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화 태초지문(太初之門)
그 시각, 오른쪽 세 번째 화도산.
자세히 살펴보면 진남은 온몸 구석구석에서 흰색 안개를 뿜었다.
옅은 시공지력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작고 신비한 부문들이 어느새 진남의 손바닥에 그려졌다.
가라앉았던 진남의 심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몽롱한 느낌은 진남에게 거의 다 녹아서 얼마 남지 않았다.
번쩍-!
진남의 심신이 깨어났다.
마지막 남은 몽롱한 느낌도 사라졌다.
"어?"
진남은 예전과 같은 풍경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주변은 온통 시커멓고 빛도 없고 기운과 소리도 없었다.
마치 영원한 어둠에 빠진 것 같았다.
진남은 살펴보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웅-!
어둠은 파문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어, 진남의 앞에 붉은색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는 백 장 길이밖에 되지 않고 어둠에 떠 있었으며 강기를 뿜었다.
다리는 수많은 피가 물들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진남은 시뻘건 다리에 날아올랐다.
그의 발이 다리에 닿는 순간 이변이 일었다.
쿵-!
엄청난 압력이 홍수처럼 밀려와 진남을 공격했다.
진남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심신이 격렬하게 떨렸다.
"이게 무슨 압력이지?"
진남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심신, 의지 등이 만들어낸 것은 환상이고 실체가 없었다.
하지만 엄청난 압력은 그를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에도 충격을 주었다.
"고작 이 정도로 나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진남의 두 눈에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는 압력을 이겨내고 한 걸음 더 옮겼다.
펑펑펑-!
진남의 흐릿한 형상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두 걸음 옮겼을 뿐인데 많은 상처를 입었다.
진남은 무시하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백 장이라는 거리는 무왕 경지라도 일정한 시간을 주면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주재대성인 진남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남은 겨우 십 장을 지나는 데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쉬체 경지 정상의 무인보다 더 늦은 속도였다.
진남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오십 보!
백 보!
얼마나 지났을까?
진남은 다리 끝에 거의 도착했다.
한 걸음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진남은 발을 들었다.
다리 끝과 삼 촌 떨어진 곳에 엄청난 압력이 폭등했다.
바다 같던 압력은 옛 세계로 변해 진남을 눌렀다.
"떨어져라!"
진남은 호통을 쳤다.
흐릿하던 형상은 빛을 뿜었다.
쿵-!
드디어 마지막 걸음을 내디뎠다.
시뻘건 다리는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 * *
그 시각 소무상계.
진봉화, 심약주재, 진남 등은 무형의 힘에 의해 화도산 위로 떠올랐다.
등 뒤의 금빛 빛무리들이 작아지더니 세 사람의 몸에 떨어졌다.
셋은 황금 갑옷을 입은 것처럼 비범한 기세를 풍겼다.
세 사람에게서 은근한 위압이 뿜어졌다.
처음에 옅게 느껴지던 위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맹수처럼 사방을 충격했다.
"왔다!"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자 바짝 긴장했다.
둥-! 둥-! 둥-!
이때, 묵직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에 하나 셀 동안 한 번 울리던 것이 두 번, 다섯 번, 열 번 울리더니 마지막에는 하나 셀 동안 백 번이나 울려 퍼졌다.
쿠쿠쿠쿵-!
소무상계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넓은 하늘은 신검에 맞은 것처럼 기다란 틈이 생겼다.
대지는 엄청난 공격을 받은 것처럼 부서지더니 커다란 골짜기가 생겼다.
기운들이 혼란스러워졌다.
아홉 마리 금조가 춤을 추고 풍운환, 일월동광 등 엄청난 이상들도 혼란스러워졌다.
천지의 빛들이 일그러지고 엄청난 재난이 닥칠 것 같았다.
"엄청난 이상이다!"
선성에 있던 무인들은 눈앞에 벌어진 장면에 넋을 잃었다.
주재 경지를 돌파한 거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구천지존, 패자 등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있는 성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중상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
어느새 무인들은 심신이 이유 없이 차분해졌다.
천지가 무너지는 모습이 그들과 상관이 없고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것 같았다.
무인들은 고개를 들고 쉰여 개의 화도산 뒤쪽을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 빛들 사이로 신비한 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책 위에 힘이 덮여 있어 흐릿했고 책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무인들은 책이 품은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평생을 바쳐도 그 신비함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바로 봉도서였다.
자호천존 등은 책의 본체를 무상소세계의 깊은 곳에 펼쳤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봉도서의 의지였다.
펄럭펄럭-!
무인들 귓가에 책을 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는 컸지만, 귀청을 찢을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흐르는 물처럼 듣기 좋고 마음이 편안했다.
무인들은 저도 몰래 책 펼치는 소리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무인들은 선성의 위쪽에 몇만 개의 흰색 빛무리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주먹 크기만 하고 가벼워서 눈꽃처럼 흩날렸다.
"이것은……."
무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빛무리가 모여 떨어지자 무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따뜻한 느낌의 영혼까지 감쌌다.
그들은 생각이 더 또렷해지고 영감이 마구 스쳤다.
"이상을 일으켜서 봉도서가 우리에게 기연을 준 것이다!"
선성은 다시 북적거렸다.
주재 경지의 거물들도 피하지 못했다.
기연은 생각보다 컸다.
무인들의 머릿속에 빛이 번쩍거렸다.
그들은 아무거나 잡아도 수확이 무척 컸다.
잡지 못한다고 해도 사유 방식이나 생각들이 그들의 몸에 각인될 것이었다.
무인들은 나중에 경지를 돌파할 때 다시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천지대동요를 일으킨 것도 이리 대단한데 아홉 개 별이 세상에 강림하는 이상을 불러오면 봉도서는 어떤 기연을 내릴까?"
무인들은 흥분했다.
다른 곳에서 지켜보던 천극방의 영은 만족스러웠다.
"이게 바로 만인의 주시를 받는 거요. 심사에 참가한 무인들 모두 그들이 아홉 개의 별이 세상에 강림하는 이상을 기대하지 않소?"
자호천존은 기뻐서 말했다.
"천 형의 말이 틀렸소. 그들이라니, 진봉화 한 사람이요. 우리가 많은 준비를 한 것도 진봉화를 위한 것이요."
천극방의 영은 그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허튼소리 하지 마시오. 내가 어찌 심약주재와 임효지도 그 단계가 되길 바라지 않겠소? 하지만 어떤 것들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 나도 방법이 없소. 이번에는 심약주재와 임효지가 진봉화를 위해 참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소."
천극방의 영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참,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 진봉화는 다 좋은데 성격이 무뚝뚝하오. 어떻게 변화시킬 방법이 있소?"
자호천존은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기회를 만들어 그들 넷과 접촉하게 하면……."
* * *
그 시각, 진남, 진봉화, 심약주재의 마음속.
그들은 동시에 끝없는 어둠에서 마지막 걸음을 옮겼다.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 앞에 넓고 곧은 청색 돌길이 나타났다.
길은 미약한 빛을 뿜고 위에는 신비한 무늬들이 가득했다.
길의 끝에 청동 문이 있었다.
문은 높이가 구백아흔아홉 장이고 넓이가 삼백서른세 장이며 가운데 용 모양의 고리가 있었다.
문 양쪽에는 힘 있는 옛 글자가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문이었다.
진남이 전에 만났던 신현무문 등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게감은 현묘한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 다른 무게감과 달랐다.
슉-!
이때, 흰색의 흐릿한 형상이 강림했다.
"이 문은 시작의 문이고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다. 이 문을 부수면 많은 현묘함을 탐색할 수 있다. 하지만 부수지 못하면 평생 희망이 없다."
흰색 형상은 목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문을 부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
말을 마친 흰색 형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문을 부수라고?"
진남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무력으로 문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섯 번째 심사에는 무예 재능을 보는 것이었다.
때문에, 문을 부수는 방법은 무예 재능을 펼치는 것이었다.
진남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문 앞으로 날아가 가부좌를 틀었다.
진남의 심의지력은 그물망처럼 대문을 덮었다.
어느덧 한 시진이 지났다.
진남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방금 시도한 방법은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는 문에서 현묘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문이 어찌나 비범한지 진남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느낄 수 없으니 볼 수밖에 없다."
진남은 동허지동을 꺼내어 힘 있는 옛 글자를 살폈다.
글자는 대충 쓰여 있었고, 상고시대에 썼던 것이라 진남은 겨우 두 글자만을 알아보았다.
이것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글자의 표면적인 뜻을 읽는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었다.
글자들은 한 획마다 의지를 담고 있고 오묘함을 담고 있었다.
"역시나!"
반 주 향이 탈 시간이 지나고 진남의 두 눈에 빛이 돌았다.
진남은 옛 글자에서 현묘한 흔적을 찾았다.
진남은 마음을 거두고 거기에 집중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진남은 글자에서 현묘한 흔적을 점점 많이 찾았다.
어떤 임계점을 돌파하자 현묘한 흔적들은 대도의 규칙처럼 진남을 감쌌다.
진남은 온몸이 따뜻했다.
점차 진남은 몽롱한 느낌에 빠졌을 때처럼 저도 몰래 현묘한 흔적에 빠져들었다.
진남은 알지 못했다.
청동 대문에 있던 옛 글자들이 깨어난 것처럼 대문에서 떨어지더니 진남에게 날아갔다.
마지막 글자가 진남의 몸에 들어가자 진남의 육신은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양손으로 법인을 만들었다.
쿠쿠쿵-!
불후상마진결, 전도선전, 궁우태황진경 등 진남이 장악한 문도법들은 동시에 움직이며 엄청난 의지를 풍겼다.
주변의 어둠에 오색찬란한 빛이 비쳤다.
슉-!
진남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문도법에 대한 이해와 살초들을 드러냈다.
마지막 초식까지 펼치고 나나 이상한 장면이 벌어졌다.
그가 드러낸 초식의 의지들이 오래된 빛의 문자로 변해 날아다녔다.
멀리서 보면 진남은 문자의 바다에 있는 것 같았다.
"대도는 흐릿하고 의지는 형태가 없구나. 산을 넘고 바다와 산과 밭을 보며 아침저녁으로 뛰어다녔더니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
도는 글자이다. 내리쓰고 가로쓰는 획마다 의지가 담겨 있다. 이게 바로 봉도서의 신비함이구나."
"이 문에 있는 글자의 비밀을 보아낸 걸 보니 태초지문(太初之門)의 인정을 받았구나. 문을 부수려면 너의 도를 잘 알고 너의 문자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
목이 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현묘한 느낌에 빠져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문자 바다에서 헤엄치며 익숙함과 오묘함을 느꼈다.
* * *
하루가 지났다.
이제 세 개의 화도산만이 다섯 번째 심사를 받고 있었다.
진봉화, 심약주재, 진남이었다.
다른 무인들은 일월동광 이상까지 일으키고 실패했다.
셋은 기운이 온화했다.
혼란스러운 천지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다른 무인들 중 지루하다고 느껴서 떠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수시로 진남 등을 살피며 결과를 기다렸다.
"심약주재에게 반응이 온 것 같아!"
한 무인이 외쳤다.
그의 말은 천둥처럼 다른 무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무인들은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심약주재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의 몸에 은은한 청색 빛이 나타났다.
쿵-!
심약주재는 엄청난 기운을 뿜었다.
그의 기운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방대한 의지도 드러나 하늘로 솟구쳤다.
그를 막는 모든 것을 부술 기세였다.