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4화 젊은 항존
진남 일행은 무묘법지의 중간지대를 날아 지났다.
진남은 문득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선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임 형, 왜 그러시오?"
계현, 고비, 명초노조도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서 쳐다봤다.
진남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아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계현, 고비, 명초노조는 진남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살폈다.
아래에 있는 산봉우리들에서 규모가 작지 않은 싸움이 벌어졌다.
세 중년 사내, 검은 옷을 입은 노인,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가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
그들은 주재 대성의 경지였는데 특히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주재정상을 돌파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한 청년을 쫓고 있었다.
청년은 긴 머리카락에 자태가 꼿꼿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는 거칠고 고집이 세며 무법천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청년은 고작 주경 정상의 경지였다.
"도선검결(挑仙劍訣)!"
주재경지의 강자들은 빠른 속도로 천존술(天尊術)을 펼쳤다.
사방에 검기가 가득하고 살국들이 만들어졌다.
"부숴라!"
주경 청년은 겁을 먹지 않고 자금색 창을 휘둘렀다.
창은 엄청난 힘을 뿜어 다섯 주재 강자의 살국을 전부 부쉈다.
"봉천령롱탑(封天玲瓏塔)!"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는 하얀 손을 뻗어 법인을 만들었다.
주경 청년의 위쪽 허공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만 장이 되는 고탑이 나타났다.
고탑은 방대한 힘을 풍기며 주경 청년의 주변을 잠시 동안 봉쇄했다.
"이따위 잔재주를 사용하다니!"
주경 청년은 욕설을 퍼붓고 창으로 탑을 찔렀다.
하지만 봉천령롱탑은 보기 드문 상고도기였고 분홍 옷을 입은 소녀의 힘까지 더해져 위력이 엄청나게 컸다.
청년은 짧은 시간에 탑을 부술 수 없었다.
"이야, 주경 청년이 대단하구먼. 전력도 엄청 강하오."
허공 깊숙한 곳에 있던 계현은 감탄하고 진남을 보며 말했다.
"임 형이 보기에……."
계현은 놀라서 말을 채 뱉지 못했다.
그는 진남의 두 눈에서 흥분, 따뜻함, 존경 등 복잡한 감정을 발견했다.
그는 진남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계현은 고비와 명초노조를 바라보았다.
고비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명초노조는 계현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계현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닫았다.
이때, 싸움의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청년은 전력이 아무리 강해도 주경 강자였기에 결국 다섯 주재 강자의 수단을 이기지 못하고 갇혀 도망갈 수 없게 되었다.
"항존,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지 말거라. 상황이 어떤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빨리 물건을 내놓거라. 그러면 살려는 줄게."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가 호통을 쳤다.
"그래. 네가 시도족의 소족장이라는 체면을 봐서 물건만 내놓으면 오늘 일은 따지지 않으마."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은 차갑게 말했다.
다섯 주재들은 항존을 포위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항존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사실 너희들에게 물건을 줘도 상관없다.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물건이거든. 하지만 아주 작은 조건이 있다. 들어줄 수 있겠느냐?"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말해보거라."
항존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내 조건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너."
그는 손가락을 뻗어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를 가리켰다가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을 가리켰다.
"그리고 너, 너, 너……."
항존은 다섯 주재 강자를 일일이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 물건을 주마. 어떠냐?"
허공에서 구경하던 계현과 고비는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명초노조의 두 눈에 빛이 스쳤다.
분홍 옷을 입은 소녀가 항존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는 청년의 신분을 알아차렸다.
명초노조는 후세에 명성이 자자한 전신이 젊었을 때 이런 모습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섯 주재들은 항존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곧 상황을 파악했다.
"항존, 봐주니까 너무 날뛰는 구나. 죽어라!"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 등 주재들은 버럭 화를 냈다.
그들은 기세를 드러내고 살기를 풍기며 항존을 공격했다.
'너무 건방지다. 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 그렇다면 우리를 원망하지 말거라!'
항존은 상황이 변해도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다섯 주재가 대수냐? 나는 너희들을 이길 수 있다!'
항존이 손을 흔들자 보라색 창이 그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웅웅 진동했다.
항존이 공격하려는 순간, 한 형상이 나타나 그의 손에 들린 창을 눌렀다.
바로 진남이었다.
"누구냐?"
다섯 주재는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들은 살기를 거두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진남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경계와 의혹이 가득했다.
'이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항존의 옆으로 온 걸 보면 분명 주재정상은 될 거다.'
항존도 진남을 확인하고 의아했다.
시도족이 항존을 지키려고 보낸 강자는 절대 아니었다.
항존은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이 청년은 왜 내 편에 서는 거지?'
"도우,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네가 항존을 돕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도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 미리 말해주는 건데 항존은 가지지 말아야 할 물건을 가졌다. 조금 있으면 주재정상의 강자 두 명이 더 올 거다."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은 바로 공격하지 않고 무거운 표정으로 협박했다.
청년은 신분이 불분명하고 기이하게 나타났기에 그는 웬만하면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썩 꺼지거라."
진남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 뭐라고 했느냐?"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과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등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귀를 의심했다.
'썩 꺼지라니?'
"도우, 너무 건방지구나!"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등은 이내 반응하고 화를 냈다.
항존도 건방졌는데 눈앞에 나타난 청년은 더 건방졌다.
그들도 주재경지라서 성격이 강직했다.
"같이 공격합시다!"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등은 외쳤다.
그들이 힘을 합치면 신비로운 주재정상의 청년과 항존을 충분히 가둘 수 있었다.
그 사이에 두 주재정상이 도착한다면…….
"썩 꺼지라는 말 못 들었느냐?"
진남은 다시 한번 무뚝뚝하게 말했다.
마지막에 그는 엄청난 기세를 드러냈고 강한 위압감이 홍수처럼 사방을 휩쓸었다.
땅과 하늘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먼 곳에 있던 요수와 생령들은 겁을 먹고 포효했다.
진남 옆에 있던 항존은 눈을 찌푸렸다.
검은색 옷을 입은 노인,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 등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웅웅 거리고 새하얗게 질렸다.
천존 거물이 풍기는 위압이었다.
'우리가 방금 천존 거물을 위협한 거야?'
진남은 그들의 표정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휙 저었다.
방대한 힘이 그들을 감싸더니 몇만 리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반응하려면 한참이 걸려야 했다.
"선배님, 천존 거물이십니까?"
이때, 항존이 반응했다.
그는 불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님은 저와 아는 사이도 아닌데 왜 손을 쓰신 겁니까?"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와줬는데 오히려 탓하시는 겁니까?"
항존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요. 저와 저자들의 싸움은 이미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저놈들이 놀라서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선배님 탓을 하지 않게 생겼습니까?"
진남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전신다운 생각이었다.
위험한 상황을 해결해줘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불만을 토로할 사람은 대상계에 전신밖에 없을 것이었다.
항존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뭐가 그리 웃기십니까?"
그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후,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저를 도와주셨으니 고맙습니다. 선배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진남은 잠깐 고민하고 대답했다.
"이름 없는 무인입니다."
항존은 눈을 흘겼다.
'천존 경지면서 이름 없는 무인이라고 하다니? 말해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됐습니다. 말하기 싫으시면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왜 저를 도와주신 겁니까? 시도족 때문입니까?"
항존은 물었다.
진남은 고개를 젓고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시도족과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도와준 것은 도우 때문입니다. 도우가 항존……이기 때문입니다."
항존은 어안이 벙벙했다.
곧 그는 몸서리를 쳤다.
'이토록 진지하게 말하는 걸 보니 설마…….'
"선배님,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답하겠습니다."
항존은 한마디 내뱉고 줄행랑을 쳤다.
'엮이면 안 돼, 엮이면 안 돼!'
"쫓아가지 않느냐?"
명초노조가 허공에서 나오며 미소를 짓고 물었다.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이다. 저자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지 않느냐?"
진남은 항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젊었을 때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말을 마친 진남은 감정을 다스리고 명초노조 등과 함께 길을 떠났다.
* * *
한 시진 후, 무묘법지의 변두리에 도착한 항존은 걸음을 멈추었다.
"쫓아오지는 않았겠지?"
항존은 중얼거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천존의 마음에 들자 당황했다.
상대방이 성향이 특이하고 무력으로 제압한다면 항존은 반항할 수 없었다.
항존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고 몸서리를 쳤다.
"요즘 왜 이래?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천존을 둘씩이나 만났다. 그것도 이상한 녀석을……."
항존은 영패를 꺼냈다.
영패에는 대충 쓴 '주'라는 글자가 있었다.
항존은 귓가에 그 사람의 말이 맴돌았다.
'항존, 진정한 무도의 세상을 보고 싶으냐? 진정한 무도의 힘을 느끼고 싶으냐? 그럼 나를 따르거라. 내가 너를 그곳에 데려가마.'
항존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 녀석이 이 세상의 최강 사 대 천존 중 한 명이긴 하지만 나더러 따르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 절대 불가능해!'
항존은 영패를 잘 보관했다.
항존은 콧노래를 부르며 보라색 창을 멘 채 앞으로 걸어갔다.
* * *
어느새 사흘이 지났다.
진남 일행은 성천무교로 돌아왔다.
자호천존 등은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이야, 진짜 천존으로 진급했구나."
"위압으로 판단하면 천존 정상은 된 것 같다."
"효지야, 너 사람 맞느냐? 천존으로 진급하자마자 정상이야?"
천존들은 놀라서 외쳤는데 표정에 원망도 섞여 있었다.
자호천존은 밝게 웃었다.
"쓸데없는 말이 그리 많느냐? 빨리 보물을 내놓거라."
진남은 기가 막혔다.
존경했던 선배들이 그가 천존으로 진급하는 일을 두고 내기를 했을 줄이야.
'이런 일을 왜 미리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거지?'
"선배님, 이들은 제 벗입니다. 이들을 천지무궁에 들여보내도 되겠습니까?"
진남은 물었다.
"응? 너희들 지난번 만세무회에서 볼 때보다 경지가 많이 강해졌구나."
자호천존은 고비 등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했다. 너희들은 천지무궁으로 가도 좋다. 있고 싶을 때까지 있어도 된다."
고비 일행은 기뻐서 얼른 자호천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들은 진남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천지무궁의 위쪽 십몇 층에 소장한 무도공법을 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