지 않은데 박천대술을 드러낸다면 상대방이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천존이 무상천존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무상천존은 천존을 누를 수 있지만 천존도 힘을 충분히 모으면 무상천존을 죽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