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0화 촉룡비경(燭龍?境)
"긴말하지 말자. 우리 신수각으로 가보자."
명도자가 손을 젓자 흰 탑의 대문이 스스로 열렸다.
진남은 명도자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노인들이 빙그레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노인들은 눈이 없었지만, 진남은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들은 모두 우리 신수각의 장로들이다. 대연천종이 파멸되기 전에 이들은 주천만계에 이름을 날린 구전연단사들이었다."
명도자는 소개했다.
"임효지,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진남은 공수했다.
"허허, 소각주 우리와 예의를 차릴 필요 없다."
노인들은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진남은 천부가 대단하지만 조금도 오만하지 않았다.
명도자는 손가락을 튕겼다.
어두컴컴하던 대전이 밝아졌다.
사방의 벽에 새겨진 신비한 그림들은 빛을 반짝거렸고 인물이나 요수 등은 살아난 것 같았다.
명도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두 손에 기이한 법인을 만들어 우렁차게 소리쳤다.
"신수각의 각주의 이름으로 신수각의 전승을 내린다!"
노인들도 엄숙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법인을 만들었다.
"단방!"
명도자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 선음이 울려 퍼졌고 여러 가지 종이, 수피, 옥간 등이 허공을 넘어 날아와 하늘에서 빛을 반짝거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진남은 깜짝 놀랐다.
종이, 수피, 옥간은 만여 개나 되었다.
그것들은 대도가 적힌 것처럼 방대한 대세를 풍겼고 세상을 누를 수 있었다.
"신수각은 전성기에 백만여 가지의 단방이 있었다. 여기 있는 만 가지 단방은 우리가 백만 년의 시간 동안 정성껏 선별하고 제련한 것이다. 양은 적지만 주천만계의 단도가 전부 들어있다."
명도자는 말투가 담담했지만 오만함이 엄청났다.
진남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 가지 단방에 주천만계의 단도가 전부 들어있다면 얼마나 대단할까?'
"단술!"
명도자는 진남이 말하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엄청난 빛들이 하늘을 날아왔다.
금색 수골, 오래된 비석, 다채로운 옥패 등 천여 가지가 되었다.
"신수각의 단술 만묘단전(萬妙丹典)이다. 세상에 둘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천만계에서 가장 최고의 연단술일 것이다. 나머지 천여 가지 단술은 전에 신수각에서 모은 것인데 내가 깊이 연구하고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좋은 것만 남겨 만 가지 단술을 천 가지로 만들었다."
명도자의 설명을 듣고 진남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처음에는 그저 괜찮은 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절세의 기연이었다.
"단약, 이리 오너라!"
명도자가 손을 젓자 선옥으로 만든 병들이 나타났다.
병 안에는 단약이 한 개씩 들어있었다.
단약은 모두 삼백여 개였다.
단약들은 어떤 건 불꽃처럼 시뻘겋고 어떤 건 마상처럼 시커멨다.
단약들에는 금색 무늬가 있었는데 가장 적은 건 무늬가 한 개이고 많은 건 무늬가 아홉 개였다.
진남은 단약을 자세히 관찰했다.
세 개의 단약은 무늬가 아홉 개였는데 풍기는 기운도 넓은 바다처럼 끝이 없었다.
그의 경지로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선단은 구전으로 나뉜다. 무늬가 한 개이면 일전선단이고 무늬가 아홉 개면 구전선단이다. 신수각은 완전히 몰락하여 너에게 줄 건 구전선단 세 개와 팔전선단 열 개뿐이다."
명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이거면 충분합니다."
진남은 명도자를 위안했다.
대연천종의 신수각이 내놓은 단약은 너무 적었다.
하지만 진남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이건 진남이 주천만계의 단약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진남은 침착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구전선단은 주천만계에도 매우 적었다.
구전선단이 한 개 나타나면 많은 세력들이 빼앗으려고 했다.
선제 등급의 강자들만 구전선단을 복용할 자격이 되었다.
이백세 개의 선단을 한데 모으면 선제 등급의 강자도 손을 쓰게 할 수 있었다.
명도자는 웃고 말했다.
"너에게 줄 단약은 많지 않지만 이것들은 우리가 정성껏 선택한 것이다. 단약마다 효능이 다르다. 단약을 복용할 때 정신을 집중하고 그것들의 약성을 이해해야 한다.
너는 단도에 대해 잘 모른다. 한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선단은 마음대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너의 경지로 삼전선단 정도밖에 복용할 수 없다. 삼전을 초월한 건 궁금하다고 해도 복용하지 말거라. 아니면 너는 평생 무상천존의 경지를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자, 이것들은 전부 네가 가지거라."
명도자가 소맷자락을 젓자 무형의 위력이 단방, 단술, 단약을 전부 한데 모아 담홍색 반지에 주입했다.
반지는 진남의 앞에 나타났다.
"이 반지는 우리 신수각의 소각주의 신분 상징이다. 좀 전에 보았던 것들 외에 우리 다섯 명이 남긴 의지가 있다. 나중에 단방, 단술을 볼 때 문제가 있으면 반지를 움직이거라. 우리가 대답해주겠다."
명도자는 말했다.
"소각주, 너에게 우리 신수각의 희망을 걸었다."
다른 노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했다.
"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진남은 인사했다.
그는 단약을 만드는 거에 관심이 없었지만 절세의 기연을 얻었으니 절대 낭비하지 않을 것이었다.
"네가 이렇게 말하니 안심하겠다."
명도자는 웃으며 말했다.
"일이 끝났다. 이제 떠나도 된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이대로 나를 보낸다고?'
"대연전승이 열렸고 너는 '선' 자를 얻고 선기를 차지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대연천종의 진정한 전승을 얻는 것이다. 단약을 만드는 건 급하지 않다. 대연천종의 후계자가 된 후 천천히 수련하거라."
명도자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고도를 한 장 꺼냈다.
"너는 우리 신수각의 소각주가 되었다. 우리는 당연히 너를 도와줘야 한다. 다만 우리는 너무 많은 일에 참견할 수 없고 작은 도움밖에 줄 수 없다.
이 지도에 그려진 노선에 따라가거라. 촉룡비경을 넘으면 전승전에 도달할 수 있다."
* * *
반 시진 후 하늘 가득한 검은 안개 속에서 진남은 '선' 자를 드러내 허공을 부쉈다.
"나중에 시간을 충분히 남겨 단방과 단술을 기억하고 단약도 전부 연화해야겠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구나. 이제 시작하자……."
진남은 일전선단을 꺼내 입에 넣었다.
무형의 힘이 그에게서 풍겨 나와 모든 경맥에 주입되었고 그는 변화가 생겼다.
그는 선기처럼 빛을 반짝거렸다.
진남은 조금 놀랐다.
그는 일전선단에 이 정도 단력이 있을 줄 몰랐다.
'구전선단은 단력이 어느 정도일까?'
"시공지광에 있는 것이 다행이구나. 삼전을 초월한 선단을 복용하여 무상천존 이상의 경지를 돌파하지 못했다 해도 나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진남은 중얼거렸다.
시공지광에 있지 않다면 엄청난 낭비였다.
진남은 일심삼용하여 이동하면서 단약의 효능을 느끼고 시공성전을 수련했다.
몇 시진 후 진남은 검은 안개에서 벗어났다.
진남은 주위를 둘러보고 일전선단을 한 개 꺼내 입 안에 넣고 동시에 몇 개의 기묘한 법인을 만들었다.
무형의 힘이 그를 덮었다.
명도자 등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진남은 전에 그를 쫓던 그림자가 대연천종이 설치한 금제인 장마(?魔)라는 걸 알았다.
그들은 허공에 가득했고 어떤 수단으로도 느낄 수 없었고 만나게 되면 경지나 전력이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고 죽을 게 뻔했다.
장마를 상대하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첫 번째 방법은 이곳의 비경에 들어가거나 대전에 들어가면 장마를 물리칠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법은 명도자가 진남에게 전수한 손자국이었다.
손자국은 장마가 진남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진남은 고도를 꺼내 방향을 정한 후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에 명도자와의 대화를 통해 진남은 그들이 지금 소세계에 있다는 걸 알았다.
소세계는 대연천종의 종지처럼 장로전, 전승전, 공법전, 신수각, 공적각 등과 제자들이 시련하는 비경 그리고 장로들도 들어갈 수 없는 금지가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전의 대연천종의 진정한 종지와 비교가 안 되었다.
크기가 매우 작았고 물건도 매우 적었다.
진남이 지금 가려는 촉룡비경은 예전의 대연천종이 제자들을 연마하는 십 대 비경 중 한 개였다.
비경에는 위기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고 요수들이 가득했다.
비경의 중심에는 촉룡선수(燭龍仙樹)가 자랐다.
소문에 이 나무는 주천만계에 이름을 날린 촉룡이 대연천종의 선제의 공격에 죽은 후 용혈이 무량선수(無量仙樹)의 나무 꼭대기에 떨어져 이변이 일어나 변한 것이었다.
촉룡선수는 삼백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열매를 먹으면 경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촉룡의 예전에 신통법을 얻을 수 있었다.
촉룡은 대성 경지의 절세의 대요였고 선제와 겨룰 수 있었다.
그것의 신통법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삼 일 후 진남은 황량한 사막을 지났고 촉룡비경이 보였다.
천지는 이미 색이 변했고 하늘은 혈색, 땅은 흰색이었다.
요기들이 떠다녔고 요기폭풍이 사방을 휩쓸었으며 짐승 울음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졌다.
진남은 일전선단을 한 개 꺼내 입에 넣었다.
체내에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선단에는 선뢰의 뇌력이 있었다.
육신에 상처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련하는 속도를 높였다.
더 중요한 건 무인들은 뇌력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남은 뇌도를 꺼내고 비경으로 들어갔다.
촉룡비경에 도착하면 교활한 수단을 쓸 수 없고 싸워야 했다.
이틀 후, 진남은 비경 깊은 곳에 들어갔다.
그는 앞에 무상의 존재가 있고 위력으로 주변을 제압하는 것을 느꼈다.
천지에 존재하는 요기들도 점점 짙어졌고 한데 모여 안개를 이루었으며 여러 가지 요도 이상을 일으켰다.
"촉룡선수와 멀지 않구나……."
진남은 중얼거리며 속도를 높였다.
잠시 후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어떤 충격을 받은 것처럼 앞쪽의 요기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걸 느꼈다.
"누군가 싸우고 있나?"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우고 온몸의 기운을 거두고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후 진남은 높은 산 산꼭대기 위에 시뻘건 나무가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뭇가지들은 구름을 뚫고 용처럼 주천을 내려다봤다.
나무 아래에는 다섯 개의 엄청 강한 기운이 부딪히며 힘을 퍼뜨렸다.
진남은 자세히 관찰하고 어리둥절했다.
흰 옷자락을 날리고 피부가 하얗고 고검을 든 여인이 검선처럼 절세의 검기를 드러내 네 명과 싸우고 있었다.
여인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로 유응상이었다.
'다른 네 명도 평범하지 않구나!'
진남은 눈을 찌푸렸다.
단발머리 청년은 뱀 같은 쇠사슬을 움직여 검기들을 가두고 까다로운 각도로 유응상을 공격했다.
유응상은 많은 양의 검기를 드러내 그와 싸웠다.
그녀는 단발머리 청년에게 밀렸다.
이때, 단발머리 청년은 앞으로 다가오며 쇠사슬로 하늘 가득한 그림자를 만들어 유응상을 덮었다.
그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유응상, 발버둥을 치지 말거라. 너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어찌 나의 상대가 되겠느냐? 촉룡지과(燭龍之果)를 내놓거라."
하지만 유응상은 표정이 흔들리지 않았고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공격했다.
"후, 이럴 필요 있느냐?"
단발머리 청년은 한숨을 쉬고 거리낌 없이 유응상의 몸을 훑어보았다.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네가 고집을 꺾지 않으니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
단발머리 청년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도광이 엄청난 속도로 그에게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